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떤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어떤 밀도와 의미를 갖든 간에.

그 무게를 덜기 위해 떠나는 길, 새벽을 스산히 채우는 햇빛이 눈을 찌르던 길, 나는 그토록 미세먼지 없이 화창하던 날에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섰다. 그 푹한 봄볕에마저 낯빛이 드러나는 게 부끄러워서. 그 무게를 아무리 덜고 덜려고 해도, 영영 덜어낼 수 없으리란 예감이 선명해서.

 

 

 

아홉 시까지, 아니 정확히는 십 분 전, 여덟 시 오십 분까지 학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새벽 다섯 시 즈음에 깨어나야만 했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어머니가 지난밤 만들어주신 삼각김밥을 아침 때우듯 먹고, 머리를 말리고 고데기를 하고, 화장을 하고,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다가 매번 분주한 마음과 걸음으로 헐레벌떡 집을 나서곤 했다.

그날.

그날만은 아니었다.

나는 여덟 시에 일어나 머리도 감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고, 모자를 푹 눌러썼다. 아무 고민 없이 가장 어두운 색과 채도의 옷들을 골라 입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게, 그림자처럼 소리도 의미도 없이 스쳐 지나가도록, 나를 꽁꽁 감추고 싶은 마음 그대로.

평소처럼 가방을 챙겼다. 그날은 필요한 것이 더 있었다. 나는 백팩 안에 큼지막한 플라스틱 가방―이라기보단 주머니나 포대자루 비슷하게 생긴―과 늘 학교에 가지고 다녀야 했던 학교 마크가 새겨진 새까만 무명천 재질의 가방을 구겨 넣었다. 무게를 덜기 위해 떠나는 여정임에도 그토록 많은 가방이 필요한 것이 어쩐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서두를 필요가 없음에도 평소처럼 분주한 마음으로 무엇을 챙겨야 하나, 무엇을 빠뜨리지 않았을까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것 또한.

그러다 책장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연습장들에 시선이 갔다. 그것들은 내가 지난해 초부터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매일의 과정을 남겼던 기록들이었다. 장마다 온갖 스케치와 구상 아이디어, 잡지에서 잘라내 스크랩해둔 마네킹과 모델들의 콜라주 등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손가락과 손바닥 바깥이 까매지곤 했다. 나는 그것을 채우며 내가 이토록 노력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충족했고, 나도 다른 이들처럼 꿈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착각을 키워 갔고, 그런 연습장을 꽉 채우고 새 연습장을 꺼내어 쓸 때마다 나에게도 열정과 희망 같은 눈부신 단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단어들이 그늘 속에 웅크려있던 나를 깨우고 햇볕으로 이끌어주리라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어왔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것은 나에게 종교와도 같았고, 절박한 사랑이자 메마른 손에 내려진 아슬아슬한 동아줄 같게도 느껴졌었다.

비록 이제는 그 실낱과 줄기를 낱낱이 파헤치고 그 믿음에서 손을 놓아야 하겠지만.

어떤 대학을 갈 거야? 어떤 과를 갈 거야? 늘 그 두 가지 물음만이 공기처럼 부풀려진 채로 온 교실과 건물 곳곳을 가득 채우고 팽배해있는 듯했다. 고등학교도 내가 원하는 곳을 가지 못한 내가, 과연 대학교는 원하는 곳을 갈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나를 깊숙이 파고들고 다스리던 우울이 점점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어떤 꿈과 끈기도 손에 쥐지 못하게 만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그러다 내가 떠올린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미래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세요 하며 색색으로 예쁘게 칠했던 스케치북, 그리고 디자이너라는 꿈. 그래 나에게도 그런 게 있었지. 불쑥 떠오른 예전의 기억에 나는 충동적으로 꿈이란 허무하고도 눈부신 단어를 매달고 그에 걸맞은 상상을 피워나갔다.

그 이후 나는 의아하면서도 신기한 기분으로 패디과, 의상학과를 지망하리라 마음먹었고, 1년 동안 줄곧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전시회와 미술관을 다니며, 어떻게든 디자이너라는 이름에 나를 욱여넣기 위한 준비를 해왔더랬다. 입학사정관제니 수시 전형이니 온갖 복잡다단한 것들에 어떻게든 끼워 맞추기를 하는 것이 대학 입시고 수험생의 할 일이라고들 했다.

그렇게 어떻게든 끼워 맞추면, 정말로 내가 그 틀에 딱 들어맞아서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게 정말 나의 꿈인지, 나를 포함한 누구라도 만족시키기 위한 헛된 바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온 세상이 대학을 가지 않으면 인생이 실패한다고 외쳐대고 있었으니까. 그 외침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 흐름을 거스를 용기 따위를 갖지 못해서는, 모두가 가는 방향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 맞다고 믿었으니까.

결국 이 날이 와서야 나는 깨달은 것이다. 나는 선택할 용기는 없지만 포기할 용기도 없었던 것이라고.

연습장과 파일들이 가득 찬 책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곳도 돌아와서는 비워놓아야지. 깨끗이 비워놓아야지.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천천 가는 방향의 시내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 가서 육교를 건너고, 배차가 제멋대로인 빨간색 시외버스를 타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겨우 한 자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벌써 짐짝처럼 느껴지는 가방을 품에 안고 창가 자리에 앉아, 마스크를 반쯤 벗고선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았다. 늦은 봄의 찬 기운이 맑고 투명한 바람에 담겨 귓가의 잔머리를 관자놀이를 살랑살랑 간지럽히게 했다. 콧잔등에 난 땀을 마르게 한 뒤에야 다시 창문을 닫고, 나는 이어폰을 두 귀에 꽂은 뒤 음악을 들었다. 아주 시끄러운 음악을. 신나는 음악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무심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버리게, 그 순간의 나를 그 공간과 그 시간과 분리하여 마치 공중이나 우주의 한가운데 떠 있는 것처럼 가볍고 무취하게 느껴지게. 작년에 들었던 것이 아닌, 어떤 기억과 추억도 담기지 않은, 휘발성과 중독성 강한 음악만을 들었다. 이내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면서도. 그 음악보다도 더욱 시끄러운 속을 마음의 짐처럼 안고 있으면서도.

버스는 종착지에 도착하고 나는 눈곱도 다 떼지 못한 눈을 겨우 뜨고선 정류장에 내렸다. 정오를 향해 가는 시각임에도 득시글거리는 인파 속에서 파도에 휩쓸리듯 걸음을 옮겨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유독 번잡하고 어느 시간대나 유동 인구가 많기로 악명이 높은 역.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자리에 앉기는 바랄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왜인지 자리가 꼭 하나씩 있어서 앉아갈 수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이 하루가, 이 세상이 알기라도 하는 걸까. 내게 베풀어주는 마지막 배려라도 되는 걸까.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실금 같은 미소 하나는 지어주게 해주었더랬다.

지하철을 타고 여섯 정거장, 그리고 환승을 위해 일 키로쯤 걸어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서너 정거장을 가면, 집을 나선 지 어언 두 시간 사십 분만에 마지막 역에 도착한다. 물론 거기서 끝이 아니다. 3번 출구로 나와 십여 분을 걸어가야 한다. 한창 뜨고 있는 번화가를 지척에 두고 있는 그 길목을 다니는 이들은 꽤 극단적으로 모양새가 나뉘곤 한다. 한껏 꾸민 차림새로 명품이나 짝퉁을 두른 사람이나, 동네 마실 나온 양 편안한 차림새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사람. 나는 그 둘 중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 이였다. 전자이고 싶었지만 전자가 될 수 없었던 사람에 불과했다. 후자였다면 내게 이 마지막이 오는 순간을 늦출 수 있었을까.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그래봤자 아주 조금만 늦출 수 있었을 뿐일 터다. 문제는 거리도 아니고 공간도 시간도 아니었다.

딱 학교에 도착하면 집을 떠난 지 세 시간가량 지난 시각이다.

그렇게 나는 지난 두어 달을 매일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실지로 내 통학 시간을 들은 사람 중 열에 아홉은 경악을 금치 못하곤 했다. 대단하다는 말을 입바른 소리로 하고는 했다. 그때마다 나는 텅 빈 속에서 배어 나온 자조로 대꾸를 대신했다. 그래, 다 그렇게 사는 거겠지. 바쁘게, 정신없게, 늘 멀리를 바라보고 구차한 지금 따위는 외면하며.

다 그렇게 사는 것이, 내게만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지금 나는 다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마음처럼 떨리는 걸음으로 학교에 들어오고서도, 문을 열고 들어가질 못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었는지 학생들이 하나둘 복도를 분주한 먼지로 채우고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비상구 계단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익숙한 소음이, 십 이 년 전부터 익숙하게만 여겨왔던 그 소음의 향연이, 그토록 낯설게 느껴진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아니, 그즈음 매일 그렇게 느끼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처럼, 나 자신을 내가 발을 디딘 공간과 감각하고 있는 시간과 유리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을 뿐.

그 소음과 먼지와 공기가 하나의 덩어리처럼 데구르르 굴러가 어딘가로 사라진 것처럼, 사위가 조용해졌을 때에야 나는 비상구를 나왔다. 그리고 도둑걸음으로 발소리를, 내 존재의 소음을 죽이려 애쓰며 복도 맨 끝의 강의실 쪽으로 걸어갔다. 강의실로 들어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선 백팩에서 플라스틱 가방을 꺼냈다. 내 자리에 있는 물건과 잡동사니를 손에 잡히는 대로 쥐고선 두서없이 집어넣었다. 빚쟁이에게 쫓기듯 급한 마음으로 쓸어담았다. 나라는 사람의 온기도, 흔적도 없이,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복도에 자리한 사물함으로 가서 자물쇠를 열고 그 안에 새것처럼 빳빳한 표지와 비닐 그대로 놓여있는 전공서적들을 학교 마크가 프린트된 천 가방에 집어넣었다. 책들을 넣고, 온갖 도구와 장비들을 챙기고, 화구가방을 손에 들고 교수동으로 향했다.

정말로 그만두려는 거야?

아무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날 보는 모두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럼 그땐 왜 그렇게 들어오고 싶어 했는데?

그땐 왜 그렇게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는데?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마주하는 모든 이가 말하는 것처럼 들렸던 그 불신과 의심과 책망의 말들은, 사실은,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나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높다란 건물의 그늘을 벗어나자마자 정오의 햇살이 내게 쏟아졌다. 그처럼 맑은 날이 없었다. 그처럼 환하고 아름다운 날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도망쳐야만 했다. 아무도 내게 도망치라고 하지 않았지만, 도망쳐야만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 믿음 대로, 나는 다시 힘든 여정을 떠나야만 했다.

이제 올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어쩐지 지하철을 타기가 너무나도 싫어서, 나는 근처 정류장으로 가 시내버스를 탔다. 두 개의 커다란 가방과 화구박스를 들고 낑낑대며 버스를 탔다. 기사는 내가 짐을 옮기고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자리에 앉아선 또 한숨을 쉬었다. 버스 안은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한산했다.

버스는 금방 한강 위로 올랐다. 말 없는 병정처럼 줄 지어선 아파트 단지와 아이러니하게도 새것의 느낌이 풍기는, 갓 조성된 듯한 신록의 공원과 자전거 도로를 지나, 버스는 전철보다 느리게 차량보다는 조금 빠르게 대로를 지나고 있었다. 역광으로 비추는 햇살에 눈이 부셔 절로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 눈에 오롯이 담고 싶었더랬다. 모든 게 마지막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내게는. 그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지나갔다. 강물 위로 은은히 떠다니는 햇빛의 조각, 셀 수 없이 아름답고 눈부신 윤슬과 직접 가까이 다가가 맡아보지 않아도 다 느껴지는 듯한 그 강바람과 진한 물내음, 나는 적막을 참지 못해 늘 이어폰을 꽂은 채로도 아무 음악도 듣지 않은 채 멍하니 그 잔잔하고도 사실은 몹시도 분주하기만 할 정경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그 정경을 내 삶 속 하나의 뚜렷한 장면으로, 잊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다시 그 번잡한 역으로 가서 빨간색 버스를 타고, 천천에서 내려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그 지루한 시간이 어서 끝나고 집에 가기만을 나는 절실히 바랐다. 집에 가자마자 아무것도 하지 말고 침대에 누워야지. 쓰러져야지. 그리고 다시는, 다시는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야지. 아무것도 꿈꾸지 말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아무것도 선택하지 말아야지. 선택하지 않으면 이런 절망도 없을 테니까.

겨우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탔는데, 뒤늦게 정혈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짓가랑이 사이가 축축해서 손을 대어보니 피가 묻어났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누가 내 엉덩이에 피가 묻어나온 걸 보든지 말든지 싶었다. 어차피 다시는 마주치지도 않을 사람들인걸. 이 모두가. 나와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잠깐이라도 머물렀던 사람들 모두가. 그처럼 그곳에서, 내가 도망쳐나온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조차도 아무것도 아닌 걸 테지.

나는 무심히 생각을 흩어내버리고, 아파트 단지 앞 정류장에서 또 한 번 낑낑대며 짐을 하나씩 땅에 내려놓고 겨우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그 마지막 버스를 보내며, 나는 집으로 돌아갈 그 짧은 거리가 지나온 거리보다도 아득하고 버겁게 느껴지는 것을 한탄스럽게 여기며, 잠시 길가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게 다였다.

나의 마지막, 이자 처음.

그 후로도 나는 수없이 후회하며 선택 아닌 선택을 하고, 무참히 후회하며 포기를 하고 절망을 더하고, 나날이 익숙해져가는 우울을 끌어안으며 살았다.




그게 온전한 마지막이 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꽤 여러 번 했었지만 나는 매번 나 자신을 배반하듯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포기를 하고, 그러면서 매번 같고도 다른 이름의 감정들을 온몸으로 느끼고 체득하고 부딪치고는 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지나온 시간들이 다 버려진 것만 같았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태의연하게 쓰이는 말처럼 내게도 그 10년이란 시간이, 잃어버린 무언가처럼 여겨졌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고, 되찾을 수 없는 것. 그러하기에 더욱 안타깝고 슬프고 괴로운 것.

하지만 그 시간이 다 지나서야, 아니 어쩌면 아직은 다 지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나, 어찌하였든 그 길고도 덧없이 짧게 느껴지기도 하는 시간을 지나와서야 알게 된 것은 단 하나.

선택이 없다면 포기와 절망도 없겠지만,

지금의 나 또한 없으리라는 것.

이제야 깨달았기에, 이제야 그 시간과 공간과 감정들을 지나온 나 자신을 오롯이 받아들이기로 하였기에, 나는 다시 삶의 한 벽 앞에 서 있다.

그 벽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주 높다란 장벽이 되기도 하고, 오름처럼 야트막하여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는 허들이 되기도 한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며 끝없는 여정일 뿐이다.

아직 인생이라는 하나의 시계에서 한낮을 가리키고 있을 뿐인 지금 이 순간에서, 나는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어떤 그림으로 방황할지, 아직은 모르지만 분명히 믿어야 할 것은 오직 나 자신뿐임을 안다.

그 여정을 오롯이 느끼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여정의 유일한 여행자이자 동반자인 나 스스로뿐.

 

 



 


한낮의 방황, AND

잠잠할 날 없는 在들에 평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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