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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내용은 실제 역사 인물 및 사건과 관련 없습니다.







  여기 온 이후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처음이라 그냥 끝내기 아쉬워서 정건은 일부러 후렴을 한 번 더 불렀다. 그러면서 그는 제현을 보았다. 무슨 평이 나올지 궁금했다. 어떻게 들었을까. 두근두근하며 정건은 제현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으나 제현은 조금 놀란 눈으로 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적막이 흐르니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제가 제현의 손을 잡고 있음을 깨닫고 정건은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 더욱 뻘쭘해졌다. 정건은 괜히 등불에 꼬여 날아다니는 벌레들을 보았다.


  프레셔스에는 메인보컬이 두 명이었고 정건은 그중 하나였다. 지호만큼 기교가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음색이 좋아서 그 점을 잘 살리는 곡을 부르면 좋은 반응을 받았다. 워낙 미성인지라 팬들에게는 하늘에서 방금 내려온 것 같다는 둥 더러움이 정화되는 기분이라는 둥 천사와 관련된 감상이 많았다. 소속사에서 처음 데뷔할 때부터 그런 쪽으로 이미지를 잡아주기도 했다. 노래 프로그램에 나가서도, 전문가가 감탄하며 맑고 청아하고 깨끗한 목소리는 신이 준 선물이라고 말도 해주었다. 안티가 아니라면 노래해서 안 좋은 평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제현은 다르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과거는 현대와 문화가 다르니까. 자신이 이상한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민요를 불렀어야 했나? 그렇지만 민요는 분위기가 안 살잖아. 아 정건아. 난 네가 분위기를 잡아서 뭘 어쩌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제현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지만 좋다고 말하기에도 오묘했다. 이 남자가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기에 지금도 사실 별론데 티를 안 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 어땠어요?”


  침묵을 견디기 어려워 묻자 제현이 그제야 몸을 움찔하며 그를 보았다.


  “므슴 말싸믈 하셨어요?”

  “제 노래요. 어땠어요?”

  “됴았이라. 므슷 말간 모라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뜻이지? 뭘 부를까 고민하다 영어 가사가 없는 곡으로 골랐는데도 시간의 간격을 메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제현이 등불을 들지 않은 손으로 자신의 손을 잡아서 정건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를 보았다. 부드러운 눈으로 정건을 보며 제현이 말을 이었다.


  “그려도 아람다워요.”


  역시 시간이 다르고 말이 다르고 문화까지 달라도 노래는 통한 모양이다. 가사야 뭐 내가 당신을 참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중요하지 않다. 내 노래가 아름답게 들렸다면 된 거다. 아람답다는 게 아름답다는 거겠지? 다른 뜻은 없겠지? 설령 다른 뜻이 있더라도 아름답다고 해석할 정건이 기분이 좋아져서 비시시 웃으니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놓은 제현이 물었다.


  “하나만 엳잡노니 정건님은 어드록 먼 미래애셔 온고?”


  얼마나 먼 미래에서 왔냐고 물은 건가? 자신에 대한 질문을 할 거라는 기대를 조금 했기에 아쉽긴 했지만 정건이 제현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 건 모르기 때문이다. 조선 건국이 언제더라. 500년은 더 전일 텐데. 무신정권 다음 원이 간섭했고 그 후로 얼마나 있다가 고려가 망했는지 모르니 상관없나? 애당초 연표를 알았다면 원나라와의 전쟁이 언제였는지도 알았을 것이다. 정건은 대략 어림잡아 대답했다.


  “천 년 정도 뒤일 거예요.”

  “쳔 년 말쌈인고? 매오 멀어요.”

  “그쯤이면 천지가 개벽해도 이상하지 않겠지요?”


  기와를 얹은 집들이 아니라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건물들이 빽빽하고 사람들은 가마나 달구지가 아니라 강철로 된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그런 미래를 이 사람은 말해준들 상상할 수 있을까.


  “더 궁금한 건 있어요? 미래에서 왔다는 것도 말했겠다 뭐든 대답해줄게요. 아 그래. 내가 당신보다 나이 많은 거 알아요?”

  “나이?”

  “내가 산 세월이 더 길다고요.”

  “세월?”

  “네. 난 스물 다섯 살이에요.”

  “스믈 다삿? 세월이 해달 말쌈이요?”


  제현은 엄청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자신의 나이를 어떻게 생각했기에 이리 놀라는지 모르겠다. 눈을 동그랗게 뜨니 자신보다 동생이라는 게 확실히 느껴져서 정건은 환하게 웃었다.


  “다란 분들도 나히 다하요?”

  “비슷하다고 묻는 거냐면 네. 연두…… 그러니까 라임이가 가장 어려요. 스물 네 살이거든요. 그래도 제현 씨보단 나이가 많네요.”

  “그러하믄 여슷 분셔 앗가톄로 한 놈들 알패셔 롤애랄 브른요?”


  놈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좀 당황했으나 옛날에는 놈이 욕이 아니었다고 배웠던 것도 같다.


  “롤애가 뭐죠?”


  그가 묻자 제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뭔가를 흥얼거렸다. 아까 정건이 불렀던 노래를 흉내 내는 모양이다. 롤애, 노래. 말하고 보니 비슷하다. 제현의 노래에 정건은 웃음을 터트렸다. 제현이 입을 다물고 그를 보았다.


  “아. 미안해요. 놀리려고 웃은 게 아니라 그렇게 들렸나 싶어서요. 음…… 방금처럼 한 사람 앞에서 부르는 경우는 별로 없고 보통은 많은 사람 앞에서 불러요.”

  “미래난 한을 하나곳 스는 모야히라.”


  제현은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방금 부른 노래는 우리 게 아니라 다른 선배님의 노래예요. 우리 노래는……”


  정건은 빠른 비트를 흥얼거렸다. 원래는 음악 방송에서 신곡 소개를 할 때 부르기로 되어 있던 부분이다.


  “이게 이번에 발표한 노래예요. 우리는 정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요. 다른 나라에도 가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죠.”

  “듕귁이요?”

  “중국 말고도 여기저길 가요. 일본이랑 태국도 가고 베트남도 가고 전에는 미국도 갔어요. 미래에는 먼 거리도 오갈 수 있거든요.”

  “벽란도애 장수달 모도닷 말요?”

  “모도는 게 뭐죠. 못 오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모인다고요? 사람들이 모이는 거라면 맞아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죠.”


  그런데 여기, 고려에 와서 지금 뭐하는 거람. 컴백 첫 주, 그것도 첫 무대였는데. 한국은 난리가 났을까? 사전녹화를 마치고 갑자기 단체로 사라졌으니 난리가 났겠지? 무대에서 내려오다 이리로 왔으니 우리가 사라지는 걸 본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우울했던 얼굴을 능숙하게 웃는 표정으로 바꾸고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정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늦었네요. 이러다 등이 꺼지겠어요. 이만 자러 갑시다.”


  정건의 말에 제현이 뒤따라 일어났다.


  “에. 가사이다.”


  등불을 들고 있으니 앞장서려는 듯 앞에 섰던 제현이 갑자기 돌아보았다. 정건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보았다.


  “져라와 나 만하믄 말싸믈 편히 해도 다위요?”

  “말쌈…… 말을 편히 하라고요?”

  “에. 얼운이오니 편히 하사요.”


  정건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럼 제현 씨도 말을 편하게 해주세요.”

  “얼운에게 그럴 줄은……”

  “나 혼자 말을 놓으면 불편한데요. 너무 편하게 대하는 거 같아서 부담스러우시면 정건 형이라고만 불러주면 되잖아요.”


  제현은 쉽게 대답하지 못 했다. 정건은 그에게로 한 걸음 다가가 부드럽게 말했다.


  “불러볼래요?”


  그의 말에 제현은 머뭇머뭇하다 말했다.


  “정건 형.”


  생각했던 것보다 더 형이라 불리는 건 기분이 좋았다. 형이라는 단순한 호칭이 이토록 사랑스럽게 들리다니. 정건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응. 그래. 제현아.”

  “엳 가져.”


  또 말을 높였으나 고려 시대의 높임법을 모르는 데다 높였더라도 너무 허들을 내릴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정건은 조용히 제현의 뒤를 따라갔다. 말을 놓으니 제현과 조금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제현의 등을 보며 돌아가는 내내 정건은 웃음이 나와 히죽거렸다.

자신들이 머무는 건물에 도착하자 정건은 제현을 앞질러 그의 앞에 섰다.


  “오늘 데리러 와줘서 고마웠어. 잘 자. 제현아.”


  그래봐야 최우의 집 안이었지만 둘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정건의 말에 제현은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형도 안녕히 즈므세요.”

  “말 놓으라니깐.”

  “응. 잘 자.”

  “데려다 줄까?”

  “괜찮아요.”


  제현은 고개를 꾸벅이고는 도망치듯 빨리 걸어갔다. 방금 전 정말 완벽하게 현대인처럼 말했다. 생각해 보면 제현이는 우리 시대에 반말을 어떻게 하는지는 파악 못 한 거 같았으니 말을 놓는 게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부끄러워하는 것도 귀엽네. 등불을 든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보다가 정건은 방으로 들어갔다.


  최우는 건물 하나를 통째로 프레셔스에게 내주었고 덕분에 그들은 혼자 방을 써도 될 정도였다. 본래 프레셔스가 쓰던 숙소도 넓고 땅값 비싼 동네에 있고 좋은 집이었으나 한 시대를 지배하던 권세가의 집은 차원이 달랐다. 숙소에서 머물던 것처럼 선일과 연두는 같은 방을 썼지만 정건은 원래도 방을 혼자 썼기에 지금도 혼자 잤다.


  방에 불이 켜져 있기에 하인이 켜 놓았나보다 생각했는데 안에 들어가니 지호가 있어서 그는 조금 놀랐다. 지호도 그처럼 혼자 방을 썼기 때문이다.


  “뭐야. 너 왜 내 방에 있어?”

  “나 오늘 여기서 잘 거야.”

  “네 방 놔두고 왜?”

  “제현 씨랑 데이트는 잘 했냐?”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찾아온 건가 짐작하던 정건은 데이트라는 말에 하려던 말을 관두었다. 말 돌리려는 의도가 잘 보이지만 어울려주기로 했다.


  “네가 제현이한테 나 찾아달라고 했어?”

  “오오올, 제현이래. 오오. 이정건 뭐야. 설마 벌써 사귀기로 했어?”

  “사귀기는 무슨. 아니거든? 그냥 말을 놓기로 했어.”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엄청 가까워졌네. 이 형아가 부탁한 보람이 있다.”

  “형아는 무슨.”

  “나 잘 했지?”


  겉에 입은 저고리를 벗어놓은 정건은 지호에게 다가가 그의 뺨을 잡았다.


  “그래. 잘 했으니 뽀뽀해줄게.”

  “으악, 됐거든!”


  두 사람은 의미 없는 실랑이를 하다가 이부자리에 누웠다. 요가 넓으니 둘이 잔다고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정건이 불을 끄고 지호의 옆에 가서 누웠다.


  “쪙.”


  눕고도 조금 시간이 지나자 등 뒤에서 지호가 그를 불렀다. 아직 잠들지 못한 모양이다.


  “왜 불러. 쬬."


  정건도 잠이 오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불러놓고도 지호는 답이 없어서 그는 돌아누웠다. 어둠 속에서 천장을 보고 있는 친구가 보였다.


  “우리 돌아갈 수 있겠지?”


  어둠 속에서 그제야 지호는 불안한 마음을 슬며시 꺼내놓았다. 그들의 상황이 이 어둠과 같기 때문일까. 무슨 원리로, 어떻게 여기 오게 되었는지 모른다. 누가 왜 자신들을 이 시대에 던져놓았는지 모른다. 항의를 하려 해도 그 대상이 신이어서야 이길 수 없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


  “응. 돌아갈 수 있어.”


  그래도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천 년의 차이는 크다. 계급제가 존재하고 사람이 쉽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이런 곳에서는 살 수 없다. 제현이 맘에 든다 해서 정건은 여기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두 사람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호가 말을 하지 않아서 정건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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