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고죠가 눈을 뜨고 일어나니 눈앞에 보인 남자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상한 앞머리. 처음 든 생각은 그거였다. 두 번째는 손에 닿는 온기.

 

 

01.

 

고죠 사토루. 중앙 관리국 소속 센티넬. 등급 불명.

등급이 불명인 이유는 SS급이라는 힘으로도 모자랄 정도로 압도적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죠의 능력은 중력이었다. 단순해보이지만 중력을 통해 가상의 질량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적이 나타나면 그 질량을 개미만도 못하게 만들어 삭제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혹은 그 반대로 만들어 폭발시켜버리던지.

 

그러나 고죠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그에게 맞는 가이드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의 능력은 강력한 만큼 가성비가 좋지 않았다. 고죠는 차출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센터 내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능력을 한 번 쓰면 며칠을 내리 기절했다. A급부터 S급까지 온갖 가이드가 와서 그를 만졌지만 구역질을 할 뿐 차도는 없었다. 다행이라면 가이드가 없어도 그는 자체적으로 안정화를 할 줄 알았다는 점이지만 상층부에게는 골칫거리였다. 고죠가 만약 폭주라도 할 경우, 그들은 군내에 가장 강력한 무기를 잃게 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국장은 자신의 아끼는 아들을 잃게 되는 것이고.

 

고죠가 차출되는 경우는 드물었으나 이번 새로 등장한 게이트 때문에 정부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번 도쿄지부 C섹터의 게이트에서 나온 크리쳐들에게 이미 S급 3명을 잃었으므로 고죠의 출동이 불가피했다. 고죠는 여유 롭게 세 마리를 연달아 없애는 와중 곤충형 크리쳐가 뿜어낸 독안개에 잠깐 틈을 보였다. 숨을 멈추고 바로 태세를 정비했지만 촉수 하나가 다리를 잡아 끌었고 말벌 형태의 크리쳐가 독침을 고죠의 배에 찍으려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귀찮아진 고죠는 자신의 질량을 가볍게 해 빠져나감과 동시에 크리쳐들의 중력을 최대로 써 곤죽으로 만들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금이 갔다. 이런.

 

“고죠, 괜찮아?”

“말 시키지 마. 머리 울려.”

 

대위의 말에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이 게이트의 문제점은 크리쳐들의 연계 공격이었다. 지금까지 나온 크리쳐들은 각개 전투밖에 하지 못하는 지능이었는데 이들은 협동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앞으로 나오는 게이트에서 계속 이런 놈들이 나온다면 골치 아팠다. 가능한 여기는 다 조지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고죠는 기왕 금이 간 바닥과 건물 잔해들을 크리쳐들의 시체와 함께 뭉쳤다. 그 어마무시한 인력의 힘에서 가상의 질량이 태어나 게이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바닥이 흔들렸다. 고죠, 너 무슨 생각을-. 짜증나서 이어폰을 빼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소음이 시끄러웠다. 고죠는 구球체로 게이트를 박살냈다. 크리쳐들의 비명을 마지막으로 고죠의 의식이 끊겼다.

 

 

 

처음 느끼는 평온함이었다. 열이 날뛰고 구역질과 감정기복이 오르내리던 몸을 누가 잡아 고정한 것처럼, 이상하게 강제적이면서도 안정적인 느낌. 그러나 위화감이 함께하는. 고죠는 눈을 깜박였다. 앞머리가 이상한 남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안녕. 앞으로 네 가이드를 맡게 될 게토 스구루라고 해.”

 

그냥 스구루라고 불러주면 돼. 그렇게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고죠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이게 가이딩이라고? 가이딩은 좀 더 불쾌한… 고죠가 손을 빼자 게토는 순순히 손을 놓아주었다.

 

“가이드라고?”

“응. 범용 가이드야. 앞으로도 사토루가 힘들 때, 내가 올 거야.”

 

흑발에 앞머리 가닥을 옆으로 빼고, 머리 위에 둥글게 경단 머리를 했다. 남자치고 얇은 눈썹에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 음흉한 듯 애매하게 올라간 입꼬리. 유창하고 첫만남부터 주저가 없는 말투. 고죠는 게토를 위 아래로 훑어보고 결론을 내렸다. 사기꾼.

 

“그렇게 쳐다보면 부끄러운데.”

“난 가이드 필요 없어.”

“알아. 말했잖아. 난 범용 가이드라고. 그냥 가끔 이렇게 날 써주면 돼.”

 

그 말투에 고죠가 어깨를 움찔했다. 여기서는 모두가 자산이다. 고죠도 그걸 인지하고 있었다. 인류 최강이라고 떠받들어지고 있지만 결국 군부 내 가장 비싼 자산이라는 것밖에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게토의 말투는 너무 스스로를 물화物化하는 말투였다. 거부감이 드는 것은 사람으로서 응당 드는 감정일 것이다.

 

“접촉을 싫어한다고 하던데 나는 최소한으로 가능하거든.”

 

게토가 천천히 손을 들어 고죠의 팔을 만졌다. 게토가 닿은 곳에 닭살이 옅게 돋았다. 하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전부 실패했던 가이딩의 느낌이 아니었다. 자신의 속을 함부로 휘젓는 느낌이 아니라 천천히 갈증이 채워지는 듯한 느낌의. 그 감각이 좋아서 고죠도 이번에는 팔을 빼지 않았다. 가이딩이 이런 거라면 괜찮을지도…

 

고죠의 얌전한 모습에 게토는 히죽 웃더니 손을 천천히 움직여 허벅지 안쪽으로 옮겼다. 고죠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야!”

“아니, 난 최소한으로도 가능하지만 사토루가 원하면 그 이상도…”

“손 떼. 그리고 이름도 함부로 부르지 마.”

“무서워라.”

 

게토가 과장되게 손을 뺐다. 고죠는 저 실실 웃는 얼굴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죽여버리기 전에 꺼져. 고죠의 위협에도 게토는 아랑곳 않고 말했다. 나 시간제라서 아직 20분 더 채워야 돼. 고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게토를 등져 돌았다. 게토가 손가락으로 고죠의 등을 훑는 바람에 다시 소리를 지르고 말았지만.

 

 

02.

 

자신이 쓰러질 때만 게토를 볼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게토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고죠의 방으로 들어왔다.

 

“너 분명 범용 가이드라고 하지 않았나?”

“응. 보통 사토루처럼 가이드가 없는 애들한테 내가 차출되지.”

“그럼 난 가이딩이 필요 없는데 왜 계속 오는 거야? 그 가이드가 없어서 힘든 애들한테 가는 게 맞지 않아?”

“내가 또 그 정도로 급이 낮지는 않아서.”

 

헤실거리는 얼굴은 왜 이렇게 짜증나는지 몰랐다. 너 내가 누군지 몰라? 위협적으로 고죠가 말했다. 게토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알지. 인류 최강이랑 도련님 중에 어느 쪽으로 불러줬으면 좋겠어?”

 

그의 출신을 비꼬는 말이었다. 고죠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보아하니 목숨이 아까운 것 같지도 않았다. 애초에 상대는 자신을 놀릴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정기적인 가이딩은 몸에 좋아. 나는 사토루 때문에 여기 오는 건데 고맙다고 하진 못할망정.”

 

게토는 어느 새 고죠의 위에 올라타 목을 끌어안았다. 기분 좋지 않아? 게토가 고죠의 귀에 속삭였다. 밀어내고 싶었지만 고죠도 그냥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기분이 좋았다. 자신의 안에 끊임없이 치던 파도가 안정되는 감각. 생기가 고죠의 몸에 들어와 자신이 있는지도 몰랐던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 끊임없이 귀를 간지럽혔던 두통과 이명이 사라지고 고요해졌다. 몰랐던 때로는 돌아가기는 힘들었다. 자신이 알던 가이딩은 더 야만적이고 불쾌했는데 게토와의 가이딩은 그렇지 않았다. 생판 남과의 접촉이 역겹지 않고 오히려 기분이 좋다니, 이상했다. 접촉해야지만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센티넬과 가이드라는 존재가 역겹다고 생각했던 가치관이 흔들리면서 묘한 배덕감도 함께 했다.

 

“사토루가 원하면 더 해도 되는데.”

“까분다.”

“기분 좋을걸…”

 

정적이 계속되자 게토가 장난쳤다. 부러 뜨거운 숨을 귀에 뱉었다. 이 파렴치한 가이드는 자신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딴 식으로 구는 거겠지. 어떻게 보면 이런 여기저기 아양을 떠는 성격이 가이드에 맞는 걸지도 모른다. 타인과 아무렇지도 않게 접촉하고, 타인과 스스럼없이 지내고.

 

고죠는 몸이 평온해지는 것과 별개로 조금 빠르게 뛰는 심장 박동을 애써 가라앉혔다. 시간 다 된 거 아니야? 고죠가 게토의 어깨를 밀어내며 말하자 그는 눈을 휘게 접으면서 답했다. 사토루한테는 무제한이야.

 

 

03.

 

“잘 지냈어?”

“대체 왜 잘 지내냐는 말은 왜 하는 거야? 잘 못 지낸다고 대답하든 잘 지낸다고 대답하든 생산성 있는 대화가 나오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그리고 우리 어제도 봤잖아. 그 사이에 잘 지냈거나 못 지냈거나 무슨 변화가 있었으면 그게 더 문제 있는 거 아니야?”

“나도 반가워, 사토루. 내가 저번에 만나자마자 벗은 것 때문에 그러나 본데 오늘은 진짜 아무 것도 안할게.”

“……”

“근데 그렇게 반응해주면 솔직히 역효과ㅡ…”

“아무 것도 안한다며!!!”

 

 

04.

 

“오늘은 게임기 들고 왔는데 네가 없더라.”

 

게토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방에 누워있었다. 고죠는 눈알을 굴렸다. 국장, 즉 그의 친아버지에게 다녀왔다. 게토와의 가이딩은 어떠냐는 말에 나쁘지 않다고 대답했다.

 

“네 전속으로 붙이기로 했다. 마음껏 쓰렴.”

 

마음껏 쓰다는 표현을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어차피 그의 친아버지는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무신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식탁 위의 차려진 식사는 모두 전용 셰프가 메뉴마다 차려준 것이었지만 고죠의 입안에서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와서 게토를 붙여준 이유를 물어보려 하다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음식과 함께 삼켰다. 유쾌한 만남은 아니었다.

 

“바깥에서도 충분히 죽이고 있는데 굳이 가상현실에서까지 크리쳐를 죽어야 돼?”

“에이, 그래도 여기서는 안 죽잖아.”

 

게토가 억지로 고죠에게 고글을 씌워 게임을 가동했다. 뇌와 연동해서 바로 가상체험을 인식시켜주었다. 전투 시뮬레이션 기계가 가정 내 게임용으로 만들어진 장치였다. 당연히 센티넬인 고죠에게는 익숙했다.

 

게토도 금방 접속해서 고죠 앞에 나타났다. 이게 무슨 게임이야? 고죠가 입을 열었는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완전히 신체 감각까지 재현했나보군. 죽여야 할 몬스터도 탐색해야 할 던전도 대련해야할 캐릭터도 없이 단순히 달 위에 서있을 뿐이었다. 가벼운 산소호흡기만 코와 입에 달라 붙어있었다. 게토는 고죠의 손을 잡았다. 가상현실인데도 가이딩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게토가 앞서 걸었고 고죠는 그 손을 잡고 천천히 뒤를 따랐다. 지구보다 6배 작은 달의 중력. 가정용 게임기로도 능력의 재현이 되나? 고죠가 능력을 쓰려고 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 게토가 귀신같이 뒤를 돌아 고개를 저었다. 고죠는 말없이 게토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말없이 계속 걸었다. 대체 무슨 용도로 만든 게임이야? 달도 못 가는 거지들의 대리만족용 게임인가? 의문은 끝없는 산책과 함께 점점 고죠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게토는 잠시 멈추고 지구를 향해 손가락질 했다. 그 때 머리끈이 풀려 게토의 중단발이 둥실 떠올랐다. 게토가 입을 뻐끔 거렸다. 그 모습이 꼭 금붕어 같았다. 지구가 파란 어항으로 보여서 그럴지도.

 

“아까 무슨 말 한 거야?”

 

게토가 떠나기 전 고죠가 물었다. 게토는 의뭉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맞춰봐.

 

 

05.

 

고죠는 다시 임무를 받았다. 이번엔 감시 업무였다. 저번에 막은 도쿄지구 C구역 게이트에서 아직 남아있는 크리쳐나 이상 상황을 확인하는 임무였다. 굳이 고죠까지 갈 필요는 없지만 저번 감시 업무를 보낸 수색대 팀 중 B급 센티넬 2명이 실종되었기 때문에 보험용으로 고죠가 함께 했다. 최근 군부는 인력난이 심했다. 고죠는 위급상황이 발생할 때까지 주위 이동용 상황실 안에서 모니터로 관찰했다.

 

사실 이번 임무는 고죠도 꽤 억지를 부려서 따라왔다. 게토의 가이딩을 받은 이후로 몸 상태가 계속 상향치를 찍고 있었다. 에너지가 가득한 몸이 간질간질하니 능력을 아무런 부담 없이 쓰고 싶었다.

 

감시실 모니터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으나 잠시 통신이상인지 모니터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알파, 응답하라. 알파. 이번 수색대 팀장이 몇 번 통신기를 통해 선두팀을 향해 외쳤다. 돌아오는 소리는 지직거리는 기계음 밖에 없었다. 선두팀은 염력계 A급 센티넬 하나 나머지는 전부 일반 군인 5명이었다. 팀장은 고죠를 향해 눈짓했고 고죠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깥으로 나갔다.

 

공중을 천천히 걸었다. 파괴된 도시는 나노 슬라임으로 재건축이 한창이었다. 게이트가 있던 위치에 잔해를 치우자 사람 몇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다. 수색대는 이곳으로 들어갔다. 고죠는 몸 전체에 척력을 둘렀다.

 

별 이상은 없었다. 걸으면서 생명체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 20미터 전방에서 사람의 기척을 감지했다. 수색대였다. 역시 단순히 통신장비의 오류였던 것 같았다. 합류할지 돌아갈지 고민하며 고죠는 귀에 주의를 기울였다. 청력의 감도를 올리자 대화소리가 조금씩 들렸다.

 

-고죠한테 게토가 붙었다는 말, 들었어?

-그러게. 국장의 지시겠지.

-그 사신이 붙었다는 건 고죠도 이제 끝이라는 말 아니야?

-그 소문 진짜였어?

 

대화의 주제에 고죠는 숨을 죽였다. 어차피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일반인은 눈치 채지 못할 거리였다.

 

-죽기 직전 센티넬한테만 배정된다던데.

-그건 좀 과장이고. 오락가락하는 센티넬한테 마지막으로 걔라도 붙여주는 거지 뭐. 지푸라기 잡듯이.

-그게 그거 아니야? 어쨌든 그럼 고죠도 위험한 가보네.

-모르지. 왜 이 게이트. 고죠 작품이잖아. 이 지랄을 떨어놓고 한 달 째 눈을 못 떴으니 대책회의도 몇 번씩 열리고…게토까지 독점 시켰다면 국장이 그래도 아들이라고 죽게 하긴 싫은 게 아니겠어?

-그 자식이 괴물이긴 해.

 

고죠는 마른 침을 삼켰다. 청력의 감도를 다시 낮췄다. 놀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였다. 지위에 비해 고죠에게 들어오는 정보는 현저히 적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이라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런 소문 같은 것에는 더욱 무지했다. 그러나 방금의 대화에서 고죠가 캐치한 사실이 있었다.

 

고죠는 모른 척 수색대와 합류하고 그들과 함께 게이트 바깥으로 나갔다. 아무 이상 없음. 고죠는 가볍게 말했다. 실종된 대원들에 대해서는 수색대를 더 보내기보다 탈영했을 가능성에 더 초점을 두게 되었다. 고죠는 복귀하는 내내 콘크리트 잔해를 잘게 분해했다가 뭉치면서 생각에 잠겼다.

 

 

06.

 

“임무 갔다 왔다며. 어땠어? 별 일 없었어?”

 

자신의 방에 당연하단 듯이 있는 게토에도 익숙해졌다. '익숙해졌다.'라니. 참 사치스러웠다. 고죠는 유전자 조합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유전자 정보로만 존재했고 아버지는 늘 가장 아끼는 아들이라고 말했지만 어떻게 하면 고죠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복제해서 대량 생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했다. 자신에게 달라붙은 여러 가이드들은 자신을 만지다가 본인들이 오히려 폭주해서 비명을 지르며 떠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뭐 똑같이 괴물이라고 불렀고.

 

그렇다고 고죠가 이 상황에 불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생활은 모자라지 않았고 애정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며 받은 적이 없으니 아쉽지도 않았다. 인공으로 태어난 만큼 감정의 어딘가가 빈 채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제 팔짱을 껴오는 게토의 온기는 따뜻했다. 자신이 겨우 이런 것에 목말라 있었다고? 깨닫는 과정은 조금 비참하기는 했다. 게토에게 자신은 여러 센티넬 중 하나에 불과한데도…

 

아무 대답 없는 고죠에 게토가 고개를 기울여 눈을 맞춰왔다. 고죠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게토는 익숙하다는 듯 고죠의 입맞춤을 받았다. 서툰 동작이었다. 누가 봐도 처음 하는 행위. 게토는 천천히 입을 벌려 고죠가 자신의 입안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다. 따뜻하고 말캉한 살이 들어와 부드럽게 쓸었다. 점막과 점막의 접촉이 생각보다 더 기분이 좋아서 고죠는 조금 더 급해졌다. 게토의 앞머리가 뺨에 닿아 간질거렸다. 숨 쉬는 타이밍을 몰랐지만 고죠는 오래 숨을 참을 수가 있었다. 고죠는 자신도 모르게 게토를 인력으로 끌어당겼다. 숨이 모자라 얼굴이 빨개진 게토가 고죠의 어깨를 두드리고 나서야 길고 어지러운 키스가 끝났다.

 

숨을 고르는 게토를 보며 고죠가 입을 열었다. 왜 거짓말했어?

 

“너 가이드 아니잖아.”

 

게토는 그 말에 평소처럼 웃을 뿐이었다. 들켰네. 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07.

 

게토 스구루. 중앙 관리국 소속 센티넬. 등급 S.

게토의 능력은 센티넬 능력의 강화와 안정화였다. 능력이 각성되자마자 군에 팔려왔다. 자신의 몸값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앞으로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들이 돈 걱정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보장과 안심은 그가 충성을 바치기 충분했다. 처음에는 C 등급을 받아 도쿄지부 E섹터의 보건소에서 일했다. 게토는 효율이 우수했다. 여러 센티넬들을 대량으로 안정화 시킬 수가 있었다. 가이드를 일일이 배치하는 것보다 가성비가 좋았다. 센티넬 능력이었으므로 가이드처럼 스킨십도 불필요했다. 그의 능력이 점점 강화되고 인정받음에 따라 S급이 되었을 때는 중앙부에 소속 되어 있었고 ‘가이드’가 되었다.

 

그가 센티넬이라는 것은 소수만 알았다. 센티넬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상부에서 게토의 능력을 독점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사적으로 명함도 꽤 받았다. 나중에 은퇴하면 전용이 되어달라는 말이었다. 표면적으로 게토는 최소한의 접촉만으로 가이딩이 가능한 범용 가이드였다.

 

1년 전 그 날도 똑같이 게토는 부대 전체의 안정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게토의 능력으로 최소 300명 최대 1,000명까지 동시에 가능했다. 의례상 남들 눈을 속이기 위해 가볍게 사람들의 어깨를 터치했고 모두의 안정화를 마쳤다. 그리고 코와 입에서 피가 쏟아져 쓰러졌다.

 

“체내 에너지가 고갈 됐어.”

 

군의관인 쇼코가 말했다. 게토와 거의 같은 시기 중앙부에 들어온 그녀는 거의 동기 같은 존재였다.

 

“그게 무슨 뜻이야?”

“어느 인간이 무한정 생체 에너지를 남들에게 나눠주고도 멀쩡할 거라고 생각해?”

“…가이딩 받으면 괜찮아져?”

 

게토는 가이딩을 받은 적이 없다. 그의 능력이 안정화였으므로 자신의 몸도 자체적으로 안정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게토는 폭주한 적도, 능력이 떨어진 적도 없었다. 오늘까지는.

 

“이런 케이스를 본 적이 없어서 확답은 어렵지만, 가이딩이 문제가 아냐. 네 에너지가 없어. 가이드가 할 수 있는 건 센티넬이 폭주하지 않게끔 에너지를 만지는거지. 너는 남들한테 에너지를 퍼줘서 네가 쓸 게 없다고.”

“죽는다는 소리야?”

“아니, 에너지는 만들 수 있어. 다른 사람들 멀쩡하게 살잖아. 지금이라도 은퇴해서 요양을 해. 삼시 세끼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농담이지?”

“아니면 5년 안에 죽던지.”

 

게토는 잠시 침묵했다. 쇼코는 제법 유쾌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일에 농담을 할 인물은 아니었다. 이 독한 말투가 그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도 안다.

 

“혹시…알고 있었어?”

 

이 모든 상황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쇼코는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네 정보는 극비였어. 왜 갑자기 나한테 넘어왔나 했는데…”

“그렇구나.”

 

자신은 이제 용도 폐기라는 말이다.

 

 

 

08.

 

“사토루도 진짜 대단해. 들킨 적은 처음이야.”

 

고죠가 의문을 품은 것은 두 가지였다. 자신에게 아무리 맞는 가이드가 없어도 여러 가이드들을 거친 만큼 지식은 있다. 가이딩이란 기본적으로 센티넬이 ‘각성한 능력 때문에 오감이 예민해지고 신체의 한계치 내에서 견딜 수 없는 에너지를 조절’하는 것이다. 당연히 센티넬이나 가이드마다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게토의 것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는 컵 안의 물결치는 표면에 더 큰 물을 부어 고요하게 만드는 것에 가까웠다. 또한 스킨십과 가이딩의 타이밍이 전혀 맞지 않았다. 방금의 키스가 그랬다. 물론 너무 미묘한 차이라 고죠 정도로 자신의 신체 능력을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지 않으면 알 수 없을 터였다.

 

두 번째는 수색대의 대화였다. 죽기 직전의 센티넬에게 가이드를 보내봐야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들은 정식으로 신체나 정신적으로 적합도가 맞는 파트너 가이드가 있을 테니 게토가 아무리 S급 가이드라고 해도 범용 가이드를 쓰기보단 본인의 파트너 가이드를 사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마지막으로 게토를 사용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면 답은 하나였다. 강화.

 

“왜 은퇴 안 해?”

“무슨 소리야. 당연히 허락 안 해주지. 팔려왔다고 했잖아. 그래도 죽으면 순직으로 해준대. 그럼 가족들한테 연금도 나올 거고…”

“……”

“용도 폐기여도 아직은 쓸모 있어. 평소에는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다가 생명력이 떨어진 센티넬에게 마지막으로 가이딩 해준다는 핑계로 날 쓰는 거지. 내 별명도 이미 들었나 모르겠네. 사신이라고. 중2병 같은 별명이라 쪽팔리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냐. 나를 보는 센티넬들은 마지막으로 사용처리 되는 애들뿐이거든. 그럼 마지막으로 바라는 걸 가능한 들어주고 싶기도 하고….”

 

고죠의 굳게 쥔 손에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흘렀다. 분노로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가쁜데도 눈과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한테는 왜 왔어?”

“이제 그 사신 역할도 못할 정도로 간당간당해서. 마지막이라고 국장님께서 직접 만나러 오셨더라. 내 모든 힘을 써서 앞으로 너한테 가이드 없이도 자체 안정화가 가능하도록 만들라고. 가능할 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도해볼만 하잖아?”

“……”

“의미 있는 일이잖아. 인류 최강의 거름이 되는 것.”

 

 

09.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게토를 데리고 도망치고 있었다. 문이 깨지고 배치된 소화전이 터지는 와중에 고죠는 게토의 목을 조르는 척 비키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각지에 경보가 울렸다. 다들 국장의 아들이 S급 가이드를 인질로 잡고 탈주극을 벌이는 것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무기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실 고죠의 능력으로 탈출은 쉬웠고 난리를 피운 것은 인질로 별 가치도 없는 자신 때문이었음을 게토는 알지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센터를 떠나자마자 귀 뒤에 심어진 인식 칩을 제거했다. 생각보다 바깥은 조용했다. 바로 지명수배가 떨어질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고죠의 탈주는 군 내 전력과도 연관이 되니 바로 수습이 된 모양이었다. 고죠는 일단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세이프 하우스에 게토를 데려갔다.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게토는 고죠가 가볍게 씻고 나오자 조용히 물었다.

 

“왜…이러는 거야?”

“무슨 뜻?”

“우리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나는 솔직히 네가 왜 화내는지 모르겠어."”

“화 안 났어.”

“음…지금 센터 건물 20프로는 네가 박살냈을걸.”

“나머지가 멀쩡하잖아. 그게 화가 안 났다는 증거야.”

 

게토는 천천히 고죠에게 다가갔다. 기분 좋아지게 해줄까. 장난삼아 허벅지에 손을 올려도 고죠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이거 꼭 사랑의 도피 같은데. 아무리 게토라도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엔 어려웠다.

 

고죠의 숨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걸 이미 게토도 알고 있었다. 아까 조용히 능력을 쓰려고 했더니 고죠가 낮은 목소리로 위협하듯 저지했다. 앞으로 능력은 쓰지 마. 게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죠는 간이 냉장고에 생수 하나를 꺼내 전부 마시고 옷을 마저 입었다.

 

“가자.”

“어디 가는데?”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가는 내내 고죠는 게토의 손을 잡고 있었다.

 

 

10.

 

고죠가 데려온 곳은 궤도 엘리베이터의 민간 정거장이었다.

 

“달까지, 2명.”

 

고죠의 결제는 막히지 않았고 정거장 심사대도 무사히 통과했다. 왜 이렇게 순조롭지. 게토는 갑자기 사람들이 들이닥쳐 자신들을 둘러싸는 상상을 했다. 그래도 달은 가보고 죽네. 이 두근거리는 마음이 죽기 전의 공포인지 설렘의 표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불안하지는 않았다. 고죠의 커다란 손을 잡고 있으니 다 괜찮을 것 같았다. 점점 어두워지는 고죠의 낯빛을 보면서도, 아까 탈출하다 다친 곳의 피가 멈추지 않고 있는데도, 왠지 괜찮을 것 같았다. 그 때 고죠가 정적을 깨고 물었다.

 

“야, 너 그 때 했던 말.”

“뭐?”

“네가 맞춰보라고 했었잖아. 게임 안에서…”

“아…그냥 꼭”

“뭐.”

“꼭 사토루 눈 같다고.”

 

부끄러운 말이라도 한 듯 게토의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그래. 이제 어항 말고 내 눈 속에서 살아. 어항? 고죠는 대답 대신 게토의 앞머리를 귀에 걸어주며 키스했다.

 

 

그들은 어항을 떠났고, 달에는 도착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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