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넘어지면서 어딘가 부딪힌 것 같았다. 두통에 끙끙대며 어렵사리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어두컴컴한 천장이었다.


“뭐, 뭐야 이게-“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띵하고 울렸으나 일단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꾹 참아내며 입을 열었다.


“저, 여기 중국인가요? 어떻게 된 건지… 회사에도 연락을 해야 하는데-“


 말을 하며 눈 앞의 사람을 보니 망토 같은 옷을 입은 이국적으로 생긴 여자였다. 그녀는 내 말에도 미동조차 없이 나를 훑어 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내 품 안의 책에 머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갑자기 내 곁으로 다가와 내 품에 있는 책을 빼내었다.


“아, 그 책, 누가 훔쳐가려 했어요.”


 문득 내 얼굴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도둑이 생각나 말해보았지만 그녀는 내 말은 들은 체도 안하고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한 얼굴로 책을 펼쳐볼 뿐이었다.


“하아- 다행이다.”


 책이 무사한 건 나도 다행이었지만 지금 상황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 여자는 의사나 경찰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가는 행인 같지도 않다.


“여기가 어디죠? 당신은 누구죠?”


 눈 앞의 여자에게 경계심이 생긴 나는 긴장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항의 풍경이 아니었다. 내가 누워있는 바닥은 돌로 되어 있었고 벽도 같은 재질이었다. 바닥은 차갑고 약간의 습기가 서려 있었다. 나무로 된 찬장들이 있었고 낡은 책들이 그 위에 마구잡이로 얹어져 있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숨겨진 비밀 창고 같은 느낌이 내 긴장감을 더하게 했다.


“나야말로 궁금한데. 넌 누구지? 누군데 이 책과 같이 불려온 거야?”


 그녀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책을 흔들며 물어보았다. 당연하겠지만 난 그녀 말이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저는 중국으로 출장 온 사람인데.. 아니 책이랑 같이 불려왔다니요? 그게 무슨 말-“


쾅쾅쾅-!


“에린! 여기 있어?”


 내 말의 뒷부분은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묻혔다. 그 목소리에 잠시 나와 책, 문을 번갈아 보던 그녀는 책을 옆의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문으로 걸어가 잠금 장치를 열었다.


“들어와.”

“도대체 문까지 잠그고 뭘 하는 거야? 마법 파장이 우리가 있는 곳까지 느껴졌다고. 대체 뭘 한 거야?”


 방에 새롭게 들어온 이는 남자였는데 승마복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그 여자에게 다다다 쏘아대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의 모습이 익숙한 듯 그의 말이 끝나자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책을 불러보았어. 혹시 될까 하고.”

“뭐? 정말? 그래서?”

“성공하긴 했는데, 사람이 하나 같이 왔어.”


 그녀의 손가락이 바닥에서 어정쩡하게 일어나는 중이던 나를 가리켰다. 난 다시 긴장했으나 그는 여자와 마찬가지로 나보다는 책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테이블의 책을 들고 몇 번 펼쳐보던 그는 실망한 듯한 얼굴이 되었다.


“뭐야.. 온통 고대어잖아.”


 페이지를 팔랑거리며 자신들이 찾던 책인지 아닌지 확인을 할 수도 없다고 투덜거리던 그는 드디어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 여자는 뭐야?”

“내가 말했잖아. 같이 왔어.”

“저기- 일단 여기가 어디인지 알려주시면 제가 알아서 갈게요. 그전에 핸드폰 한번만 쓰게 해주세요. 연락을 해야 할 데가 있어서”


 그들의 대화에서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이 아님을 직감한 나는 어떻게든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간절히 말했다. 위치만 알면 회사나 대사관에 연락해서 어떻게는 나가려 했다.


“여긴 세핀 외곽에 있는 별장이야. 그리고 핸… 핸드펀이 뭐지?”


내 말에 머리를 한번 긁적인 남자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했지만 그 답은 나를 더 난감하게 했다.

 괴상한 지명에다가 핸드폰을 모르는 듯한 모습이라니. 이 사람들은 뭔가 이상했다.


‘어쩌지? 정신분열증 환자들인가? 내가 정신병원에 들어온 건가?’


 앞뒤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었다. 미친 사람들한테 물어봐야 무슨 답이 나오겠는가?


“저기 여기는 두 분 말고 다른 사람들은 없나요? 밥 주시는 분이라던가, 돌봐주시는 분들은요?”

“응? 집사를 말하는 거야? 여긴 에린네 집인데 집사는 없어. 일하는 사람들, 하녀들이야 있긴 하지. 근데 봐서 뭐하게?”


 갈수록 더 가관이다. 일단 방에서 나갈 요량으로 발을 떼려 할 때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귀찮은데, 그냥 죽일까?”

“?!”


 그녀의 목소리에 서늘함이 서려 있는 듯했다. 농담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 둘은 농담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게. 첩자일 수도 있고. 쓸모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첩자라뇨! 전 그냥 한국의 소시민이에요. 그냥 집으로만 보내주세요!”


 일단 이 방을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에 움직이려 한 순간이었다.


챙-!


“가만히 있어. 다치기 싫으면.”

“-!”


남자가 허리춤에서 긴 검 같은 걸 뽑아 내 목 언저리에 가져다 대었다. 목에서 느껴지는 금속 특유의 냉기가 그것이 플라스틱이 아님을 직감하게 했다.


“우린 그렇게 아무나 막 죽이지는 않아. 한가지만 확인하고 연관 없다고 생각되면 보내주지.”

“네, 네. 뭐든 물어보세요.”


 몸이 덜덜 떨리는 게 느껴졌다. 제발 이 사람들의 심기를 안 거슬리고 여길 나가고 싶었다.


“저 책, 왜 가지고 있었지?”


정작 질문을 한 것은 여자였다. 책이라니. 이들에게 내 책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았다. 떨리는 숨을 내쉬며 불안감과 공포감에 자꾸만 아득해질 것만 같은 이성을 가까스로 붙잡고 입을 열었다


“책, 저 책이요? 제가 가지고 있던?”

“그래. 고대어로 써져 있는 저 책.”

“그건, 제 책이에요. 헌책 방에서,“


 책을 바라보았다. 내가 도둑한테서 다시 뺏어낸 후로 계속 끌어안고 있었으니 내 책이 맞다.


“그런데, 고대어라뇨? 뭔가 잘못 본 거 아니에요? 한글로 되어 있어요.”


 내 대답에 그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글? 고대어를 말하는 거야? 설마- 너 이거 읽을 수 있는 거야?”


 칼을 들고 있는 남자가 격양된 모습으로 말을 받았다. 그의 격해진 말에 놀라 고개만 끄덕였다.


‘한글을 모르는 건가? 분명 한국어로 말하고 있는데?’


 어째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난 저들이 물은 것에 대답은 했다.


“저, 이제 보내주실 거죠……?”


 책은 소중한 거지만 가지셔도 되요- 라고 덧붙이자 나를 뚫어지게 노려보던 남자는 검을 내렸다.


“크리스?”

“살려는 주지. 다만 바로 보내줄 수는 없어.”


 살려준다는 그의 말에 활짝 웃었다가 그 뒤에 이어진 말에 다시 시무룩해졌다.


“네가 저 책의 내용을 번역해준다면 그때 이후로 생각해보지.”


 한시라도 빨리 회사나 집으로 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렇다고 이 제안을 거절하면 다시 죽인다고 할까 두려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모든 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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