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녁 식사 뒤 문자가 왔다.


‘부고’란 제목이 유독 크게 눈에 들어온다. 큰고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전화가 온다.


여동생이다.


용건은 하나다.


발인 전에 장례식장에 방문 가능한지 물어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장례식장이 멀다. 전라남도 순천.


하루 통째로 일정을 비워야 한다.


잠시 고민에 빠졌다.


조의금만 보낼지 아니면 갈지. 그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생전 과거 부모님 장례식에 애써 먼 걸음을 해 방문했던 고모부 내외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의 십여 년이나 지난 일이건만 어제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유독 고모부 말 한 마디가 떠올랐다.


“너무 슬퍼 하지 마라.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니.”


불의의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떠나 보내고 몇 주 뒤 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를 연이어 보냈다. 사고 수습과 장례식에 정신 없던 기억 중에 유독 저 한 마디는 남았다. 너무 서럽게 울던 내가 안쓰러웠나 보다, 고모부는.


2.

다음 날 장례식장.


생전 처음 보는 고종사촌들과 인사를 나눈다. 내 기억으로 그들을 본 기억이 없다.


애써 관계를 설명하는 내가 우스워진다. ‘어떻게 해야 잘 설명할까.’ 다행히 고종사촌 누님이 아버지를 기억한다. 그 뒤에 어색한 만남이 다소 누그러졌다. 여동생과 같이 방문한 게 안도감이 든다.


그렇지 않았다면 더 뻘쭘할 뻔 했다. 뭐라도 말을 해야 하는 자리일 것 같아서다. 그래도 여전히 어색한 기분은 마찬가지지만.


그저 고모와 아버지의 기억이 그들과 나를 이어줄 뿐이다.


서울에 올라가기 위해 열차에 오르며 잘 갔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은 기억은 오래 남는다. 내 기억 속 고모부의 말처럼 말이다.


솔직히 언제 그들을 다시 만날지 모르겠다. 혹시 만난다면 그 장소는 다른 친척의 장례식장일 거다. 그들을 이어줄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세상에 없다. 그런 까닭에 내게 친인척은 그저 이름에 불과했다. 성인이 된 이후 부모님의 부고 전까지 그들과 왕래하지 않았던 이유도 크다.


그런데 막상 관계를 이어가려니 힘만 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화제를 올려야 할지 모르겠다. 그들은 내게 그런 존재다.


그럼에도 내가 경조사에 방문하는 이유는 하나다.


3.

의무감.


부모님 가시는 길에 방문한 그들을 향한 답례다. 그저 사람 된 도리를 하자는 생각이 우선이다.


이런 생각에 누구는 너무 형식적인 거 아닌가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들의 가상 질문에 응답하자면 ‘맞다.’ 나는 부인하고 싶지 않다. 다만 굳이 토씨를 달자면 그런 인사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누군가 슬플 때는 말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바뀐 게 있다. 누군가 힘들 때, 그리고 슬플 때 말 한 마디, 한번의 만남조차도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기에 결혼식은 안 가도 장례식은 간다.


설령 그들과 관계를 애써 포장할지라도 말이다.


쓰고 싶은 것과 읽고 싶은 것 사이 어딘가에서 쓰는 글쓴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주제로 교양서 한 권을 썼다. 문의 cogitoy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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