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o_LOH 님께서 주최하신 신년 헬가 합작 제출 글 입니다. 아침 산책나간 헬가가 요한과 마주칩니다.

주최해주산 마고님께 감사드립니다!


*요한과 헬가 논컾 연성

*설정 다수 날조

*빛요한×물헬가, 노말회차 를 상정하긴 했지만 대충 패러렐입니다. 




아발론 왕성의 성벽을 너머, 걸어서 15분 거리에는 마도대전 종전 30주년을 기념하여 선대 로드가 만든 공원이 있다. 한 때 지평선 너머를 보기 위한 성루가 세워져 있던 언덕으로, 새해에는 일출을 보기에 좋은 장소이고, 공원 자체도 관리인을 고용하여 세심하게 관리하는 곳인지라 제법 아발론의 수도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공원을 찾아갈 때는 한 가지 규칙이 있는데, 길에서 꺾어온 꽃이라도 좋으니 무언가 하얀 것을 하나 공원 길목에 위치한 사원에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사원은 빛의 오베론을 모시기 위한 곳으로, 새벽마다 종을 울려 적막한 공원에 아침을 알리곤 했다. 

헬가는 종종 이곳을 산책하곤 했다. 이곳을 처음 그녀에게 알려준 이는 미하일이었다. 적절한 산보를 원한다는 그녀의 말에 그는 하루를 고심하다가 흰별꽃 다발을 들고는 다시 찾아와 이 산책로를 추천해주었다. 한동안 아발론 성내에 미하일이 헬가에게 마음을 품었다는 소문이 돈 것은 사소한 일이었다. 헬가는 평소처럼 크게 웃고는 이 사건을 넘겼다. 귀 큰놈과 연애는 결사반대한다는 통령의 애정 어린 편지는 덤이었다. 

해가 뜨기도 전의 시간이었다. 늙은이의 아침은 일찍 시작한다. 풀벌레 우는 소리가 수풀 사이로 들렸다. 처음 공원을 조성할 때 어린 나무였을 상록수들은 30년의 세월동안 하얗게 샌 헬가의 머리카락처럼 죽죽 자라 푸르스름한 새벽공기를 제 품 안에 가두었다. 그녀는 성루까지 걷는 발걸음을 구태여 재촉하지 않는다. 뒷짐을 지고 걷는 중에도 그녀의 품에는 창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성루는 30년을 세월 동안에도 꾸준한 관리를 받아 그 시절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헬가는 성루에 난 흠집 중에 하나를 손으로 짚었다. 전쟁의 경험은 일자무식도 쇠뇌가 쏘아지는 소리만으로 그것이 적군의 것인지 아군의 것인지 구분하게 만든다. 그녀는 이 자국이 포탄의 의한 것임을 알아본다. 이것은 짐승의 발톱이다. 이것은 성루를 기어오르기 위한 갈퀴의 자국이다. 이것은 둔기로군. 세상은 조용한데 그녀의 심상은 전쟁통이다. 헬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한 때, 고개를 들어야만 볼 수 있었던 제법 거대한 친우가 있던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습관이었다. 평소에는 성루 위에서 흩날리는 아발론의 국기를 발견하고는 해가 뜰 지평선으로 고개를 돌리곤 하였다. 

그러나 그 날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깃발 조금 아래, 웅크리고 고개 숙인 인영을 발견한다. 흰 옷자락이 깃발과 함께 풍향을 따라 가만가만 흩날린다. 시선을 빼앗긴 사이 해가 고개를 들었는지, 밝은 빛 한 줄기가 성루 위로 쏟아졌다. 태양보다 밝은 가을 밀밭색의 머리카락이 반짝인다. 요한이었다. 아발론의 초기 멤버이자 로드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기사. 헬가는 그를 조금 골려 줄 생각으로 성루 위를 오른다. 여관주인의 발걸음은 어느새 사냥꾼의 발걸음이 되었다. 


“헬가 경.”

“에잉. 재미없구먼.”


성루 위의 요한은 이미 헬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몸을 일으킨다. 헬가는 어깨를 으쓱 올려 보이고는 그의 곁에 섰다. 축축하게 이슬이 맺힌 산책로를 걸어 올라왔을 텐데 그의 옷에는 진흙 한 점 묻어 있지 않았다. 그는 헬가를 향해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는다. 헬가는 마주 웃는다.


“젊은 이가 깨어 있기에는 아직 좀 이른 시간 아닌가? 많이 자야 키가 큰다네. 자네는 이미 충분히 큰 것 같기는 하다만.”


농담 섞인 헬가의 말에 순박한 청년은 제 뺨을 긁는다. 선한 얼굴이다. 열혈한 검은 머리카락의 다른 똥강아지와는 결이 다른 올곧음이었다. 헬가는 이런 종류의 사람을 좋아했다. 프람은 아슬란을, 요한은 발터를 닮았다. 젊은 이들에게서 늙은 녀석들의 초상을 보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헬가는 쉬이 그 행위를 멈추지 못한다. 요한은 머뭇거리며 헬가가 던진 농담을 받는다.


“하하, 키는, 더는 안 크는 것 같습니다. 이 시간이면 대체적으로 깨어 있습니다. 사원의 종을 쳐야 해서요.”

“아니, 사원 종지기가 자네였나?”


눈을 동그랗게 뜨는 헬가에게 요한은 손을 내젓는다. 그는 감정 표현을 표정보다 몸짓으로 더 많이 표현한다. 감정보다 자신의 의도를 나타내야 하는 것이 중요한 이들이 이렇다. 가령 상점 주인에게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고 전력으로 주장해야 하는 아이, 또는 높으신 분 앞에서 자신의 무해함을 피력해야하는 소작농처럼. 그 점은 도련님인 발터와 닮지 않았군. 헬가는 짧은 감상평을 속으로 갈무리한다. 


“아뇨. 오늘 기상당번이 접니다. 사람마다 깨우는 방법이 다른 것 같습니다만 저는 침실 문을 두드리는 것보단 종을 치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괜찮은 방법이군. 기사들 침소 하나하나 문으로 두드리고 다니느라 늙은이 무릎이 시큰거리던 참이었는데. 나도 그리 해야 겠어.”

“프람 경이 의외로 귀가 밝아 종소리에 잠을 잘 깨지요. 샬롯 경이 종 소리 만으로 일어나는 것을 힘겨워 하나, 정령들이 그녀를 살펴주는 모양입니다.”

“호오, 그렇구만.”


성루 위에서, 두 사람은 잠시 시시콜콜한 잡담을 즐긴다. 그러나 헬가는 이것이 대화의 본론이 아닐 것임을 알고 있었다. 요한은 처음부터 헬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헬가가 성루 바로 곁의 샘에서 물을 떠오는 것을 좋아한 다는 것을 모르는 아발론 기사는 없다. 아발론은 작은 왕국이라서, 비밀은 지켜지기 어렵다. 그녀의 취미를 비밀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어서, 더욱 빠르게 퍼졌다. 그렇기에 요한의 성루 방문은 그녀를 만나기 위한 필연이다. 종치는 것의 진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헬가는 그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기까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시간은 부족하다. 노인일수록 더더욱.


“그래, 사원은 저 아래에 있는데 이 높은 성루까지는 왜 올라왔는가?”


요한은 잠시 침묵한다. 그는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안경테가 햇볕에 하얗게 빛을 반사한다. 풍경 아래 보이는 아발론 왕궁은 지도에서 그려진 그대로 하얗고, 지평선은 붉으스름하게 물들어 희뿌연 새벽의 하늘을 몰아낸다. 겨울의 하늘은 묘하게 회색 빛이다. 차가운 공기가 낮이 와도 데워지지 않는 계절, 요한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기도를 하고 싶었습니다.”

“사원에서 하면 될 것을.”

“신은 하늘에 있으니, 성루 위가 신에 더 가깝지 않겠습니까?”


오베론을 모시는 신관은 하늘을 우러러 두 팔을 벌리고 기도를 한다. 새벽을 부르는 신의 상징은 태양으로, 그 축복을 가득 받기 위해 창공을 보는 것은 그들의 당연한 교리였다. 요한은 성루 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발론 왕성이 보이는 방향이었다. 그가 신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 하늘 위에 있지 않음을 헬가는 알고 있으나 굳이 지적하지 않는다. 


“그래, 무엇을 기도했나?”

“무언가를 바라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습관입니다.”


누가 제의할 것 없이 두 사람은 성루를 내려와,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흙바닥을 밟으니 다시 풀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그것은 생기 가득한 새싹의 향이 아닌, 흙과 한 몸이 되어가는 죽음의 냄새이다. 헬가는 이 향을 좋아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 겨울냄새이지 않은가.

“나는 바라는 것이 있거나, 축제가 열려야만 사원에 가는 불량 신도 이건만. 자네를 보니 부끄러워지는 구먼.”

“사람마다 신을 모시는 방법이 다른 법입니다.“

“그래, 아발론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걸로 알고 있네. 하긴 오선신이 아닌 용이 수호하는 나라이니, 어찌보면 당연하군 그래.”

“용.”


여관 주인으로 살다 보면 손님의 이런저런 인생사를 듣기 마련이고, 술 취한 주정뱅이의 술주정으로 밤을 세우기는 부지기수이다. 그러다 보면 말에 대한 눈치가 생긴다. 헬가는 요한이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왜 그렇게 머뭇거렸는지 까지도. 그녀의 황금색 눈동자가 요한을 바로 본다. 그가 그녀를 상처 줄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화제’는 여전히 그녀에게 큰 의미이자 상처였다. 회색 눈동자가 그녀를 똑바로 마주 본다. 그 진중한 얼굴이 순간 가슴에 일어난 파란을 가라앉혀 주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지금이 기회라네.”

“헬가 경의…”


청년은 조금 더 머뭇거린다. 아발론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다 상처를 들추는 데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 상냥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왔다. 그렇기에 헬가는 이정도 무례는 기꺼이 눈 감아 줄 수 있었다.


“헬가 경의 고향에서도 용을 모시는 신앙이 있습니까?”


오.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헬가는 잠시 눈을 감는다. 이른 아침의 숲 속은 과거를 추억하기 딱 좋은 장소이다. 헬가는 사근사근 불어오는 바람에서 사라지지 않는 옛 정취를 느낀다. 이 바람에 소금기가 조금 섞여 들어오면, 헬가는 얼마든지 자신의 머리색이 하얗게 바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얀 침대 시트가 담긴 빨래 바구니를 든 갈색 머리카락의 소녀는 그 나이대 아이들 치고는 좀 더 철이 없고, 말괄량이로 유명했다. 그녀의 집 문에는 용의 머리가 새겨져 있었다. 용의 머리는 해풍의 신으로부터 뱃사람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강대한 것을 숭상하는 건 어느 지역에나 있지.”


집 문에 용머리가 새겨져 있어서 크메르사트가 자신을 찾아온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강대한 존재를 처음 만난 순간을 헬가는 무덤까지도 기억할 터였다. 그는 순풍을 단 배처럼 우아하게 다가와, 헬가에게 세상의 모든 하늘을 약속했다. 헬가는 그 모든 순간을 머리속에 새기면서, 자신의 원래 눈 색이 뭐였는지 잊고 말았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영혼의 결속은 한 때 관계의 확신이 되어 주었다. 


“그럼에도 헬가 경 께서는 용과 친우가 되셨죠.”

“영혼을 나눈 사이이니, 연인보다 깊고 가족만큼 애틋했지.”


강대한 존재에게 자신이 그저 한 순간의 유희가 아니라는 약속은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했다. 참혹한 마도대전, 손톱 끝에 물든 피냄새가 가시지 않던 때에 헬가가 제정신을 유지하고 친한 동료들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나라를 지키려던 자가 있다면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자도 존재한다. 믿음이 상실되어 가는 때에 절대적인 내편이 있는 감각은 영웅무기나 용의 강대한 힘보다도 강력한 동기가 되어 주었다. 


“신에 가까운 이의 곁에 서는 것은 어떤 기분입니까?”


헬가는 잠시 대답을 고른다. 그녀는 젊었을 때도 지금도, 철학적인 문제에 깊이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살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된 생활의 지혜였다. 그러니 그녀가 답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철학적인 질문에는 덜 심오한 답이 될 것이다. 그녀는 가만히 요한을 올려다본다. 크메르사트가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을 때 딱 그의 키를 가졌던 것 같다. 그는, 하늘은 날아다니는 재앙이자 축복이었던 용은 헬가에게 어떤 존재였는 가. 


“내가 크메르사트를 처음 보았을 적에, 나는 시골 여관주인집 딸이었다네. 전장의 기운이 마을까지 내려왔지만 내가 전쟁에 참가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 “


두려워했던 것 같기도 하다. 조금 어려워하면서도 되바라진 성격을 버리지 못해서 반말로 대하니, 그는 짖궂은 얼굴로 헬가가 하나로 땋은 머리카락의 끝을 잡아당겼다. 바락바락 대드는 헬가를 그는 퍽 즐거워하며 기꺼이 어울려 씨름했다. 등을 처음 허락하였을 때도 두 사람은 창공 위에서 농담을 주고받았다. 근육만 많은 도마뱀인가 했더니 하늘 날아다닐 정도론 가벼웠나 보네. 크메르사트는 헬가의 말에 허공공중제비로 멀미를 선사했다. 찾아온 용 앞에 냅다 절부터 올리던 마을 촌장은 헬가가 크메르사트에게 말을 걸 때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바들바들 떨었다. 어찌나 떨었는지 가발과 머리가 따로 진동하곤 했는데. 헬가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요한은 나란히 서 그녀의 말을 경청한다.


“내가 그런 존재와 함께 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 시절의 나에게 말한다면 믿어주지 않겠지. 그러나 나의 친우는, 그래. 생각보다 우리와 다르지 않았네.”


과거로 돌아갔던 기억은 올곧은 눈을 가진 왕재의 편린과 함께 잠시 현실로 돌아온다. 로잔나가 자랑하는 파도기사단을 박살낸 건방진 소국의 왕은 용과 같은 힘은 없었으나 그 고귀한 이상과 올곧은 정신 만은 탈인간적이었다. 백 년이 넘게 살았지만 저렇게 비범하게 미친 선인은 처음이다. 헬가와 차를 나눠마시던 사르디나의 종신 통령은 눈쌀을 찌푸리며 혜성처럼 나타난 아발론의 군주를 평했다. 그러나 헬가가 만난 로드는 생각보다 평범했다. 사르디나의 어선시장에서 바가지를 씌고도 아발론 왕성을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는 모습은 왕치고는 격식도 부족하고 노련미도 부족하였다. 띨빵한 것이 꼭 못미더운 친척 조카 같아 헬가는 도와주는 대신 그를 놀리고는 했다. 무엄하다며 그녀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발론의 군주 자신조차도.


“처음부터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야. 하지만 사람 사는게 어디든 다르겠나? 숨쉬는 생물 역시 같다네.”


크메르사트 역시 그랬다. 비 오는 날 정찰을 위해 구름 위로 올라왔을 적이었다. 그 때도 이른 새벽이었다. 크메르사트와 헬가는 창공 위를 한 바퀴 돌고 바로 내려가는 대신 해가 뜨는 것을 하늘 위에서 구경하였다. 바람은 적지만 조금 추웠다. 그러나 구름 위로 해가 모습을 들어내었을 때, 지평선을 바라보던 헬가는 자신을 등에 태운 존재 역시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알았다. 수천 번의 비행, 수천 번의 일출을 보았을 텐데도 감동으로 저릿해지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 헬가가 자리잡은 등까지도 그 씨근거림이 전해진다. 영혼은 공명하여 용과 인간의 감정을 잇는다. 그 순간 진정으로, 헬가는 크메르사트를 사랑하였다. 그가 그녀를 사랑해서 하늘 위의 일출을 보여줬듯이.


“친우는 다정하고, 하늘이 쾌청할 떄 비행하는 것을 좋아하고, 전우가 죽어도 땅에 묻어 줄 여유 없는 전장에서 버려진 해자에 아군을 모아 제 발톱으로 흙을 긁어 묻어주는 자였지.”


헬가는 요한이 두손을 마주 잡고 꼼지락 거리는 것을 보았다. 이 상냥한 청년은 그가 자신의 상처를 파헤쳤을 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늙은이의 즐거움이요, 그 주접을 기꺼이 들어주는 젊은 이가 있는 것은 하나의 행운이었다. 헬가는 이 청년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정답에 조금의 힌트를 주기로 한다. 있는 그대로 말하는 대신.


“자네가 함께하고 싶은 이는 어쩌면 용보다 더 인간답지 않는 자이지. 하지만 그의 비인간다움은 결국 인간적임에서 나오는 게 모순이다만.”


그의 주군은 닭을 구워 만든 요리를 좋아하고, 제 기사들과 기꺼이 술자리를 가지는 사람이다. 잠이 많은 대도 눈을 비벼가며 제가 할일을 해치우고, 종종 일이 너무 많다고 투정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평범한 모습 속에 가진 이상은 너무 강대하여 이해하기에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충성으로 따라오는 기사들이 뒤따르고 싶게 만든다. 그렇게 로드는 홀로 선다. 헬가는 다시 다가오는 전쟁의 냄새를 맡는다. 그녀는 그 전쟁을 이기는 방법을 제 옆의 청년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의 고민도 해결해 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산책로는 끝에 다다라 작은 사원을 앞에서, 헬가는 아침 햇살을 등진다. 그녀는 생각보다 색이 엷어서, 햇빛을 등지자 그 속으로 녹아들 것 같았다.


“혼자 두지 말게.”


홀로 남은 이는 아직 소중한 이를 잃지 않은 이에게 충고한다.  


“오래 사는 이들은 고독을 곱씹어 살아가지. 이상을 안은 이도 마찬가지야. 응원해 주는 이는 있어도 진정으로 지지하고 함께 그 길을 가주는 이는 흔치 않아.”


전쟁의 끝에서 영혼의 단짝을 잃은 이는 얼마나 공허한 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고 싶은 마음에 참가한 전쟁에서, 헬가는 삶의 의미를 잃는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녀가 계속 살아간 것은, 어쩌면 그녀 앞의 청년과 같이, 그녀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고민이 있는 이에게 말 몇 마디 주기 위함일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틀어 사원을 바라본다. 사원 앞에는 하얀 제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녀가 바친 것은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 곁에 있는 것은 하얀 사랑초이다. 요한 역시 그쪽을 바라보다가, 헬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우정은 곧 변치 않는 충성심과 같다. 헬가는 그에게서 긍정적인 직감을 얻는다. 


“종을 울려야 겠구먼.”

“예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헬가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 아침을 깨울 저 똥강아지에게는 낙엽불에 구운 밤고구마나 좀 줄까나. 그녀는 지팡이처럼 제 창을 바닥에 세운 채 기대, 기꺼이 요한을 기다린다. 댕그랑. 댕그랑. 종이 울렸다. 겨울 하늘이 맑다. 크메르사트가 사랑한 날씨였다. 

망사랑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 댓글 피드백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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