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은 별로 안 했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냐"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김군은 아구구 앓는 소리를 내면서 짐을 내려놨어. 나갈 때만 해도 해가 중천이었는데 벌써 하늘엔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 다들 동감한다는 듯이 지쳐 쓰러지는데는 이유가 있었어.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 낮의 바닷가로 가보자면, 키스에 열중하느라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촬영하는 것도 신경을 못쓰는 우리 백섹도스, 아니 백도 커플과, 촬영에 열중한 김군과 민석이는 세훈이를 전혀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어. 졸지에 귀퉁이에 짐들과 함께 버려진 세훈이는 혹시나 형들을 잃어버릴까 싶어 여기 좀 보라며 흐느적흐느적 춤을 추고 있었지. 근데 바로 그 때.


"춤이 정말 마음에 드는군! 자네 연예인 해볼 생각 없나?"


갑자기 낯선 사람이 다가와서 말로만 듣던 길거리 캐스팅을 시도하는 걸 보고 세훈이는 생각했어. 수상한 사람이다!! 사기꾼이야!! 길거리 캐스팅이 잘 된다는 유명한 거리를 쏘다녀도 만난적 없는데 갑자기 낯선 동네에서 캐스팅이라니 말도 안 돼!! 세훈이는 무척 경계하다가 후다닥 도망을 쳤고, 앗 저런 거물을 놓칠 순 없어!! 하며 수상한 사람이 뒤를 쫓았고, 렌즈를 바꾸려다가 세훈이가 짐을 갖고 튄 바람에 뒤늦게 김군과 민석이가 또 그 뒤를 쫓아가면서 결국 다들 뿔뿔히 흩어져서 좀 고생을 했거든. 그 세사람 얘기는 잠시 미뤄두고, 둘만 남겨진 백도, 아니 백섹도스 커플을 보자면.


"야!! 저기 사람들 엄청 몰려 있는데?"
"뭐 촬영하는 거 아니야? 가보자!!"


어쩐지 소란스러워진 세훈이네쪽으로 사람들이 몰린 탓에 두 사람은 인중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어. 백현이는 조금 부끄러웠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키스를 해서 그렇다기 보단 질투 때문에 키스를 한 자신이 좀 유치하게 느껴졌지. 반면에 경수는 무척이나 뿌듯한 표정이었어. 누군가가 말을 시킨다면 당당하게 "이 알파가 내 알파다!! 변백현은 내 알파다!!" 외칠 수 있는 표정이었어. 수많은 사람들을 이기고 결국 백현이를 자신이 차지했다고 생각하는지 경수는 뿌듯한 표정으로 백현이를 껴안았어.


"어? 근데 다들 어디 갔지?"
"그게 뭐가 중요해~ 너와 내가 함께 있는 게 중요하지~"


백현이는 경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 다른 멤버들과 떨어져서 걱정이긴 해도 경수는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어. 그리고 어차피 셋이 함께 있다면 별 문제 없겠지 싶었어. 현재 사기꾼을 피해서 잘 숨었다고 스스로 뿌듯해 하는 세훈이와 세훈이를 찾아헤매는 사람들이 뿔뿔히 흩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야. 어쩐지 다들 전화를 받지 않아 백현이와 경수는 일단 해변가를 걸으면서 멤버들을 찾기로 했어. 말이 좋아 찾는 거지 한가롭게 데이트를 했다는 게 맞겠지. 파도 근처로 가서 걷다가 갑자기 크게 밀려오는 파도에 뒤로 물러나기도 하고 일부러 바닷물을 조금 뿌리기도 하고 서로 잡기 놀이도 했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본다면 이 둘이 얼마나 정욕적이고 집착적인 커플인지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건전한 데이트였어.

둘이서 꽤 놀았는데도 여전히 멤버들과 연락이 되지 않았어. 백현이와 경수는 숙소로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갔어. 혹시나 멤버들이 지나갈까 싶어서 밖에 있는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주문을 했어. 이 식당에서 추천하는 요리는 대부분 라면이었지만 아침도 라면을 먹었던 터라 백현이는 라면과 함께 볶음밥도 시켰어. 그 때 백현이 전화가 울렸고, 백현이는 잠시 받고 온겠다며 자리를 비웠어. 아무래도 여기에 오느라고 알바를 빠져서 그런 것 같았어. 경수는 이 달콤한 데이트를 즐기면서도 백현이에게 눈독들이는 사람들을 한번씩 노려봤어. 그러다가도 자신이 옆에 있으면 너무도 완벽한 커플이라 넘볼 생각을 못한단 생각이 들자 뿌듯해져서 키득키득 웃었지.


"우리 도자기는 왜 이렇게 신났을까요~?"


통화를 끝내고 돌아온 백현이는 옆에 있던 슈퍼에서 샀는지 수건으로 경수의 젖은 머리를 닦아줬어. 그 자상함이 젖은 모습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색기를 감추기 위한 것임을 모르고 경수는 그저 자상함이 좋아서 수건 밑에서 키득키득 웃으면서 음흉한 표정을 지었어. 다들 보아라. 이 알파가 내 알파다!!


"어, 잠깐 또 전화가..."


근데 내 알파인데 왜 자꾸 전화가 오는 거지. 내 알파인데!! 경수가 눈을 새침하게 뜨고 노려보는데도 백현이가 슬쩍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거야. 경수는 입을 삐죽이면서 백현이를 따라 일어섰어. 백현이가 왜 일어나냐는 듯이 쳐다보니 경수가 화장실 갈 거라고 하니 백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어. 뭐가 그리 비밀스런 이야기라고 자기가 없는데서 통화하려고 그러나 싶어 경수는 화장실 문만 꾹 찍고 자리로 돌아왔어.


"네네, 저도 사랑해요"


이런 썅. 급하게 전화를 끊기는 하는데 사랑해요는 뭐야. 썅썅. 경수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데 백현이는 오히려 금방 왔다며, 화장실에 사람이 많았냐 물어보며 경수를 다시 자리에 앉혔어. 누구냐. 누구한테 막 사랑한다고 하는 거냐. 우성알파면 다냐며 버럭버럭 화를 내기 시작하는 경수에게 백현이는 통화목록을 보여줬어. [어머니] 적혀 있는 글자에 경수가 급 조용해졌어. 하지만 당황한 표정을 감추고 도도하게 핸드폰을 다시 백현이에게로 돌려줬어.


"크흠. 나도 자주해. 부모님께 안부전화. 나도 지금 갑자기 부모님이 보고 싶어졌어"


경수가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모양새로 핸드폰을 뒤져서 부모님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어.


"파파. 사랑해요"


밑도 끝도 없이 본론부터 내뱉는 경수인데 상대방에겐 잘 전달이 안 된 모양이야.


"네? 새벽이라고요? 새벽이면 절 사랑하지 않나요?!! 크흠. 네 그래요. 저도 사랑해요."


뭔가 어색한 대화를 끝내고 경수가 히죽 웃었어.


"봤지? 부모님께 안부인사를 묻는 걸 보여주는 건 자연스러운 거야. 그치? 내가 막 널 의심한 게 아니구.. 어머니께 안부인사 잘 드리나 궁금해서 그런 거야.. 알지?"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면서 눈치를 보는 경수가 귀여워서 백현이눈 못말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경수의 뺨을 살짝 꼬집었어. 경수는 미안함에 배시시 웃었어. 그 때 마침 음식이 나왔어. 새끈하게 잘생긴 웨이터가 다가와서 음식을 내려놓기 시작했지. 근데 경수와 백현이를 힐끔 보더니 나중엔 왠지 백현이를 유심히 보는 거야. 노골적으로 보는데도 백현이는 젓가락을 챙기느라 별로 신경쓰지 못했단 말이야. 당연히 경수만 눈이 돌아갔지. 어디 우성 알파 좋은 건 알아가지고 지금 내 알파에게 눈독 들이는 거야?!! 울컥하기는 하는데 방금 괜히 의심했던 게 생각나서 백현이에게 말도 못하고 눈을 번뜩이며 웨이터를 노려봤지. 근데 식사가 시작됐는데도 힐끔힐끔 자기네 테이블을 쳐다보는 게 느껴져서 경수는 밥을 먹으면서도 표정으로 욕을 했지.


"자기야 그건 먹지 마세요"
"퉤"


해물라면을 시켰는데 웨이터를 노려보면서 먹느라 맛도 모른 채 다시마를 씹어 먹던 경수는 백현이의 말에 퉤 다시마를 뱉어냈어. 재수없게 라면에 다시마를?! 이런 너구리 같은 새끼. 오세훈 같은 새끼. 다시 웨이터를 노려봤지. 백현이는 경수가 라면만 먹어서 속이 상할까봐 볶음밥을 접시에 덜어줬거든. 근데 그걸 모르고 경수는 라면인줄 알고 계속 젓가락으로 밥을 퍼 먹었어. 의아해하던 백현이가 경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얼굴을 굳혔어.


"우리 도자기 지금 뭐하는 거야?"
"엉?"
"애인을 눈 앞에 두고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갖는 건 난 진짜 별론데"
"이,이건 그러니까..!!"
"자기야. 우성알파에 대해 찾아볼 때 정력말고 다른 정보는 없었어? 소유욕이 강하고 질투도 심하다는 내용은 안 나왔어?"


당황한 경수를 보고 백현이는 생긋 웃었어. 경수의 입가에 묻은 기름기를 티슈로 닦아주는 자상함까지 보여줬지만 왠지 목소리는 쭈뼛쭈뼛 소름이 돋았어.


"모든 우성알파가 그러진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래. 몰랐으면 이제부터 기억하면 되니까 앞으로 다른 남자 그만보세요 도자기 ♡"
"네..에"


백현이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맛있어 보이는 해물을 경수의 그릇에 가득 퍼주는데 경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별안간 몸을 바르르 떨엇어. 아 시발. 소오름. 뭔데 이렇게 멋있냐. 뭐긴 뭐야. 내 알파지!!! 두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우성알파의 소유욕에 불타오르는 경수였어. 하긴 집착이라면 경수도 뒤지지 않으니까.

아 별로 궁금하진 않겠지만 이쯤에서 다른 팀원들을 보자면,


"어휴 형들 못 만났으면 어쩔 뻔 했어요. 핸드폰이 바다에 빠질 게 뭐람"
"그러게 왜 바다에 들어가. 형이 발견 못 했으면 어쩔 뻔 했어"
"제 폰이 방수가 되는 줄 알았져. 이게 다 그 수상한 사기꾼 때문이에요"
"그나저나 큰일날 뻔했네. 수상한 사람을 만나서"
"제가 또 촉이 좋자나여"
"그래도 카메라 가방은 물에 안 젖어서 다행이다"
"아. 이게 렌즈 가방이구나. 뭔지 몰라서 일단 물에 젖지 않게 머리에 이고 있었는데..."


수상한 사람을 피해 카메라 가방을 머리에 이고 둥둥 바다를 걸어가던 세훈이를 민석이가 발견한 덕분에 극적으로 만난 세사람이었어. 뒤늦게 백섹도스 일행, 아니 백도 일행과 연락이 닿았지. 그쪽에서도 밥을 먹고 있다 하니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고 만나기로 하고 근처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었어.


"아.. 정말 좋은 인재였는데 아깝게 됐지. 뭐야"


그러다 통화를 하면서 떡볶이 집으로 들어오던 어떤 사람과 눈이 마주쳤고,


"어!!!"


그렇게 오후내내 저를 쫓아다니던 수상한 사람과 재회한 세훈이는 다시 그 수상한 사람을 피해 밖으로 튀었고, 그 사람은 이번엔 안 놓친다며 더 열심히 쫓았고,


"야!!! 렌즈 내놔!!!"


세훈이가 여전히 가방을 매고 있던 탓에 김군이 급하게 쫓아나가고.


"에휴, 난 모르겠다"


지쳐버린 맏형 민석이는 분식집에 남아서 떡볶이를 먹으면서 멀리서 추격전을 벌이는 세사람을 구경했다나.

그러다보니 팀원들이 다시 모이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어. 고생고생해서 숙소에서 도착하고 보니 벌써 별이 나오기 시작한 밤이 된 거야. 정작 사진은 별로 안 찍었지만 피곤한 하루였지. 사실 낮에 찍은 키스신만으로 교수님께 극찬을 들을 걸작이 나왔단 걸 모르는 김군은 하루를 이렇게 보내는 게 너무너무 아쉬웠어. 그래도 이미 해도 졌고 준비해온 음식들도 있는지라 나름 그럴듯하게 바베큐까지 구워 먹었어. 넷이서 실컷 배불리 먹고 민석이는 먼저 안에 들어가서 낮에 찍은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백현이와 김군이 뒷정리를 하는 동안 세훈이와 경수는 낮에 있었던 일들을 서로 얘기해주느라 바빴어.


"근데 그 사람이 진짜 에스엠이더라구요"
"에,에스엠?!"


세훈이 얘기에 시큰둥하던 경수가 별안간 놀란 표정을 지었어. 눈을 크게 뜨고 묻던 경수는 곧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어.


"요즘 아이돌 문화가 많이 선정적이라고는 들었지만 그런 회사가 있을 줄이야..."


아아. 그렇지만 그런 취향(?)의 사람들도 존중해줘야지.


"그래서 넌 어느쪽인데?"
"제 춤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는 것 보면 아마 아이돌쪽이겠죠?"
"아아. 그런 미역 같은 춤이 유통되는 건가..."
"만약 들어간다면 본격적으로 배우겠죠"
"오오 과연!"


김군과 백현이는 두 사람의 대화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왠지 끼어들기 싫어서 외면했어. 게다가 왠지 모르게 둘이서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기도 했고. 왜 세훈이랑 경수가 친해졌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형도 이런데 관심 있어요? 하긴 형도 외모는 반반하니까"
"에이, 난 별로 관심없어. 저래 보여도 우리 자기가 좀 하드한 편이기도 하고♡"
"도자기 쉿"
"쉿♡"


뭔가 엄청난 발언을 들은 것 같은데. 김군과 뻘쭘하게 쓰레기를 정리하는데 백현이가 더 빠른 손으로 정리를 마친 다음에 급하게 경수를 데리고 숙소 안으로 뛰어들어갔어. 경수는 영문도 모른 채 헤헤 웃으며 따라갔지.


"백현이형이 하드한 캐릭터였나봐여. 하긴 의외로 아이라인도 잘 어울리고. 역시 우성알파는 다르네요"


왠지 혼자 오해하고 있는 세훈이를 보면서 김군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어.


그리고 그날밤. 배려를 해준 건지 경수가 우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백현이는 경수와 같은 침실을 쓰게 됐어. 씻고 들어가보니 경수가 야릇한 조명까지 켜두고 침대에 누워서 옆자리를 팡팡 두드리고 있었어. 백현이가 이런 건 언제 챙겨왔냐며 매정하게 초를 다 꺼버리니까 경수는 침대에서 팡팡 뛰며 난리를 쳤어. 백현이는 어두운 방안을 밝히는 창가로 경수를 데려갔어. 처음엔 입을 삐죽이던 경수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에 감탄을 하면서 백현이에게 기댔어. 사실 정말 찍고 싶은 건 이런 거라며 백현이는 경수의 귓가에 속삭였지. 하지만 정작 백현이가 눈에 담는 건 밤하늘이 아니라 눈을 반짝이는 경수의 모습이었어.


"근데 자기야. 오늘은 진짜 그냥 자나요~?"
"응?"
"김군이 하늘과 바람과 바다면 모두 완벽하다고 했는데?"
"그건 다 헛소리야"


헛소리란 말에 경수가 오늘밤을 틀렸구나 싶어서 입을 삐죽 내밀었어.


"무드 있는 밤, 연인, 침대여야 완벽한 거지"


경수의 꺄륵 웃는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침대 위로 넘어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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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이에요 ♡

팀원들과 연락이 안 된 이유는 세훈이는 도망가느라 바쁘고, 김군과 민석이 폰은 가방에 있는데 그 가방을 세훈이가 갖고 튀어서 그렇습니다. 캬캬캬. 경수가 오해하는 에스엠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뜻이 맞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세이브 원고가 두편 정도 밖에 안 남았네요 ㅠㅅㅠ 크흐흑.. 혹시 보고 싶은 소재가 있다면 남겨주세요 ♡ 여러분들 모두 하트하트 ♥


+)오늘은 포타가 에러없이 얌전하네용 오잉 웬일이징 캬캬 >▽< 경수네 부모님은 두분 다 외국에 계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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