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화 보기★


#48

 

“그런데 말이야, 세라.”

“응?”

 

속 시원한 해답을 내놓은 마르크는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다 세라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마르크의 눈동자는 고뇌를 한 숟가락 얹은 듯 짙은 빛을 띠고 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서서 고민하던 마르크가 겨우 말을 이었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너 왜 두 명이야?”

 

마르크가 말을 마치자, 커튼 뒤에 숨어 있던 또 한 명의 세라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세라와 마르크의 곁에 다가왔다.

완벽하게 세라와 똑같이 생긴 남성이어서, 그래서 마르크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두 명의 세라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좋은 아침, 마르크. 인사가 늦었네.”

“헉. 정말로, 세라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두 명이 된 거야?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지? 환각을 보고 있다든가, 여전히 꿈속에 빠져 있다든가.”

“그런 거 아니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마르크의 말에 세라가 대답했다. 그러고는 세라는 굳게 결심한 듯 이번에는 정말로 문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지금은 바쁘니까 그런 건 나중에 이야기할게. 사건의 전모를 세세하게 풀어내려면 시간이 필요하거든.”

“맞아, 맞아. 나랑 세라가 있잖아, 그런 일도 있었다? 막, 세라가 팬티 속에 줄을 넣는데…”


거울 속에서 나온 세라가 막 마르크에게 말을 붙이려던 참에, 별안간 지진이 일어난 듯 바닥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랠프의 저택을 두 손에 쥐고 사정없이 뒤흔드는 것 같은 느낌으로.

하마터면 뒤로 고꾸라질 뻔한 두 명의 세라와 마르크는 할 수 있는 대로 침대와 소파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때 벌컥 문이 열리더니 랠프와 알베르트가 방으로 들이닥쳤다.

 

“지금, 행성에 큰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를 건네고 싶지만, 그럴 상황이 아닌 것 같네요, 여러분. 후후, 안녕히 주무셨나요?”

“알베르트! 랠프 씨!”

 

알베르트와 랠프는 언제 준비를 마쳤는지,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고, 알베르트는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어제의 환자복 컨셉도 좋았는데,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라뿐이었다.

마르크는 멍한 얼굴로 알베르트와 그 옆에 있는 처음 보는 남성을 쳐다보았다.

랠프가 사근사근하게 웃었다.

 

“행성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뭐라고요? 행성에요?”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저택은 심하게 흔들렸다. 천둥번개가 온통 하늘을 휩쓰는 것처럼.

랠프가 말을 이었다.

 

“사실, 여기는 6행성입니다. 여러분은 눈치채지 못하셨을 수도 있지만.”

“그야, 모르죠.”


세라가 대꾸했고, 랠프가 웃었다.

 

“알베르트의 침실은 5행성, 제 저택은 6행성에 있지요. 6행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은데, 아쉽게도 그럴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군요. 6행성은 5행성의 그림자. 우주에서 사라진 수많은 영혼, 쉽게 말하면 유령의 행성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때 파스스 부서지던 천장이 흔들흔들 움직이더니 두 명의 세라와 마르크, 그리고 랠프와 알베르트의 사이에 쿵, 하고 떨어졌다. 부슬부슬 뿌연 연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천장이 뻥 뚫려, 푸른 하늘이 훤히 내다보였다.

랠프는 침대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이불을 들어 올렸다. 먼지를 털듯이 한두 번 손바닥으로 탁탁 치더니, 이번에는 공중에 이불을 휙 던져버렸다.

 

“이, 이게 뭐예요?”

“여러분이 보는 대로랍니다.”

 

마치, 하늘을 나는 양탄자처럼, 러블리한 이불이 공기 중에 둥둥 떠 있었다.

랠프가 모두에게 손짓했다.

 

“일단, 시간이 없으니 모두 여기에 타세요! 이걸 타고 행성을 빠져나갈 거예요!”


세라와 마르크와 알베르트는 너도나도 이불 위에 올라탔다. 건장한 남성 세 명이 솜이불에 올라타면 바닥으로 푹 꺼져버릴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이불은 세라와 마르크와 알베르트를 튼튼하게 받쳐 주었다.

마지막으로 랠프가 이불 위에 올라탔다. 이불이 둥실둥실 하늘로 날아올랐다.

 

“떨어지면 나도 모릅니다. 잘 잡아야 해요.”

“으아악.”

 

그중에서 이불 비행을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역시나, 마르크였다. 마르크는 두 눈을 꼭 감고 세라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알베르트는 넥타이와 옷깃을 톡톡 털며 정리했고, 랠프는 은테 안경을 벗어, 안경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안경알이 금빛으로 번쩍 빛나더니, 곧, 4행성과 체르트의 상황을 비춰주었다.

놀랍게도, 위성이 행성을 꿀꺽 삼키는 모습이 보였다.

작은 초콜릿을 삼키듯이, 그렇게 한 번에.

 

...

 

“흐윽, 싫어…아기 낳기 싫어.”


슈는 눈물을 글썽이다가 곧 울음을 터뜨렸다. 슈가 엉엉 울기 시작하자, 테오는 슈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테오의 몸이 따뜻했다.

 

“괜찮아요, 슈. 형아가 있잖아요. 슈가 아기를 낳을 때, 형아가 옆에서 슈의 손을 꼭 잡아줄게요. 하나도 아프지 않을 거야, 응?”

“싫어, 싫어. 테오는 아무것도 몰라. 흐윽…으응, 싫어.”

 

테오는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내어 우는 슈를 침대에 눕혔다. 한참 동안 서럽게 울던 슈는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테오는 슈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슈가 다시 고개를 돌려 테오를 바라보았다.


“슈. 형아 싫어?”

 

테오가 물었다. 슈는 대답이 없었다.

테오는 손가락으로 슈의 입술을 톡톡 건드리다가 그새를 못 참고 슈에게 키스했다. 입술이 맞닿고, 혀가 겹쳐지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숨을 나누었다.

두 사람의 숨결이 뒤섞인 온기가 슈의 뺨에 닿았다.

 

“슈. 말해 줘요. 형아 싫어요?”


슈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색색, 숨을 고르고 있었다. 테오가 슈에게 말했다.

 

“슈. 시온이 그랬어. 슈는 알을 낳을 거라고. 삼 개월 정도 배가 부르면, 주먹만 한 하얗고 탐스러운 알 하나를 낳을……”

“싫어!”

 

테오가 미처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슈가 테오에게서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쳤다. 침대를 나서려는데, 테오가 슈의 몸을 뒤에서 꽉 끌어안았다. 슈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슈는 발을 동동거렸지만, 그보다 훨씬 큰 남성에게 당해내지 못했다. 슈는 테오의 넓은 품에 안겨 이불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테오가 슈에게 속삭였다.

 

“슈, 무서워요?”

“무서워. 아기 싫어. 테오도 싫어. 다 싫어.”

“슈우, 형아가 있는데도 무서워요?”

“싫어, 무서워, 아기 낳고 싶지 않아.”

 

그리고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호텔이 어지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소설에 대한 투표가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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