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구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글이므로, 현실과는 매우 다릅니다.

* 강압적인 장면(체벌 장면 묘사, 강압적 분위기 등)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제 글을 처음 읽으시는 분은 꼭 공지사항 참고 후 읽어주세요. 

* 작가의 가치관이 글에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죄책감





" 들어와, 여기 앉고. "



단장실 안으로 들어 온 도현과 하람은 태운의 말에 천천히 걸어 소파에 앉자 태운이 냉장고에서 시원한 생수 두 병을 꺼내와 둘에게 건네주었다. 도현이 빠르게 생수를 받아들며 감사 인사를 했고, 태운의 앞이라 그런지 제법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어 옆에서 헉헉거리고 있는 하람에게 마시라며 손에 쥐여주었다. 하람은 눈치를 보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작게 감사를 표했다.

벌컥벌컥, 하람이가 물을 마시는 소리가 단장실 안에 울려 퍼졌다. 선배들이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자 뒤늦게 민망해진 하람이 눈치를 보더니 이내 들고 있던 생수병의 각도를 조절하며 최대한 천천히 입에 물을 모아 삼키려고 애썼다.



" 아, 그, 너무 시끄러워서... 죄송해서.. "



혼자 어쩔 줄 몰라 하며 변명을 하는 하람을 보고 태운이 재밌다는 듯 웃자, 도현도 슬며시 웃으며 편하게 마시라고 말했지만 이미 잔뜩 당황한 하람은 이제 다 마셨다며 조심히 물을 내려놓았다. 태운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뒤로 잠시 정적이 찾아오자 하람은 계속 눈치를 보고 있었고, 도현은 고민했다. 내가 먼저 왜 불렀는지 물어봐도 되는 건가. 단장인 태운이 먼저 입을 열지 않았는데, 쉽사리 질문을 해도 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도현은 단장님과 단 둘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늘, 부단장인 윤재와 지민과 함께 말을 섞었지. 이렇게 직접적으로는 처음이었다. 도현의 눈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다행히 태운이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하람이 응원단은 할 만하니? 도현이가 잘 해줘?



" 아... 예.. 그, 잘 해주십니다. "

" 그래? 다행이네. 너무 잘해줘서, 하람이가 포기가 좀 빠른 것 같기는 하지만. "



태운이 웃으며 하는 말에는 뼈가 있었다. 그 덕에 하람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고, 옆에 있던 도현도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 긴장하고 있냐며 태운이 웃으며 하람과 도현을 달랬지만, 이미 긴장한 둘에게 그런 위로가 통할 리가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태운이 지켜본 결과 하람은 훈련하는 동안 포기가 잦았다. 동작을 따라가는 것도, 기초 체력 훈련을 하는 것도 벅차 보였는데, 하람이 같은 아이들은 선배가 이끌어주지 않으면 떨어져 나가기 십상이었기에 더 신경이 써질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둘을 따로 불러 이야기를 한 것도 둘 다 긴장하라고 그런 건데, 이렇게 굳어버릴 줄을 예상 밖의 일이었다. 생각보다 더 효과가 좋아서 태운도 아주 살짝 당황한 터였다.



" 그, 제가 더 열심히 하람이 가르치겠습니다. "

" 응. 그래야지. "



안 그러면 너만 힘들어질 거야.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태운이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도현은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아마 오늘 저희 둘을 따로 부른 건 아무래도 경고를 하기 위해서였나보다. 하람이에게는 열심히 하라는 압박이었고, 자신에게는 하람이를 포기하지 말고 단원으로 잘 적응시키라는 경고였다. 그 말을 끝으로는 쉬는 시간이 끝이 나버려서 다시 밖으로 나가 훈련 준비를 했다.

괜찮아? 한솔이 가까이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하람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이미 저 안에서 눈치를 보느라 죽을 맛이었는데... 문제는 아직 훈련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 진짜 죽을 것 같다... 집에 가고 싶네. 하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태운이 천천히 걸어 나왔고, 다시 훈련은 시작되었다.



" 하람이, 발 끝 돌려. "

" 주하람, 팔 더 올려. "

" 하람아. 여기서 움직이면 큰일 나는 거야. "



재개된 훈련에서 윤재와 지민은 주구장창 하람을 지적했다. 태운에게서 무슨 언질을 받은 걸까. 아님 하람이 눈에 띄게 못하는 걸까. 유독 하람만 불러대며 지적을 하는 부단장들 덕분에 하람의 뒤에 서 있던 도현까지 덩달아 긴장한 상태였다.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 혼이 날 준비를 하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있으면서도 제발 아무 탈 없이 이 훈련이 끝나길 바라고 있었다.



"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하자. 내일 훈련 늦지 말고. "

" 수고하셨습니다. "



땀에 흠뻑 젖은 하람이 인사를 한 후 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지민과 윤재가 번갈아 가며 지적을 해대는 탓에 하람은 땀을 뻘뻘 흘리며 훈련에 참여해야만 했다. 모든 훈련이 끝난 후 숨을 고르기 위해 바닥에 양손을 짚고 빠르게 호흡을 하던 중 옆에 다가온 한솔이 차가운 물을 건네주었다. 마셔. 한솔에게 감사 인사를 남긴 하람은 뚜껑이 열리자마자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 너 집에 갈 수는 있겠어? "



걱정이 담겨있는 한솔의 물음에 하람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사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집에까지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했다. 저 말고 다른 동기들은 괜찮은 것 같은데, 저만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 같아 저 자신이 조금 한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늘 하람은 최선을 다했다.



" 하람이 괜찮아? "

" 아. 네... 괜찮습니다. "



도현이 하람을 바라보았다. 오늘 훈련 내내 부단장님들에게 제일 많은 이름이 불렸으니 엄청 힘들었을 텐데.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훈련에 참여해준 게 대견했다. 물론, 중간에 포기하겠다고 말 할 정도로 배짱이 두둑한 녀석은 아닌 것 같기는 했지만. 도현은 하람의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어주었다.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도현에 당황하여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 오늘은 데려다줄 수가 없네. 부단장님 호출이 있어서. 한솔이라고 했지. 하람이 좀 부탁할게. "



하람의 머리에서 손을 뗀 도현이 시간을 확인한 후에 뒤를 돌아 급하게 단실로 향했다. 마지막까지 하람을 부탁하고 빠르게 사라지는 도현을 바라보던 하람은 부단장님들이 왜 호출을 했는지 궁금했다. 아까 단장인 태운의 경고를 들어서 그런 걸까. 왜인지 지금 도현은 자신 때문에 혼이 나기 위해 불려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람은 불안한 눈동자로 도현이 사라진 곳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 가자 하람아. 내가 데려다줄게. "

" 나 혼자 가도 괜찮아. "

" 선배님의 부탁을 들었는데. 어떻게 널 놓고 가! 빨리 일어나. 가자. 가자. "



자신의 팔을 잡아 끄는 한솔 때문에 정신을 차린 하람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솔에게 피해를 주는 게 싫어 혼자 간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지만, 한솔은 들은 척도 안 했다. 결국 한솔에게 몸을 맡긴 하람은 천천히 학교를 벗어났다. 한솔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집에 도착하고, 한솔에게 조심히 가라고 배웅까지 해준 하람은 빠르게 샤워를 한 후 오늘도 여기저기 쑤셔대는 몸에 파스를 잔뜩 뿌려댔다. 이렇게 힘든데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생각에 하람은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평소였으면 진작, 그만뒀을 텐데... 이번에는 쉽게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오늘 태운이 남긴 경고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도현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까도 분명 자신 때문에 도현이 윤재에게 불려간 것 같아 찝찝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닌데도 하람은 알 수 없는 죄책감에 마음이 답답했다. 자신 때문에 도현이 혼나는 건 싫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윤재와 지민에게 단단히 찍힌 것 같았고, 앞으로의 응원단 훈련이 쉽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다음 날 부터, 하람의 예상대로 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훈련 때만 되면 하람의 이름이 자주 불렸다. 기본자세를 만들 때도, 체력훈련을 할 때도 여기저기 하람의 이름이 들려왔다. 그리고 딱 일주일이 되는 날 하람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된 사람은 부단장 윤재였다. 윤재는 딱 한 번만 틀린 자세에 대한 지적을 해주고, 그 후로도 자세가 틀리면 아예 도현을 불러와 하람의 앞에서 매를 들었다.



" 읍, 감사, 합니다. "

" 복귀해. "



자세를 교정해주기 위해 들고 다니는 윤재의 두툼한 나무 막대기는 한 순간에 사람을 패는 용도로 변화되었다. 다른 부원들도 제 짝 후배 때문에 불려 다니긴 했지만 그 매를 가장 많이 맞은 사람은 도현이었다.

 그러니, 하람은 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다. 




" 오늘도 잘 해보자. 우리. "

" 예, 부단장님. "



단장님과의 전체 훈련이 끝나고 부원들끼리 따로 하는 훈련은 지민과 윤재가 돌아가며 담당을 했는데. 오늘은 지민이 훈련 담당이었다. 윤재보다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다른 의미로 지민의 훈련 또한 만만치 않았다.



" 아니야, 팔 각도가 안 맞아. 다시 들어봐. "

" 배에 힘 풀면 되던 것도 안 돼. 팔굽혀펴기 좀 할까. 우리 "



지민은 섬세하게 부원들 하나하나 자세를 짚어주었다. 문제는 그 다정함이었다. 다정한 목소리로 단원들 전체의 체력을 길러준다거나, 단원 개인의 부족한 실력은 우리가 함께 안고 가야 될 문제라며 다 같은 동작을 시키고는 했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단원들 개개인이 잘하는 동작과 못하는 동작이 달랐으니 훈련이 끝나면 한 명도 빠짐없이 땀범벅이 되어있었다.



" 하람아. 너 자꾸 이 부분에서 무너지는 것 같은데. "

" 죄송합니다... 잘, 잘하겠습니다. "

" 배랑 다리에 힘을 주려면, 엉덩이도 힘을 줘야지. "



지민이 하람의 엉덩이를 손으로 툭 건드리며 자세를 잡아주었다. 하체에 힘은 물론,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아 코어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하람은 응원단의 기본자세 조차도 어려웠다. 학교 다닐 때도 차렷자세로 조금만 서 있어도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는게 다반사였으니 당연히 지적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하람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자세를 잡으려고 노력을 하는 게 눈에 보여 지민은 참 안쓰러웠다. 처음 의욕 없는 모습으로 훈련에 임하던 하람이 엊그제 같은데, 그래도 나름 열심히 따라가려고 애는 쓰는 것 같았다. 아마 도현이 매일 같이 자신 때문에 혼이나니 더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 하람이는 따로 운동 좀 더 해야겠다. "

" 후우, 네에. 죄, 죄송합니다. "



실력이 늘지 않으니 본인이 더 답답할 것이다. 지민이 하람을 안쓰럽게 바라보다 마지막 남은 시간은 하체의 힘 좀 기르자며 다 같이 기마자세를 하라고 웃으며 말했다. 10분이라는 시간이 남았는데, 기마자세라니. 진정한 악마는 지민이 아닐까 속으로 생각을 하던 지민의 시작이라는 소리에 단원들은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 지민은 자세가 무너지면 꼭 친절히 5분씩 더 늘려주고는 했으니까.



" 후우, 하아. "

" 허업, 헉, 허. "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단원들을 바라보고 있던 지민은 유독 힘들어하고 있는 지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태운이 왜 하람이를 주시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태운은 기초도 없는 애들을 키우는 것을 즐겼기 때문이다. 단장한테 찍혔으니 주하람 실력은 늘겠지만, 그 과정까지 많은 눈물을 흘릴 것 같아 안쓰러웠다. 어디 눈물을 흘릴 사람이 하람뿐이겠는가. 짝 선배인 도현도 하람이 제대로 된 응원단원이 될 때까지 매일 눈물 흘릴게 뻔했다. 태운에게 혼나며 배우던 그 시기를 지민도 겪었기에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어 하람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었다. 아마 하람은 벅차겠지만, 나중에 언젠가는 제 깊은 뜻을 알아줄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 문득 지옥 같았던 그 시간이 떠오르다 지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떨쳐내기 위해 급하게 다른 생각을 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 자, 해산. 수고했어. "

" 수고하셨습니다. "

" 아, 도현이는 나 좀 보고 가고. "



수고했다는 인사를 끝으로 상체를 숙이고 거친 숨을 몰아쉬던 하람은 오늘도 부단장이 도현이를 부르자 급하게 고개를 들어 도현을 찾았다. 어딘지 불편해 보이는 도현의 걸음걸이를 보아하니 어제도 윤재에게 맞은 게 분명했다. 혹시 오늘도 나 때문에 혼나는 건가 싶었던 하람은 아직 자리에 서서 숨을 고르고 있던 도현에게 다가가 팔을 덥석 잡았다.



" 하람이 왜? "

" 혹시... 저 때문에 혼나러 가세요? "

" 어? "



하람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짓자 도현은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제 손을 붙잡고 있는 하람의 눈에 맺힌 눈물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게 보이자 이대로 그냥 두다간 애 하나 울리겠다 싶어 급하게 말을 이었다.



" 아니야. 괜찮아. "

" 아닌 것 같은데.. "

" 그런거 아니니까. 빨리 집에 가. "

" 그래도... "



씁. 빨리 가. 마치 동생 다루는 듯한 태도에 하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잡고 있던 도현의 손을 놓았다. 착하네. 제 말을 듣고 손을 놓은 하람에게 웃어준 도현이 먼저 간다며 단실로 향했고, 오늘도 하람은 도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오랜만에 날아오르다..

우리 하람이.. 점점 짠해지는 건 기분 탓일까요..?


아래는 짧은 내용입니다.

이번 편 못다 한 이야기이며,

짧으니 구매에 유의하세요.





+) 도현이와 윤재, 못다 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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