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하는 순간 빠지는 게 사랑이라지만, 개중에서도 보쿠토 코타로는 더 심했다. 그건 거의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찰나와도 같았다. 아니지. 그냥 그거였다. 손가락에 힘을 줘 셔터를 누르듯 머리를 꾹 으깨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눈부신 플래시가 반짝 빛났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눈앞은 여전히 속이 먹먹할 만큼 하얬다. 순식간에 사람을 못 쓰는 거로 만들어버린다. 그게, 그게 사랑이라고 깨달았다. 너무 일순간이라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보쿠토는 사랑에 빠지자마자 쓴웃음을 지었다. 줄곧 세상이 외쳐온 사랑이란 으레 아주 달거나 또는 아주 쓴 것이었고 깨닫는 시기가 어떻게 되었든 모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말했다. 보쿠토 역시 언젠간 그리 순응하게 될 거라 생각해왔다. 조금 더 바라는 게 있다면 배구처럼 재미있다면 좋겠단, 사소한 희망 정도였다. 그런데 이건 도저히. 보쿠토는 생각을 멈췄다. 도저히, 도저히……. 이건 사랑이라기보단 그냥 저 애에게 집어 삼켜진 것에 더 가까웠다.

 

메라를 든 게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 보쿠토는 다시 처음부터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휩쓸릴 것만 같았으니까. 어디서부터 시작이더라.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 애가 후쿠로다니에 입학한 시점부터 가야 한다. 하지만 보쿠토는 아주 약간만 시간을 돌리기로 했다. 깨닫고 보니 이미 이전부터 사랑했단 흔한 이야기는 지루하니까. 그래서 보쿠토는 10분 전을 떠올렸다. 요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 그 애가 카메라 렌즈를 보쿠토에게 들이민 시간부터. 험하게 다뤘는지 상처가 많이 생긴 검은 카메라는 손때가 많이 묻었다. 단정한 생김새 탓에 많이들 착각하는 거지만, 그 애는 의외로 행동거지가 험했다. 특히 자기 거일수록 더 무심했고 덤벙거렸다. 주인을 닮아 자잘한 흉터가 많은 카메라는 보쿠토를 향해 순진하리만큼 투명하게 눈을 빛냈다. 그리고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눈을 덮었다. 무심코 감았다 뜬 시선 너머에는 엷게 웃는 그 애가 있었다.

 

슬아슬하게 버텨온 선을 넘은 것처럼, 혹은 파도 앞에 넘어진 것처럼. 사랑은 그렇게 보쿠토를 삼켰다. 우습고 허망했다. 그동안 저 애가 웃은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보쿠토 사진을 찍는 것도 꽤 자주 있었던 일이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인데, 잠시 방심한 사이에 휩쓸려버렸다. 보쿠토는 얼이 나간 것처럼 휴대전화를 들었다. 카메라를 켠 화면 안에 금세 저 애가 가득 찼다. 찰칵. 익숙한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혔다. 그 애는 잠시 놀란 얼굴을 짓다가 이내 그냥 웃어버렸다. 비현실적인 소리였지만 일순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보쿠토는 남들의 평가와 달리 자기가 실은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아주 잘 알았다. 명쾌하고 확고하나 말씨가 서툴고 감정적인 표현을 즐겨 사용한단 점을 떠올리면 절로 불신이 들 정도로. 그러나 타인의 잣대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보쿠토는 그 누구보다 냉정하고 날카로웠다. 때론 자신조차 서늘한 칼날에 찔릴 만큼. 그런 보쿠토를 알아챈 건 오직 저 애뿐이었다.

 

원하게 사랑을 인정할 순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보쿠토는 냉철했고, 자기를 유일히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다 해서 섣불리 좋아할 정도로 유약하지 않았다. 그러니 저 애가 보쿠토를 잘 안다 해서 사랑에 빠져야만 하느냐 묻는다면, 결단코 아니라 할 수 있었다. 도리어 선을 긋고 다시금 서늘해졌겠지. 하지만 보쿠토는 냉정을 잃고 세상 그 무엇보다 어리석어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순 없는 것이다. 학창 시절 후배를 붙들고 억지로 연락을 이어와, 새벽 0시, 한밤중 그 애의 생일에 맞춰 전화를 건다니. 그동안 관계의 이름이 변한 적은 없었다. 언제나 선배와 후배였고 친구의 선을 지켰다. 또는 그러려 노력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와중에도 시간을 지켜 그 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래도. 보쿠토는 가까우면서도 아득한 지평선 같은 기억을 쓸어내리며 그 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 잠들지 않은 그 애는, 책을 읽고 있었는지 종이를 바스락거리며 우주에 대해 종알거렸다.

 

플러 법칙이라고 아십니까? 그 애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희미한 웃음기를 감추지도 못하고 말을 이었다. 모든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을 그리며 돈대요. 거기까진 보쿠토도 이미 아는 이야기였다.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면 아마, 그러고도 두어 개의 법칙이 더 있었다. 하지만 그 애는 그리 깊은 것까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웃는 목소리로 덤덤하게 말했다. 꼭 저 같지 않슴까, 회전목마도 아니고 별 하나만 보며 빙글거리는 게. 그 애가 언제나 보쿠토를 별에 비유하고 다닌단 점을 생각하면 아주 로맨틱한 고백이었다. 새까만 우주에 홀로 조명이 켜진 회전목마가 음악을 울리며 원을 그린다. 단 하나의 별을 중심으로 그리는 곡선은 다가가는 거리가 멀었다가 좁아지길 반복한다. 하지만 영원히 닿지 않는 타원이었다. 보쿠토는 그제야 기이한 위화감의 이유를 알아차렸다. 이 애는 정말 재미있으면 소리 내어 웃었지, 이렇게 웃는 척은 하지 않는다. 먹먹한 밤에 외로움이 흰 포말처럼 밀려왔다.

 

다음 하얀 파도가 지나가고 떠난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 보쿠토는 알고 있다. 분명 소금같이 버석하고 날카로운 알갱이들이 마음을 잔뜩 헤집겠지. 모르기엔 너무나 잘 알았다. 매번 그 애를 떠올릴 때마다 보쿠토는 똑같은 상처를 얻곤 했다. 해일처럼 사정없이 부딪치고 깨지는 그리움이 가슴 깊숙한 곳까지 흉터를 새기는데도 도저히 놓을 수 없는 것이 여기에 있다. 네가 정말 소금이기라도 한 것처럼. 바닷속에서 말라 죽는대도 좋을 것이. 보쿠토는 무심코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택시가 도착지에 멈춰 섰다. 기차와 택시를 번갈아 타느라 번거로웠지만 어쩔 수 없다. 보쿠토는 차에서 내려 고개를 들었다. 검게 일렁이는 밤이 내려앉은 도시는 수면에 별이라도 비치는 것처럼 반짝였다. 저 빛 어느 사이엔가 있을 그 애를 떠올리며 보쿠토는 말했다. 잠깐만 나와볼래? 그 애는 잠시 침묵하다, 당황하곤, 다시금 길게 침묵한 끝에 대답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여전히 머리가 좋은 애다. 보쿠토는 빙그레 웃으며 그 애의 아파트 앞에 섰다. 기다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겉옷만 대충 걸치고 황급히 뛰쳐나온 그 애의 눈가는 붉었고, 보쿠토는 울었느냔 말 대신 해야 하는 말을 했다.

 

나가 버린 시간은 다시 잡을 수 없지만 다가올 시간을 움켜쥘 순 있지. 그래서 널 만나러 왔어. 앞뒤를 전부 자른 말이지만 그리 어려운 소리는 아닐 텐데 그 애는 얼이 빠진 얼굴로 멀거니 보쿠토를 올려다보았다. 얼마나 급하게 나왔는지 주워 입은 카디건은 뒤집혔고 맨발에 슬리퍼만 적당히 꿰신은 모양새였다. 춥겠다. 보쿠토는 입고 있던 롱패딩을 벗어 그 애에게 입혀주며 말을 이어나갔다. 멍청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진심이야. 생일 선물로 내 전부를 줄게. 너무 늦게 말해서 미안해. 이성적이고 냉정함 따위는 모두 갖다 버리는 말을 내뱉고도 보쿠토는 그저 웃었다. 지금껏 알던 보쿠토 따위 알게 뭐란 말인가. 눈앞에 이 애가 있는데. 여기까지 오고 나서야 보쿠토는 조금 재미없고, 달거나 쓰지도 않고, 자신을 삼켜버리는 감정이야말로 진실로 그를 인간답게 만든다 깨달았다. 해서 보쿠토는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 애의 얼굴엔 순식간에 새빨간 노을이 아른거렸다. 지금은 한밤중인데! 인식하기도 전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보쿠토는 벅차오르는 감정의 파도를 뒤집어쓰고, 아카아시 케이지를 껴안으며 다시 외쳤다. 사랑해, 아카아시!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스톡크

이미 그대의 세상은 그대의 이름으로 빚어졌나니. 아카아시 생일 축하해!

예쁘고 쓸모없으며 달콤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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