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ham - 12:45



야사록; 野史錄 08

전 정 국  X  김 태 형
W.  B  A  E  B  A  E .



*


바람의 움직임이 스산해져오져는 오후, 아무도 없는 산기슭에서 내려오는 고요한 침묵이 무겁게 주변의 공기를 잠식시켜왔다. 온 몸을 뒤감은 털 끝자락까지 에이는 바람이 선뜩하리만큼 차가웠다. 주변의 공기도 어두운 분위기도 무섭게 다가오는 것은 없었다. 다만, 하나 마음에 에이는 것이 있다면 한 사람 뿐 이었다. 김태형의 그 곱고 단정한 모습처럼 신당을 정리해 둔 채 모습을 감춰버린 내 반려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답을 듣지 못할까 혹은 내가 원하고자 했던 답이 아닐까, 그것이 더욱이 공포스러울 뿐이었다. 동쪽을 향해 얼마나 달렸을까, 청룡의 기운이 깊게 내려 앉은 마을 어귀의 산등성이에서 만나고자 한 사특한 형체가 자취를 들어내었다.



"더러운 비린내가 온 나라를 뒤 덮은 이유가 역시 너 였군"


"오호-, 사방신 중 그 정의롭고 인간에게 우-호적이라는 이빨 빠진 백호로군-?"


"...청룡-."



푸른 바다빛을 감돌아야 할 청룡에게는 검은 빛의 아우라가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인간을 살한 것인지 혈향이 청룡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악취처럼 뿜어져 나왔다. 



"어쩐지 이 청룡의 기운이 가득한 곳에 먼지 날리 듯 사방에 털이 날린다 했더니 성질 더러운 백호가 왔음이였군. 천하의 백호가 예뻐해 마지 않던 너의 인간 짝지에겐 결국 버림당한건가? 해서 나를 찾아왔나?"


"입을 조심해야할거야.

나는 네가 부리는 잔술수에는 놀아나지 않을거니까."


"피의 전쟁이라도 불사할 자신이 있는가? 백호?"


"전쟁을 원하나?"


"글쎄. 그냥 좀... 심심하달까??

몸이 근지럽지않아? 

사랑 놀음하느냐고 신수의 힘과 영향력을 잊은 털 덩어리에게는 너무 과분한 것이 되었나?"


"닥쳐라."


"조물주에게 받은 굴욕과 굴복은 이만하면 되었다.

무려 오백년의 시간이 흘렀다. 수 많은 왕조들이 서로 물고 뜯으며 내게 자신들에게 힘이 되어달라 울부짖는다. 내 힘을 조금만 나누어 주어도 미치광이들 처럼 나를 숭배한다. 해서!!! 나는 내 영혼의 그릇들을 볼모로 잡고 이 세상을 온전히 내것으로 지배할 것이다."


"다른 사방신이 너와 같은 뜻 일거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존재의 가치, 믿음의 현신...

그것이 바로 우리고 그 믿음이 곧 힘이다.

허나 너는 겨우 사내 새끼 하나에 휘둘려 힘을 제어 당하고도!! 영겁의 생활 동안 반성이나 하라는 이 굴욕적인 처사에 도대체 언제까지 묵인하며 안주하고만 있을 것인가?!!"


"한낱 이무기가 룡(龍)으로 승천할 수 있었던 것은 조물주의 선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힘을 가지고 그 책임의 역활을 나몰라라 한다면 과연 신수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힘이라는 것에 잠식 당해 네가 지은 모든 업보를 닦아내야만 다시 진정한 신수로서의 역활이 가능한 것이다."


"이 청룡신을 이무기 따위에 비교하는거냐!!!!!!"


"조물주의 뜻이 그러하다."


"반푼이 신수와는 역시 대화가 통하지 않겠군.

나는 이미 나의 힘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조물주 따위가 내 앞을 가로막을 수 없음이다."


"...짐승과의 대화는 나 역시 그만하고 싶군. 

허나, 네가 볼모로 데리고 온 나의 반려는 이만 내가 데려가겠다.

나와의 싸움도 원한다면 내게 맞서라. 허나 지금처럼 왕과 인간들을 동요하여 전쟁을 일으키며 피의 굴레를 원치 않는다. 싸운다면 그것은 너와 나와의 혈투여야 할 것이다."


"훗-, 참으로 나약해졌군-.

사납고 거칠던 맹수가 이빨도 발톱도 결국 다 인간 나부랭이에게 모두 내주었나보군.

한심하기 그지 없는 너의 모습을 돌아보라!!!!"


"완전히 흑화한 룡과 더 이상 대화가 무엇이 필요하겠나?"



*




전광석화같은 빛이 번쩍이고 두 사람의 기운이 맞닿아 흐르던 강이 출렁거렸고, 대지가 뒤흔들려져 왔다. 갑자기 그 빛을 비집고 들어온 노오란 나비 한 마리가 두 힘을 모두 거두어 내었다. 



"인간 세상에서 당췌 무엇들 하는겐가!"



유약한 나비의 모습이지만 마치 힘이 묶여진 듯 백호와 청룡은 하늘에 떠있는 나비를 바라볼 뿐 이었다. 세상을 뒤흔드는 듯한 고함에 두 사람이 고개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인간세상에서는 현신들의 모습을 볼 수 없음으로 때 아닌 비와 약한 지진감을 느꼈고, 동시의 나비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울렸다. 



"백호, 이 곳이 자네의 영역이었던가?"


"..."


"지금 내가 자네에게 묻고 있지를 않는가!"


"반려를 찾으러 왔습니다. 용건이 끝난다면 제 영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아니, 당장 돌아가라-! 라며 나비는 호통쳤고 잠시 틈이 난 상황을 놓치지 않고 청룡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 



"청룡은 어디를 가는가!!"



검은 빛에 가까운 청룡이 큰 호선을 그리며 하늘 위로 사라지고, 나비는 청룡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백호에게도 명령하듯 날아갔다. 당장 자네의 영역으로 돌아가 근신하라-!라며 말이다. 그르릉 거리는 소리를 낼 수 밖에 없는 백호가 인간의 모습으로 바꾸고 이만을 갈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저 멀리 사라지는 나비의 빛과 청룡의 빛을 노려만 볼 뿐 이었다. 


*



어둠이 짙게 깔려진 동쪽의 산 속에서 발 걸음을 떼지 못하던 찰나, 산등성이 아래 궁에서 불이 밝혀지는 것을 내려다 보았다. 호롱불이 하나 둘 늘어 큰 빛을 만들어 내었다. 방금 전 저와 청룡의 힘 겨루기에 세상이 요동쳐왔을 것이고, 동시에 나비의 불호령에 쿠궁거리는 벼락치는 소리가 들려왔으니 인간들에게는 큰 놀람이었을 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시야를 좁혀 태형의 자취를 찾아보았다. 시각과 후각을 곤두세워도 어찌된 영문인지 태형의 모습이 잡혀지지가 않았다. 그러는 와중 바스락 거리는 낯선 인간의 후각에 뒤를 향해 물었다.




"누군가?"


"어찌, 사방신 중 서쪽을 지키는 호령께서 예까지 오셨나이까?"


"나를 아는체한다는 것은 죽고싶다는 것인가?"



본질적으로 맹수의 기질을 타고난 백호에게 인간이 보호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 예외적인 것은 반려인 김태형 뿐이었다. 뒤를 돌아 인간을 바라보니, 신관쯤 되어 보이는 나이든 사람이 허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못마땅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니, 숨을 한번 고르고는 차분히 말을 잇는다.




"호령께오서 제게 용건이 있으신게 아닐텐데요."


"...눈치가 빠른 인간이군"


"호산의 김 선생은 좋은 영(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그는 어디에 있나?"


"그전에...소인의 한 가지 간곡한 청(請)이 있나이다."


"내가 내 반려를 찾지 못해서 그대에게 묻고 있는 것 같은가?"


"흑룡을 죽여주소서-.

악으로 흑화 된 흑룡을 죽이시고, 청룡으로 다시 돌아올 있게 해주신다 약조하여 주시면, 이 목숨을 내어도 여한이 없나이다. 또한 호령의 반려인 김 선생 역시 이 궁과 엮이지 않도록 힘쓰겠나이다."


"너의 룡은, 이미 너무 멀리 가버렸다.

조물주는, 결코 흑룡을 용서치 않을 것 이다. 그리고 나 또한 마찬가지 일테고. 

청룡인 그가, 흑빛으로 뒤감겨 진 것이 분명하다면, 그를 벌 할 수 있는 것도, 살하는 것도 조물주의 영역이다. 그가 빚어낸 피의 무게가 그러하다."


"백호령!!!!!! 부디...!!

부디 힘 없는 인간의 간곡한 청을... 쳐내지 말아주소서. 

청룡을 뒤 덮은 흑룡을 살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의 주인 뿐만 아니라 이 온 나라가 피바다로 물들이게 될 것이란걸 아시지 않습니까?"


"모든 건 조물주의 선택이다.

신의 뜻이 그러하다면, 겸허히 받아들여야겠지."


"아끼시는 반려는 이 소용돌이에서 무사하실거라 생각하십니까?"


"인간이여, 흐르는 강물도 내리는 비도 손아귀에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다. 부는 바람을 맞써야할 때도 있는것이다. 

해서, 너의 청을 들어주도록은 노력하겠다. 나의 반려를 위해서 말이다.

하여 너 역시 네가 말한 바를 반드시-, 지켜내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없다.

탐욕은 결코 멀리있지 않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남이 가진 것을 주지 않으려 하는데도 의도적으로 가지려고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작은 작은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 욕심은 결국 악(惡)을 불러오고 그 달콤한 유혹에 잠식되는 것은 결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음이었다. 


 왕을 모시는 사제도, 조물주에 묶인 사방신들도, 인연으로 묶인 반려자의 연(然)도 인위적인 힘으로 끊어 낼 수 없는 것 처럼. 보슬비에 온 몸 적셔지는 것도 모르는 채 비를 맞는 것 처럼, 그렇게 우리의 삶으로 타고 들어와 혼연일체가 되어버리는 것일테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따름이다. 그리고 맺어진 인연을 찾아가는 것 또한, 주어진 삶의 역활이고 책임일 것이다.


 해서 나는 너를 반드시 지켜내리라.

나의 반려여-, 나의 이름이여-

나의 애틋한 연인이여-.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내가 너를> 나태주 咋。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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