매앰매앰매앰매애애앰.

 

시끄러운 매미 소리가 규칙적으로 반복되었다.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그늘진 평상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데, 팔락팔락 거슬리는 소리가 선기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늘에 누워있음에도 6월의 낮은 뜨겁다. 습한 공기에 숨만 쉬어도 사우나에 있는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펄럭펄럭펄럭—

매미 소리보다 훨씬 작은 소리임에도 그 경박스러운 팔락임은 선기의 심기를 건드리기엔 충분했다. 참다 참다 도저히 안 되겠어 선기는 벌떡 일어나 소리의 원인을 붙잡았다.

티셔츠 목을 병적으로 펄럭거리던 하림의 손이 선기에 의해 멈춰졌다. 하림은 멀뚱히 선기를 바라보았다. 웬일로 하림이 아무 말 없이 눈을 마주하고 있나 했더니 별안간 잡히지 않은 손을 들어 구겨진 선기의 미간을 꾸욱하고 눌렸다. 예상치 못한 터치에 선기는 하림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하림의 손이 허공에 잠시 머물렀다. 머뭇대던 손은 자유로워지자 곧바로 다시 티셔츠 목을 못살게 굴기 시작했다. 다 늘어난 목은 하림의 거침없는 손에 의해 또 애처롭게 이리저리 팔락거렸다.

 

선기는 짜증이 치솟았다. 하림이 이럴 때마다 선기가 얼마나 화가 나는지 안다면 절대 하림은 그렇게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마 평생을 가도 하림은 모르겠지. 그게 진하림이니까.

“네 맘대로 해.”

선기가 신경질적으로 말하고는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딱히 온 연락도 할 것도 없었다. 그냥 하림에게서 시선을 돌리기 위한 의미 없는 행동이었을 뿐. 하지만 그다지 소용이 있진 않았다. 거슬리는 팔락거림은 또 선기의 시선을 빼앗았으니까.

얼마나 잡아당긴 건지, 시보리는 이미 애저녁에 다 닳았다. 아무렇게나 쥔 셔츠 목은 하림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불쌍할 만큼 쭉쭉 늘어났다. 그리고 그때마다, 하림의 가슴이 훤히 다 드러났다. 더운지 송골송골 맺힌 땀이 목에서 하림의 가슴께로 쭉 흐르는 그 순간 선기가 하림의 손목을 확 잡아챘다.

 

선기는 말없이 하림을 끌고 걸었다. 영문도 모른 채 선기에게 손목이 잡혀 걷고 있음에도 하림은 저항도 없이 그냥 그렇게 따라갔다. 대신 한 마디 덧붙었다.

“더워.”

“…잔말 말고 그냥 따라와.”

“……더워.”

“…….”

 

⁕ ⁕ ⁕

 

“…맛있냐?”

“응.”

선풍기 앞에 앉아 쭈쭈바를 먹고 있는 하림의 표정은 행복 그 자체였다. 그 모습에 선기는 어이가 없어 픽 하고 웃어버렸다. 아까는 몰랐는데, 실내에서 보니 하림의 얼굴이 붉다. 얼굴뿐 아니라 팔도 다리도 발갛게 달아 있는 게 아까 땡볕에 오래 있었던 탓이 분명했다. 빨갛게 익은 하림의 얼굴을 보니 죄책감이 들었다. 더운 걸 싫어해서 금방 들어갈 줄 알았는데.

아무리 초여름이라지만 대낮에 선풍기도 없는 마을 평상에 선기가 누워있던 건 하림을 떼놓기 위해서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선기가 3년 만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그때부터, 하림은 늘 선기의 곁에 붙어 있었다. 올해 2월 두 사람이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꼭 3년째다. 그런데 요즘 선기는 하림을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언제부터인 걸까.

 

선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하림이 허둥지둥 따라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고 선기가 말했다.

“어디 안 가.”

선기의 말에도 하림은 의심스럽게 선기를 쳐다보았다. 하긴, 워낙 거짓말을 많이 했으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선기가 하림의 머리를 헝클었다. 부드러운 머리칼이 선기의 손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진짜 어디 안 가. 거짓말이면 쭈쭈바 하나 더 사줄게.”

그 말에 하림이 잠깐 고민을 하더니, 다시 선풍기 앞으로 착석했다. 손해 볼 것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저 작은 머리통으로 도통 무슨 생각을 하나 알 수 없어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이런 건 또 기가 막히게 읽기 쉬웠다.

이번에는 정말 금방 돌아왔다. 하림이 입을 삐죽였다. 아, 하나 더 먹고 싶은데. 하림은 말 대신 빈 쭈쭈바를 쪽쪽 소리 나게 빨았다.

 

선기가 얼음물과 수건을 가져왔다. 피부에 오른 열감을 빼주기 위해서였다. 선기는 말없이 하림의 옆에 앉아 하림의 팔을 끌었다. 물에 적신 수건을 하림의 팔에 얹어주자 하림이 손을 뺐다.

“차가워.”

“가만있어 봐.”

 

낮에는 해가 쨍쨍하더니, 저녁이 되자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렸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건지 장대 같은 비가 후두둑하고 처마를 때렸다. 그러자 하림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선기네 집 장롱에서 베개와 이불을 꺼내온다. 진짜 웃겨. 선기도 응답하듯 하림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림의 외할머니가 묻기도 전에 말했다.

“하림이 자고 온다고?”

“네. 하림이 오늘 저희 집에서 자고 갈게요. 네. 네.”

간단한 안부를 나눈 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하림은 이미 바닥에 누워 저를 쳐다보고 있다. 선기가 피식 웃으며 옆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이 아닌 할머니가 있는 시골에서 계속 살겠다고 고집을 부린 건 부모님에게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라고 했지만, 사실은 다 진하림 때문이었다. 선기는 작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이곳에 남겠다고 했다.

그땐 여기가 너무 싫었는데, 일본에 있는 동안은 너무도 그리워서 미칠 것 같았다.

 

⁕ ⁕ ⁕

 

“선기야. 엄마 없는 동안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알았지?”

“…….”

“너 진짜 대답 안 할 거야?”

“…….”

제 아들을 붙들고 한참을 실랑이하던 여자는 결국 아들의 고집스러움에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휙, 장면이 바뀐다.

 

교실 안, 잔뜩 심통 난 소년이 뒷자리에 팔짱을 낀 채로 앉아있다.

이 작은 시골에는 서울처럼 큰 초등학교가 없었다. 전교생이 20명 남짓한 분교가 전부였다. 전교생을 다해도 선기가 다녔던 학교의 한 학급 학생 수보다도 작다. 그 생각을 하니 한층 더 골이 났다. 여긴 진짜 시골이다. 시골.

전학 첫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자리에 앉아있는데, 말간 얼굴의 소년이 살갑게 말을 걸었다.

“안녕.”

“…….”

“내 이름은 진하림인데 너는 이름이 뭐야?”

“…….”

“너 서울에서 전학 왔다며? 나 서울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처음 보는 남자아이는 자신이 이렇게 무시하는데도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대답이 없어도 재잘재잘 잘도 떠들었다.

“학교에서 내가 제일 형이었는데, 이제 너랑 내가 제일 형이다? 동생들이랑 노는 것도 재밌긴 한데, 나만 동갑 친구가 없어서 아쉬웠거든. 이제 너랑 놀면 되겠다. 그치?”

땡볕에 얼마나 돌아다닌 건지 팔다리가 까맣게 탄 게 한눈에 봐도 개구쟁이였다. 그런데 또 얼굴만은 하얘서, 저를 보고 환하게 웃는 그 모습에 선기는 왠지 가슴 아래가 근질거렸다. 그 이상한 감정에 선기는 살갑게 대답을 하는 대신 저리가라고 소리치며 하림을 밀었다. 넘어진 하림이 씩씩대며 금방 일어났다.

결국 싸움이 났다. 한참을 치고받다 선생님께 혼난 두 소년은 교실 밖에서 손을 들고 오래도록 씩씩거렸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하교하는 어린 선기와 하림의 모습이었다.

 

앞에서 말없이 걸어가던 하림이 갑자기 뒤로 돌았다. 그 기세에 선기가 조금 움찔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하림은 화를 내는 대신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 그러니까 앞으로 잘 지내자!”

선기는 얼떨결에 그 손을 잡았다. 그러자 하림이 쾌활하게 웃는다.

괜히 심통을 부렸던 그 다음 날에도 하림은 웃으며 제게 말을 걸었다. 다음 날, 그 다음 날에도. 어쩌면 선기와 하림이 친해진 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몰랐다.

서울에서 이곳으로 내려오며 선기는 한 가지 다짐을 했었다. 절대 잘 지내지 않을 거라고. 아주 아주 불행해져서 이곳에 날 두고 간 엄마가 두고 두고 후회하게 해주겠다고. 12살 소년 선기의 다짐은 반은 지켜졌고, 반은 실패했다. 선기의 다짐은 하림이 웃으며 말을 걸었던 여름 그날, 이미 무너졌는지도 모른다. 혹은 하림을 만난 그날 지켜졌는지도.

 

휙, 예고 없이 또 화면이 바뀐다.

 

“선기야!”

“싫어! 싫다고! 1년 만이라고 했잖아…. 또 거짓말이지!!”

“…엄마가 일이 좀 생겨서. 응 아들? 엄마 좀 봐봐.”

그때의 선기는 어렸고, 불안정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진심이 아닌 말을 그냥 마구 내뱉을 정도로 어리석었고, 그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알지 못했다.

“응? 아들이 엄마 조금만 이해해주면 안 될까? 여기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며? 옆집에 하림이, 하림이랑 친하잖아. 서울이 아니라 여기서도….”

“누가 그래? 내가 진하림이랑 친하다고?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내 친구들이야. 그런 시골 촌놈이 아니라!”

“노선기! 너 말버릇이 그게 뭐야.”

 

끼이이익.

 

갑자기 대문에서 들린 소리에 선기가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들키지 않으려는 듯 재빨리 뛰어갔지만, 선기는 뒤통수만 보고도 알아차렸다. 방금 도망친 이가 하림이라는 걸.

어떡하지? 들었겠지? 진심이 아닌데. 순간 명치 어딘가가 덜컹하며 서늘해졌다. 하지만 선기는 그때 바로 하림을 뒤따라가 사과하기엔 미숙했다. 제 말에 상처받았을 하림의 마음보다는 상처받은 제 마음이 먼저였다. 엄마가 밉다.

제 방 이불 더미에 얼굴을 묻고 엄마는 거짓말쟁이라고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와중에도 머리로 생각했다. 하림인…. 미안하지만 내일 사과하자. 하림인 내가 얼마나 돌아가고 싶어 했는지 아니까, 하림이는 착하니깐, 이해해 줄 거야.

 

그러나 불행히도 내일은 없었다. 그날 밤, 마을엔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서울에서도 이렇게 가까이 본 적 없던 경찰차, 엠뷸런스의 각기 다른 사이렌들이 동시에 울리며 조용한 시골의 정적을 깨었다. 초록 대문집 앞에는 마을 사람 대부분이 모여 웅성거렸다. 선기가 도착했을 땐, 이미 엠뷸런스는 사이렌을 울리며 사라지고 있었고, 하림이네 아저씨가 경찰들에게 붙잡혀 끌려 나오고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그 모습을 선기는 잊을 수가 없다.

 

한바탕이 소란이 끝나고 선기는 하림의 집 마당에 우뚝 서 있었다. 선기는 항상 하림의 집 대문 앞까지만 왔었다. 집안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늘 마을에서 혹은 선기의 집에서만 놀았다. 왜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은 걸까.

“진 씨, 알콜 중독인 줄은 알았지만. 이 사달이 날 줄이야.”

“왜 아니래요—.”

어른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보탰다. 그러나 선기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깨진 초록 병과 바닥의 핏자국만 보일 뿐이었다.

 

‘나 가끔 너네 집에서 자고 가도 돼?’

‘그럼 당연하지. 그냥 맨날 자고 가도 돼. 아무 때나 우리 집으로 와!’

 

며칠 전의 대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고 가도 돼?’ ‘그럼! 아무 때나 우리 집으로 와!’, ‘우리 집으로…,’ 점점 울리는 목소리에 낮에 보았던 뒤통수가 겹쳐 보였다. 다급하게 도망치던 그 뒷모습. 그리고….

‘누가 그래? 내가 진하림이랑 친구라고?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내 친구들이야. 그런 시골 촌놈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도망가는 하림의 하얀 티셔츠가 피로 물들었다.

 

“욱!”

선기가 제 입을 막고 구역질했다. 손발이 덜덜 떨렸다. 역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물 위도 아닌데 뱃멀미를 하는 것처럼 속이 메슥거린다.

선기의 갑작스런 발작에 주위의 어른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애 보잖아요! 문 닫아요. 닫아!”

다급하게 닫히는 방문. 문이 닫히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선기는 문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 핏자국은.

이 구역질은 피 때문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혐오였다.

 

그날 새벽엔 비가 내렸다.

 

⁕ ⁕ ⁕

 

갑자기 왜 옛날 꿈을…. 선기가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초여름의 밤은 선선하다. 땀이 흐르니 금방 싸늘해지며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하림이 선기의 손목을 잡았다. 아직 안 자고 있었어?

“너, 괜찮아…?”

“괜찮아.”

선기가 손을 올려 하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스레 저를 보는 그 눈빛이 기분 좋다. 하림이 꾸물꾸물 선기에게로 붙어온다. 그리고는 두 팔을 벌려 선기를 꼭 안는다.

“괜찮아.”

명백한 위로에 선기는 정신이 아득했다.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행동에 그제야 선기는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했다. 진하림은 똑똑했었다. 아니 똑똑하다. 어릴 땐 방송국에서 취재도 왔었다고 했다. 외우는 걸 특히 잘했다. 한 번 보면 잊는 법이 없었다. 그날 이후로 말수가 줄긴 했지만, 하림은 여전히 똑똑했다.

“좋아.”

하림의 눈이 똑바로 선기를 향한다. 선기가 속으로 말했다. 노선기 정신차려. 하지만 하림은 또 한 번 선기의 가슴팍에 얼굴을 부벼대며 말했다.

“좋아해.”

 

대나무 깔개 위에 가만히 있을 땐 그래도 서늘했는데, 두 사람의 체온이 나누어지니 금방 후끈거렸다. 손바닥에 닿는 목덜미도 조금 끈적했다. 얼핏 본 하림의 눈가가 붉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물기 찬 눈동자가 선기를 응시했다. 그 눈을 마주하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선기야아…. 노선기, 으….”

하림도 저 나름대로는 애가 탔다. 뭔가 충분치 못한데, 대체 뭘 해야 이 허전함이 채워질지 모르겠다. 그냥 본능처럼 입술을 쫓았다. 애타는 마음에 선기의 목을 끌어안았지만,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았다. 갈증만 더 심해질 뿐이다.

하림은 지금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는 알까? 적어도 선기는 알고 있다. 하림이 지금 무얼 원하는지. 하지만, 그래도…될까? 너무도 잘 알고 있어 망설이는 저와 달리 하림은 솔직했다. 재고 따질 것 없이 본능에 충실하다.

“노선기, 선기야아…, 좋아.”

제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던 하림이 내뱉은 말에 선기는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좋아? 아니면 지금 기분이?

“더, 더 해줘어.”

아, 나도 모르겠다.

선기의 몸이 하림의 위로 엎어졌다. 두 사람의 숨이 섞인다.

조용한 집 안에는 간간이 들려오는 두 사람의 소리, 대나무 깔개 위로 살이 닿았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선풍기는 왱왱 옆에서 잘 돌아간다.

 

쏴아아아아아—

 

초여름의 소나기는 시원하고 세찼다. 케케묵은 기억들을 모조리 씻어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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