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닫이문을 열자 꽃향기가 훅 끼쳤다. 촉촉한 물 향기와 생기 가득한 꽃잎 향이 코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어제 청소를 했는데도 바닥은 물기가 가득했다. 바닥에 쌓인 신문지가 얼룩덜룩하게 물들어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빨간 장미가 가득 모여 있었다. 꽃잎 사이사이에 맺혀 있는 물방울들이 붉게 빛났다. 장미는 빨리 팔리기 때문에 많이 들여 놔야 한다. 겨울이면 안개꽃과 함께 부모님들이 많이 사 가신다. 안개꽃이 눈송이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귀엽다. 내가 없을 때 자기들끼리 이야기 하는 게 아닐까. 괜히 시끄럽게 떠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포장대 위에 잎사귀와 여러 색, 크기의 꽃잎이 흐드러져 있다. 장갑은 흙물로 더럽혀져 있다. 눅눅한 냄새가 날 것 같았지만 꽃향기에 묻혀서 그리 심하지 않았다. 가위의 날 위에 투명한 물방울들이 맺혀있었다.

  장미의 꽃말은 ‘사랑.’ 안개꽃의 꽃말은 ‘죽음.’ 그래서 두 꽃으로 꽃다발을 만들면 죽을 만큼 사랑한다는 뜻이 된다. 나팔처럼 활짝 핀 거베라의 꽃말은 ‘신비한 사람.’ 거베라는 꽃잎이 엉키면 안 되기 때문에 꽃 밑에 투명한 받침대를 끼워둔다. 그 모습이 목에 깁스를 한 것 같아서 답답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 넓게 피어있는 거베라를 보면 뿌듯한 감정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튤립의 꽃말은 ‘사랑의 고백.’ 해바라기의 꽃말은 ‘숭배.’ 해바라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다. 해가 뜨면 그것만을 바라보고 해가 지면 자신도 고개를 숙이는 해바라기의 충성스러움이 좋았다.

  포장지를 정리하고 있을 때 손님 한 명이 찾아왔다. 긴 머리를 간단하게 묶고 노란 카디건을 입은 여자 손님. 순간 복숭아 향이 훅 끼쳤다. 손님은 해바라기도 파느냐고 물었고 난 세 송이가 있다고 말했다. 다발로 꾸며줄 수 있냐는 말에 포장지가 없어서 신문지로 감싸서 줘도 되냐고 내가 되물었다. 손님은 고개를 끄덕였고, 덜 핀 해바라기처럼 웃으며 얼굴을 늘어뜨렸다. 해바라기의 잎을 정리하고 있을 때 손님은 왜 세 송이만 남았냐고 물었다. 나는 집 앞에 많이 심어놨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만 보고 싶어서 가져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손님은 자신이 특별하다고 받아쳤다. 특별한 세 송이를 자신이 다 가지게 되었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되는 걸까. 손님에게 신문지로 감싼 해바라기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인사 대신 해바라기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손님의 웃음은 활짝 피었다. 해바라기 세 송이가 누워 있던 자리가 텅 비었다. 커다란 노란색이 사라지니 왠지 허전했다.

  너는 해바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꽃은 다 좋아했지만 해바라기만 싫어했다. 가운데에 있는 갈색 원이 징그럽다고, 그 속에 콕콕 박혀 있는 초록색 털 같은 알갱이가 거슬린다고 했다. 꽃은 아기자기 해야 예쁘고 보기 좋은 것인데 해바라기는 너무 크다고, 그래서 싫어했다. 심지어 자신이 싫어하는 여름에 핀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자기 눈에 해바라기는 가장 못생기고 징그러운 꽃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식. 너와 내가 같이 졸업하는 날이었지만 너에게 꽃다발을 주고 싶었다. 너한테서 해바라기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커다란 해바라기를 줄 생각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니 해바라기를 볼 때마다 나를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너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튤립 세 송이를 준비했다. 사랑의 고백. 너는 튤립의 꽃말을 모를 테니까. 나는 너에게 몰래 내 마음을 전했다. 지금쯤이면 알아차렸을까. 네가 튤립을 들고 나에게 다가오는 상상을 했다.

  네 곁에 해바라기가 피기를 바란다. 지금 네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디든 네 옆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네 곁에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맑은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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