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언제나처럼 완벽한 정사 이후에, 채드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내 몸에서 빠져나와 침대에 드러누웠다. 눈을 감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걸치고 있는 채드의 모습이 정말, 미친 듯이 섹시했다. 나는 팔꿈치로 기어 올라가 채드의 가슴과 팔 사이에 자릴 잡고 머릴 기댔다. 땀으로 끈끈해진 채드의 체취가 정말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나는 그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듯 쓰다듬었다. 그는 그 멋진 손으로 내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 사랑해요, 채드.”

 

 

나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까 정사 중에 몇 번이고 소리친 것처럼, 그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그리고는, 그에 대한 답을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채드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저 내 이마에 입을 맞춰왔을 뿐이었다.

 

 

 

분명 채드가 시작했는데. 그가 먼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그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평소에도, 정사 중에도, 채드는 요즘 따라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하지 않았다. 그래, 가끔씩 정사 중에는, 그 말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들은 게 정확하다면... 그건 “I love it”이었다. 내가 그가 제일 좋아하는 체위를 할 때, 목 깊숙이 그의 성기를 품을 때 나왔던 그건.. 나 자체에게 건네는 사랑의 언어가 아니었다.

 

 

“...저, 채드.”

“Yes, babe?”

“요즘은.. 요즘은 채드가... 나를 사랑하는지 모르겠어요.”

“.... 왜?”

“음. 예전엔... 사랑한다고 많이 말했는데, 나한테. 요즘은.. 잘 안 하니까..”

 

 

얄팍한 수치심에 목소리가 저절로 잦아들었다. 아닐 거라고 믿으면서도, 사랑을 구걸하는 기분이 들어 기분이 처지기 시작했다. 그가 변했으면 어떡하지. 아니야, 그는 항상 나에게 다정한 걸.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직접 듣고 싶은 것 뿐인데..

 

 

“... 말하지 않아도 알잖아, babe.”

“알아요, 그런데, 그냥... 듣고 싶어서.”

“.... 좀 피곤한데. 나 샤워 먼저 할게.”

 

 

채드는 눈을 몇 번 껌벅이더니 몸을 일으켰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비틀어 내게서 멀어지는 채드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게.. 아닌데. 나는, 그냥...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 전처럼.

 

이따금씩, 채드가 굉장히 냉정해질 때가 있었다. 마치 나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듯이, 나 따위는 그의 인생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물론 다시금 다정한 채드로 돌아오지만, 그가 별안간 이렇게 내게서 등을 돌릴 때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불안감이 휘몰아쳐 와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고 만다..

 

 

“채드...”

“....”

 

 

샤워실로 향하려는 그의 팔을, 무작정 붙잡았다. 그는 보통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렇기에 작은 증거가 더 무섭다.. 마치 지금처럼, 미간을 아주 살짝 좁히며 정색할 때..

하지만 최근 쌓였던 서운한 마음이 봇물 터지듯 내 입에서 울먹임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걸, 내 스스로 말릴 수가 없었다.

 

 

“나는... 나 너무 힘들어요, 채드. 당신을 너무 사랑하는데. 다, 당신은... 내 꺼가 아니잖아. 당신이 우리 집에서 자고 갔으면 좋겠어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당신이 있었으면, 흑, 좋겠어요. 나 채드가 아침에 진한 블랙커피 꼭 마시는 거 알아요. 내가, 내가, 흐흑, 채드보다 일찍 일어나서 커피 사올게요. 가지 말아요, 채드, 오늘 밤에 나랑 있어요...”

 

 

당신을 사랑해, 너무 사랑해. 당신이 내 꺼였으면 좋겠어. 단 한 순간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 수업시간에도 식사할 때도 당신이 생각나. 채드의 목소리로 듣는 수업을 상상해,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채드가 좋아하는 메뉴를 같이 먹는 모습을 상상해, 채드가 멋진 미소를 띤 채 날 뚫어져라 봐주던 그 모습을 상상해, 내 손등에 입 맞추던, 우리가 나눈 첫 키스, 내 침대 위에서 나를 깨질 수 있는 물건 다루듯 소중하게 만져주던 우리의 첫 섹스, 그 모든 게 내 안에서 이렇게 생생해서, 나는 당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을 꽉 채워 보낼 수 있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의 반도 못했어요, 채드. 그런데... 대체 왜 당신의 눈빛이 이렇게 차가운지 모르겠어요.

 

 

채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여전히 미간을 아주 조금 좁힌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에 나도 모르게 수치심이 기어 올라와, 하지만 이것은 정사의 흔적이 남은 내 맨 몸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나의 인격이 수치심을 느끼는, 그런 눈빛을 채드가 날 향해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이불로 내 몸을 가렸다. 내 마음을, 이 비굴한 감정을 가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므로.

 

 

 

“난 우리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해. 너와 함께하기 위해 내 아내와의 결혼서약을 저버렸고, 데이트비용도 다 내가 내고, 네가 좋아할 것 같은 선물도 사고, 네가 좀 더 많이 연락하고 싶다고 해서 수업 사이사이마다 메시지를 보내고, 네가 해달라고 하는 건 난 다 하려고 노력해.

그런데 넌 내게 어떻게 하지? 나에게 너는 바라기만 하잖아. 이거 해줘요, 저거 해줘요... 마이클, 내가 너에게 언제 무언가를 원한 적 있었어? 단 하나, 그냥 내 옆에 있어주면 되는데.“
"...나...난 그냥.."
"..... 너는 다를 줄 알았어, 마이클. 너도... 똑같구나."


그의 뒷말은 차마 입밖으로는 나오지 못했지만, 들으나 마나 뻔한 말이었다.
내가... 그의 아내와 다를 바 없다는 말.
그를 항상 옭아매오고 집착하고 괴롭히는 그녀와 다를 바 없는 나.

아니야, 나는 달라요 채드, 당신도 내가 그런 그녀와 다르다고 했잖아요. 이런 감정, 이런 사랑은 처음이라고 했잖아요.
 

 

 

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채드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커다란 두 눈으로 날 내려다보는 그 모습이...

 

무언가가 잘못됐다. 그의 말은 분명 어폐가 있었다. 그가 내게 ‘해준다’고 한 것들.. 그것들은 그의 온전한 선택이었고, 그의 몫의 죗값이다. 그가 그것을 내게 자랑스레 훈장처럼 내보일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동시에..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다. 그래, 그는 나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다. 채드는 그저 나에게 ‘보고 싶다’고 연락하고 ‘사랑을 나누러’ 나를 찾아왔다. 그는 그저....

 

 

그러면 내가 대체 왜 이렇게 비참한 기분을 느끼는 거야? 내가 그에게 바라는 것들이 지나친 거야? 나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연인이라면 당연하잖아. 사랑한다면 당연한 거잖아.

그는 ‘너에게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는 나에게서 뭘 받기를 원하는 대신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도록 했다.

 

 

...그렇지만... 그를 놓칠 수 없어. 아니야, 안 돼, 그는 내 사랑이야.

 

 

그가 건넨 무지렁이 같은 말에 대한 나의 논리적인 반박은, 따뜻한 입김에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는 눈송이 하나처럼 내 머릿속에서 증발해버렸다. 날 지배하는 건 ‘그를 잃을 수 없어’라는 처절한 결심뿐이었다. 나는 그녀와 달라요, 채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내, 내가 잘못했어요, 채드. 그렇게 보지 말아요.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미안해요, 다신 안 그럴 게요.... 흐흑...”

“..... 먼저 씻을게.”

“.....”

 

 

그의 팔을 잡고 있던 내 손을 밀어 떨어뜨리고, 그는 방을 나가버렸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불안감과 창피함과 온갖 격정적인 감정들이 내 가슴에 말 그대로 통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숨 쉬는 게 점점 갑갑해질 정도로, 내 감정이 속에서부터 울컥울컥 치밀어 올라와, 나는 어린아이처럼 침대에 엎어져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를 사랑해.

그는 독이야.

그를 보낼 수 없어.

그는 네 것이 되지 않을 거야.

그와 함께 하고 싶어.

그는 네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거야.

 

 

“으흑....흐흑....윽...흑, 끅, 으흡.”

 

 

 

사랑해요, 사랑해요, 채드, 너무너무 사랑해요, 당신이 없으면 난 죽을 거 같아요.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아요. 나를 사랑한다고 대답해주세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실컷 울고, 정사의 피곤함이 덧붙여져 반쯤 까무룩 잠이 들었었나 보다. 어느새 샤워를 마치고 옷을 다 갖춰 입은 채드가 내 머리맡에 앉아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잔뜩 부은 눈을 간신히 떠 그를 바라보자, 그의 세상 다정한 눈빛이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설레기 시작하는 내 기분이,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미친 것 같았다.

 

 

“... 미안해.”

“.....”

“울지 마, babe. 너의 우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 네.”

“오늘은 들어가 볼게. 나중에 같이 아침식사 하자, 네가 원하는 대로.”

 

 

언제요? 언제 나와 함께 밤을 보낼 거예요?

다시 반지를 꼈네요. 아내에게 돌아가서 또 그녀에게 키스하고 그녀를 안을 거예요?

사랑한다고는 대답 안 해줄 거예요?

 

나를... 나를 사랑하기는 해요?

 

 

“.... 알겠어요.”

 

 

하지만, 나는 내 가슴 안에서 해방되고 싶다고 두방망이질치는 저 질문들 중 단 한 가지도 그에게 할 수 없었다. 그가 나를 떠나는 게 세상 무엇보다 두려워서, 나는 내가 참기로 했다.

 

그래, 사실은 그도 나를 사랑해. 그도 나와 함께 아침을 보내고 싶어해. 그렇지만 그의 아내 때문에, 현실이 이러니까, 그래, 납득할 수 있어. 이해할 수 있어. 그렇잖아, 마이클, 그가 지금 이렇게 다정하게 나를 바라봐주고 있잖아, 그러면 됐잖아. 그의 눈빛이 다시 냉정해지는 걸 나는 견딜 수 없잖아.

 

 

 

그는 내 이마에 진하게 입을 맞추고 미소를 띤 채 방을 걸어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향해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크! 야, 마이크!”

“어?”

“야, 몇 번을 불렀는데. 요즘 왜 이렇게 넋을 빼고 다녀. 괜찮아?”

“아.. 그냥 좀 피곤해서.”

“알바를 좀 줄여야 하는 거 아니야?”

 

 

멍하니 교정을 걸어가는데, 친하게 지냈던 동기 세 명이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 내 어깨를 툭 친다. 나를 건드리기 전까지는 난 이 녀석들이 내 이름을 불렀는지도 몰랐다. 내가 요즘 좀 피곤하긴 한가보다.

 

 

채드가 데이트비용 얘기를 한 이후로, 좀 쪽팔리기도 하고 해서, 야간 타임으로 짧게 일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늘렸다. 어떻게든 반이라도 내려는 내 발악이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채드는 완강하게 거절하며 ‘내가 한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아줘, babe’라고 대답했지만, 나는 그에게 개념 없는 어린애로 보이고 싶지 않아 부득불 우겨 한두 번쯤 겨우 반을 낸 적이 있었다. 그때 채드는 ‘정말 못 말린다니까’라는 식으로 피식 웃으며 자신의 실언에 대해 사과했다. 나는 그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우리 관계에서 나도 당당히 내 몫을 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괜찮아. 계속 할 건 아니고, 얼마 하다가 그만둘 거야.”

“농구라도 한 판 할래 하고 물어보고 싶은데 네가 너무 피곤해보여서 물어보지도 못하겠다. 같이 농구 한 게 언제야?”

“그니까. 지난 학기부터 왤케 자꾸 빠지냐.”

“미안, 나중에 하자.”

“... 너 연애한다고 하고 나서부터 많이 달라졌어.”

 

 

녀석들 중 하나가 짐짓 멈춰 서서 내 앞을 가로막고 선다. 그녀석의 입에서 ‘연애’라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내 몸이 굳는 기분이었다. 그 이유는 대충 두 가지로 짐작됐는데, 그와 관련된 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와 관련된 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내 기분이 추락하기 때문이었다.

 

 

“뭐가, 연애하느라 행복한데 왜.”

“그런데 왜 한 번도 안 보여주냐? 그렇게 행복하면 프사도 해놓고 sns에도 올리고 그래야지. 야, 이새끼였으면 벌써 겁나 올렸다.”
"아 뭐가 왜."

“....”

“.. 마이크, 물론 네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괜찮아. 그런데 그렇게 힘든 게 괜찮은 거야?”

 

 

다른 녀석들은 이게 뭔가... 싶어서 약간 갑분싸한 표정으로 그냥 눈알만 데록데록 굴리고 있고,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서있었다. 아냐, 니가 뭘 안다고 그래. 우리 괜찮아. 어떤 커플이든 힘든 과정도 거치고 서로 오해도 풀고 맞춰가고 그런 거 아니겠어.

 

 

“야, 됐거든. 내가 뭐 얘처럼 sns중독자인줄 아냐. 너 이것도 이따 올릴 거야? 오늘 동기놈이 농구 한 판 하자고 했는데 도망갔다, 연애하느라 바빠서 친구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본테는 그런 건 안 올려.”

“어이구... 네... 야, 어쨌든 나 가야 돼. 이러다 알바 늦겠다.”

“본테 말 아직 안 끝났는데!”

“나중에 술 한 잔 해, 그때 마저 잔소리 해라!!”

 

 

벙쪄있는 녀석들을 두고, 나는 교문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진짜로 늦을 것 같아서 그런 건 아니었고, 그냥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동기놈이 한 말이 사실은 내 맘을 아프게 찔렀다. 뾰족한 가시에 계속 찔리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서 그 자리를 떠나는 게 답이지.

 
 

...... 그러게, 그게 답인데.

 

 

 

 

 

 

 

 

 

“저거 진짜 큰일 난 거 아냐? 옛날엔 진짜 존나 인싸스타일이었는데 요즘은 쟤 어딨나 찾으려면 구석구석 뒤지고 다녀야 돼.”

“본테 생각엔.”

“응? 뭐?”

“..... 아니야. 가자.”

“뭐야, 여튼 너도 이상해.”

“본테 안 이상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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