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소리야, 네가 카프카냐?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친구의 목소리는 졸음에 절어 짜증이 묻어나왔다. 아니, 진짜라니까. 거울 앞에 선 나는 떨리는 손을 머리 위로 가져가 비죽 튀어나온 무언가를 톡, 건드리고는 몸을 움츠린다. 그리고 카프카는 작가잖아. 굳이 비유를 하자면 책 주인공을 끌고 와야지. 당황스러움에 중요치 않은 말들이 튀어나온다. 그것은 너무나 빨라 조금 우습게 들린다. 그래, 너 잘났다. 넌 읽었냐, 그거? 아니. 나 한국 소설만 읽는 거 알잖아. 

...그래서 뭐 어쩌라고.

친구의 무심한 한 마디가 산을 향하던 대화를 붙들고 돌아왔다. 그러니까 머리카락을 먹기 시작한 지 열흘 즈음이 된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머리 위에 이것이... 돋아나있었다는 얘기다. 삐급 영화에서 한 번쯤은 봄 직한 전개였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놀라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 다음 컷이 될 테다. 아쉽게도 그러한 극적인 반응을 기대하기에 나는 세상살이에 지친, 감정이 메마른 흔한 이십 대 청년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혼자 사는 내게 빠질 수 없는 것은 일상화된 독백. 그것은 나의 한 편의 지루한 영화에 약간의 양념을 쳐주었다. 와, 진짜 길다. (참고로, 나는 슴슴하게 먹는 편이다.)

집 근처에 새로 오픈한 프랜차이즈 카페는 밝고 널찍한 2층 공간을 자랑하고 있었다. 작업을 하거나 실없는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었다면 참 좋게 보였겠다만, 큼지막한 후드를 푹 눌러 쓴 내게는 두세명의 사람들이 곳곳이 묻힌 지뢰밭으로 보인다. 카페의 중심 즘에 서서 두리번거리니 저 멀리 구석 자리에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는 친구가 눈에 들어온다. 왜 저렇게 안에 들어가 있어. 입 밖에 꺼내지도 못 할 불평을 웅얼거리던 나는 어느새 친구 앞에 섰다. 어, 야, 안 그래도 전화하려던 참인데. 딱 왔네. 친구는 눈을 손으로 부비며 말한다. 미안. 언제 왔어? 오래 기다렸어? 아니, 그건 아니고... 괜찮아. 

하여튼,

그는 말을 멈추고 슬쩍 눈짓을 준다. 이에 나는 후드를 양손으로 쥐고 울상을 짓는다. 사람들이 보면 어떡해? 야, 사람들은 우리한테 그렇게 관심 없어. 친구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현재 시각 여덟 시 삼십칠 분. 야행성인 그에게는 한밤중일 시간이다. 누군가 내게 새벽 세 시에 난데없이 전화를 해서는 밖으로 불러냈다고 생각하니, 심기가 불편할 만 하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후드를 꼭 쥔 왼쪽 손을 살짝 움직여 보인다. 후드 속에 눌려 있던 길쭉한 그것이 툭, 튀어나와 천천히 흔들린다. 동시에 시야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눈가에 경련이 일어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친구의 반응이 영 이상하다. 그의 표정에서 놀라움이나 충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약간 뒤틀린 눈썹과 입매에서는 분노가 배어 나왔다.

아침부터 사람 불러놓고 한다는 게 이거냐? 

그의 결코 작지 않은 목소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시선들에 나는 황급히 후드를 푹 눌러 썼다. 혼란스럽다. 이게 큰일이 아니라는 건가? 사람 머리에 이런 게 돋은 게 큰일이 아니면 뭐가 큰일이지? 친구는 이내 고개를 숙이고 깊은 한숨을 뱉더니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한다. 너 힘든 거 알아... 근데 이건 좀 아니지 않냐. 다 큰 성인이 칠 장난이야, 이게? 이건 또 무슨 전개람. 나는 입이 벌어진 줄도 모르고 멍하니 그의 정수리를 바라보았다. 요즘 너 연락도 잘 안 되더니, 이러고 있던 거였어? ..교수님한테는 얘기했냐? 아니, 병원 가기는 해? 가는데 이래? 진짜 왜 그래? 내 말 듣고 있긴 해? 덜커덕. 목재 의자가 넘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발이 얽혀 엎어진 나는 빠르게 바닥을 기어 도망쳤다.

아무도 나를 이해 못 해. 미쳐 돌아버릴 지경이다. 유일한 친구는 이후 몇 통의 문자 메시지와 몇 번의 전화를 통해 걱정을 표했지만 나는 휴대폰을 변기 속에 던져버렸다.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날이 갈수록 차가워져만 가는 방에 홀로 누운 채 하루를 보낸다. 해가 지면 잠시 눈을 붙였다가도 금세 일어나 신발을 꿰어 신고 나갔다. 다 낡아빠진 빌라의 외벽에 기대어 줄담배를 피우며 잠을 쫓는다. 새벽이슬을 맞으며 두 갑을 비우고-검붉은 피가 섞인 위액을 중간중간 토해가며-또 새 것의 비닐을 뜯던 내 눈에 녹색의 거대한 무언가 지나간다.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는 시금털털한 냄새가 꽤 오랫동안 머물렀다.

내 발이 향한 곳은 작은 미장원이었다. 미장원 앞 전봇대에는 곧 터질 듯 가득 찬 백 리터짜리 쓰레기봉투 두 개가 기대어 있었다. 나는 오가는 이가 없는지를 확인한 후 봉투 한 개를 골라-두 개를 모두 가져오기엔 내 근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땀을 비질비질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커터칼로 봉투 윗부분을 주욱 긋자 머리카락이 터져 나온다. 그것은 길이, 빛깔, 촉감에서 다양성을 보이며 내 욕구를 자극한다. 나는 갖가지 종류의 머리카락을 끄집어내 바닥에 늘어놓고 비슷한 색을 띠는 것끼리 모이도록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내 무난한 흑갈색부터 발랄한 금발, 몽환적인 회보랏빛까지 다양한 색의 팔레트가 완성되었다. 나는 소리 없이 입꼬리만 당겨 올려 이죽거리다 푸르딩딩한 검은색부터 입에 욱여넣기 시작한다.

짧은 글을 씁니다.

작짐비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