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복잡한 것은 방을 보면 알 수 있다. 안 그래도 좁은 방이 발 디딜 틈 없이 어지럽다. 나름 치운다고 열심히 치운 것 같은데 소용없다. 하나둘 쌓이다 보면 책상 위도 노트북 하나를 겨우 올려놓을 만한 자리만 남는다. 의자 위에는 입었던 옷들이며, 들고 나갔던 가방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그나마 깨끗한 곳을 따지자면 싱크대다. 너저분한 집 안에서도 밥을 챙겨 먹기는 해야 하고, 벌레가 생기는 것은 참지 못하니 더럽혀지지 않는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침울한 기운이 가득한 방을 빠져나와 밖으로 나다녔다. 아침을 먹고 운동을 하러 갔다. 계획에 없었던 사이클을 한 시간이나 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볶음밥을 해 먹었다. 아주 완벽하게 망했다. 예전엔 요리 좀 한다고 자부했었는데, 하도 안 하다 보니 실력이 점점 줄었다. 다프트펑크 헬멧같이 생긴 빨간 밥솥 위엔 먼지가 뽀얗게 앉은 지 오래다. 그래도 아직 칼질은 좀 할 만하니 다행인가. 양파를 너무 많이 넣어 질척해진 볶음밥을 입으로 밀어 넣었다. 

설거지하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정말 하루를 돌아보니 집이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환승역, 딱 그 만큼이다. 월세를 조금 내는 것이 다행이다. 억울하지라도 않지.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 영화관도 오랜만이었다. 돌아보니 제일 마지막으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조커>다. 일기장에 2019년 10월 8일의 티켓이 떡하니 붙어있으니, 거의 일 년 만의 방문이다. 그마저도 늦게 도착해 앞의 5분 정도를 보지 못했다. 영화는 무척 좋았다. 숨죽여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밥을 먹으러 또 들어가려는 때, 친구가 근처에 있다고 연락이 왔다. 그녀는 주말인데도 아침부터 출근했다. 화창한 날씨는 우리를 전혀 배려해주지 않는다. 우울한 자 한 명과 주말 근무자 한 명이 만났다. 햇살은 무심히 눈부셨다. 그래도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하니 마음이 좀 나아졌다. 아무리 내향적인 인간에게도 무리 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톡톡히 느낀다. 샌드위치의 질긴 빵을 씹으며 반가움과 즐거움을 나누고 이내 헤어졌다. 다시 작은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자를 벗어두고 또 나갈 채비를 한다. 멀리 있는 가게에 선물 세트를 예약해두었다. 다음 주에는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 같아서 그냥 오늘 간다고 얘기해 둔 참이다.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갔다. 몇 년 전에 한두 번 방문했던 곳이라 길이 눈에 익었다. 많이 다녀갔던 것도 아닌데. 동네가 변하지 않는 건지, 아님 그때의 기억이 강렬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딱히 줄 사람도 없는 명절 선물 세트를 받아왔다. 친절한 사장님이 이것저것 설명해주셨다. 이건 이렇구요, 저건 저렇구요, 그래서 이 순서대로 하시면 되구요. 아, 혹시 저희 가게 오신 적 있으세요? 묻는 말엔 그냥 예전에 한 번 왔었다고 했다. 더 묻지 않아 다행이었다. 무거운 골판지 상자를 들고 걸어 나왔다. 손이 아파왔다.

아무 생각 없이 있는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심란함을 오감으로 느끼게 해주는 공간을 떠나서. 생각 없이 페달을 밟고, 스크린을 쳐다보고, 운전대를 잡았다. 많이 무언가 하긴 했는데 기억이 희미하다.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 것 같으니, 생각 없이 있는 것도 쉽지 않았나보다. 그래도 내일은 방 정리를 조금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예 새것처럼 깨끗하게는 못하더라도, 깔끔하게 정돈은 해둬야지. 같이 일했던 언니가 성공하려면 정리를 잘 해야 한다고 했었다. 성공하긴 글렀나. 마음부터 정리를 해야 하나. 내 마음이 이렇게 잘 드러나는 것인 줄 모르고 살았다.



꾸준히 읽고 열심히 살고 싶은 게으름뱅이

밍글 mingle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