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트랄이 끄는 마차를 타고 일찌감치 학교에 돌아와서 여유 있게 연회장으로 내려온 재학생들과는 달리, 신입생들은 이제야 겨우 배를 타고 호그와트에 도착해서 홀 가운데에 옹기종기 모여 감탄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입을 떡 벌리고 마법에 걸려 진짜 하늘처럼 보이는 천장을 보다가 뒤로 넘어갈 뻔한 신입생이 주변에 있던 선배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것을 심드렁한 얼굴로 보던 제임스는 옆자리의 시리우스의 어깨에 늘어져라 기댔다. 이미 4번이나 본 신입생 배정이라 더 이상 재밌을 것도 새로울 것도 없었다. 덤블도어의 환영사는 언제나 그랬듯이 짧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모자의 노래는 지긋지긋하게도 길었다.

  “무거워.”
  “내 사랑이?”

  시리우스는 단호하게 ‘네 머리가.’ 하고 정정해주었다. 제임스는 낄낄거리면서 좀 더 무게를 실어 온몸으로 시리우스에게 기댔고 시리우스는 밀어내지는 않았지만 대신 제임스의 어깨에 팔을 올려서는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제임스가 켁켁거리며 숨막힌다는 듯 시리우스의 팔을 급하게 톡톡톡 치고 나서야 시리우스는 뿌듯한 표정으로 제임스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질 수 없다는 듯 시리우스에게 덤벼들려는 제임스의 어깨를 리무스가 잡아채는 것으로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안 그래도 눈에 띄는 두 사람인데 서로 밀쳐대면서 몸싸움 비슷한 걸 하는 바람에 시선이 온통 모여 있었다. 리무스가 이런 분위기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는지라 제임스는 일단 장난을 멈췄지만, 모자의 노래는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제임스는 올망졸망 모여 있는 꼬마들의 뒤통수를 흘깃 쳐다보고는 지루하다는 듯 포크를 딸그락거렸다. 저 중에 수색꾼이나 하나 기찬 녀석이 들어오면 좋겠지만, 제임스의 눈에 차는 수색꾼이, 그것도 고작 1학년 꼬마 중에서 나올 리가 없는 이상 관심을 가질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또 모르지, 1년쯤 열심히 구르다가 자기가 쓸 만하다고 생각하는 녀석이 있으면 내년에 알아서 찾아올지도.’

  태평하게 포크를 만지작거리는 바람에 딸각 딸각 하는 소음이 간헐적으로 나자 리무스가 제임스에게 작게 주의를 주었다. 그러고 보니 리무스는 올해는 유난히 신입생들을 관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작년까지는 누가 들어오건 나가건 신경도 안 쓰던 리무스의 모습이 떠올라서 의아해하던 제임스는 문득 리무스의 망토 깃에 꽂혀있는 반장 배지를 발견하고는 씩 웃었다.

  “우리 반장님은 성실하기도 하시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마찬가지로 지루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짓고 있던 시리우스가 끼어들었다.

  “저 꼬마들을 다 간수하려면 리무스 뼈가 빠지겠는데?”
  “어디보자, 울보, 겁쟁이, 멍청이, 잠꾸러기, 그리고 길치가 보이는군.”

  제임스가 하는 말을 금세 알아들은 시리우스가 한번 살펴보는 시늉을 하더니 말했다. ‘불쌍한 리무스,’ 하며 가엾다는 표정을 짓는 친구들에게 리무스는 웃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글쎄. 너희들 같은 애들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될 거야.”
  “리무스, 호그와트에 그런 영광이 두 번이나 오길 바라는 건 너무 무리한 바람이야.”
  “설령 있더라도,”

  제임스의 말에 막 동조하려던 시리우스의 말을 가로막고 리무스가 말을 이었다.

  “초반부터 꽉 잡아두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낫지 않겠어?”

  리무스는 ‘왜 내가 처음부터 그러지 못했을까, 응?’ 하며 웃었고,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눈을 한번 마주치고는 실소했다. 올해 들어온 말썽꾸러기는 큰 소리로 화내는 것보다 웃으며 쏟아지는 잔소리가 더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설마 신입생주제에 그 이상으로 화난 리무스를 보게 될 정도로 대담한 녀석이 있을까? 어떤 의미로는 오히려 그런 일이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들려고 하는 것을 알기라도 했는지 리무스는 얕은 한숨을 쉬고는 한 마디 덧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자의 노래가 드디어 끝나있었다.

  “내가 내 손으로 그리핀도르 감점을 하게 만들지만 마.”

  짐짓 ‘과연 어떨까?’ 하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지어보임으로써 다른 반장들과 함께 단상 앞으로 걸어 나가려던 리무스가 못미더운 표정을 짓게 만든 제임스는 킥킥거리고 웃으며 고개를 돌리다 교수석에 앉아있는 낯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새로 온 교수인가? 분명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뭔가 익숙한 듯 아닌 듯 생각이 날 듯 말 듯한 얼굴이라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제임스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심지어 수줍어 보이는 표정으로 웃기까지 해서 제임스를 뜨악하게 했다. 제임스의 시선이 한곳에 못박혀있자 시리우스도 그의 시선을 따라 얼굴을 돌리다 그를 발견했다. 그리고 시리우스는 그답지 않게 놀란 표정으로 제임스를 쿡 찔렀다.

  “저사람 누구야.”
  “나도 몰라.”
  “너랑 되게 닮았는데.”
  “닮아? 어디가 닮아?”

  시리우스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제임스는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제임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제임스의 말투가 뾰족해진 것을 느끼고 시리우스는 거기서 말을 멈췄다. 엉뚱한 데다 화를 낸 것 같아서 제임스는 조금 멋쩍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제임스는 줄곧 자기와 눈을 마주치고 있던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시리우스 쪽으로 움직인 것을 알았다. 그리고는 시리우스를 보는 다른 흔한 사람들처럼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제임스는 어이없다는 듯 한번 웃고는 그에게서 신경을 끄기로 하고 고개를 돌렸다.



  40명이 넘는 신입생이 하나하나 모자를 쓰고 벗는데 걸리는 시간은 은근히 길었다. 지루함에 손가락을 배배꼬던 제임스는 문득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리고는 테이블 밑으로 슬쩍 지팡이를 꺼냈다. 제임스가 움직이는 기척을 느낀 시리우스가 제임스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제임스의 손에 지팡이가 들린 걸 보았을 때 역시 마찬가지로 지루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던 시리우스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하자.’
  ‘좋아.’

  한 번의 눈빛 교환으로 상황은 정리되었다. 눈짓으로 목표물을 일치시키고 테이블 밑에서 지팡이가 조용하게 움직였다. 분류모자 자체에 불을 붙이면 최고로 재미있는 장난이 되겠지만, 창립자들이 직접 만든 모자에 학생 수준으로는 손을 댈 수 없어서 ―이미 여러 번 시도했던 전적이 있었다.― 대신 선택한 것은 마침 또 한명의 신입생이 걸어가 앉은 의자였다. 맥고나걸이 신입생에게 모자를 씌우고 손을 떼기가 무섭게 의자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있던 맥고나걸은 신입생이 불안한 나머지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특별하게 경계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의자의 움직임은 점점 더 심해지더니 덜컥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들썩들썩 했다. 대충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몇몇 학생들이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했고, 의자 주변에 서있던 각 기숙사 반장들은 굳은 얼굴로, 혹은 당황한 표정으로 신입생에게 다가갔다. 급기야 의자가 바닥에 밀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앉아있던 신입생이 ‘어어?!’ 하며 겁에 질린 얼굴로 의자를 꽉 붙잡았고, 의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슬릐ㅣㅣㅣㅣㄷ!!]

  막 슬리데린이라고 말하려던 모자의 목소리가 사람으로 치면 혀를 깨문 것처럼 엉망으로 꼬여 나오자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거기에 더해 의자와 같이 빙빙 돌아가던 신입생의 다리에 하필이면 슬리데린 반장이 걷어차여 휘청하자 특히 그리핀도르 테이블을 중심으로 폭소가 터졌다. 결국 맥고나걸이 지팡이를 꺼내 의자를 멈추게 했지만, 신입생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벌일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맥고나걸은 의심이 아니라 거의 확신하는 눈으로 제임스와 시리우스 쪽을 노려보았지만, 그들은 시침 뚝 떼고 그리핀도르 테이블 가운데에서 웃고 있을 뿐이었다. 화난 듯한 맥고나걸의 표정에 웃음은 차츰 잦아들었으나, 거의 혼이 나간 얼굴로 일어나려던 슬리데린 신입생 엉덩이에 의자가 딱 붙어서 의자 째로 일어나자 다시금 폭소가 터졌다. 정신없이 흔들리던 의자에서 용케 떨어지지 않는다 싶었더니 저런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연회장이 웃음소리로 가득차자 결국 신입생은 얼굴이 빨개져서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리무스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제임스와 시리우스를 보았고, 마찬가지로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한 맥고나걸은 다시 지팡이를 휘둘러 의자를 떼어주고는 슬리데린 반장이 신입생을 자기들 테이블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그리핀도르 쪽으로 홱 몸을 돌렸다.

  “포터, 블랙! 그리핀도르에 5점 감점이다! 믿을 수 없구나, 아직 기숙사 배정도 받지 않은 신입생을 상대로 대체 무슨 장난을 치는 거니!”
  “오 미네르바 교수님, 배정을 받지 않았다니요, 그 녀석은 슬리데린인걸요. 아까 못 들으셨어요? 슬릐ㅣㅣㅣㅣㄷ!”

  익살스럽게 모자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제임스의 말에 다시 여기저기서 낄낄거리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어이없어서 말문이 막힌다는 사감의 표정을 태연하게 받아넘기며 제임스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씩 웃었다.

  “이번학기 첫 감점을 축하해 친구.”
  “환상적이었어, 친구.”

  마찬가지로 씩 웃고 있는 시리우스와 작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앉던 제임스의 눈에 아직도 웃음을 다 못 멈췄는지 거의 테이블에 엎드려서 어깨를 들썩거리던 그 남자가 보였다.

  ‘웃음을 잘 못 참는 타입인가?’

  그 때 겨우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드는 그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너무 웃어서인지 붉어진 얼굴로 제임스를 본 그는 슬러그혼을 비롯한 옆자리의 다른 교수들에게 보이지 않는 각도로 제임스에게 엄지를 슬쩍 들어보였다.

  ‘웃기는 사람이네.’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제임스는 그렇게 그의 첫인상을 정의했다.



  이윽고 기숙사 배정이 모두 끝나고 덤블도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랑스럽다는 얼굴로 연회장에 앉은 네 기숙사의 학생들을 쭉 훑어본 덤블도어는 모두 환영한다는 말과 함께 교수진을 소개했다.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이유를 잘 안다는 듯 덤블도어는 맥고나걸이나 슬러그혼, 플리트윅을 비롯한 기존 교수들에 앞서 그 낯선 남자에게 손짓을 했다. 멋쩍은 얼굴로 그가 일어나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신기하다는 듯 ‘오,’ 하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교수라기엔 매우 젊었으며,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이름이 높은 제임스 포터와 꼭 닮은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제임스도 주위에서 그런 속삭임이 오가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썩 좋지만은 않은 기분이었다.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요. 자 그럼 새로운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맡아주실 교수님을 소개합니다. 해리 에반스 교수님입니다.”

  덤블도어의 말에 꽤 큰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그를 반겼다. 그리고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는 제임스에 이어 릴리 에반스에게 시선이 쏠렸다. 저만치 다른 기숙사에서도 릴리 에반스를 알고 있는 학생들은 꽤 궁금한 듯 그리핀도르 테이블을 기웃거렸다. 릴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르겠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곁눈질로 릴리를 흘끔 본 제임스가 다시 그를 보았을 때, 어느새 자리에 앉은 그는 이번에는 슬리데린 쪽을 보고 있었다. 무심코 그의 시선을 따라가려다가 제임스는 관뒀다. 어차피 수업시간이 되면 알게 될 건데 굳이 그에게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고, 연회가 시작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틀림없이 신입생일 앳된 목소리가 ‘우왓!’ 하고 놀라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접시 위로 음식이 생겨났다. 별로 배고프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데 입에 침이 돌았다. 새로운 학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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