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 위에 발자국이 남아있다. 승천이라도 한 것인지, 뚝 끊긴 발자국은 기이하기 짝이 없다. 눈보라에 멀리도 보이지 않는다. 숨을 푹 내쉰다. 입김마저 얼어버릴 차가운 대지 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모험가다. 대륙 굴지의 학교가 된 모교—입학 당시엔 별 볼일 없었다.—에서 마법을 익혔으나 마법사의 삶을 버리고 탐험가가 되었다. 물론 남자는 마법사가 맞다. 마법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직업적인 마법사는 아니었다. 명백히 탐험가였다. 딱히 누군가가 탐험가라고 인정해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만간 남자를 필두루 한 여러 탐험가들에 의해 탐험가 조합이 설립될 것이다. 물론, 어처구니 없게 떠나온 이 탐험은 장기화가 되었고 조만간이란 것은 출발일로부터 조만간이었으니, 아마도 설원의 가운데에 서있는 남자의 시간으론 이미 이루어졌을 것이다. 탐험가가 되기 위해 무엇을 했던가, 설원에서 남자는 사색에 빠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남은 것은 몇 개의 특허였다. 집안에서는 셋째로 부모의 큰 기대 또한 없었으니 자유의 몸이었다. 학교에서는 연구원으로 남을 것을 권했다. 전도유망한 마법사로서. 하지만 그건 싫었다.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좋았지만 한 곳에 묶여있는 것은 싫었다. 학창시절에도 툭하면 사라져 결국 특허까지 남아 돈을 벌게 된 몇몇 마도구로 성적을 메꾸지 않았던가. 그러니 졸업장을 받고도 홀연히 사라졌다.

처음에는 남쪽으로 향하였다. 남쪽의 거대한 밀림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스스로를 ‘탐험가’라고 불렀으니, 흥미가 동하였다. 마침 백수에 쥔 것은 돈 뿐이니 일행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보기 힘든 마법사가 자신들의 탐험에 동행하는 것을 크게 반기었고, 남자는 그들이 이끄는 새로운 세계가 마음에 들었다. 따라서 그 때부터 탐험가라고 스스로를 지칭하였다. 만들어낸 마도구로 지도를 작성하고, 인간이 새로이 대면하는 생명체들의 표본을 채집하며 신비로만 치부되었던 공간들을 해부해나갔다. 세상에 그만큼 즐거운 것은 없었다. 운이 좋아 찾게 된 직업에 그대로 눌러 앉았고, 자신에게 특허를 낼 것과 남쪽으로 갈 것을 조언한 스승에게 성과를 보내었다. 그러자 스승은 성과를 사들임과 동시에 후원을 약속하였다. 자칭 탐험가가 아닌 사회에서 인정받는 탐험가로서의 첫 발이었다. 그러기를 몇 년, 탐험가라는 직업은 정말로 하나의 직업이 되어가고 남자는 나름의 권위마저 가지게 되었다. 물론 권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것에 관심이 있었더라면 학교를 졸업하고 연구원이 됐을 것이다. 단지 이 직업에 뛰어든 사람들의 안전과 생활의 보장을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물론, 그런 노력또한 천성에 밀려 북으로 향한 발걸음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무책임한 건 아니었고, 오직 발족만 남겨둔 상황에서 떠나왔던(동료들 입장에선 도망쳤던)것이니, 괜찮을 것이다. 강단에 서는 건 싫었다.

북으로 온 남자는 높은 산맥을 보았다. 대륙의 역사, 그리고 500년을 넘게 지배하고 몰락한 국가의 역사에는 그 너머의 기록이 없다. 남쪽의 것들도 많은 것들이 밝혀지지 아니하였지만 그렇다고 미지의 것으로만 남겨둘 수 없었다. 험하디 험한 산맥, 떨어지는 기온, 척박한 땅. 신은 이곳에 무엇을 숨겼을 터인가. 두근거림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물론, 등산의 험난함의 두근거림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산맥을 넘었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은 등산가들의 일이지, 남자는 협곡을 따라 내려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두근거림으로 요동쳤다. 이 너머로 발 딛는 것은 내가 먼저이겠지. 그렇게 남자는 산맥 너머의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엘리온 유민 출신의 소렐리아 탐험가가 되었다.

산맥의 중턱에서부터 보인 것은 저 멀리의 하얀 땅과 가까운 곳의 엷은 녹색의 땅이었다.

그렇게 긴 산행에서 벗어나 평지를 걷게 되었다. 짧은 풀들과 이끼가 대지를 뒤덮고, 뿔이 큰 사슴과 여우들이 돌아다녔다. 그렇게 만난 생물에 접근해 본 남자는 독특한 것을 발견하였다. 뿔이 큰 사슴의 목에 무언가가 걸려있었다. 목걸이였다. 아마도 누군가의 소유물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지. 천천히 접근해보았다. 사슴은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았고 그저 지긋이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남자는 인간을 본 적 없는 생물들은 인간에 대한 호불호가 존재하지 않으며 호기심으로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알게되지만, 그것은 후일의 일이다. 또한 그 사슴은 인간에게 아주 익숙하며 사람을 대하는 훈련이 되어있었음도 후일 알게 된다. 그런 미래를 뒤로 하고 사슴에게 손을 뻗어 보았다.


뿔에서 약간 이어집니다. 모험가의 이야기.

트위터리안, 드림러, CP덕질의 망자, 백합수확자, 비엘광부, 로맨스 없는 자들의 귀인, 비주류의 빛 바랜 자, 지 혼자 덕질하는 늑대 @lucetepotami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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