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 공지 (2021년 10월 3일 추가)

《삼국지 호칭어 소사전》은 《삼국지포켓북1: 삼국지 호칭어 가이드》로 개정·증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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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벅 프로젝트 〈중국 한나라 설정집: 한서팸플릿 & 삼국지 호칭어 소사전〉에서 제공된 선물 《삼국지 호칭어 소사전》의 웹 버전입니다. 표제어는 총 112개입니다. 

일러두기

  • 소설 《삼국연의》가 아닌 사서 《삼국지》에 나오는 표현을 다룹니다.
  • 모든 인용문과 예문은 저자가 직접 선택하고 번역한 것입니다.
  • 한문 원문은 Chinese Text Project에서 제공한 텍스트를 따랐습니다.

웹 버전 구매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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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

고대 중국에서는 원래 성姓과 씨氏를 구별했습니다. 성은 모계 혈통을 표시하고 씨는 신분이나 직업을 표시하는 장치였습니다. 하지만 《삼국지》의 시대에는 성과 씨가 이미 통합되어 가문을 나타내는 칭호가 되었습니다.

성은 주로 이름, 자字, 관직 등 다른 칭호 앞에 붙는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성이 단독으로 호칭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래 예문에서는 손익孫翊의 부인 서씨徐氏를 언급할 때 씨氏를 붙이지 않습니다.                    

가 말했다. [徐言。]
— 오서6 〈손소전孫韶傳〉 주석 《오력吳歷》.

조아趙娥라는 여성이 조趙라고 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서씨徐氏가 이웃 조아趙娥에게:
의 의지는 맹렬하지만, 강한 자와 약한 자는 서로 적수가 못 되오. [趙雖有猛烈之志,而彊弱不敵。]
— 위서18 〈방육전龐淯傳〉 주석. 황보밀皇甫謐의 《열녀전列女傳》.

《삼국지》의 여러 주석에서 상대를 성으로 부르는 것을 특수한 일로 서술합니다. 주로 상대를 존중하는 맥락에서 사용됩니다. 위서9 〈조상전曹爽傳〉 주석 《위략魏略》에서는 사마의司馬懿 가 환범桓範을 성으로 불렀다고 명시하며, 오서2 〈오주전吳主傳〉 주석 《강표전江表傳》에서는 손권孫權이 곡리谷利를 존중하여 곡谷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2. {이름}

이 사전에 수록한 호칭어 상당수는 대상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중국 전통 사회에서 누군가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존중을 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화자가 1인칭으로 이름을 쓰면 자신을 낮추는 것이며, 2인칭이나 3인칭으로 이름을 쓰면 상대를 낮추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높고 낮음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아들로서는 감히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수 없지만, 신하로서 황제에게 말할 때는 상황이 달라져서 부친을 이름으로 가리키게 됩니다.

이름은 《삼국지》에서도 특히 중요한 장치입니다.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휘두른 동탁董卓, 조조曹操, 사마소司馬昭 등은 모두 찬배불명贊拜不名 혹은 주사불명奏事不名, 즉 황제를 배알할 때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적대자들은 이들을 이름으로 칭했습니다.

한 가지 뚜렷한 사례는 적벽대전 직전 오吳에서 일어난 논쟁입니다. 화친을 주장하는 신하들이 조조를 조공曹公이라고 한 것과 달리, 항전을 주장하는 주유周瑜는 처음부터 조조를 이름으로 지칭합니다.

조공曹公은 표범 같고 호랑이 같지만 어쨌든 한漢의 재상이라는 명의를 갖고 있으므로…

조操는 한의 재상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한의 도적입니다!


피휘避諱

윗사람의 이름, 즉 휘諱를 부르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름 자체를 부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름에 들어간 글자를 다른 단어에서 쓰는 것까지도 피했습니다. 이것을 피휘라고 합니다.

조운趙雲의 칭호로 유명한 ‘상산 조자룡’도 피휘의 산물입니다. 원래의 지명은 항산恒山이었지만, 전한前漢 제3대 황제 문제文帝의 휘가 항恒이었기 때문에 음과 뜻이 비슷한 상常으로 바뀐 것입니다. 문제가 아니었다면 조운은 ‘항산 조자룡’이 되었을 것입니다.

피휘를 할 때 꼭 음이 비슷한 한자로 바꾸지만은 않았습니다. 엄嚴이라는 성은 원래는 장莊이었으나 후한後漢 제2대 황제 명제明帝의 휘를 피해서 뜻이 비슷한 글자로 대체한 경우입니다.

고유명사뿐만 아니라 일반명사도 피휘의 영향을 받는 대상입니다. 예를 들어 한에서 관리를 선발하는 과목으로 수재秀才가 있었는데, 후한에서는 초대 황제 광무제光武帝의 휘 수秀를 피해 무재茂才가 되었습니다.


3. {성}{이름}

이름 앞에 성을 붙이는 것은 대부분 3인칭으로 지칭하는 경우입니다. 대상을 우대하지 않고 언급하는 공식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윗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을 가리킬 때나 적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합니다.


4. {자}

자字는 상대의 이름 대신 쓰는 고유명사입니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따르면 남자는 20세가 되어 관례를 치를 때, 여자는 혼인이 결정되어 비녀를 꽂을 때 자를 받습니다. 하지만 이 규범이 실제로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았고 더 일찍 받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자는 상대를 존중하는 표현입니다. 황제 앞에서 감히 다른 사람을 높이면 안 되므로, 황제에게 말할 때는 자기나 남의 자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자로 부르는 상대는 화자보다 아주 높지 않은 사람입니다. 군주, 부모, 스승 등 손윗사람에게는 쓰지 않습니다. 특히 촉서6 〈마초전馬超傳〉 주석 《산양공재기山陽公載記》에서 마초馬超가 유비劉備를 자로, 즉 현덕玄德이라고 부르자 관우關羽 가 분노하여 그를 죽이려고 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배송지裴松之는 이 사건에 대해 마초의 처지로 그렇게 오만하게 굴었을 리가 없다고 평했습니다. 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든 아니든, 군주의 자를 부르는 것이 매우 불경한 일로 여겨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5. {성}{자}

기본적으로 자字를 단독으로 쓸 때와 쓰임이 비슷합니다. 아래의 예문에서처럼 신분이 낮은 사람을 성과 자로 부르는 것은 특별한 배려로 여겨집니다.

영하와 오백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성과 자로 불렀다. [常忌不呼鈴下伍伯,而呼其姓字。]
— 위서23 〈배잠전裴潛傳〉 주석 《문장서록文章敘錄》.

적진의 인물을 가리킬 때도 쓰입니다. 주로 적의 나이가 화자보다 많고 화자의 적대감이 덜한 경우입니다. 아래 예문에서는 손권이 조조曹操를 성과 자로 지칭합니다.

오왕吳王 손권孫權이 대사농大司農 유기劉基에게:
조맹덕공문거를 죽인 마당에 고가 우번에게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曹孟德尚殺孔文舉,孤於虞翻何有哉?]
— 오서12 〈우번전虞翻傳〉 본문.

이 예문에서는 손권이 적진의 인물인 조조와 공융孔融을 성과 자로 존중하면서 자신의 신하인 우번虞翻은 성과 이름으로 하대하는 것이 특히 눈에 띕니다. 이를 통해 손권이 우번을 얼마나 못마땅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화자 자신을 가리키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예외를 찾을 수 있기는 합니다. 자기를 높이는 상황입니다.

장비張飛가 장판⻑阪에서 조조의 군사들에게:
이 몸이 장익덕이다. 너 죽고 나 죽자! [身是張益德也,可來共決死!]
— 촉서18 〈장비전張飛傳〉 본문.

하지만 자를 자칭으로 쓰는 것은 정말 드문 용례입니다. 장비 정도의 캐릭터가 장판파 정도의 상황이 되었을 때나 쓸 법하므로 남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6. {성}{이름}{자}

성명과 자의 결합은 공식적인 문어에서 사람을 소개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앞에 출신지를 붙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문인으로는 노국 공융 문거孔融文擧, 광릉 진림 공장陳琳孔璋, 산양 왕찬 중선王粲仲宣, 북해 서간 위장徐幹偉⻑, 진류 완우 원유阮瑀元瑜, 여남 응양 덕련應瑒德璉, 동평 유정 공간劉楨公幹이 있다.
— 조비曹丕 《전론典論》 〈논문論文〉.


7. {관직}

관직명은 관직에 있는 사람을 가리킬 때 두루 사용됩니다. 우선 스스로에게 쓸 수 있습니다.

형주荊州 자사刺史 왕예王叡가 장사⻑沙 태수太守 손견孫堅에게:
자사가 어찌 인색하게 굴겠는가? [刺史豈有所吝?]
—오서1 〈손견전孫堅傳〉주석.

관직명을 호칭과 지칭으로도 쓸 수 있으나 이 경우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관직마다 특수한 칭호가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태수의 호칭으로는 40항 명부明府와 51항 부군府君, 목牧과 자사의 호칭으로 55항 사군使君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관직명을 그대로 호칭어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8. {성}{관직}

관직 앞에 성을 붙이는 것은 대부분 3인칭으로 지칭하는 경우입니다.

장엄張儼이 제갈량諸葛亮에 관해 논하면서:
제갈 승상은 실로 보좌하는 재능이 있었다. [諸葛丞相誠有匡佐之才。]
— 촉서5 〈제갈량전諸葛亮傳〉 주석.


9. {장군호}

잡호장군雜號將軍은 장군호로 지칭할 수 있습니다.

여몽呂蒙이 손권孫權에게 정로장군征虜將軍 손교孫皎를 언급하면서:
지존께서 정로가 유능하다고 생각하시면 그를 임용하셔야 합니다. [若至尊以征虜能,宜用之。]
— 오서6 〈손교전孫皎傳〉 본문.


10. {성}{장군호}

장군호 앞에 성을 붙이기도 합니다.

장수들이 육손陸遜에게 안동장군安東將軍 손환孫桓을 언급하면서:
손 안동은 군주의 일족으로 포위되어 곤란한 상황에 빠졌는데 왜 구하지 않으십니까? [孫安東公族,見圍已困,柰何不救?]
—오서13 〈육손전陸遜傳〉본문.


11. {임지}

주州를 다스리는 목牧·자사刺史와 군郡을 다스리는 태수太守를 주나 군의 명칭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노숙魯肅이 예주목豫州牧 유비劉備에게:
예주께서는 지금 어디로 가려고 하십니까? [豫州今欲何至?]
— 촉서2 〈선주전先主傳〉 주석 《강표전江表傳》.


12. {성}{임지}

임지명 앞에 성을 붙일 수 있습니다. 아래의 예문에서 볼 수 있듯이 대체로 호의적입니다.

장송張松이 익주益州 자사刺史 유장劉璋에게 예주목豫州牧 유비劉備를 지칭하며:
유 예주는 사군의 친척이니 그와 교류할 만합니다. [劉豫州,使君之肺腑,可與交通。]
— 촉서1 〈유장전劉璋傳〉본문.

화흠華歆이 회계會稽 태수太守 손책孫策을 지칭하며:
손 회계가 온다면 내가 곧 가겠다. [孫會稽來,吾便去也。]
— 위서13 〈화흠전華歆傳〉 주석. 호충胡冲의 《오력吳歷》.

위의 첫 번째 예문에서 장송이 유장을 사군使君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유장이 익주 자사였기 때문입니다. 55항을 참조하십시오.


13. 경卿

경卿은 오늘날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이천 석의 고위 관직을 아우르는 명칭이지만, 

호칭어로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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