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리로드/미리안드x로드/여로드
  • 더 쓸수도있고 안 쓸 수도 있는데, 일단은 쓰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치만 언제 완성해서 올릴지 모르니 기다리지는 마십쇼..! 기다려주시면 기쁘지만?!그래도 기다리시느라 괴롭게 하고 싶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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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을 항상 드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감상을 남겨주시는 분들께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좋아해 주셔서 언제나 항상 감사합니다~~!

 

 


<늙은 남자가 소 한 마리 가격에 사 온 젊고 예쁜 처녀에 대한 소문>

 



 

긴 강줄기를 끼고 있는 알지스 마을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는 달리 꽤 음울하고 폐쇄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의 분위기 말이다. 기본적으로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심하고 방어적이었다.

 

아마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마을도 외부인들에게 우호적이던 시절이 있었겠지. 그러니까, 반년 전 마물들을 끌고 온 이방인들에게 마을 절반이 쑥대밭이 되는 사건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반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마을 곳곳에는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분명 언젠가는 근사한 집이 지어져 있었을 공터에는 억센 잡초만 가득하고 무너진 울타리에는 버섯이 피었다. 아무렇게나 나동그라진 녹슨 농기구와 수레.

 

우리가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집안으로 달려가 커튼을 친 아이들과 약한 동물처럼 한데 무리 지어 스산한 시선을 보내는 여자들까지.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이건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이다.

 

“이런 마을에서 단서를 어떻게 찾아요. 길 가는 사람한테 말도 못 붙이겠구먼…”

 

시프리에드에게 귀엣말했다. 시프리에드가 어쩔 수 없다는 시선을 보낸다. 작은 한숨을 내쉬며 가시밭길 같은 길을 걸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적개심 가득한 시선에 등이 따끔거렸다.

 

일단 해가 지기 전에 쉴 곳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외지인을 반기지 않는 마을이라도 여관 정도는 있을 것이다. 마을에 있는 외지인이라고는 우리뿐인 것 같아 불안이 엄습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로 했다.

 

“기다려.”

“온달?”

 

갑자기 휙 하고 몸을 튼 온달이 울타리 앞에 서 있는 여자들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무언가 대화를 하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았다.

 

온달은 오래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무슨 이야기 했냐고 옆구리를 쿡 찌르자 특유의 뚱한 얼굴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저기. 저 다 무너져가는 집이 여관이라는군.”

“네?”

 

온달의 손끝을 따라간 곳에는 정말 문자 그대로 쓰러지기 직전의 3층 건물이 하나 있었다.

 

“방을 잡고 있을 테니 너희는 주변이 안전한지 살펴라. 매복이 있을지 모르니. 어이. 짐덩이 너는 날 따라와라. 괜한 일에 휘말리지 말고.”

“누가 짐덩이인데요. 진짜.”

 

툴툴거리며 온달을 따랐다.

 

“실례합니다.”

 

들어가기 직전까지 망설였던 그 집은 정말로 여관이 맞았다. 덩그러니 세워진 계산대 뒤로 위층에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여행자의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수레도 보였다.

 

“실례합니다!”

 

여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손님이 없어 자리를 비운 걸까. 목소리를 더 크게 높이며 뽀얗게 먼지 쌓인 종을 두드렸다.

 

“아무도 없나 본데요?”

 

태평하게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는 온달의 뒤통수에 대고 속삭였다. 이제 어쩌지 고민하는데 들어왔던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얼굴이 대춧빛으로 벌건 노인이 진흙이 뚝뚝 떨어지는 삽을 들고 들어왔다. 시프리에드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이 여관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노인은 아마도 텃밭 일을 하고 있었던 참인 듯 흙과 땀 냄새가 났다.

 

“안녕하세요. 빈방 있나요?”

 

계산대 뒤로 돌아간 노인이 모자를 벗어 의자에 건다. 계산대로 다가가 한 번 더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걸까. 노인은 대답이 없다.

 

“실례합니다?”

 

노인이 서랍 깊은 곳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내 문다. 이를 어쩌나 진땀을 흘리는데 내 앞으로 성큼 끼어든 온달이 주먹 쥔 손으로 계산대를 가볍게 내리쳤다.

 

“어이.”

 

내 목소리가 작았던 건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제야 노인이 우리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는 희뿌연 연기를 토해내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방 없소. 장사 안 하오.”

 

여관이 이렇게 텅 비었는데 방이 없다니. 거짓말이었다.

 

“그…어…”

 

이걸 어떻게 설득해야 하지? 생각지도 못한 완고한 태도에 당황해 머리를 굴리는데 나와 온달을 불만스러운 눈으로 뚫어지라 응시하던 노인이 툭 질문을 던졌다.

 

“부부요?”

“네?”

“두 사람 말이요. 부부냐고 묻지 않소.”

 

노인의 손가락은 나와 온달을 번갈아 가리키고 있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화들짝 놀라 손사래 쳤다. 맙소사 내가 온달과 부부라니. 이런 오해는 종종 들어왔지만 들을 때마다 닭살이 돋고 소름이 끼치는 건 어쩔 수 없다. 평소에는 말이 많던 온달도 이상하게 이럴 땐 입을 다물어서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니요! 아닙니다! 부부라니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면 연인?”

“아니요!”

“아무 사이도 아닌가?”

“네!”

“이상하군. 부부도 연인도 아무런 사이도 아닌 젊은이들이 여행이라니.”

 

노인의 눈이 가늘어진다. 순간 아차 싶었다. 우리를 응시하는 노인의 탁한 눈동자에 숨길 수 없는 적의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뒤에 있는 저 치들도 위험한 냄새가 나는 게, 또 그놈의 모험가라는 작자들인 게 분명-”

“불쾌하기 짝이 없어 더 들어 줄 수가 없군.”

 

차가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곧 길고 단단한 팔이 내 어깨를 휘감아 안았다.

 

“이건 내 아내다.”

“호오…꽤나 어린 여자를 처로 들이셨군.”

“아비라는 작자에게 몇 푼 쥐여주니 넘겨주더군.”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다. 아내? 어린 여자? 돈? 미리안드의 품에 기댄 채로 멍하니 눈을 끔벅거렸다.

 

“뒤에 있는 이 자들은 내 호위로 고용한 용병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의사의 조언에 따라 공기 좋은 마을을 찾아다니며 요양 중이니 지금 당장 방을 비우도록.”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낸 미리안드가 계산대에 내팽개친다. 충격으로 살짝 열린 주머니에서 은화가 쏟아졌다. 엉거주춤 일어난 노인이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다. 미리안드가 혀를 찼다.

 

“너희는 개 취급을 해야 말을 듣는가.”

 

신경질적이고 짜증스러운 미리안드의 목소리는 그게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긴장하게 된다.

 

“부인이 참 고우십니다. 젊어서 그런가. 젊은 여자들은 특유의 요염한 생기가 있지요.”

“열쇠.”

“특별히 아름답지 않아도 시선을 잡아끌지 않습니까.”

“열쇠.”

“저도 한때 여자가 있었지요. 그년이 여기 마당 쓸던 젊은 놈과 눈이 맞아 도망치지만 않았어도 애새끼가 셋은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내가 그년을 얼마에 사 왔는데-노인이 중얼거리며 지저분한 욕설을 뱉는다. 가래침 끓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여기 있소. 3층 방이요. 방 다섯 개면 되겠지.”

 

역시 방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었는지, 남자가 벽에 걸려있던 열쇠를 꺼내 계산대에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미리안드를 놀리듯 한마디 덧붙였다

 

“여자 간수를 잘하셔야겠소. 나으리.”

 

애초에 목적은 방을 얻는 것이었으니 여기서 더 열을 낼 이유는 없다. 미리안드 역시 무표정인 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아까는 너무 황당해서 화가 나지 않았는데 생각이 정리될수록 차차 열이 뻗쳤다.

 

“제가 도망가는 일은 없을걸요? 저는 미리안드님을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저 노인에게 뭐라도 한마디 쏘아 붙여주지 않으면 오늘 잠을 못 잘 것 같았다. 노인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저런 말에 속지 말라는 거요.”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하지만 사랑받는 남자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잘 알아요.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도 의심의 여지 없이 잘 알고 있죠. 그렇죠. 미리안드님?”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밝은 미소를 지으며 미리안드를 올려다보았다. 투명한 녹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부엉이처럼 눈을 크게 뜬 미리안드가 한쪽 눈썹만 구긴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게 뭐냐’라는 눈빛이었다.

 

아뿔싸. 이 남자가 감정에 얼마나 무딘지 잊고 있었다. 전두엽에 문제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볼 수준이었다. 미리안드 레흐티넨이 여자한테 사랑받는 느낌을 알 턱이 없지. 당혹감에 입만 벙긋거리는데 높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자. 올라가죠. 3층이라니까 무릎 조심하고요.”

 

왜 무릎 조심하라는 말을 나를 보고 하는 걸까. 미리안드가 아무런 말 없이 몸을 틀어 계단으로 향했다. 열쇠를 낚아챈 온달이 뒤따랐다. 어쩐지 시무룩한 기분으로 계단을 올랐다.

 

 


 


 

 

 

자연스럽게 온달이 들어가는 방으로 뒤따라가려다 누군가의 손에 옷자락을 붙잡혔다. 뒤돌아보니 미리안드가 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디 가는 거냐.”

“아…!”

 

아. 맞다! 우리 부부라는 설정이었지!

 

“맞다. 죄송해요. 저 미리안드님이 사 온 여자였죠!”

 

깜박했다고 목소리를 낮춰 재잘거리자 미리안드가 순간적으로 골이 빠개질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저으며 건너편 방으로 들어가는 미리안드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갔다. 짐을 바닥에 내려놓은 미리안드가 꺼진 벽난로 앞 소파에 걸터앉았다. 한 손으로는 이마를 짚고 반대편 손으로 옆자리를 탁탁 친다.

 

“네. 부르셨어요?”

 

문을 닫고 한달음에 걸어가 앉았다. 작은 한숨을 내쉰 미리안드가 한숨처럼 읊조렸다.

 

“놈의 수준에 맞는 상황을 지어냈을 뿐이다.”

“네?”

“네 녀석을 모욕할 의도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미리안드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나를 모욕하거나 수치심을 주기 위해 그런 거짓말을 지어낸 것이 아니다. 그가 정말 그런 마음을 품었다면 이런 거짓말 정도로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을 모욕할 수 있는 한층 더 지독하고 끔찍한 방법들을 이 똑똑한 남자는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

 

“저는 괜찮아요. 오히려 곤란한 상황을 잘 빠져나가서 다행인걸요?”

 

미리안드가 또 그 표정을 짓는다. 인상을 찡그리고 골이 빠개질 것 같다는 듯 이마를 짚기에 덜컥 걱정이 앞섰다. 혹시 미리안드님은 만성적인 두통이 있는 걸까. 유독 나와 대화할 때 자주 저런 표정을 지으시는 것 같다.

 

“미리안드님. 미리안드님.”

“……”

“정말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저도 이유 없는 두통이 종종 있는데. 그거 진짜 아프거든요.”

“……”

“걱정되어서 그래요. 아프신 거면 숨기지 말고 시프리에드님께 이야기하세요. 저는 이야기해도 소용없었지만…그게. 치유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두통이라고 하더라고요.”

“……”

“미리안드님. 미리안드님은 머리 아플 때 어떻게 아프신-”

“너는…!”

 

잠자코 불 꺼진 벽난로만 응시하던 미리안드가 내 쪽을 돌아보며 울컥 소리쳤다.

 

“단 한 순간, 10분. 아니 10초라도 조용해질 수는 없는 거냐?”

“저, 저요? 저 시끄러워요?”

“그래.”

“죄송합니다…”

 

어쩐지 기가 죽었다. 나 그렇게 시끄러웠나.

 

“미리안드님이랑 같은 방을 쓰는 건 처음이라 들떠서 말이 많아졌나 봐요. 죄송합니다…”

“……”

“조용히 하라고 하셨는데 또 말해서 죄송해요…”

“……”

 

말을 하면 할수록 꼬이는 기분이다. 어깨를 움츠러트리며 무릎을 세워 끌어안았다. 방 안 공기가 아까보다 더 차가워진 느낌이다.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미리안드가 작은 한숨과 함께 팔을 앞으로 뻗고 손가락을 튕겼다. 탁, 하는 불꽃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마른 장작에 불이 붙었다.

 

“가, 감사합니다…추웠는데…”

 

히히 웃으며 미리안드를 올려다보았다. 미리안드는 시선을 벽난로에 고정한 채 내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있다. 남자의 눈가에 엷게 접힌 주름이 오늘따라 더 깊은 것 같았다. 그림자 탓인가.

 

“미리안드님. 저희 앞으로 여기서 단서를 찾을 때까지 머물러야 하잖아요.”

“……”

“저희 그러면 그…설정을 제대로 짜야 할 것 같아요.”

 

설정이라는 말에 미리안드가 고개를 돌린다.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물었다.

 

“저를 얼마에 사 왔다는 설정인가요?”

“……”

 

이번의 침묵은 유달리 도 길었다.

 

“누, 누가 물어보면 대답해야 하잖아요. 말이 다르면 의심할 거고. 단서도 못 찾고 쫓겨나면…!”

“소 한 마리.”

 

미리안드가 입매를 삐뚜름히 비틀며 씹어뱉었다. 빨리 이 대화를 끝내버리고 싶다는 티가 팍팍 났다.

 

“소 한 마리? 소 한 마리 가격에요? 보통 여자를 그 정도 가격에 사나요?”

“……”

“시세보다 비싼 건가요? 싼 건가요?”

 

집요하게 물었다.

 

“모른다.”

 

미리안드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반문했다.

 

“미리안드님도 모르는 게 있으세요? 신기하다.”

“……”

“저는 그럼 미리안드님의 몇 번째 아내인가요?”

“……”

“아이는요?”

“……”

“그러면 미리안드님은 저를 그…음…”

 

어쩐지 막상 입에 담으려니 민망했다. 뜸 들이며 물었다.

 

“사, 사랑하신다는 설정인가요?”

 

미리안드와 사랑이라니 역시 이상하다. 이건 물어보지 말 걸 그랬나. 후회하며 슬쩍 다른 질문으로 돌렸다.

 

“금술은- 흐읍…!”

 

질문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에 입을 틀어막혔다.

 

“조용.”

“…!”

“지금부터 내가 입을 여는 것을 허락할 때까지 숨 소리도 내지 마라.”

 

내면 어떻게 되는데요? 하고 눈빛으로 물었다.

 

“짜증이 나겠지.”

 

미리안드가 음산하게 속삭였다. 남자의 녹색 눈동자가 음울하게 일렁거렸다. 이 남자. 지금 진심이다. 느릿느릿한 목소리가 귓바퀴에 휘감긴다. 낮고 권태롭고 미지근한, 혀로 핥는듯한 목소리였다.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할 테고.”

“……”

“이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도 1층의 그놈은 신경 쓰지 않을 거다. 네 녀석은 내가 소 한 마리 가격에 산 여자니까.”

 

조용히 하기로 했다.







(끝)

이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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