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주차장이 있는 D 게이트 까지는 비교적 좁은 골목을 걸어야 했다. 저녁과는 다르게 불이 꺼진 모습이 어딘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묵묵히 걷는 그와는 다르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 지 몰라 괜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불 다 꺼진 모습은 좀 새롭죠.”

   “네. 그러네요. 좀 무섭기도 하고.”

   “무서워요?”

   “괜히 공포영화 같잖아요. 버려진 놀이공원… 갑자기 귀신 튀어나오고. 그런 거요. 하하.”

   그가 귀신이 튀어나오는 흉내를 내며 웃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해서 나도 덩달아 웃었다.

   “귀신의 집 캐스트도 하셨었나 보네요. 엄청 실감 나요.”

   “하하. 그건 아니고, 다음 시즌이 할로윈이잖아요. 다음 시즌에는 아마 뱀파이어 분장을 할 거예요. 양복 입은 뱀파이어.”

   나는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의 뒤편으로 불 꺼진 가게들과 하얗게 빛나는 달이 보였다. 양복을 입은 뱀파이어라, 머리는 흑발로 염색하겠지? 은발이려나? 소름이 끼치도록 하얀 피부에 입가와 목에는 가짜 피를 잔뜩 묻힐 지도 모른다.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길이 어두워서 다행이다.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으니까.

   “보러 와요. 꼭이요. 그때는 같이 춤추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잡아먹는 시늉을 할 거거든요.”

   잡아먹는다는 말에 깜짝 놀라 몸이 확 튀었다.

   “네?? 잡아먹어요? 어, 어떻게요?”

   “음… 이렇…게?”

   그가 허공에 대고 목을 확 낚아채 물어뜯는 시늉을 했다. 생각보다 실감 나는 연기에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와… 무섭… 네요.”

   “하하. 미안해요. 무서웠어요? 너무 리얼하게 했나.”

   그가 손을 뻗어 나의 어깨를 살짝 토닥였다.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부드럽게 토닥이는 손길에 움츠렸던 몸이 조금 풀어지자 그가 손을 다시 물렸다. 그는 다시 평온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놀이공원 퍼레이드라고 해도, 너무 코믹하기만 하거나 아이들의 관점으로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할로윈은 일 년 중 유일하게 성인들이 주축이 되어 즐기는 컨텐츠라서 무서울 땐 확실하게 겁을 줘야 한다고. 그러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오로라 샵에도 할로윈 테마의 굿즈들이 입고되어 정비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각자의 일터는 다르지만 같은 행사 주제를 공유하다 보니 이야기가 잘 통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다. 직원 주차장에 도착하여, 그가 스마트키로 하얀색 스포티지의 잠금을 해제했다. 조수석의 문을 직접 열어주며 그가 미간을 약간 좁혔다. 

     “타요, 차가 좀 정신이 없어요. 제가 짐이 많아서…”

    그는 바로 뒤편의 좌석 문을 열어 들고 있던 가방을 던져넣었다. 뒷자리에는 비닐이 씌워진 옷가지들이 몇 개 걸려 있었다. 짐이며 구두, 운동화들이 몇 켤레씩 바닥에 널려 있는 것이 보였다. 사원 기숙사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5분 정도 가니 금방 도착하는 바람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말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시동을 끄고 창문을 약간 내리며 머쓱하게 웃었다.

   “음… 커피라도 사 들고 올 걸 그랬나 봐요.”

   나는 가방에서 그가 선물로 준 오망이를 꺼냈다. 잠시 오망이의 미간을 쓰다듬다가, 말을 이었다.

   “오망이는 사실… 오망이 인형은. 샵에도 수십 개가 있어요. 재고가 떨어지면 그때그때 떨어지지 않도록 주문을 넣어 입고 시켜요. 그러니까, 상품일 뿐이죠. 이윤을 남기기 위해 존재하는. 하지만 전, 수백개의 오망이가 전부 다 다른 오망이처럼 느껴져요. 이 오망이들이 어디에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오망이가 아니라, 단 한 사람에게 유일하게 존재하는 오망이가 되길 바랐어요.”

   나는 오망이를 쓰다듬는 손길을 잠시 멈추고 오망이의 작은 몸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내 손으로 수많은 오망이들을 주인에게 보내주었어요. 그랬어도, 그것이 내 오망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내 것이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나는 눈을 들어 운전석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건물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그의 한 쪽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고요히 내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이 오망이는 이제 저한테 특별한 존재에요. 얘를 볼 때마다 저는 당신이 저에게 준 위로를 떠올릴 거에요.”

   그는 내 말을 듣고 있다가 고개를 약간 숙였다.

   “당신은..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인형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를 보면 느껴져요.”

   “맞아요. 좋아하는 점도 있고, 힘든 점도… 당신은 어떤데요?”

   그는 허리를 세우고 어깨를 뒤로 젖혔다가 되돌렸다. 그는 자기 일을 좋아한다고 했다.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의 그의 얼굴은 생기가 넘쳤다. 한때는 무대 위에서 완벽에 가까운 기예를 펼치는 것만이 자기 길인 줄로만 알던 시절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표정을 가까운 곳에서 직접 볼 수 있고, 힘들고 지친 표정이 꿈에 젖어 행복하게 변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먼 곳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그에게, 내가 물었다.

   “그날 퍼레이드에서, 왜 제 손을 잡았어요?”

   그는 멈칫하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퍼레이드를 보고 있는데도 표정에서 슬픔이 가시지 않았어요. 그런 사람들에겐 약간의 마법이 필요한 법이죠.”

   나는 눈을 내리깔며 웃었다. 군중 속에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표정이 다 보였구나.

   “그날… 같이 춤출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 마법, 확실히 잘 통한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놀이공원을 동경했거든요. 꿈과 환상의 나라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지금처럼 불이 다 꺼지고 볼품없는 순간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그리고…”

   나는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내 표정이 점점 굳는 것을 눈치챈 그는 내가 다시 말을 잇길 기다렸다. 내가 말을 쉽게 찾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는 지금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해주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럼 다음에, 기회 있으면요. 라고 덧붙였다.

   창밖으로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산속에 있는 건물이어서 그런지, 사방이 온통 고요한데 벌레 우는 소리만 들려왔다. 너무 조용해서 옆 사람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몸의 긴장을 풀고 시트에 몸을 기댔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모르겠다. 내가 말할 때면 조용히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이 사람에게 모든지 말하고 싶은데. 나를 소비하려 하지 않는, 어쩌면 내 모습 그대로를 봐줄 지도 모르는 이 사람에게 자꾸만 얘기하고 싶은데. 밤은 점점 깊어가고, 마법 같은 침묵이 자꾸만 대화를 가른다.

   “종종 연락해도 될까요?”

   그가 자기 핸드폰을 내밀었다.

   나는 핸드폰을 받아들고서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아직까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 사람이 무슨 의도로 나에게 접근하고, 호의를 보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길 원하는지. 이 사람은 가게 앞에 대뜸 찾아와 연락처를 쥐여주거나 번호를 알려달라고 조르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가 나에게 보이는 관심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알아야만 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왜… 그러시냐고 묻는다면. 제가 너무 눈치가 없는 건가요.”

   그는 웃지 않았다. 진지하면서도 약간 들뜬 듯한 투로 그가 말했다.

   “여기서 제가 뭐라고 대답하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일들이 정해지겠네요.”

   나는 고개를 짧게 저었다. 아뇨.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분명히 대답했다.

   “조금 멀리 돌아갈지, 똑바로 갈 지. 그 문제일 거에요.”

   그 역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의 말을 받았다.

   “지금 당장 일어날 지, 조금 천천히 갈지의 문제이겠죠.”

   그는 담담히 나의 표정을 읽었다. 나는 핸드폰에 내 이름과 연락처를 입력한 후 전화를 걸었다. 곧 가방 속 핸드폰이 울려 꺼내 들자 발신 번호가 보였다.

   “우신재에요. 나이는 스물 세 살.”

   핸드폰을 받아든 우신재가 전화를 끊고 몸을 약간 내 쪽으로 숙였다. 가까워진 거리에 밝은 색을 띤 그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나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날, 우리 같이 춤 췄을 때 일어났던 마법... 더 해보고 싶어서요. 그냥, 같이 있다 보면... 무언가 더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요?"

   한 줄기 상쾌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그 마법은 우신재의 말 그대로, 분명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매혹되고, 붙잡고 싶고... 이런 걸 홀린다고 하던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해보고 싶다는 그의 말이 낙관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나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긴 속눈썹이 팔랑이는 것이 보일 정도로 그의 얼굴이 가까워져 왔다. 하던 생각마저 잊을 정도로 나는 그의 시선에 사로잡혔다. 입술이 살짝 벌어진 것도 같았다. 이상하게 피할 수 없는 느낌에 살짝 정신이 멍해질 무렵, 그가 가볍게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콩 부딪히고는 씩 웃었다.

   "대답이 됐을까요?"

   나는 대답 대신 다시 그의 자리로 돌아가며 보이는 미소를 눈에 담았다.

   방으로 돌아와 씻고 옷을 정리하고 마침내 침대에 누울 때까지, 나는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가까운 거리로 다가왔을 때 마주친 그의 시선, 장난스레 씩 웃으며 돌아가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핸드폰에 저장된 그의 이름과 연락처 위를 엄지로 쓸어보았다. 우신재. 그 사람은 정말 요정이 아닐까. 그와 닿고 나면 꼭 요정 가루라도 묻은 것처럼 마법에 걸린 것 같아 정신이 하나도 없다.

   빈 메신저 창에 내가 남긴 메신저가 떴다.


   이선강 : 조심히 들어가요.

   우신재 : 저 이제 도착했어요. 오늘 만나서 좋았어요. 잘 자요.

   이선강 : 신재 씨도 잘 자요.


   우신재의 프로필 사진은 발레복을 입고 무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발레리노였구나. 어쩐지 가볍게 날듯이 춤추더니.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잠도 오지 않는데 자꾸만 대화가 끊긴 메신저 창만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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