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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수능이 끝나고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3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그 시간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알바를 구해보려 했지만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았고, 원했던 대학에 붙은 이후에도 별 실감이 나지 않아서 대학 생활을 기대하거나 상상하며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의미 있다며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거렸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시간이 조금 아깝기도 하다. 다시 돌아간대도 난 하루종일 침대에서 귤을 까먹으며 왓챠나 뒤적거렸겠지만...




   아무튼 올해 나에게 또 같은 시간이 주어졌고, 나는 이 시간을 잘 지내고 싶어졌다.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은 분명 필요하고 소중하다. 하지만 그건 작년에 한번 해봤고, 평소에도 게을러 터진 나에게 공백의 시간은 나를 갉아먹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올해는 수능이 끝나자마자 3박 4일로 여행을 떠났다. 같이 간 친구가 좋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설음이 좋았고, 비행기가 떠오를 때 느껴지는 울렁임이 꽤 괜찮았다.




  2주가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나로서는 정말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살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우체국에 들렀다가 영화 <윤희에게>를 보고 왔다.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CGV에 갔는데 화장실 모든 칸에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려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든 구멍이 휴지나 실리콘으로 막혀 있었는데  정말... 매일매일이 공포임을 또 느꼈고 인류애가 증발하는 줄 알았다. 




   아무튼 수험표 할인도 받고 텅텅 비어있는 상영관에서 본 '윤희에게'는 너무 따뜻했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에 사진 찍는 사람이 나오면 괜히 더 신경써서 보게 된다. 보통 사진을 찍는 인물은 작품에서 관찰자의 역할이거나, 다른 인물들의 새로운 순간을 포착하는 역할이다. 뭔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은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알아줄 것만 같다는 나만의 귀여운 로망이 있다. 눈이 수북히 쌓인 삿포로의 배경이 너무 아름다웠고, 윤희와 새봄의 대화의 온도가 점점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져서 좋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병률 시인의 '삿포로에 갈까요'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 감상은 새로운 포스팅으로 올려봐야지.




   영화를 다 보고는 근처 도서관에 갔다. 어릴 때 엄마가 3남매의 손을 잡고 자주 갔던 도서관이다. 전날에 다른 도서관에 갔다가 내부 리모델링 때문에 휴관한다는 공지를 보고 빈손으로 집에 돌아갔었는데, 오늘 간 도서관도 내부 페인트칠을 한다고 휴관한다는 공지가 붙어있었다. 왜 하필이면 오늘.... 내가 책 좀 읽어보겠다는데 !!! 뭐 얼마나 대단한 공사를 하는지 보자는 생각으로 5층에 올라가봤는데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운영하고 있었다. 그냥 갔으면 어쩔 뻔 했냐며 근데 왜 공고는 붙여놓은 거냐며...




   너무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는데 사람이 정말 없었다. 직원 세분과 내가 다였다. 덕분에 내가 도서관 전체를 빌린 것처럼 책을 고를 수 있었다. 원래는 앉아서 책도 좀 읽고 시간을 떼우다가 집에 가려고 했는데 저녁에 알바 일을 배우려 가야 했어서 책만 빌려서 나왔다. 책을 빌리려고 회원카드를 발급받았는데, 이미 가입이 되어있었다. 어릴 때 엄마가 등록해놓은 내용이 아직도 남아있었던 것이다. 매일 밤 삼남매를 양팔에 끼고 동화책을 읽어주던 엄마가 생각나서 마음이 촉촉해졌다. 오늘 빌린 책은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와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 두 권이다. 2주동안 차분히 읽자는 마음으로 욕심부리지 않고 딱 2권만 빌렸다. 꼭 읽고 이것도 다른 포스팅으로 기록해봐야지.




   점심을 안 먹고 나갔다가 집에 오니까 너무 허기가 져서 참치김치볶음밥을 해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넷플릭스로 '굿플레이스'를 봤고, 알바 가기 전까지 빌린 책을 읽다가 조금 잠을 잤다.(절대 지루해서 잔거 아님) 그리고 알바 일 배우러 갔다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벌써 10시가 넘었다. 친구와 만나는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내 기준엔 바쁜 하루였다. 오늘의 글쓰기는 일기 형식으로 하니까 훨씬 수월한 것 같다. 글감 없으면 그냥 일기나 써야겠다.(절대 귀찮은 거 아님) 그럼 오늘 하루도 끝 !





20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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