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원래 사무동 인근엔 사람이 별로 없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시험기간을 앞둔 탓인지 오늘은 더 그랬다. 그 흔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사무동의 회색 계단을 올라 텅 빈 로비 너머의 뒤쪽 뜰로 향하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앞쪽보다 더 인기척이 없는 그곳은 군데군데 무성한 잡초가 자라고 있고 건물에 붙어있는 잔디밭 영역도 중간중간 파여있는 게 지나가는 사람은 커녕 관리인도 오지 않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잔디밭의 끝, 나무 그림자를 피해 햇살이 겨우 내리는 건물 벽 쪽에 어설프게 지어진 작은 판잣집 하나가 있었다. 


"안녕." 


그 판잣집 앞에서 햇살을 받으며 뒹굴거리는 어린 생명체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바로 앞에 천천히 주저앉으니 익숙한 저에게 다가오며 거의 삐약거림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사실 저렇게까지 작은 아기 고양이를 본 건 처음이었고, 저 정도로 어린 동물들은 병아리와 다름없는 소리를 낸다는 것도 이 녀석들을 통해 알았다. 손바닥 하나만큼도 안 되는 것들이 뭘 한다고 허술한 잔디밭을 헤치고 다니는 걸까. 


"엄마는 어딨어?" 


내 이야기를 듣기라도 하는 건지 무릎 높이의 판잣집 뒤에서 큰 고양이가 천천히 걸어 나와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고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쪼그려 앉은 내 무릎에 머리와 몸을 가볍게 비빈다. 그 모습을 보고 가볍게 미소 지으며 가방에서 작은 사료 봉지를 꺼내 앞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접시를 앞으로 끌어와 담아 넣었다. 어미 고양이가 그릇에 얼굴을 묻고 '까드득' 거리는 소리를 내며 식사를 하는 동안 그 옆에 작은 꼬물이들이 모여 배 아래로 매달려 자신들의 허기를 달래기 시작한다. 바닥에 털썩 누워버리는 어미와 옹기종기 모여 하나씩 자리 잡고 힘 있게 꾹꾹이를 하는 모습에 피식 소리를 내고 웃으며 그 맞은편의 돌부리에 대충 걸터앉았다.


마른 잔디밭 위에 누워 각자 제 몫의 식사를 하는 고양이 가족을 보는 건 이 학교에 들어온 뒤 갖는 거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배가 볼록한 고양이가 돌아다니길래 학생들이 간식을 많이 줘서 살찐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그 고양이가 마치 자기를 챙겨달라는 듯 발목에 얼굴을 비빌 때만 해도 그냥 애교가 많은 아이인가 보다 했는데. 이렇게 4마리나 되는 아기 고양이 출산을 준비하고 있었는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도. 너는 왜 하필 나에게 반갑다며 인사를 했을까. 


"아이를 가진 몸으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런 신호를 보내는 건 위험해. 내가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 


점심식사에 몰두한 눈앞의 다섯 생명 모두 내가 하는 말엔 관심이 없다. 그런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 옆에 내려놓은 가방에서 항상 들고 다니는 작은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냈다. 사진보단 이런 기록이 더 좋았다. 





"자, 여기 신청서 쓰고 1주일 뒤에 찾으러 와. 기숙사 출입 키는 일단 여기 비상용 키로 대신하고. 이거 잃어버리면 요금 있으니까 절대 잃어버리지 말고." 

"네." 


어디서 학생증을 잃어버렸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어제는 네드랑 같이 들어오느라 기숙사동 출입 키를 쓸 일도 없었는데. 역시 술집인가. 아무래도 저녁때 전화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신청서를 작성해 사무원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응. 다음주 목요일 오후에 오면 돼."

"네, 감사합니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사무동 문을 열고 나왔다. 손에 들린 임시 출입증을 넣을 생각으로 등에 매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돌려 매는 순간 로비 뒤쪽으로 향하는 계단 너머의 눈부신 햇살이 보였다. 그늘진 실내 출입구들에 대비되어 더 밝게 빛나는 곳이 눈부셔 눈을 찌푸렸다가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작은 인기척에 뭐에 홀린 사람처럼 몇 걸음을 더 걸어갔다. 햇살이 너무 예뻤으니까. 나는 예쁜 걸 보면 정말 어쩌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놀랍게도 그 계단 아래, 건물 뒤편의 아무것도 아닌 돌부리 위에 요즘 내 관심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그 녀석이 앉아있다. 


마른 잔디밭의 돌부리에 걸터앉은 그가 무릎에 스케치북을 올려놓고 무엇인가를 끄적인다. 해를 받은 그의 머릿결이 반짝이고 희미하게 미소 지은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있다. 앞을 보는가 하더니 고개를 들킬래 나도 모르게 건물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아니 나쁜 짓도 아니고 내가 왜 숨어야 돼?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고개를 내밀어 보니 맷은 아직도 그림에 한참이다. 근데 무엇보다 난 이 순간이 그림 같다고 생각했다. 


전통회화 같은 것도 모르고, 좋아하는 화가 같은 것도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래, 모네의 그림 같았다. 온몸으로 햇살을 받고 스스로 그 무엇보다 반짝이면서 무언가를 그리는 네 모습이, 이것이 미술이 아니면 뭐가 미술일까 싶었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그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소리가 나는 부분을 막고 그의 모습을 몰래 담아냈다. 이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걸 아는데 너는 허락해주지 않을 것 같고, 나는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서 충동적으로 그랬다. 나중에 조금 더 친해지면 그때 이런 사진이 있었다고 말해줘야지. 흠... 그건 좀 스토커 같은가?



-



눈도 약한 주제에 햇살 아래에서, 그것도 흰 도화지까지 펼쳐놓고 장시간을 앉아있었던 건 명백한 실수였다.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로 낮시간 내내 고통받다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방으로 돌아왔지만 눈 주변에 이어 이젠 머리까지 깨질 것 같다. 한 손으로 지끈대는 머리를 누르고 간신히 끙끙대는 소리를 참아보려 했다. 일단 한숨 자면 나아지려나. 하지만 시험기간인데. 하... 진짜 미치겠네. 


"어디 아파?" 


꽤나 잘 감추고 티 내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옆 책상에 앉은 룸메의 목소리에 고개가 번쩍 들렸다. 그리고 급하게 고개를 돌린탓인지 머릿속이 울리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머리? 두통약 줄까?" 

"있어?" 

"응. 잠깐만."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책장 높은 곳에 넣어둔 플라스틱 상자를 꺼내 그 안에서 이것저것 약통들을 뒤적거린다. 


"이거는 소화제, 이거는 위장약... 여깄다!" 


두통약을 찾았는지 밝게 웃으며 약통의 뚜껑을 열어 한알을 꺼내 나에게 건넨다. 두통에 마음이 급하기도 했고 물을 가지러 가기도 귀찮아 그대로 약을 넣어 억지로 삼키니 옆에서 또 놀란 목소리가 들린다.


"물도 없이 넘긴 거야?" 

"어." 

"안 넘어갈 텐데." 

"괜찮아." 


양손으로 다시 눈을 가리고 그 손 그대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약발이 돌기까진 시간이 좀 걸릴 텐데... 


"잘 못 잤어?" 

"아니. 왜? 

"잠 설치면 머리 아프잖아." 

"그건 아니야." 

"그럼 공부를 너무 해서 그런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건네는 말에 같이 웃으며 화답을 할 만도 한데 지끈거리는 머리 때문에 그럴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눈부셔서." 

"눈? 눈부시면 머리 아파?" 

"넌 안 그래?" 

"응. 그럼 낮에 선글라스 쓰고 다녀야겠다." 

".... 그런 걸로 주목받고 싶지 않거든?" 

"아픈 것보단 낫잖아."


참 해맑기도 한 그를 살짝 흘기듯 바라보니 눈이 마주치자마자 밝게 웃어버린다. 그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피식'하는 웃음이 샜다. 


"약 고마워." 

"별거 아닌데 뭐. 눈부셔서 힘든 거면 커튼 단단히 여미고 자야겠다. 내일도 맑음이래." 


자리에서 일어난 피터가 책상 맞은편의 커튼을 미리 닫는다. 여러모로 말도 많고, 오지랖도 심했지만 착한 녀석임엔 틀림이 없다. 





카페테리아의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은 셋이 조금 전부터 꼭 빨려 들어갈 것처럼 각자의 스마트 화면만 주야장천 보고 있다. 차선이탈 방지, 유도선, 정면충돌 경고, 오토 핸들 등등의 검색 결과가 쌓이고 틈틈이 옆의 노트에 메모도 했지만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않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누구 아이디어 건진 사람." 

"아, 난 모르겠다. 졸지에 사고차량 이미지만 겁나 봤어." 

"전방 추돌 영상 봤냐?" 

"어, 아 깜짝 놀라 죽을뻔했네. 왜 전속력으로 갖다 박은 거지?" 

"그 트럭에 추돌하는 영상 말하는 거지? 정면을 장애물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대. 흰색이라 그랬나?" 

"일단 자율주행 2단계에서 사고율을 줄일 수 있는 아이디어가 과제였으니까 트럭 뒤를 전부 눈에 띄는 색으로 바꿔야 한다고 해볼까?" 

"그거 안 그래도 찾아봤는데 검은색은 밤에 위험하고, 파란색은 역시 하늘로 오해할 수 있대. 붉은색이나 보라색 같은걸 찾아봤는데 관련해서 여러 가지 안 되는 이유만 알게 됐다."


색으로 접근하면 안 되는 건가. 사실 그게 제일 간단할 것 같은데. 차라리 센서 쪽으로 접근할까.... 


"자율주행이 아직은 좀 위험하네." 

"이게 애매해서 더 위험한 것 같아. 아예 안되면 긴장하고, 잘 되면 딴짓하면 되는데 그 중간쯤이라 긴장감은 덜하고, 그러다 보니까 다른 짓 하게 돼서 사고도 나고." 

"아직 법적으로는 전방주시 의무가 있잖아." 

"아까 그 짤 못 봤냐? 800km 직진 후 우회전. 진짜 사람 미치는 거야." 


에디의 예시를 듣고 '피식'하고 웃으며 시선을 돌리던 그 순간. 카페테리아로 들어오는 맷이 보였다. 


"야야야, 저기 내 룸메. 쟤야 쟤." 


친구들에게 마치 비밀스러운 비상상황이라도 생긴 양 작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을 전하자 덩달아 자세를 숙인 그들의 고개가 내가 가리킨 쪽을 바라본다. 오늘도 느슨하게 묶은 머리 덕에 옆의 머리들이 얼굴 옆으로 가볍게 떨어진다. 쟤는 어쩜 저렇게 뭘 해도 그림 같을까. 


"누구?" 

"저기 가판대 앞에. 방금 감자칩 들었다. 어, 지금 계산중." 

"아, 쟤야? 긴 머리?" 

"응." 

"흠...." 

"잘생겼지." 

"뭐. 잘생기긴 했네. 긴 머리만 아니면." 

"머리 긴 게 왜 어때서." 

"머리 자꾸 귀 뒤로 꽂는 거 쫌..."

"섹시하잖아." 

".... 좋아하냐?" 

"뭐?"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그에게서 시선이 떨어지고 자신의 두 친구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에디에 이어 네드까지 피식대고 웃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내가 왜?" 

"틈만 나면 잘생겼다." 

"별걸 가지고 다 섹시하다." 

"잘생긴 건 사실이잖아. 잘생긴다고 다 좋아하냐? 난 그냥 눈호강 하는 거거든?" 

"아주 귀에 못이 박히겠다. 하루에 몇 번을 말하냐?" 

"뭐.. 두세 번 정도?" 

"피터, 내가 세어보진 않았지만 너 못해도 12번은 말하고 있어." 

"내가 그랬나?" 

"아주 아침마다 '굿모닝, 프린스 차밍' 이러고 인사하지 왜." 


내가 좋아한다고? 딱히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데. 잘생겨서 그런가? 




아니, 잘생긴다고 다 좋아해? 그럴 거면 영화배우들 좋아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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