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아시-! 나 결혼 날짜 나왔어! 집도 구했고!"
난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그런데 지금 당신이 한 말은 내 마음을 죽였어.
그러니까 당신도 죽어줘야겠어.*
***
시작은 당신이 내민 손이었고
그 거칠은 손이 내겐 참으로 든든하고 따뜻해서
나는 오롯이 나를 당신에게 바쳤다.
그런 나의 헌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나의 오만이었고 자만이었다.
그런 나에게 당신은 끝을 알렸고
그 끝은 나여야 했다.
***
내 기억의 시작은 어릴적 방에만 있던 나를 찾아와
황금빛 아름다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던 당신이었다.
몸이 약해 겨울이면 아무것도 하지못하고 방 안에 박혀 있던 나는 그 어렸던 나이에도 반응이 없는 숨쉬는 인형이었다.
그런 나를 걱정하며 어엿삐여겼던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바빴던 탓에 내 주의에는 무기력하고 무감각한 나를 꺼려하는 시중인들뿐이었고 그런 이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더 나를 감싼 안온한 심해로 침잠했다. 나는 그 심해를 떠다니는 고래였다.
그런 나를 안쓰러이 여기신 조부께선 친우의 손자에게 나에 대해서 얘기하셨고 그 얘기를 들은 당신은 한달음에 나에게 와주었다.
어렸던 당신에겐 그저 새로운 놀이였을 것이다.
아마 당신은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죽은 눈으로 자신만의 심해에 침잠한 나를 보는것은 나에게도 구역질이 났을 테니까...
그런데도 당신은 심심함이 더 컸던 것인지 나를 피하지 않았었다. 끈질기게 내가 심해를 벗어나 수면위로 숨을 쉬러 올라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렇게 심해를 떠다니던 내가 숨을 쉬러 올라온 틈을 타 당신은 그 황금빛 눈으로 나를 포획했고 나는 바다를 떠나 당신의 수조로 옮겨갔다.
아무리 내가 고래이려 했다지만 나는 결국 사람이었고 당신의 온기서린 관심은 당신의 수조에 적응하게 하였고 나는 그 수조속에서 당신만을 보며 자랐다.
당신을 이룬 모든것이 나의 수조를 이루었고 나는 그 속에서 당신의 애정을 갈구했다.
그러나 당신의 애정은 너무나 변덕스러운 것임을 알았기에 나는 당신의 수조에서 몸부림쳤고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했다.
수조를 벗어난 척했다. 물 없이도 살 수 있는 척했다.
그렇게 당신의 애정을 갈구하려 당신의 주위에서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당신의 수조 속에서 살았다.
여전히 나의 눈은 당신을 바라봤고
당신이 부르는 나의 이름에 나는 내 온 마음을 담았다.
내 세계가 오롯이 당신으로 이루어져있기에 나는 당신의 세계가 오롯이 나로이루어져 있기를 바랬다.
당신이 나를 버릴 수 없게
나의 존재가 당신에게 더욱더 도움이 되기를
그렇게 당신의 속에서 점점 커져 당신의 세계에서 맘껏 헤엄칠 수 있기를.
시간이 흐르고
장난감에 가까웠던 내가, 당신의 소중한 동생이자 친구가 되고,
한 없이 돌봐주어야 했던 내가 당신을 더 챙겨줄 수 있을 때가 되었을때,
그리고 당신의 등에 내가 기댈 수 있었던 것처럼 당신도 나에게 의지하게 되고-
더 나아가 당신과 하루의 모든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을 때-,
나는 어리석게도 당신이 나를 버릴 수 없을 것이라고 자만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의 한마디가 나의 마음을 죽였고,
나의 수조를-, 나의 세계를 파괴하였다.
나는 깨달았다.
결국 나는 수조를 벗어나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고-
당신이 만들어 준 나의 수조가 넓다하여 언제까지나 그 속에서 살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내가 말라 죽기전에 끝을 매듭짓기로 했다.
내 수조는 결코 맑지 않았다.
언젠인가 부터.. 아니 처음부터 당신을 잃지 않겠다는 나의 독이 수조를 가득 채웠고
어느 순간 나의 수조는 그 어린 날의 심해와 같아졌고 수조 속 물은 독이 되었다.
이기적인 나만을 위한 독이다.
당신과의 마지막을 위하여
수조 속 심해와 같은 독을 한방울-
우린다
당신과 나의 마지막 시간을 위한 차를,
온전히 나만을 위한 차를-.
건넨다.
달콤한 거짓말과 함께-
"여기 차요-, 뜨거우니 조심히 드세요. 그래서 집은 언제 옮긴다고요-?"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와 같이 환한 웃음과 감사와 함께-
"고마워, 아카아시! 집은 음- 조만간? 사실 아직 내부 수리가 덜됬대- 그러니까 나 당장 내쫓으면 안된다-?"
한모금-.
"앗- 뜨거.....어...?"
그리고 내 차례.
"당신은 나를 버려선 안됬어요. 당신이 나를 심해 속에서 건졌으니 내 끝은 당신이어했고 당신도 그랬어야 하는데.. 왜 나를 버리나요... 그러니까 이건 당신 잘못인거예요. 내가 바로 잡은거예요."
의식이 멀어진다.
'나의 바다- 나의 수조-
당신을 사랑합니다-, 보쿠토 상-'
나는 심해의 상어였고
당신이 만든 어여쁜 수조 속 당신의 고래인척 하는 상어였으며
당신은 나를 심해에서 건져내서는 안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성녀의 구제' 12면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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