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시린, 세찬 바람이 눈과 함께 귀를 날카롭게 할퀴고 지나간다. 매서운 바람에 나는 새하얀 눈 속에서 그저 걷기만 할 뿐이다. 왜 이렇게 걷는 지도 모른 채로 그저 걸을 뿐이다. 무언가 중요한 어떠한 것을 두고 왔다는 감각이 미미하게 의식 사이를 헤집고 들어오지만 그것도 날카로운 바람에 그저 스쳐갈 뿐이다. 나는 누구지? 이 의문이 떠오를 무렵 길고도 긴 걸음에 발가락이 얼어붙을 무렵 선명한 음성이 울렸다.

 ‘나의 아이야. 왜 그리 사경을 헤매느냐.’

 그 선명한 음성에 의식을 퍼뜩 차린 내가 주위를 훑어보았지만 전부 새하얗게 뒤덮인 눈 더미 뿐. 사람이라고는 나 밖에 없었다.

 “누구십니까.”

 ‘호오? 너는 네가 무엇인지 보다 내가 더 궁금하느냐?’

 “…둘 다 궁금합니다.”

 ‘귀엽구나. 너는 내가 가장 총애하던 천사였다.’

 “……”

 ‘쯧. 너의 그러한 점 마저도 사랑스럽지만 답답한 건 어쩔 수 없구나.’

 “여긴 어딥니까?”

 ‘네 가장 깊은 무의식 속이라고 하면 알려나?’

 “제가 왜 여기에서 정처없이 걷고 있는 겁니까.”

 ‘맨 입으로 알려달라는 거냐?’

 “…무얼 바라십니까.”

 ‘참, 농담도 못하겠구나. 의식이 완전히 깨어있지도 않은데 성격이 답답한 건 똑같구나.’

 “……”

 ‘그래. 내가 졌다. 네가 정처없이 하얀 눈밭을 걷고 있는 것은 네가 인간이였을 시절에 겪은 사건 때문이다. 네가 천사가 되고자 했던 의지를 이때 갖게 되지.’

 “제가 인간이었습니까?”

 ‘그래. 너 뿐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들은 한 번씩은 그 경험을 한단다.’

 “왜…”

 ‘왜 그렇게 세상을 창조했느냐 묻고 싶은 게지?’

 그 말에 나는 문득 가슴이 저리듯이 아파오는 걸 느꼈다. 그 통증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는 와중에 맑은 웃음 소리와 함께 상냥한 음성이 들려왔다.

 ‘너희가 자각하지 못하는 것 뿐이다. 그 창조는 너희들이 직접 한 것이다. 나는 너희가 자아를 가지고 경험할 수 있도록 내 영을 찢어서 너희 안에 심은 것밖에 한 것이 없다. 나는 그저 지켜볼 뿐이다. 결정은 너희 몫이다.’

 반박하고 싶은 말들이 무수히 머릿속에서 떠다녔다. 무엇부터 물어볼까 고민하던 찰나에 점점 사위가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시간이 되었네. 너의 기억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려무나.’

 “어째서…”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글을 읽으면 새로운 세상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좋아서 경험하고 싶은 세상을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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