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 네 혀 좀 내가 맛봐도 돼?


미친 가시내가 왔다. 바다를 닮은 이름의.




-머대요.

-내일 서울서 아가 하나 온댜. 델러 갈 수 있냐.

-뉜대요.

-...손주.


지순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음을 느꼈다. 손주라니. 할매는 폴더폰 속의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이내 똘칵- 하고 닫았다. 그러고선 우물우물 밥을 먹는 할매의 눈은 슬퍼보이기도 하고 기뻐보이기도 해서 지순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들을 이내 삼켰다. 할매가 자식이 있었나. 나한테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나. 섭하게. 난 이제 어떻게 되는거지. 밥알이 마치 자갈조각처럼 입 안에서 덜그럭 거렸다.


-내일 1시꺼정 뻐스터미날로 가면 된디. 알제? 가는길은 김씨네 둘째아가 태워줄기라.

-뉜지 우예 알아요.

-보믄 안디. 니 또래 서울아 하나 있을끼다.

-...야.

-앞으로 여서 살껨시롱 잘혀주그라.

-야.


할매의 말이 지순의 마음에 콕콕 박힌다. 설거지를 하느라 표정이 할매헌티 안보이는게 참말로 다행이라고 지순은 생각했다. 이제 이 집의 외부인은 나니까, 처신을 잘해야 한다.

나랑 같은 또래의 서울서 온 깍쟁이. 아마 나와는 다르게 허옇고 말끔하게 생겼겠지. 괜히 거울을 들어 모습을 꼼꼼히 살펴본다. 나는 햇살에 이리저리 타고 머리도 사내아이만치 짧고 물질하느라 손에 굳은살도 많고... 어딜보나 곱진 않은거 같은데. 서울아는 어떻게 생겼을까.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눈도 초롱초롱하고 몸짓도 하늘하늘하니 발레를 배웠을지도 몰라. 어쩌면 새침하니 나랑 잘 안 놀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데면데면하게 굴라나? 지순은 눈을 도록도록 굴렸다. 그래도 이 깡시골에 내 또래가 온다니 그건 좀 좋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꿈에서 지순은 어느 성 안의 공주였다. 그 성은 아주아주 깊은 숲 속에 있고 아주아주 높아서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는데, 어느날 성 근처에 서성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지순은 호기심을 느껴서

"거 누구쇼?!"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그 사람은 소리가 들린 곳을 잠시 쳐다보더니 갑자기 등 뒤에서 도끼를 꺼내 성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쿵-! 쿵-! 소리가 들리며 성이 흔들리고 지순은 하지말라며 말리려 했으나 그 자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마지막 도끼질이 찍히고 성은 기우뚱 하고 넘어갔다. 중심을 잃은 지순이 땅에 부딪히려는 순간


"허억-."

하고 꿈에서 깨어났다. 그 깍쟁이를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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