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10년 넘은 친구들이 8명 있다. 교복 입을 때부터 알고 지내 각자 피똥 싸면서 대학 가는 거 보고, 사회인이 되어 밥 벌어먹는 것까지 보게 된 오랜 친구들이다.

솔직하게 친구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커피 한 잔 마시자고 부르면 나오고, 밥 한 끼 먹자고 부르면 나오고, 퇴근하고 심심하다고 부르면 나오고, 여름 휴가 때 할 거 없다고 부르면 짐 싸서 기차역 나오는 게 친구지.

 

근데 이제 8명이서는 그 짓들을 못하게 됐다. 친구 하나가 죽었기 때문이다. 사인이 나를 미치게 하는데, 자살이었다. 비 오는 날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른 친구한테 부고 소식 듣고 처음으로 뱉은 말은 ‘미친년’이었다.

교복 입던 시절에 만나 술만 퍼 마시던 대학 시절은 지났고, 이제 다들 취업하고 자리 잡아가느라 연락도 자주 못하던 참이다. 내 인생이 제일 힘들다 생각해서 이기적이게도 고단한 타향살이 하는 친구 안부도 잘 안 물었다. 학창 시절에는 그렇게 징그럽게 붙어다녔는데,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같이 사진 찍힌 게 2년 전이었다. 나는 정말 후회를 안 하는데, 이건 너무 후회가 돼서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참 용감한 친구였다. 마음 속에 있는 뜨거움과 튼튼한 몸뚱아리 하나만 믿고 가족, 친구 그 누구도 없는 타향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던 친구였다. 그런데 마지막도 그렇게 용감할 줄은 몰랐다. 생애 마지막으로 낸 용기가 그것이라면 내가 칭찬을 해줘야 함이 마땅할 텐데, 도저히 그런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그 높은 곳에서 땅바닥을 내려다 보고도 용기가 날 정도로, 다시 타박타박 내려가서 살아가야 할 인생이 더 무서웠던 모양이다.

사는 게 도대체 뭐길래. 나는 그런 거 생각 안 하면서 살았다. 그냥 살면 살아지는 게 삶이니까. 근데 걔한테는 그냥 살아지는 게 아니란 걸 몰랐다는 게, 그게 사무치게 미안하다.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결국 화가 난다. 따지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수능 끝나고 다 같이 반지 맞췄을 때, 돈 벌면 금으로 맞추자고 했잖아. 그 시간이 벌써 훌훌 지나 이제 진짜 금반지 맞추기로 한 때가 다가오고 있는데, 금 값 오른 거 보고 돈 아까워서 갔냐. 의리 없는 새끼.

누구 결혼하면 무조건 축가는 우리들이 불러주기로 했잖아. 아직 시집 간 친구가 없어 축가도 한 번 못 불러봤는데, 그거 쪽팔려서 먼저 갔냐. 의리 없는 새끼.

여름방학 때 물놀이 갔다가 우리 집 왔을 때 우리 엄마가 국수 해준 거 기억 나냐. 엄마가 국수 또 해준다고 놀러오라고 했잖아. 그거 한 번을 얻어 먹으러 안 오고 결국 제삿밥 먹겠다고 홀랑 가버렸냐. 의리 없는 새끼.

야, 사는 게 그렇게 좆같았냐? 근데 왜 말을 안 했냐. 그걸 혼자 다 짊어지면서 살았냐. 의리 없는 새끼.

다들 바쁘게 사느라 날 맞춰서 다 같이 모일 시간 한 번 없었는데, 결국 니 장례식으로 자리를 만들어주냐. 진짜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새끼.

 

타지의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은 말이 없었다. 술 한 잔도 못 마셨다. 그냥 얼굴만 쓸어내리다가 어쩔 수 없이 발인 못 보고 먼저 가는 친구가 있으면 조심히 가라는 말 한 마디나 할 뿐이었다. 이제는 친구 대신 챙겨드려야 할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으면서 다들 눈물을 참았다.

우리 징그러운 친구들은 결국 그 아담했던 친구가 더 아담한 항아리 하나에 담길 때까지 있었다. 너무 많은 말과 감정들이 머리를 채워서, 끝내 머리가 터져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런 말과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발인 끝내고 어머니께서 사주시는 밥 얻어 먹으면서 다들 하하호호 웃었지만, 어차피 집 가는 차, 기차, 버스에서 증발될 웃음이었다.

 

시간만이 이걸 해결해준다. 이미 배워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 해결해주는지는 모른다. 너무 늦게 해결해준다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가족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도 잃었다.

나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는 줄 알았다. 내가 성인은 못 되더라도, 미련 같은 건 없는 쿨한 인간인 줄 알았다. 찌질한 짓 정도는 하지 않는 쿨한 인간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산다는 건 무엇이든 간에 사랑한다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건 찌질한 것이라는 걸 드디어 깨달았다. 내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던 친구는, 사실 내 사랑의 목적지였다는 것을 드디어 깨달았다. 내 마음은, 내 사랑은 목적지 중 하나를 잃은 채 떠돌고 있었다. 그게 견디지 못할 만큼 괴로웠다.

 

친구 영정 사진 앞에 앉아서 한 말은 ‘잘 먹고 잘 살아라.’ 였다. 도대체 저승에 뭐가 있길래 그렇게 빨리 갔는지. 뭐가 그렇게 재밌는 게 많길래 우리들을 놔두고 그렇게 빨리 갔는지.

그래도 나는 아직 갈 생각이 없다. 나는 아마 쭈글쭈글 늙은 노인의 모습을 한 채 젊은 날의 친구를 만나겠지. 이 새끼 없는 동안 욕도 실컷 하다 갈 거고, 우리끼리만 재밌게 잘 먹고 놀다 갈 거다. 정말 보고 싶어도, 꾹 참으면서 꾸역꾸역 살다 갈 거다. 나는 쏟아부어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좀 더 찌질하고 구질구질하게 살아갈 것이다. 목적지를 잃은 내 사랑을 다시 주워 담아, 또 어딘가에 쏟아부으면서.

 

그러니까 그 동안 잘 먹고 잘 살면서 기다려라. 나도 잘 먹고 잘 살다가 갈게.

적폐대장 뿡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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