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내내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내 눈치를 보더니 결국 설거지 하고 있는 내 뒤로 흘리듯 이야기를 꺼낸다.

 

"오늘 대학교 친구들 만나고 올 거야"

"뭐?"


많이 놀란척해야 이것을 빌미로 하나라도 더 얻어먹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속으로는 '우리 이와짱 그거 때문에 아침부터 끙끙거렸구나 ㅎㅎ 귀여워'라고 감탄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내의 외출에 잔뜩 곤두선 남편의 모습을 하며 되물었다.




이와짱은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나와 함께 다녔다. 처음 이와짱이 여대에 응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 친구들은 '이야- 똑똑하네 이와이즈미, 결국에는 니가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구나 ㅋㅋㅋ 얼마나 싫었으면' 라고 빈정댔지만, 사실 나는 이와짱이 여대를 가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캠퍼스 내에서는 이와짱을 넘 볼 놈들이 없는 거잖아?'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생각도 얼마 뒤 이와짱이 동아리 선배에게 고백을 받으면서 산산 조각났지만...여대에는 죄다 여선배라구! 이와짱 대체 어디까지 유혹하고 다니는 거예요?)



결국 오늘 대학교 모임은 다녀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대학친구들은 지난달에도 만나고 이번달에도 만나는 거라서 너무 자주 만나지 않냐며, 나는 또 훈련들어가면 보고 싶을 때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 않냐며 설득하려 했지만

가장 늦게까지 결혼을 안했던 사토미가 결혼을 결심했다며 상견례가 진행되기 전에 꼭 모여야 한다며 

강한 의지를 보이는 설득하는 바람에 (크- 너무 귀여워) 허락하고 말았다.

(뭐 물론 처음부터 반대할 생각이 없었던 것은 비밀이다.)



약속시간을 얼마 앞두고 주섬주섬 옷을 골라 입고는 현관으로 가는 이와짱을 졸졸 따라갔다.

"응? 하지메- 술은 조금만 마시고 응? 잠 못 자고 기다리고 있는 남편 생각해서 딱 5잔만 마시고 오는 거야 알았지?"

"뭐래, 5잔만 마시면 목만 축이다 오라는 거야? 뭐라는 거야 이 쿠소카와가, 그리고 늦으면 기다리지 말고 그냥 자라고 "

"씨- 그럼 가지마! 하지메짱은 5잔 넘어가면 또 막 헤실거리고 그러잖아. "

"그, 그거야 기분이 좋으니까.. 기분 좋으니까 그러는 거지 ! "

"아니야, 하지메짱 5잔 넘어가면 엄청 바보 같으니까 ㅠ 절대로 5잔 이상 마시지 말라고 ㅠㅠ"

"아, 몰라- 노력은 해볼게"


이와짱 주량은 한 병 정도인데 사실 5잔이 넘어가면 이상 징후가 보인다.

웃음이 많아지고, 발음이 풀려버린다.

주량 한 병이라는 것도 내가 말해준 것인데 한 병 정도 마시면 

애교가 급상승하는 이와짱을 볼 수 있다.

취해서 잠들어버리는 건 1병 반 정도라서 나는 이와짱에게 한 병 이상은 큰일 난다고 겁을 주곤 했다.







이와짱이 없는 집안은 심심하다.

시즌도 끝나고 훈련도 들어가기 전이라서 딱히 뭔가를 하기보다는 그냥 이 여유를 즐기자 하는 마음에

천장 벽지 무늬를 새며 이와짱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헤- 이쁘다"



얼마나 지났을까? 발음이 조금 새는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아- 진짜 이쁘다."

나는 살며시 실눈을 뜨고선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소파에 누워있는 내 옆으로 이와짱이 행복한 표정을 하고선 나를 쳐다보고 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그 표정이 또 너무 귀여워서 잠이 싹 달아난다.

지금 일어나는 것도 좋지만..

조금 더 뜸을 들이다가 일어나면 좋겠다.
 

 
"ㅎㅎㅎ 진짜 이뻐"
 
-쪽


역시 ㅠ 탁월한 선택!

이쁨에 감탄한 이와짱이 해주는 뽀뽀까지 받고서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으응- 왔어??"


"응 ㅎㅎ 왔어"

" ㅎㅎㅎ 잘 만나고 왔어?"

"응ㅎㅎ 잘 만났어"

" ㅎㅎ 기분 좋은가 보네 이와짱?"

"응 ㅎㅎ 친구들 봐서 기분 좋은데 토오루가 집에 있어서 더 좋아"


아... 이건 뭔가 마냥 기쁘지는 않다... 

내가 없을 때 우리 이와짱 많이 외로웠겠구나... 생각이 깊어지려는데

술에 취해서도 내 작은 표정 변화가 보이는지 이와짱이 갑자기 내 얼굴을 감싸 쥔다.


"웃으면 더 이뻐. 히-"


아무런 근심도 긴장감도 없이 웃는 이 얼굴에 나는 내 천사가 원하는 대로 

가장 예쁜 미소를 보여준다. 술이 깨면 분명 욕을 하겠지만 특별히 오늘은 내 어떤 애교도 그녀가 다 흡수하고 있는 것 같으니 소파에서 내려와 그녀와 마주 앉아서는 꽃받침을 하고 활짝 웃어 줬다.
 
 
"그렇게 이뻐?" 

"응, 진짜 이뻐!"

"어디가 제일 이뻐?"
 

나의 질문에 이와짱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리고는 혼잣말을 하려고 했는데 음량 조절에 실패했는지 다들리게 속마음을 마구 쏟아낸다.


"눈이 정말 이쁘지 이렇게 투명하고 반짝반짝... "

아련하게 손을 뻗어서는 눈가로 향하더니 또 이어서

"아니야 속눈썹도 너무 이쁘잖아! 이렇게 길어서는...ㅋㅋ킄 아! 좋다"

"ㅋㅋㅋㅋㅋㅋ"


나는 혹시 내가 뭐라고 말이라도 덧붙이면 그녀가 고장 나버릴까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웃으며 감상만했다.

" 아..역시 코지 저렇게 이쁘고 고운 코라니..."

그러더니 코를 쓰다듬는다. 그러더니 곧 힘없는 손길이 입가로 내려온다.
 

"아... 입술이지 역시.."





아.... 이러지 마라 진짜. 

내일 술 깨면 또 술 취한 사람 데리고 뭐한거냐며 궁시렁 거릴거잖아....



나는 뭔가를 참아내는 기분으로 입가에 와있는 그녀의 손가락을 앙하고 입술로 물으며 다시 재촉해 물었다.


"응? 어디가 제일 이뻐?"
"못 고르겠어!"


정말 곤란하다는 듯 인상을 쓰고서는 갑자기 자리에 일어나 소파에 앉아버린다.

소파에 파뭍혀 있는 그 모습이 또 너무 귀엽다. 이런건 두고두고 봐야지 그녀 옆에 놓여져 있던 핸드폰을 조심히 들어 녹화를 시작하면서 그녀의 무릎에 턱을 기대며 계속 재촉했다.


"ㅋㅋㅋㅋ왜 골라줘봐"
"아니야 ㅠㅠ.. 고를 수 없어ㅠㅠ 토오루는 눈도 이쁘고 속눈썹도 이뻐 코도 이쁘고 뺨도 이쁘고 이마도 이쁘고 입술도 이쁘고 다 이뻐.. 다 이쁜데"
 

"증거 확보 완료!"


이제 내일 일어나서 뭐라고 따지면 이걸 보여줘야지- 히히


그녀를 잔뜩 올려다 보며 다시 물었다.
 
" 입술도 이뻐?"
 
"어디서 이런게 태어난 걸까? 어쩜 이렇게..."

" 풉- 응? 하지메 말해줘. 나 입술도 이뻐?"
 
입술을 쭉 내밀며 해맑게 답을 재촉했다. 그러자 내 턱을 손으로 감싸며 조금은 초점이 풀린 눈으로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그녀의 가벼운 손길이 턱선을 스쳐 내 귀에 닿았고 곧 조심 스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자각도 못하고 있을 텐데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나도 모르게 말라가고 있는 내 입술을 핧아 올린다.

 
-쪽


그게 자극이 되었는지 하지메가 눈을 반짝이더니 내 목을 당겨 입을 맞췄다.

....뭐지? 뭔데 입맞춤 하나로 이렇게 가버릴 것 같을까? 왜 저쪽은 자각도 못하고 있는데 나는 


"아... 진짜 너무 이쁘다. 주머니에 넣고 다닐까?"

"ㅋㅋㅋㅋ 안 들어가"
"아... 우리 남편은 왜 이렇게 이쁘고 귀엽고 그럴까..."
"자기야 나 이제 아저씨야 30도 넘었어 뭐가 그렇게 이쁘고 귀여워 ㅎㅎ"


-쪽

"ㅎㅎㅎ 하지마-"


결국 나도 질 수 없다는 느낌으로 이와짱의 볼에도 이마에도 코에도 잔뜩 입술을 갖다 대자 아이 같은 웃음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운다.

조금 이상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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