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여주의 자취를 허락했다.


“진짜? 진짜? 자취 시켜줄 거야?”

“아빠 한 입으로 두말 안 한다. ”


오예 오예~


“보증금이랑 월세 정도는 아빠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데. 대신 용돈은 이제 너 혼자 벌어서 써야 한다.”

“아 당연하지!!! 내가 그거까지 빼먹으면 진짜 인간이 아니다.”

“안 그래도 여주,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 할 수 있냐고 연락 왔대~”

“정말?”

“미술에 재능이 있기는 한가 봐. 선생이 그렇게 직접 연락도 주고.”


아침일찍 식사하는 동안 부모님과 여주 사이에 오간 대화다. 사실 제게 특출난 재능이 있어서 연락해준 건 아닌 것 같지만 대충 부모님의 말씀에 동의하는 척하며 고갤 끄덕였다. 맞아. 그런가 봐. 동혁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화장실 문이 닫히고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 세면대에 물 트는 소리가 차례대로 들렸다. 어기적어기적 부엌에 나온 동혁이 퉁퉁 부은 얼굴로 뺨을 긁적이다가 하품하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동혁이 아침인사를 하자마자 엄마가 동혁 앞에 밥그릇을 올려두었다.


“오빠, 나 자취한다~”

“뭐래.”

“아빠가 나 자취시켜준대.”

“…얘 뭐라는 거야?”


동혁이 여주를 대놓고 무시하자 엄마가 방금 전 아빠와 여주가 나눴던 대화를 얘기해주었다. 동혁은 어이없어 하면서 숟가락을 들었다.


“아빠 요즘 집세 얼마 하는지 알고 해준다는 거야?”

“모르고 해준다고 했겠냐.”

“니네 학교 근처 시세를 모를 거 아냐. 아빠, 얘네 학교 근처 원룸 개 비싸. 그나마 좀 보안 괜찮고 살만하다 싶은 곳은 보증금 일이천에 월세만 백만원 이래. 차라리 이 집 팔고 얘 자취 시켜줄 비용 얹어서 신축으로 이사 가는 게 낫다.”


야. 너 뭐하냐? 여주가 손으로 툭 동혁의 허벅지를 건드려보지만 동혁은 굴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요즘 세상이 응? 얼마나 흉흉해? 아빤 이 금쪽같은 딸내미 밖에다 두고 키울 수 있어? 난 오빠로서 그게 절대 용납이 안 되는데. 여주 밖에서 지낸다고 생각하니깐 막, 물가에 애 내놓은 것처럼 불안하고 그래애~ 엄마도 공감하지.”

“그렇긴 해. 가족 사는 집에도 강도가 그렇게 드나드는데.”


얘는 왜 간호학과 간 거지. 정치인이나 하지. 여주는 단숨에 바뀌어버린 여론으로 심통이 났다. 진짜 너무해. 따지고 보면 자기가 먼저 자취시켜준다 해놓고. 왜 갑자기 방해 공작인데. 여주가 분노의 갈비 뜯기를 시전하자 동혁이 여주 쪽을 바라보며 눈썹을 위로 올리면서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아, 뭘 보냐고!!!!”

“니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두진 않을 거다.”









╭ ◜◝ ͡ ◜◝ ͡ ◜◝ ͡ ◜◝╮

    나한테

    왜 그러는데..

╰ ◟◞ ͜ ◟◞ ͜ ◟◞ ͜ ◟◞ ╯

 O

   °

곰순이가 과식하지 않는 법

멜러니






Chapter 77  의심하는 자세


아침 일찍 치과에 다녀온 제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거실 바닥에 앉아서 포털사이트 검색창을 켰다.


부정맥

심장이 뜀

이유없이 심장 뜀

빈맥 증상

빈맥 원인

감정없이 뽀뽀

사랑니 빈맥 연관


검색해봤지만 제노의 증상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다.


상대를 좋아하는지 확인하는 법


어쩌다 얻어 걸린 포스트 제목.


제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바로 클릭했다.




Chapter 78  어쩐지 믿음직스럽지 않은 패턴



안녕하세요~ 멜순이 예요~

요즘 날이 많이 따뜻해지고 있죠?

4월이면 벚꽃~ 벚꽃이면 사랑 ㅎ~



오늘은 제가 상대를 좋아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Chapter 78  좋아하는 지 확인하는 법

1.  만남을 기대하게 되는지 생각해 보세요. 가기 싫었던 학교와 직장 혹은 가지 않아도 되는 장소를 오직 그 사람을 위해 발걸음하게 되진 않나요?


그런 적 없는데.


“너 왜 또 왔냐?”


따지고보면 이 집에 찾아오는 건 이동혁을 만나기 위함이지 곰순이 때문은 아니라고. 


“게임하러.”


그렇게 말했지만 제노의 시선은 굳게 닫혀있는 여주의 방으로 향했다. 제노는 동혁의 방에 들어가면서 그냥 인사치레로 묻는 척 입을 열었다. 곰순이 방에 있어?


“엉. 점심으로 샌드위치 사준다고 해도 삐져서 안 나오네.”

“왜?”

“아빠가 자취 시켜준다 그랬는데 내가 초쳤거든.”

“자취? 갑자기?”


제노가 가방을 동혁의 방에 내려놓으면서 물었다.


“갑자기는 아니야. 계속 혼자 살고 싶어는 했어.”


안방은 부모님이 쓰시고 그다음 큰방은 동혁이, 여주가 가장 작은 방을 쓰고 있다.


개인 방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좁아서 뭘 하기가 애매하다. 집에서 혼자 그림 그리길 좋아하는 여주는 방에 미술 용품을 쌓아두다 보니 정리가 잘 안되었다. 동혁이 집을 나가면 벽장이 있는 동혁의 방이랑 바꾸려고 했더니 자취한다던 저 놈은 죽어도 집을 나가지 않고, 여주는 동혁이 자취 얘기를 꺼낸 순간 본인이 나가는 쪽이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갑자기 마음이 왜 변한 건지. 자취 얘기만 꺼내면 묵묵부답인 오빠의 반응에 여주가 먼저 아빠를 설득했다.


“좀 넓은데 전세로 구해서 여주 데리고 나갈까 생각 중이야.”

“…….”

“부모님한테 더 손 벌리기도 좀 그렇고. 여주 쟤 혼자 살게 하기엔 걱정되기도 하고. 애매한 원룸보단 좀 넓은 집에서 사는 게 낫잖아.”

“돈이 어디서 나서? 너 알바도 안 하잖아.”

“그동안 설날 추석에 어른들이 주신 돈 모아둔 것도 좀 있고. 요즘 전세대출도 알아보면 되게 많아서 돈 많이 없어도 구할 수 있어.”

“그러고 보니 너 요즘 계속 자퇴한다 만다 그러고. 수상하다, 꼭 돈이 어디서 계속 나오는 것처럼.”


로또라도 당첨된 거 아니야?


제노의 농담에 동혁이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야! 그랬으면 좋겠다. 진짜 1등 한번 당첨되면 소원이 없겠네.”


동혁이 너털한 미소를 지으며 제노의 등을 마구 때렸다. 이 남매는 버릇도 똑같아. 제노는 동혁에게 맞은 등을 만지작거리다가 열린 문 사이로 여주가 지나가는 걸 발견했다.


“어?”


여주가 다시 동혁의 방 앞으로 와서 들여다보는데도 제노는 일부러 여주를 발견하지 않은 척 컴퓨터 책상 의자에 앉았다.


“오늘 치과 간다더니.”

“갔다 왔나 보지. 지금 시간이 몇신데.”

“나 오빠 니한테 말 안 했는디요?”

“아직도 삐졌냐?”


동혁이 손을 여주의 머리 위에 올려놓고 꾹꾹 누르면서 거실로 나갔다. 제노는 남매의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 컴퓨터를 보면서 괜히 스페이스 바만 반복적으로 툭툭 눌렀다.



2. 카톡을 주고받을 때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마음이 들뜨지 않는지 확인해보세요.


오빠

나 카톡 다시 깔아서 대화 내용 싹 사라졌엉

서울건강치과 앞 10시였나??







존댓말뭐야



그냥

~~

방구 뿡

=3




“(빤히)…….”

“왜.”


민형의 시선에 제노가 멈칫하고 물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아니 얘좀 봐.”


제노가 여주와 나눴던 카톡을 민형에게 보여줬다.


“이게 왜.”

“웃기지 않아?”

“도대체 어느 부분이?”

“…….”

“…그런가?”


혹시 나만 웃긴 건가, 싶은 생각에 별안간 심란.



3. 나 아닌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언짢음을 느끼진 않는지 떠올려 봅시다.


“오빠, 오빠가 전에 프사 했던 사진 나한테 좀 줄 수 없어? 그거 보고 그리게.”

“직접 보고 그리면 안되는 거야? 언제든 애기토끼만의 모델이 돼줄 자신 있는데.”

“오~ 진짜 개소리. 그건 내가 싫음.”


“ㅋㅋ앙탈은💗”


여주와 재민의 대화를 듣던 제노는 속으로 생각했다.


좋~단다.


한참 엿보다 여주와 눈 마주치면 안 본 척 오리발 내밀기.



4. 어떤 물건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과 연관 짓고 있지 않은지?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같이 먹고 싶고, 그 사람에게 마침 필요했던 물건이 보이면 사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든지.


“제노야. 우리 피자 시킬 건데. 너도 먹을래?”


“곰순이도 피자 좋아하는데.”

“어?”

“엉?”

“곰순이가 누군데?”

“뭐가.”

“엥.”

“니가 곰순이를 어떻게 알아?”

“방금 니가 말했잖아.”

“내가?”

“???”

“???”



5. 대화하고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에게 몸이 기울진 않는 지요. 스킨십을 하게 됐을 때, 상대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되거나 계속 닿아있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체크해주세요.


턱지작... 턱지작...



6. 자기 전에 그 사람이 떠오르진 않나요? 생각만으로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마음이 들뜨지 않는지 생각해보세요.


최근 좀 그렇긴 했는데.



7. 그 사람이 혹시 귀엽다고 생각되진 않나요? 예쁘다 잘생겼다의 경우 그렇지 않은 면을 보면 환상이 깨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귀엽다’의 경우는 최강이에요. 뭘 해도 귀엽다고요. 귀엽다 앞에서는 모두 복종. 두말없이 항복!


귀엽?


잠시 과거를 회상해보자.


“오빠.. 나 진짜 못생겻어?”

“그렇다니까.”


그때 사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ㅋㅋ귀여워.’




Chapter 79  제노는 혼란스럽다.



네?!

7개 중에 5개 이상 해당된다고요?




콩~크레츄~레이션~

콩크레츄레이션~




축하합니다!

당신은 사랑에 빠지셨군요?





Chapter 80  말도 안 돼

긁적긁적.


이거 순 엉터리네.


내가 이여주를 좋아해? 제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럴 리가.




Chapter 81  금요일 밤에


“다녀왔습니다.”


재민의 집에서 놀고 온다던 여주가 밤늦게 귀가했다.


“딸 왔어?”

“어엉.”


마침 화장실 문이 열리고 동혁이 여주를 바라본다. 뭐냐. 지금 오냐? 여주는 손을 올려 동혁의 면전에 가운뎃손가락을 펴 보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기대했던 집에 놀러갔다 온 사람치곤 표정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목뒤에 걸쳐놓은 수건 끝을 두손으로 잡고 덩그러니 서 있던 동혁이 여주의 방에 따라 들어왔다.


“야.”

“왜.”

“무슨 일 있었어?”

“졸려서 그래.”

“아닌데? 내가 봐온 니라면. 이건 졸린 얼굴이 아니라 걍 기분 좆 같은 건데.”


여주는 동혁의 말에 난감해하더니 바깥을 내다보고 방문을 닫았다.


“오빠 이리 와봐.”

“왜?”

“있잖아.”


부모님이 듣지 못하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재민 오빠 왜 그래?”

“뭐가.”

“분명 우리 부모님한텐 되게 잘했잖아. 집에서도 잘 할 줄 알았는데, 완전 자기 낳아준 부모님한테 말도 막 하고. 나 솔직히 오늘 오빠한테 약간 실망했어.”


동혁은 쫑알쫑알 재민에게 실망했다고 말하는 여주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다른 부모들도 다 우리 부모님 같은 줄 아냐? 사정 모르면서 그렇게 막말하는 거 아니야.”

“아니 되게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어. 완전 천사 같으셨다니까?”

“까보기 전엔 모르는 거야.”

“오빤 알아?”

“난 걔랑 오랜 친구니까 알 수밖에 없지.”

“왜 그러는데?”

“나한테 말고 걔한테 직접 들어. 그런 얘기 함부로 하고 싶진 않아.”


여주는 동혁의 말에 고갤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오빠 집 참 좋더라. 화장실 가는데 길 잃을 뻔. 진심 도둑 들어도 모르겠더라.”

“부러워?”

“아니 그냥. 너무 다른 세계 같아서 엄두도 안 나는 느낌? 부럽진 않아.”

“어떻게 그걸 보고도 부럽지 않을 수가 있냐? 난 상대적 박탈감 느껴져서 걔네 집엔 잘 안 놀러 가게 되던데.”

“그니까. 집에 맛있는 것도 많고, 뭐 해달라고 하면 해주는 사람 다 있는데. 왜 오빠가 우리 집에 왜 놀러 올까 자꾸 생각하게 되더라.”

“외로워서 그래. 혼자 있으면 안되는 앤데. 집에 같이 얘기할 형제들 하나 없고.”


동혁은 수건 끝을 넓게 잡고 젖은 머리카락을 털면서 여주의 책상 의자에 앉았다.


“앉아봐.”

“어딜.”

“아무 데나.”


여주가 엉거주춤 침대에 걸쳐 앉자마자 동혁이 발로 의자 바퀴를 굴려 여주가 앉아있는 바로 앞에 멈추었다. 동혁은 고민하는 거 같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 같이 나갈래?”

“어딜?”

“분가하자고. 할머니 오시면.”

“아~~ 같이 살자고?”

“어.”

“싫은데?”

“왜.”

“싫으니까.”

“내가 납득할만한 세 가지 이유를 들어봐.”

“첫째, 오빠가 싫으니까. 둘째, 오빠 존나 보기 싫으니까. 셋째, 아주아주 꼴도 보기 싫으니까.”


이게 진짜. 동혁은 여주의 대답에 이를 악물었다가 풀고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됐다 됐어. 싫음 말어.


“아니 자취 시켜준 댔다가. 갑자기 나 자취하는 거 반대해놓고 이제 와서 왜 또 이런 얘길 꺼낸대?”

“애초에 너 혼자 자취시켜줄 생각 없었거든? 너 애매하게 원룸 이런데 살지 말고 좀 살만한데 전세 구해서 같이 나가자 이 말이었지 난.”

“근데 오빠네 학교랑 우리 학교 좀 멀지 않아?”

“나 자퇴했어.”

“에???”

“엄마랑 아빠한텐 비밀이다.”

“아, 어쩐지!!!!! 너 요즘 존나 한가해 보이더라. 자꾸 자취한다 지랄하고.”

“야 이씨. 좀 조용히 말해.”

“그래서 앞으로 뭐 하려고?”

“시험 다시 봐서 대학 다른 데 가려고.”


이게 미쳤네. 미쳤어. 여주는 한숨을 쉬면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야. 너 수능 친 지 얼마 안 된 머리잖아. 나 수학 좀 가르쳐줘.”

“일단 머리부터 밀자.”

“왜.”

“남자애들 고삼 때 다 머리 밀고 그러잖아. 내가 바리깡으로 밀어줄게.”

“그냥 니가 밀고 싶은 거 아님?”

“맞아.”




Chapter 82  카페로 자리 옮김


“그럼 지금까지 학교 다니는 척한 거야?”

“그렇지.”

“밖에서 뭐 하고 다녔냐.”

“카페도 오고. 혼자 노래방도 가고, 피시방 가고, 친구 집에 가서 좀 자고. 아, 애들한텐 아직 말 안 했다. 걔네가 실수로라도 말할까 봐 아직 못했어.”

“나한텐 뭘 믿고 말한 건데?”

“말 못할게 뻔해서.”


뭐래. 짱나면 확 꼰질러 버릴 건데. 여주가 떨떠름한 얼굴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말하자 동혁이 잔을 바꾸어주었다.


“그냥 티 주문하라니까. 굳이 굳이 그걸 시켜서.”

“여긴 아메리카노가 좀 진한 편이네.”

“다이어트 언제까지 할 거냐?”

“내가 말했지. 다이어트엔 끝이 없다고. 다이어트 끝나면 유지어터야.”

“솔직히 너 다이어트하니까 재미없어. 저녁에 야식도 안 먹고. 배고프면 걍 자버리잖아.”

“오빤 내가 뚱뚱할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동혁은 아무런 대답 없이 아메리카노 빨대를 뽑아 잔을 들고 마셨다.


“아무튼 다음 주 시간 언제언제 되는지 나한테 바로 보고해.”

“잠시만.”


핸드폰을 꺼내 에타 앱을 켜고 시간표를 확인했다.


“월요일은 촉박할 거 같고. 화요일에 10시 15분에 수업 끝나서 3시까진 시간 되거든? 그 중간에는 어때?”

“알았어.”

“아 근데!”


얘기 끝났음 이만 들어가자. 동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여주가 동혁을 붙잡았다. 왜. 동혁이 선 채 묻자 여주가 동혁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난 솔직히 오빠가 학교 근처에서 자취 시켜준다고 하면 너무 좋긴 하거든? 할머니 눈치도 안 보고, 더 빨리 통학할 수 있고.”

“응.”

“근데 오빠가 싫지 않을까?”

“내가? 왜?”


어리둥절.


“아니, 오빠 여자친구도 생기고 그러면 집에 데리고 오고 싶고 그럴 거 아니야.”


갑자기 저 부끄부끄 모드 뭔데. 동혁은 여주의 발언에 1차 당황했다가, 여주가 오른손 검지와 왼손 검지를 뗐다 붙였다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2차로 어이없어졌다. 동혁은 화를 참는 얼굴로 눈을 감고 고개를 천장을 향해 쳐들었다, 내리면서 입을 열었다.


“야!!!!”


“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이 쪼끄만 게 뭐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앉았어.”

“어엉….”

“그리고 너 그 손!! 손 그거 그만해. 짜증 나니까.”

“👉👈…이거?”


여주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려놓자 동혁이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오빠~ 고마워.”

“됐그든.”




Chapter 83  극대노한 곰순이를 풀어주는 법


돈까스 먹으러 가자고 했다고?

제노가?



엉!



난 좀 다르게 들었는데

어머님이 치과 데려가 달라고 했다고 너 데리고 치과 간댔어



?

진짜로?





아 뭐야

맞나봐;;


안그래도 오빠가 나한테

치과에서 만나자고 하긴 했거든?

돈까스 먹는척하면서 나 치과 데려가려고

했나봐

와나 진짜 어이없네

내가 뭔애도아니고..



괜히 말한 건 아니겠지?



ㄴㄴ

절대아님

잘 말했어

나 이제노오빠한테 따지려고





오빠장남?



나 둘짼데



오빠 장난?

오타임





나한테 왜 구라쳐

돈까스 먹으러 가자고 해놓고

나 치과 데려가려고 했잖아 지금



누가 말했어?



누가 말했어?

지금 그게 중요해 오빠는?



니네 어머님이 부탁하심



그럼 치과라고 솔직히 말할 것이지

어떻게 오늘 치팅데이인 나에게

아침부터 치과를 데려갈 생각을 해?

내가 얼마나 돈까스 먹고 싶어서 들떠있었는데



야 나도 너 치과 데려가기 귀찮아



됐어 나 삐졌어

삐졌으니까 말 걸지 마



자기가 먼저 말 걸어놓고



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무서운 사람이구나

내가 한번 오빠한테 실수한 것 갖다가 지금

몇번이나 날 멕이는 거야?

그러면 속이 좀 후련해? 개운해미치겠어? 응?



알았어



뭐가 알았는데

날 멕이고 있다는 걸 인정한 거야?

아니면 속이 후련하단 뜻이야?



오늘 못 간다고 취소할게 돈까스 먹으러 가자



그래



집에 동혁이 있어?



집에서 시켜먹자 재민오빠도 온대

오늘 아주 중대발표도 잇고



그래 늘 시킨데서 시킬게

애들한테도 물어 봐



피자돈까스1

등심2

사실 재민오빠한텐 귀찮아서 안 물어봤지만?

대충 아무거나 시키면 먹을 거야ㅋ



지금 갈게








Chapter 84  왜 때문에 너는 얼굴을 붉히고


피자 돈가스. 이여주가 시켰을 게 뻔한 메뉴다. 제노는 배달앱을 보다가 여주 메뉴에 돈가스 하나 더 추가해서 주문했다. 느리게 걸어서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할 때쯤 배달이 시작됐다.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방충망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왜 열어뒀어. 제노가 들어왔지만 집안이 고요했다. 문을 닫고 들어가자마자 제노는 거실로 향했다. 아무도 없나. 기웃거리면서 동혁의 방에 들어가 봤지만 방도 비어있다.


분명 다 집에 있다 그랬는데. 제노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굳게 닫힌 여주의 방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노는 거실 바닥에 외투와 가방을 내려놓고 여주의 방 앞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려다가 멈칫했다.


-“넌 내가 이런 말. 장난으로 할 사람처럼 보여?”


안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이 목소리는 분명 재민의 목소리다. 이후 정적이 이어졌다. 제노는 문을 두드리려다 말고 문고리를 잡았다.


-“저 근데.”


여주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제노가 문고리를 잡아 내렸다. 문을 밀자마자 재민과 여주의 시선이 동시에 제노에게 꽂혔다. 저도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침대에 걸쳐 앉아 있는 여주 앞에 무릎 꿇고 여주를 올려다보고 있는 재민을 보아하니 제노는 자신이 상상했던 그런 상황이었다고 확신하고 만다. 제노가 확신하게 만든 건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이었다. 난감한 얼굴을 하고서 재민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뒤늦게 제노의 시선을 의식하고서 재민의 손을 놓았다.


“아 왔어?”

“…….”

“나가자~ 나가.”

“둘이 뭔 얘기하고 있었던 거 아니야?”

“아니야. 그냥, 뭐, 손금 보고 있었어. 이동혁은 아직도 안 왔나? 오빠한테 전화나 해봐야겠다.”


여주는 빠르게 방에서 빠져나와 동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그 자리에 멈추어있던 제노와 재민도 말 없이 거실에 나왔다.


“오빠 어디야?”

-“엘베 앞. 왜? 뭐 필요한 거 더 있어?”

“뭐? 손이 부족하다고? 아니 오빠, 뭘 그렇게 많이 샀어.”

-“뭐래, 야. 나 엘베 앞이라고.”

“알았어. 지금 바로 내려갈게.”


여주는 빠르게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1층에서 부터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보면서 여주는 가슴 위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다가 한숨을 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뭐지?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나 지금 얼굴 빨개져 있는 거 아니야? 여주는 차갑게 식은 손등으로 뜨거운 뺨에 갖다 댔다. 엘리베이터 앞에 쪼그려 앉아있다 보니 동혁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내렸다.


“너 여기서 뭐 하냐?”

“오빠.”

“어 왜.”

“있어 봐.”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여주는 후드티 모자를 쓰고 끈을 잡아당겨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만들었다.


엘리베이터에서 계단으로 이어진 벽에 등을 기대고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차마 동혁과 절친한 재민에게 고백받았단 말은 못했다. 정말정말 오빠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지만, 모솔에겐 이런 고백도 자극으로 느껴져.


게다가 그 상황을 제노 오빠가 봐 버렸다니.


짜증 나.


개 짜증 나.


왜 그럴 때 나타나고 지랄이냐고.


“오빠.”

“왜.”

“오빠들한테 이제 진짜, 우리 집엔 오지 말라고 하자.”


후드티에 잡아먹힌 여주가 쪼그려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자 동혁이 조용히 그 옆에 앉았다.


하다못해 동생 마저도 사랑을.


“그래.”


복잡미묘해보이는 여주의 꼴에 동혁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물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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