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사랑에 빠졌죠

나밖에 모르던 그 못된 내가

나보다 그댈 생각해요

        박지윤 - 난 사랑에 빠졌죠 』





사쿠사는 절망에 찬 표정으로 가방 안을 내려다보았다. 아침에 챙겼을 것이 분명한 우산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천천히 교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폭우는 아니지만 거세고 굵은 빗줄기가 어두컴컴한 하늘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는 재빠르게 핸드폰을 켜서 코모리 모토야의 이름을 찾다가 멈칫거렸다. 코모리가 집안에 일이 있어 점심시간에 조퇴를 한 것을 순간적으로 잊은 것이다.


“…그냥 져지를 덮어쓰고 갈까.”


마스크 속으로 중얼거리던 그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괜히 오늘 같은 날 우산도 없이 저 비를 맞고 간다면 틀림없이 몸살을 앓을 것이 뻔하다. 그것은 스스로가 용납 못 하는 일이었다.

가방을 어깨에 둘러 멘 사쿠사는 조금은 느린 걸음으로 교실을 나섰다.

1층에 도착하고 막상 내리는 비를 바라보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까운 정류장까지 만이라도 같이 우산을 쓰고 가자고 도움을 청할 같은 반 학우들을 찾던 그는 빗속에서 하나의 우산에 두세 명이 달라붙어 하교를 하는 학생들을 보았다. 그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아니. 저렇게 애매하게 쓸 바에는 그냥 비를 맞고 가는 것이 나으려나?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이 비 내리는 하늘만큼이나 어두워졌다. 그 때, 옆에서 그를 향한 것이 분명한 목소리가 건너왔다.


“우산 없으세요?”


사쿠사의 키가 큰 탓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밝은 머리색의 정수리. 그는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머리카락만큼이나 밝은 눈동자가 저를 올려다보고 있다. 대답 없이 멀뚱히 바라보자 멋쩍게 미소를 짓는다.


“아까부터 봤는데…. 우산이 없으신 것 같아서…. 빌려드릴까요?”


사쿠사는 남학생의 손에 들린 우산을 바라보았다. 접이식 우산은 그 크기가 작아 둘이서 쓰고 간다면 한 명은 고사하고 둘 다 흠뻑 젖을 것이다. 게다가 사쿠사는 키가 커서 그에게 맞춰 우산을 쓴다면 저 작은 남학생이 젖을 것이고. 이러나저러나 뭘 어떻게 하든 남학생이 비에 흠뻑 젖는 결말에 다다른다.







“아니. 괜찮….”


거절의 말을 내뱉으려던 사쿠사는 드물게 눈을 크게 뜨고는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그가 가방 안에서 또 다른 우산 하나를 꺼내 자신에게 건네는 것이 아닌가.


“저 사실, 우산 하나 더 있거든요. 가방에 우산이 있는데 동생이 하나 더 챙겨줘서. 하하.”


남학생이 우산을 든 손을 살짝 흔들며 재촉하자 사쿠사는 머뭇거리며 우산을 받아들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제 우산을 활짝 펼친 남학생이 빗속으로 걸어갔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사쿠사는 뒤늦게 받아든 우산을 펼쳐 달려갔다. 한달음에 남학생의 뒤로 다가간 그는 손을 뻗어 작은 어깨를 잡아 세웠다.


“잠깐, 네 이름….”


이름을 물어보기도 전, 남학생의 가슴께에 달린 명찰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히나타 쇼요.


하늘은 어두웠고, 굵은 비가 내리던 어느 여름.

사쿠사 키요오미가 한 학년 어린 후배에게 사랑에 빠진 날.




어흑.. 자기 싫어...

사람은 왜 자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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