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unkown_dream 


곡선도로 주의 구간 

이명헌 송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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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f 설정 (송태섭이 북산이 아닌 산왕에 진학합니다.)


23.6.16 update > 아래 링크에서 구매 후 소장하실 수 있습니다. 

곡선도로 주의 구간 https://posty.pe/pozqg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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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타의 눈은 한 번 내리면 그칠 줄을 모른다. 송태섭은 머리에 쌓인 눈을 툭툭 털어냈다. 털어내면 몇 초 지나지 않아 또 쌓일 게 분명한데도 습관처럼 눈을 털어냈다. 아키타에 온 지도 이제 1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이 새하얗고 고요한 도시가 신기하다. 고향인 오키나와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풍경이다. 어디에서나 들려오는 물소리, 바람에 나부끼는 나팔꽃, 뭍에서 헤엄을 치면 볼 수 있는 푸른 산호초.

가장 남쪽 끝에서 북쪽으로, 송태섭은 버티는 데에 있어서는 천재다. 오키나와의 암벽을 올라타곤 했던 그때처럼 기어 올라가면 될 일이다. 

송태섭은 올해 산왕공업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농구부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머뭇대던 찰나, 월간 농구에 실린 산왕을 보았다. 형과 어릴 적 했던 대화가 생각이 났다. 이왕 농구를 할 거면 나는 이쪽이 좋아. 최강산왕에게- 이긴다-. 준섭의 목소리가 생생했다. 태섭은 제 왼쪽 손목에 끼워진 붉은 보호대를 매만지며 옅게 숨을 내쉬었다. 최강산왕. 형과 했던 대화를 기억해내고는 덜컥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산왕공업고등학교는 농구로는 전국구급 시설과 훈련 시스템을 자랑하고 있었다. 당연히 본인들이 스카웃한 유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혜택들도 끝내줬다. 학비 면제, (제일 중요한 점이었다) 4인 1실 기숙사 제공 (3학년이 되면 2인 1실을 쓸 수 있다.), 전지훈련비 지원, 대학 진학 시 산왕공고 농구부였다는 건 어떤 문장보다 힘이 있을 것이다. 대학을 갈지, 가지 않을지는 결정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오케이를 하고 산왕공고에 들어왔다. 머리를 박박 밀고 난 뒤 어색해진 머리를 매만지면서 꿈을 꿨다. 

형이 만나고 싶어 했던 최강산왕의, 최강의 포인트가드가 되어주겠다고. 당연히 만날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서라도 형이 그런 나를 봐주기를 바랐다. 

눈과 산으로 둘러싸인 곳, 얕게 흐르는 강마저도 추위에 꽁꽁 얼어버린 곳에서 태섭은 오키나와의 바다를 떠올렸다. 

*

그러나 최강 산왕의 최강의 포인트가드가 되어주겠다는 다짐을 실현하기에 현실은 녹록지가 않다. 송태섭이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무릎에 양손을 짚었다. 중학교 때는 나름 지역에서 알아주는 포인트가드였다. 그랬으니 먼 곳에서 스카우터가 태섭을 찍어 보낸 것이겠지만, 그렇게 전국에서 모인 내로라하는 녀석들 중, 태섭은 고작해야 스페어 키 정도였다. 

게다가 태섭은 1학년 입학 직후부터 선배들에게 미움을 사서, 2군까지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실력임에도 2군 연습경기에도 출전을 하지 못했다. 그게 짜증 나서 반발을 하면 또 맞았다. 너 그딴식으로 하면 다음도 없어. 평생 공이나 닦다 졸업할래? 3학년 선배의 말에 꾹 참아보려고는 했으나 말은 참아도 표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미친새끼네 이거. 헛웃음을 치던 선배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빈 창고에는 한동안 둔탁한 소리와 거친 숨소리만 이어졌다. 엘리트 학교도 별거 없네. 다 똑같아. 찢어진 입가가 따가워 눈살을 찌푸리던 태섭은 다시 한번 얼굴로 날아오는 주먹에 눈을 감았다. 반사적으로 팔이 올라갈 뻔했다. 팔이 다치는 것 보다는 얼굴이 낫지. 

그래도 두려운 건 두려운 거다. 숨을 들이킨 태섭은 기다리던 타격감이 없는 것에 슬며시 눈을 떴다. 어두컴컴했던 창고에 작게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거기에는 곧은 몸을 가진 두 명이 서 있었다. 

 "아, 명헌이냐." 

 "예. 선배님. 개인 연습입니다." 

뿅. 어떤 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평온한 말투로 대답한 이명헌이 창고 문 가까이에 있는 농구공을 집어 들었다. 정우성이 있는 쪽은 어두워서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태섭은 어둠 속을 노려보다 머리가 아파 눈을 감았다. 골이 울린다. 

 "정우성이랑 연습하는 거지? 나도 좀 봐주라. 패스 받을 때 타이밍을 잘 못 잡겠어서."

지랄은. 태섭이 속으로 욕을 했다. 지가 이명헌에게 패스 받을 일이 뭐가 있다고... 여기 와 있는 놈들은 고작해야 2군들이다. 정규 시합에는 벤치에도 못 앉을 놈들이 이명헌과 연습을 하긴 뭘 해. 물론 송태섭도 2군이었기에 자조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어쨌거나 선배들이 이명헌에게 딸랑거리는 꼴이라도 봐서 기분은 좀 나아졌다. 

 "그건 어렵지만," 

 "..." 

 "거기 있는 포인트가드랑 합을 맞추시는 게 선배님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적막 속에서 정우성이 으흑, 하는 앓는 소리를 냈다. 자세히 들어보니 앓는 소리가 아니라 웃음을 참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한 방 먹은 얼굴들을 올려다보는 게 진심으로 즐거웠다. 꼴 좋네. 태섭이 그렇게 생각하며 느릿하게 눈을 깜박거렸다. 이마에서 흐르는 게 땀인지 피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쯤 정신을 잃었다. 

어이, 도토리. 도토리? 낯선 호칭에 눈을 떴을 때 잘 빚어놓은 밤톨이 눈앞에 보였다. 산왕에 입학하면 모두가 밤톨이 되긴 하지만, 이렇게 매끈한 밤톨은 한 명 뿐이다. 송태섭과 같은 일학년이지만, 이미 차기 에이스로 팀의 신뢰를 받는 정우성. 이 녀석도 유학을 왔다고 했다. 이명헌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조건이다. 17년 동안 농구만을 생각한 건 정우성도 나도 똑같다. 태섭이 헛헛한 속을 문지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어디인가 했더니 기숙사였다. 

 "너도 일학년이지?" 

 "어." 

 "선배들한테 어쩌다 그렇게 찍혔어? 지나다니면서 너 맞고 있는 것만 한 세 번은 본 거 같다." 

그렇게 물어봐 놓고 사실 별로 궁금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기숙사 2인실이네. 태섭이 슬쩍 방을 둘러보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이명헌이었다. 저도 모르게 이불을 걷어낸 송태섭이 긴장한 척추를 꼿꼿하게 세웠다. 둘이 방을 같이 쓰던가. 정우성은 1학년인데. 

 "누워있어. 뿅." 

선배들을 대할 때와는 또 다른 사람 같다. 이상한 어미에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고개를 저었다. 정우성이 기숙사까지 데리고 왔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럴 만큼 친하지도 않고, 대충 들어본 정우성 성격으로 보건대, 친하지도 않은 송태섭을 데리고 오겠다고 연습을 거를 거 같은 놈도 아니었다. 이명헌이라고 송태섭과 아는 사이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산왕의 주장이니까. 주장이라면 팀원을 챙기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하며 태섭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아니라 정우성에게 해용." 

그냥 두고 오려는 거, 정우성이 데려오자고 한 거니까. 생각을 읽을 수 없는 까만 눈동자가 슬쩍 송태섭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의 시선이 닿았던 곳들은 모두 멍 자국과 울혈로 울긋불긋했다. 

 "아..." 

 "신고할 거면 감독님에게는 같이 가줄 수 있어용." 

아, 이명헌이 걱정했던 건, 2군 송태섭이 당한 린치가 아니라 농구부의 위상이었군. 혹시라도 문제가 커질까 봐. 어쩐지 속이 차갑게 식는다. 누군가에게 맞는 건 익숙하지만, 이런 관계에는 여전히 면역이 없다. 송태섭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신고 같은 거 안 하니까 신경 끄시죠."

태섭의 옆에 서 있던 정우성이 헉, 소리를 냈다. 

 "그 말투부터 고쳐." 

 "..." 

이명헌의 손이 송태섭의 머리를 붙잡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손이 차가웠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바깥까지 새어 나오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음. 처맞고 다니는 게 취미는 아니잖아용? 그 웃기는 말투를 들어도 더 이상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태섭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손은 금방 떨어져 나갔다. 

전국 제일의 포인트 가드, 산왕의 주장, 에이스, 이 팀의 정체성. 

가까이에서 연습을 할 일은 없어도 늘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당연하지. 같은 포지션이니 뭐라도 얻어보고 싶어서 맴도는 포인트가드들은 송태섭 말고도 많았다. 그가 팀을 지배하는 능력, 경기 운용 방식, 100여명이 넘는 부원들을 통제하는 방법. 그 모든 것들이 태섭에겐 미션 임파서블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저 정도 아우라는 있어야 가능하구나. 하고 나름대로 동경해왔었다. 

그러나 코 앞에서 마주한 이명헌은... 고작 그런 말들로 표현될 타입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런 사람이 주장으로 있어도 되는 건가. 그런 다분히 상식적인 생각을 하며 태섭이 침을 삼켰다. 검은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내게 악의가 있는지,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보통은 얼굴에 드러나기 머련인데. 

어지간한 놈들과 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는 송태섭에게 이명헌은 해석 불가한 상대였다. 

 "송태섭." 

 "...네?" 

내 이름을 알고 있네. 다른 사람들은 주장이니까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100여명이 넘는 부원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외우는 걸 아무도 그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2군을 담당하는 매니저도 따로 있다 보니, 송태섭과 이명헌과 마주할 일도 거의 없었고. 

 "그렇게 표정에 드러내진 말고."

포인트가드잖아용.

이명헌은 알까. 방금 던진 그 말이 송태섭이 산왕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농구에 대해 인정 받은 말이었다는 걸. 포지션도, 특징도, 산왕의 송태섭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선배들에게 미움받은 이후로 제대로 된 연습경기 한 번 뛰어보지 못하고 죽어라 드리블 연습 슛 연습만 해왔으니까. 그러다 구멍이 생기면 어떤 포지션이라도 땜빵으로 뛰어야 했다. 너는 포인트가드야. 라고 처음으로 말해준 건 놀랍게도 이명헌이었다.

 "어라, 도토리 우는데요." 

 "안 울거든?"

송태섭이 씩씩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울지는 않았다. 표정이 일그러졌을 뿐. 아직 시작도 안 해봤는데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자신을 때리는 선배들을 신고하지 않는 것도, 언젠가 찾아올 지 모르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다. 그런 놈들 때문에 농구를 그만두기는 아깝잖아.

 "정우성은 금방 울어. 뿅." 

 "어린애냐..." 

정우성이 왁왁대는 소리가 들려도 무시했다. 이명헌은 나름대로 위로를 해주려고 한 걸까. 아니면... 

그날 밤 송태섭은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이명헌의 말이 계속 재생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표정에 드러내진 말고, 포인트가드잖아. 


*


송태섭은 2군 선수들 중에 가장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기숙사는 4인 1실, 보통 1학년 2명과 2학년 1명, 3학년 1명으로 구성되는데, 송태섭과 한방을 쓰는 선배와 동기 모두 잠귀가 어두운 편이라 다행이었다. 새벽 네 시 반이 되면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부러 어머니가 챙겨주신 잠옷 대신 짧은 운동복 바지와 흰 티셔츠를 입고 잠드는 건, 새벽 연습을 위해서였다. 공용 샤워실에서 대충 세수하고 이를 닦고 난 뒤 졸린 눈을 비비며 체육관 문을 열었다. 산왕의 정규 아침 연습 시간은 오전 7시에 시작한다. 보통 1군 멤버들은 여섯 시에 와서 연습을 시작하니, 한 시간 정도는 오롯이 송태섭 혼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 24시간 체육관이 개방되어 있다는 것도 강호교의 좋은 점 중 하나였다. 

 "아싸..." 

오늘도 아무도 없다. 송태섭이 체육관 정중앙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림을 앞에 두고 드리블 연습을 했다. 산왕공고의 플레이는 팀 연계 플레이가 주축이 된다. 포인트 가드의 지시에 맞춰 코트 위에서 복잡한 질서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 단정하지만 무게감이 있는 플레이. 처음 송태섭이 들어와 입부 테스트를 했을 때 들었던 말은 '산왕에 이런 타입이... 글쎄, 잘 맞으려나 모르겠네.' 였고. 그 뒤에 팀 연습을 할 때도 송태섭은 늘 모난 돌 취급이었다. 런앤건 스타일도 하라면 할 수는 있으나, 팀의 색깔과는 잘 맞지 않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각각 선수들만 놓고 봐서는 개성이 강해도 그 개성보다 팀을 우선시 하는 성향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일단 그 몸으로는 상대를 압박하는 것도, 프레스를 뚫고 나가는 것도 힘들잖아." 

시끄러워. 나 같은 꼬맹이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마.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이라지만 태섭은 유독 그런 말을 들으면 참지를 못했다. 

산왕공고가 자랑하는 철벽의 존 프레스는 단순히 상대방이 점수를 내지 못하게 하는 플레이는 아니다. 마치 맹수가 사냥감의 목을 물어 단숨에 숨을 끊어놓는 것처럼- 산왕은 언제나 한 순간 상대 팀의 사기를 꺾고 그 위로 올라섰다. 그게 도감독님의 스타일인가, 처음엔 그렇게 여겨왔지만 이명헌을 만나보고 나니 그게 가능했던 건 이명헌이 산왕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독의 지시가 있어도 그걸 구현할 선수가 없으면 소용 없으니까.  

자, 집중. 이명헌의 플레이를 생각하며 태섭이 아무도 없는 농구 코트에 서서 오른손을 들었다. 한 골, 넣자. 차분하게. 가상의 부원들을 자리에 위치시킨다. 오늘의 상대는 삼점슛을 잘 내는 팀이다. 드리블을 시작한 송태섭의 손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한 명을 제쳤다, 여기서 턴어라운드… 한바퀴 빙글 돌아 중심을 잡으려는데 

 "거기선 무릎을 더 낮춰." 

헉. 놀란 나머지 공을 떨어뜨린 태섭이 뒤를 돌아보자 이명헌이 서 있었다. 머리에 스포츠 타올을 얹은 이명헌은 방금 막 일어난 사람 같지 않게 여느 때와 똑같았다. 저게 사람이야 기계야. 속으로 중얼거린 태섭이 공을 들고 코트 바깥에서 뻣뻣하게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연습이나 계속해. 시간 없어용."

"...해도 되나요?"

"연습을 안 하면?"

넌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잖아. 마지막 말은 이명헌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이 아님에도, 송태섭의 귓가에 정확하게 꽂혔다. 

 "그럼, 봐주세요."

내가 왜? 라고 말할 거라고 예상한 송태섭이 다음 말을 준비했다. 이래 봬도 제 실력이 꽤 괜찮아요. 하면 잘 할지도. 주장이잖아요. 아 몰라 그냥 봐줘요. 여기까지 생각하다 이도 저도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에 이를 깨무는데 예상치 못한 답변이 들려왔다.

 "내가 이 새벽부터 왜 체육관에 왔을 거라고 생각해. 뿅." 

그러니까 빨리 시작해. 시간 아까우면 돌아간다. 이명헌의 의중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제게 온 기회를 놓치는 건 송태섭답지 못한 일이다. 뭐든 증명할 것이다. 농구를 계속해도 된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한 번 뿐일 거라고 생각했던 이명헌과의 새벽 연습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요일이 따로 정해져 있진 않았고, 그저 자기 꼴릴 대로 오는 것 같았다. 어떤 주간에는 5일 내내 나올 때도 있었고, 어떤 주간에는 고작 한 번 봐주는 날도 있었다. 물론 자기 연습에 도움도 안 되는데 일찍 일어나서 와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기는 했다. 

그래놓고, 정규 연습 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마치 새벽에 함께 연습하던 게 송태섭의 꿈인 것처럼. 실제 있었던 일이 맞긴 한가. 송태섭은 얼떨떨했으나, 주장이 한 명의 부원만 따로 개인 연습을 해주는 것도 (그것도 1군도 아닌 녀석을) 뒷말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어 송태섭도 티를 내진 않았다. 알려져 봐야 맞는 건 또 본인일 것이다. 

그 사이 송태섭은 2학년이, 이명헌은 3학년이 되었다. 정우성은 에이스가 되었고, 송태섭은 여전히 2군에 머물러 있었다.

 "아, 참. 인터하이 직전에 네 명 정도 1군으로 승격할 부원을 뽑아. 뿅." 

 "음..." 

 "해 봐." 

올라오라고. 이명헌의 단단한 말투에 조금 겁이 났다. 갈 수 있을까. 가더라도... 어차피 거기에는 또 이명헌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한 스스로가 당혹스러웠지만, 어쩐지 이명헌에게는 거스를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진다. 상대 팀으로 만났다면 이 위압감을 견뎌내기 위해 싸웠겠지만, 같은 팀 후배인 내가 이 위압감을 견뎌내기 위해 싸울 수도 없고,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싸울 수 없다면 뭘 해야 하지. 이명헌은 무표정한 얼굴로 흐트러진 송태섭의 허벅지를 종아리로 쳤다. 자세 더 낮춰. 옙. 송태섭이 땀을 닦아내며 림에 집중했다. 일단, 올라가고 난 뒤에 생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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