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형정원 트루 네타 포함 반드시 주의해주세요.






“안화, 혹시 자리에 있어? 일이 있어서 찾아왔어.”



지휘사가 가볍게 문을 두드렸지만 공기는 정적만을 고했다. 어떤 특수한 연쇄작용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짧게 들려오는 대답 정도라도 좋을 터라고 생각했었다. 손에 쥔 비닐봉투는 눈치 없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근처 상점에서 가볍게 산 차와 쿠키가 들어있었다. 안화라면 이런 싸구려는 눈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치지는 않을 터다. 그런 사람이니까.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반응도 없다. 혹시 지쳐 잠들기라도 한 걸까, 천천히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그럼 들어간다?”



문을 열자 짙게 느껴지는 커피 향. 안화가 평소 찾던 그런 류가 아니었다. 약간 탄내가 섞이고 그걸 설탕으로 무마하는 인스턴트에 가까운 향.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이는 없던 습관이다. 히로가 남긴 무언가가 안화의 생활을 바꾼 걸까? 아니면 안화 스스로가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 히로의 습성을 취하는 걸까. 지휘사는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예전에 읽은 소설을 떠올렸다. 명탐정은 범인의 행적을 쫓기 위해 범인이 되고자 노력했다. 범인이 하던 습관, 행동, 모든 것을 따라 좇으며 그의 다음을 예상하도록 노력했지. 안화도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히로가 보던 세상, 그 너머를 염탐하고자.

비어있는 커피잔과 주전자, 그리고 소파에 누워있는 안화가 보였다. 잠이 든 걸까? 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과중한 무게를 진 이는 이 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짊어진 어깨의 무게는 자신이 나눠 가질 수 없었다. 반대로 자신이 가진 무게 또한 이 남자가 나눠 가져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휘사는 그의 무게가 자신의 것보다 훨씬 무거우리라 판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미래시를 지닌 인물이다. 실제로 어떤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가 앞을 내다보는 인물이란 의미였다. 슬쩍 그의 곁으로 다가가자 옅은 숨소리가 들렸다. 좀 더 다가가지 발에 무언가가 채였다. 대충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쓰레기통. 역시나 그의 사무실에 어울리지 않는 두 번째의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 안으로 피가 묻은 붕대가 보였다.



“이건…….”

“어제 약을 갈 때 바꾼 붕대다.”



일정한 속도로 들리던 숨과 자연스레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투가 너무나 정갈해서, 지휘사는 안화가 애초에 잠들었던 게 아니었나 의심이 생겼다. 일어났냐 물으니 그는 투박하게 용건을 물었다. 회의시간은 아직이라고 덧붙이며. 지휘사는 사온 물건조차 내려놓지 못한 채 봉투를 든 손에 힘을 줬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고 이는 입술을 파고들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원래…… 이 며칠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려고 했어. 그런데 그건 중요하지 않아.”



지휘사가 똑바로 안화를 바라봤다. 소파에서 일어난 안화 또한 지휘사를 바라봤다.



“너, 눈은 왜 그런 거야.”



지휘사의 말에 안화는 아무렇지 않은 듯, 사소한 문제라는 듯, 그렇게 평이한 어조를 이어갔다. 평범한 보고를 올리는 말투로.



“……좋아, 약간의 리스크가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큰 문제는 아니지. 처음부터 설명해 주길 원하나?”



안화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가득했다. 마른 세수를 한번 하고 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곤 가볍게 손짓하여 맞은 편에 지휘사를 앉혔다.



“첫날 사무실의 피는 확실히 내 것이 맞다. 모든 건 네가 회신한 쪽지로 인한 거야.”

“…….”

“그 쪽지는 또 다른 윤회 속의 내게서 온 거다.”

“……뭐?”



지휘사는 멍청하게 눈만을 깜박였다.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렇다면 전부, 전부. 내가…… 원인인가? 지휘사의 표정을 본 안화가 그 앞에서 가볍게 손가락을 퉁겼다. 딱! 경쾌한 소리가 눈 앞에서 터지자 지휘사는 바로 초점을 찾아 안화에게로 맞췄다. 안화는 명탐정이지만, 명탐정 같이 상대가 답을 찾지 못해 허우적대는 일은 즐기지 않았다. 상대가 헤맬 때에는 바로 답을 말해줬다. 그의 기준으로써 그건 시간낭비니까.



“또 다른 윤회 속의 난 이 세상이 일정 시간마다 반복한다는 것을 발견했지. 그리고 네 전술단말기에는 일정한 데이터가 잔존한다는 것 또한 알아냈다. 그렇기에 네 통신을 이용해 약간의 암호를 남겨뒀다.”



지휘사는 혼란스러웠다. 저도 모르게 손이 이마로 향했다. 이마를 지그시 눌러봤지만 두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잠깐,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너도 성스러운 별의 교회 신도야? 반복? 잔존? 그건 또 뭐야?”

“지금 생각하니 그쪽 교리나 경전도 나름 연구할 만한 의미가 있겠군. 비록 내게 확실한 기억이 없어서 시간이 반복된다는 것을 나 또한 증명할 수는 없다. 사실 나도 아직은 반신반의한 상태지.”

“그럼 데이터 잔존은?”

“지금 이 세상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일정 주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의 기억은 사라지지. 하지만 네 전술 단말기에는 항상 무언가 조금씩 남는다. 나는 그걸 데이터 잔존이라고 부르고 있다.

네가 처음 내게 보낸 정보는 얼마 안 돼 보이지만 실은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해독을 통해 얻은 답은-”



안화는 말을 하면서도 한쪽 눈, 정확하게는 신기를 장착한 눈 쪽을 자꾸 찡그렸다. 마치 편두통 환자처럼. 하지만 그것은 편두통이나 그런 이유가 아니라



“수술,”



지휘사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감시.”



다시 눈을 떴는데도 시야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다. 지휘사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당연히 모르겠지. 사실 며칠 전만해도 나 또한 이 일로 인해 심경이 복잡했다.”



저벅. 안화가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지휘사에게 훌쩍 다가왔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왼쪽 눈을 가리켰다.



“이건 내 신기, <호루스의 눈>이다. 앙투아네트에게 들었겠지. 총기는 그냥 총기일 뿐이고 내 진짜 신기는 이것이라고. 하지만 호루스의 눈을 얻은 후부터 이 신기는 내 생각을 억압했다.”

“신기가……?”

“그래. 그래서 난 수술로 신기를 없애려 했지만 레이첼은 성공률이 매우 낮다고 내게 경고하며 회복 기간도 몇 주나 필요할 거라고 하더군. 그래서 망설였었지. 하지만 네가 보낸 메시지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고. 그래서 난 바로 결정을 내렸다. 어쩌면……. 그 당시의 나는 이 신기를 매우 증오했을지도 모르겠군.”



서로를 제압하려는 신기와 그의 기사. 안화는 평소의 모든 일을 해내면서 자신의 신기와도 매일 체스를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를 결정하는 것은 단 하나가 아닌 여러 상황과 말, 그리고 능력. 패배의 대가는 서로의 ‘존재’.



“그래서 난 렌즈로 내 눈을 찔러 실명시켰다. 습격을 받은 것처럼 위장해 모두의 시선에서 벗어났고, 덕분에 이 계획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럼……. 없애는 건 성공했어?”

“아니. 내 왼쪽 눈은 끈임 없이 회복 중이다. 호루스의 눈은 회복도 관장했다고 하니까 아주 질기지. 하지만 ‘이것’만 없으면 내 머리는 더 맑고 깨끗해져. ‘이’게 다시 내 머리를 점령하기 전까지 이 일들을 끝내야 해.”



안화가 자신의 신기를 지칭하는 단어에서 그의 감정을 일말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그리는 그림은 무엇이고 어째서 신기는 그것을 반대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안화는 자신의 신기를 방해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것은 저주받았다. 미친 짓이다. 이러지 않아도 된다. 어떤 누가, 세상을 구하겠다고 자신의 눈을 직접 파 낸단 말인가? 지휘사는 피에 물든 렌즈조각과 붕대를 떠올렸다. 그렇게 거부하는데도 집요하게 회복하는 신기는 징그럽기까지 했다. 오히려 안화가 그에 굴복하고 조언을 얻어가며 사는 게 더 안락해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이건 저주받은 재능이야! 넌 포기해도 괜찮다고!”

“…….”



안화가 침묵했다. 그러더니 지휘사의 어깨를 강하게 쥐었다.



“그건 또 어디서 들은 이야기지?”

“뭐?”

“어디서 들었냐고 물었다.”

“그냥, 그냥……. 내가 생각한 거야.”



일순 그 푸른 눈동자가 시릴 정도로 파래서, 지휘사는 자신의 몸을 방어하듯 물러서며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안화는 어깨를 쥔 손을 풀지 않았다. 계속해서 말해보라는 것처럼.



“도시에서 쇼핑할 때 너에 대한 일들을 들었어……. 내 생각이지만, 넌 저주받은 재능을 짊어지고 갈 필요가 없다고. 넌 신기가 없어도 다른 누구보다 뛰어나니까!”



처음엔 울먹임이 섞은 목소리였지만 종내에는 비명으로 바뀌었다. 질끈 감긴 눈의 반동으로 입이 크게 벌려져 튀어나오는 소리 같았다. 자신이 낸 소리에 자신이 놀라 그만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래도 눈 앞이 제대로 보이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이번엔 눈물까지 고여 눈 앞이 흐렸다. 안화의 얼굴이 두리뭉술하게 형태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번졌다. 지휘사는 눈물이 떨어질 새라 입술을 깨물고 눈에 힘을 줬다. 지금 다시 감아버리면, 방울이 되어 떨어질 테지.

그런 그녀에게 손길이 닿았다. 양 뺨을 가득 감싸는 손길은 그녀의 얼굴을 쥐고 눈가를 스쳤다. 그 바람에 결국 눈이 감겨서, 눈물이 맺히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맺힌 그것이 떨어지기도 전에 흰 천이 그것을 가려버렸다. 대신 흰 천이 짙은 색으로 물들었다. 이제 그 누구도, 눈에 고였던 액체가 눈물이 되어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포기, 포기라…….”



안화가 입을 열었다. 지휘사는 그를 바라봤다. 슬며시 웃음이 난 것도 같았다.



“네 말이 맞다. 이 재능이 있다고 해서 내가 ‘안화’인 것은 아니다. 내가 ‘안화’라면 이런 재미없는 재능도 필요 없어.”



그리고는.



“하하하.”



안화가 소리 내어 웃었다. 슬쩍 입 꼬리를 들어 삐뚤어진 비웃음을 내보인 적은 있어도 소리 내어 웃는 것은 처음 봤다. 어, 내가? 그의 웃는 얼굴? 지휘사는 갑자기 자신이 오랜 기간 그를 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실제로 중앙청에 온 일주일전으로부터 실제로 그를 만난 것은 이틀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렇게 된 거였나…….”



안화가 웃음을 터트리며 다정하게 지휘사의 볼을 쓰다듬었다. 저도 모르게 드는 안심에, 지휘사는 그 손에 뺨을 기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안화는 조금 더 다정한 표정이 되었다. 자신이 지은 표정 중에 아마 제일 어리석고 제일로 바보 같은 표정임이 분명했다. 아직 머리를 전부 잠식하지 못한 신기마저도 외치고 있었다. ‘지금 네가 하려는 짓은 바보 같은 짓이야.’ 이집트의 왕 자리를 내주기 싫었던 악신 세트가 호루스의 눈을 먹어버렸기에 지혜의 신 토트가 새로이 만들어준 호루스의 왼쪽 눈. 모든 일을 보고 수를 뒀던 토트가 만든 눈이 엄중히 경고했다. ‘하지마, ‘나’까지 저버리고 만든 네 완벽한 계획의 정점을 일그러트릴 셈이야?’ 신기가 타박하지 않아도 안화 스스로 이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알았다. 그럼에도 안화는 신기를 침묵시켰다.



“안화!”



지휘사가 안화의 얼굴에 손을 댔다. 어떡해, 어떡해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기껏 자신이 손을 뻗어 가려줬음에도, 장갑을 버려가면서 감춰줬는데도 결국 펑펑 운다. 안화는 시야 가득 담기는 이 화면에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이렇게 된 것이다. 결국.

몇 줄 되어 보이지 않는 내용 속 담겨진 방대한 메시지. 안화는 그 메시지를 해독하며 마지막에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었다. 말도 안돼, 라며 그 내용을 부정할까 하기도 했었다.



너는 그녀를 사랑하게 될 거야.



사랑? 내가? 고작해야 반복되는 일주일, 기억은 지워진다. 사람은 그 짧은 시간 안에 사랑에 빠질 수 있는가? 안화는 부정했다. 화면 안에 깜박이는 증명사진 속 여자는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눈길을 잡아 끄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랑이란 원래 허울 좋은 말이고, 서로 대충 레벨이 맞는 상대끼리 하는 상호 동맹 계약 같은 것이라고 오만한 신의 두뇌는 평가했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호루스의 눈>도 동의했다. 첫눈에 반하는 것 따위는 없다. 분명 첫눈에 반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판단하면서도 안화는 화면 너머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와 미소에 주목했다. 지휘사를 보자마자 알았다. 그녀는 자신의 ‘퀸’이다. 자신은 플레이어고, 그녀는 그의 퀸, 체스 말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설마 다른 의미의 ‘퀸’이었을 줄이야. 지독한 두통에 눈을 슬 감자 액체가 뺨을 타고 흘렀다. 선홍빛 액체는 주룩 뺨을 갈랐다. 지휘사가 펑펑 울며 그의 얼굴에 손을 댄 이유였다.



“갑자기 왜 피가 나는 거야? 응? 수술이 잘못됐어? 레이첼에게 갈까?”

“그럴 필요 없어.”



대가가 보기 좋지는 않지만 신기는 침묵했다. 안화가 장갑의 등으로 피눈물을 훔쳤다. 볼에 길게 핏자국이 남았다. 이제 남은 것은 온전히 자신의 선택이다. 지금 마음먹은 이 행동을 함으로써 눈 앞의 이 사람은 얼마나 흔들릴 것인가. 그렇게 계획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하지만, 자신은 <안화>다. 신기가 없다고 해서, 무언가를 좀 포기했다고 해서, 그렇게 계획이 조금 어그러졌다고 해서 모든 것을 망칠 자신이 아니었다. 안화는 눈을 빛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이었다. 드디어 자신이 자신으로써 남아있는 온전한 감각. 안화가 지휘사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지휘사가 답하기도 전에, 지휘사의 뒷목을 감아 당겼다.



“……!”



지휘사가 놀랐는지 어깨가 크게 뛰었다. 하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키스하면서 눈을 감았더니 애써 닦아냈던 피눈물이 다시 흘렀다. 그 액체가 맞닿아있는 다른 뺨에도 물들었다. 동시에 지휘사의 뺨에 흐르던 눈물 또한 안화의 뺨에 물들었다. 피 맛과 눈물 맛이 감도는 키스라, 분명 최악의 키스로 꼽힐 테지. 그럼에도 입술을 떼지 못했다.



너는 그녀를 사랑하게 될 거야.

그리고 그녀 또한.



메시지에 마지막에 남겨있던 그 내용. 기억이 잊혀지더라도 사랑하게 된다는 걸까. 그게 데이터로 남길 정도로 중요한 내용일까. 오히려 더 다른 중요한 내용이 있지 않았을까. 온갖 가능성이 머릿속을 맴돌았었지만 고양이처럼 눈매를 접어 보내는 미소라던가, 타인에게 내미는 손끝이라던가, 넘어지고 굴러도 몇 번이고 일어나는 다리라던가, 그런 것을 보면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세상에서 발버둥치는 사랑에 빠진 남자. 너와 나는 사랑을 했어. 아니, 사랑을 할거야. 사랑하고 있어. 이 이후의 이야기를 너와 할거야. 사랑에 빠지는 건 너무 많이 했잖아.

자신을 생각한다면 로맨틱이라곤 1도 없는 남자다.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은 지시와 격려이지 애정 섞인 속삭임이 아니다. 키스조차도 촛불을 켜고 하는 게 아니라 사무실에서 쇠 맛과 짠맛이 나는 그런 키스다. 자신이 봐도 정말 멋없다. 그럼에도 지휘사는 팔을 뻗어 안화의 목을 감싸 안았다.

두 입술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둘은 서로의 엉망인 얼굴을 봤다. 장갑 한 켤레로는 둘의 얼굴을 수습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차와 쿠키가 함께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이 계획이 과연 성공할까? 성공하더라도 어떤 결말을 가져오지? 또다시 잊혀지는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구구절절 하게도 지저분한 최악의 키스는 입술에 남았다. 네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실행하는 계획이라니. 호루스의 눈이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알게 뭐람. ‘이 키스 때문에 네 고백이 망칠 수도 있어.’ 이번엔 안화가 비웃었다. 이 키스야 말로 자신의 사랑고백이다. 자신은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사과나무를 심을 위인이 아니다. 모르는 결말 뒤의 이상적인 고백을 기대하다 모든 것을 또 잊어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최악이더라도 결과를 내는 것이 뭐가 나쁘지?

지휘사는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자신이 안화의 키스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더더욱 의외였던지 동공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그의 어깨에 두른 팔은 아직 떼지 않은 채였다. 안화가 엉망이 된 장갑 대신 손수건을 꺼내 지휘사의 얼굴을 닦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팔을 푸른 뒤 자신의 얼굴도 정리했다. 달칵.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자신의 신기를 매만졌다.



“그러니까, 우연한 관계를 던져버리고, 또 네가 ‘절대 할 수 없는 말’을 한다는 건 시간은 비선형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지.”



방금 까지 키스를 한 남자가 맞기는 할까? 하지만 지휘사는 그에게 또 말려버렸다.



“뭐?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비선형적 인건 또 뭔데? 나한테 설명을…….”

“네 꿈나라에 연결해봐. 이제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알겠어.”

“그녀? 그녀가 누군데?”

“이 윤회를 조종하는 사람, 성스러운 별이 숭배하는 신. 세라핌.”

“너 혼자 알고 너 혼자 납득하면!”

“가지, 회의시간이다. 이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겠군.”



안화가 몸을 돌려 성큼 밖으로 나갔다. 지휘사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공을 매만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 자신도 알지 못했다. 다만 손 안에, 자신의 눈물과 안화의 피로 얼룩진 손수건이 한 장 남아있었다. 키스도 최악이더니 정표라고 남기는 것조차 최악인 남자였다. 고백조차 최악으로 하겠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다음의 최악이 보고 싶어졌다.

지휘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 시간이다.












"안화여휘로 안화여휘호루스의눈이 보고싶습니다. 모형정원 보니까 안화 신기와 안화 사이가 협력관계면서도 좋지는 않아 보이던데 삼각이면서 삼각 아닌 삼각같은 두사람과 한 신기(ㅎ)간의 관계가 보고싶어요"


라는 리퀘스트 내용에 착안하여 작성한 글입니다만은... 아마 생각하신 내용과는 많이 다르게 진행됬을 것 같네요. 제가 해석하는 호루스의 눈은 좀 이런 느낌이라....... 실망시켜드렸다면 죄송한 마음뿐이에요.

리퀘남겨주신분 원하신다면 제 업무용 메일로 '리퀘스트' 제목 넣어 메일 주세요. 텍스트본 보내드리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만화가, 콘티작가; 필명 리아/LIA 본명 오효빈 파티 - <킬, 마이달링> 완결 - 중앙일보 <타임 트레인>, 피너툰 <일상 로맨스>, <미치도록 원하는> 3~34, <다시 한번, 빛 속으로> - 1~5 외 다수hyobinliaoh@gmail.com *콘티작 혹은 작화 문의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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