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천한 종족들이 돌아간 뒤로도 내 원래의 늠름한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한참 난동을 피웠지만 결국 원래의 모습으로 변하지 못했음. 변했으니 다시 돌아오겠지 싶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잠이 들긴 했으나 다시 아침이 되어 눈이 뜨니 덜컥 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음.


"내 평생 그리는 못산다... 제발... 돌아와 있어야 된다....!"



게슴츠레하게 눈을 떠 조심스럽게 내 발을 바라보았음.


앙증맞은 내 발이 있었음!! 다행이야!! 영영 그 미천한 몸으로 살 까봐 걱정했는데 역시 기우였음. 전날 그 인간들이 했던 말을 전부 다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결국 나는 인간으로도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는 종족이라는 것은 뭐... 어떻게든 알겠음. 아직 어떻게 하면 변할 수 있는지 기준은 모르겠지만 영영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음. 이것도 훈련을 하면 조절을 할 수 있을까?


음... 정말 귀찮고 정말 싫다!

왜 내가 이런 것 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지? 가뜩이나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닌 데 내 몸의 변화까지 신경을 써야 하려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음. 일단 정육점 영감탱을 좀 털어야겠음. 감히 나랑 같은 종족이면서 나한테 언질 하나도 안 해주고 말이야. 아닌 척 가르쳐 줄 수도 있었잖아! 가만 안 둬 영감탱!!





"...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장기간 휴업 합니다...?"


정육점 앞에 적혀있는 글자에 어이가 없어졌음. 그니까 문을 안 연단 말 아냐? 어!! 내 밥은 그럼 어쩌라고!! 이 영감탱이가!! 다시 사냥을 다녀야 하나... 이미 고급스럽고 기름진 참 된 고기의 맛을 알아버린 여주에겐 참 반갑지 않은 현실이었음. 인제 어쩌지...? 흐음...






"게... 아무도 없느냐...?!"


따, 딱히 내가 막막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님, 혼자서 먹이를 구할 능력이 없는 것은 진짜 절대 아님, 딱히 나에게 좋은 고기를 상납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그런 것도 절대 아님, 그, 그냥 어! 어차피 저 미천한 녀석들이 내 아지트에 쳐들어오는 것 보다 내가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뿐임. 맞음. 난 그런 것 뿐이었음. 겁나게 현명하고 효율적인 논리 아님? 하. 난 오늘도 완벽했음.


지난 번 거대종이 나를 데려갔던 커다란 건물 근처로 다가가 문 앞을 배회했지만 그 안은 조용했음.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음. 흠. 이 녀석들은 항상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 것 인가?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각엔 어디 쯤 있을까? 고개를 돌려 여럿 건물들을 살펴보았음. 생각보다 이 부지 안엔 다양한 건물들이 있었기에 어디를 먼저 가봐야 할지 고민이 되었음. 괜히 또 다른 미천한 종자들에게 들키면 귀찮아질게 뻔했음.

의외로 미개한 종족들은 미적인 부분에 있어선 제법 훌륭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음. 나는 멋지고 아름답고 귀여우니까 나를 보면 항상 찬미의 말을 뱉으며 소리치기 바빴음. 뭐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렇지만 건방지게 나의 고귀한 몸에 발을 뻗는 불손한 녀석들도 많았음. 내가 그렇게 쉽게 만질 수 있는 몸이 아니란 말이야.


킁킁 거리며 예민한 내 코에 신경을 모았음. 냄새를 맡는 것은 내가 또 기똥차거든. 많은 냄새들 사이에서 내가 알고 있는 그 종들의 냄새를 분류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난 해내지.

그 커다란 건물 옆에 있는 다른 건물이었음. 이 건물 안에 있는 걸까? 냄새가 진하게 나는데 어디 들어 갈 수 있는... 그럼 그렇지. 벽의 높은 위치에 반쯤 열려있는 창문이 보였음. 저 정도 높이면 내 점프로 충분히 들어갈 수 있지.







"하하. 이거 참."


부실의 문을 열었는데 왜 부실 한 가운데 여주가 자고 있는지 모르겠음. 부실을 뒤져본 것인지 헤집어진 부품들과 다들 반쯤 열려있는 사물함. 그리고 그 사물함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옷가지들을 모아서 침대로 쓰고 있었음.



"마음 같아선 더 재우고 싶긴 한데..."


부활동을 하기 위해 곧 부원들이 올 시간이었음. 곤히 잠들어 있는 여주를 깨워야 할까 아님 그냥 자게 둬야 할까 고민이 되었음. 근데 왜 여기에서 자고 있는 거지? 어차피 학교 마치고 여주의 집에 들릴 생각이었는데 왜 찾아온 걸까? 심심했나?


여주에게로 쿠로오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곁에 앉았음. 어디서 놀다가 왔는지 향긋한 꽃내음을 묻혀 온 여주는 고르게 숨을 쉬며 편안한 표정으로 잠을 자고 있었음. 저 보송해 보이는 털 사이에 손을 넣으며 쓰다듬으면 감촉이 무조건 부드럽고 기분 좋을 게 확실했음. 만져봐도 될까? 그래도 될까?




내 촉이 알려왔음! 위험한 감각이 다가오는 것을!

"기습이냐!"

예민한 감각 센서가 위협을 감지했음. 번쩍 떠진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덩어리에 깜짝 놀랐음.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는 게 아니겠음?! 목덜미에서 부터 등을 타고 털이 쭈뼛쭈뼛 세워지기 시작하더니 꼬리까지 내려갔음. 그리곤. 펑!


"으얽?!"



"아니, 잠시!"


"갸아아아악!"


저 익숙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소린 분명 내가 인간으로 변할 때 나는 소리였음. 그렇단 것은 내가 또 인간으로 변했단 것인가! 하고 생각하려는 찰나 머리 위로 냅다 뭔가 씌워졌음. 또 나를 덮쳐오는 검은 그림자에 놀랄 수 밖에 없었음. 한참을 버둥거리고 있는데 머리에 뭔가 맞춰지는 느낌이 들더니 뽁! 하고 나와졌음.


"... 뭐냐. 이게."


"지난번에 리에프 덕분에 하나 배웠거든. 냅다 옷 입혀야 되는 거."


"하... 역시 또 내가 인간이 된 것이로군."


왜 인간들은 옷을 입는 것에 집착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음. 날 때 부터 우린 뭘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고. 죽을 때도 그건 마찬가지일 테고. 그런데 왜 이렇게 입는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입히려고 하는지 모르겠음. 갑갑하게.


"근데 어쩐 일이야? 어떻게 여기 들어왔어?"


"저기, 저 창문으로 들어왔다. 너희 냄새가 나길래 여기 있는 건가 싶어서."


검은 종은 내가 가리키는 쪽으로 바라보더니 환기창으로? 하면서 어이없단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음. 아니 뭐 들어가고 나가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무슨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냐.


"그건 그렇고, 이제 곧 다른 사람들도 올 텐데 이제 어떡한담. 고양일 때는 차라리 변명이 쉬운데 말이야."


"변명? 그런 것이 왜 필요한가.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뭐 그렇긴 한데, 이런 헐벗은 복장의 여자가 남자만 사용하는 부실에 있는 건 좀 문제가 되는 편이라."



"...무엇이라 하는지 도통 모르겠군. 인간은 참 피곤하다."


도대체 어떤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지만 뭐 자기들의 세계에 나름의 규칙이 있을 테니 관대한 나는 그렇다고 해주기로 했음. 어차피 저들이 나를 이해를 못하듯 나도 이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음? 그리고 내가 굳이 이해를 해주자 할 마음도 전혀 없고.

그렇게 서로 마주만 보고 있는데 뒤에 있는 문으로 인간들이 떠드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음. 그러자 시커먼 종이 급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음.


"어쩔 수 없어. 여기 잠깐 들어가 있을 수 있지? 내가 금방 내보내 볼게."


"윽. 여기 들어가라고?"


덜컹거리며 큰 소리는 내는 네모 상자였음. 심지어 감촉도 차가워! 이런 곳에 나를 넣겠단 말인가?!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시커먼 종은 안에 있는 물건들을 쓸어 우수수 꺼내기 시작했음. 진짜 날 여기 넣으려고?!!


"여기 소리 너무 거슬린다. 차갑다. 내 고귀한 몸을 담기엔 너무 부족함이 많은 곳이다. 그냥 문으로 나가겠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그렇지만 이런 꼴의 너를 저 시커먼 녀석들에게 보여주는 게 더 싫어서 안 되겠어. 어서 들어가. 일단 내 옷이라도 깔아줄게. 불편해도 조금만 참아줘."


그 네모 상자 안에 내가 아까까지 깔고 자고 있던 옷들과 어디서 꺼내 온 옷들을 집어넣더니 내 몸을 밀면서 들어가길 종용하기 시작했음. 아... 좀... 들어가기 싫은데... 근데 또 좋아 보이기도 하고... 뭐... 차갑지만 않다면 사이즈가 몸에 딱 들어맞는 게 좋아 보이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몸을 욱여넣었음. 으음...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다 들어가고 문을 쾅 닫자 주변이 캄캄해졌음. 오... 생각보다 더 아늑한데...? 뭐 이 정도면 참고 기다려 줄 수 있지... 따, 딱히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고...



"뭐야. 부실 왜 이래?"


"여주가 헤집고 갔어."


"여주가 누구예요?!"


"아! 내가 지난번 돌본다는 고, 고양이!"


"아! 뭐야. 배가 고팠나? 내 비상용 소시지 털렸어."


평소와 같이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을 하며 은근히 빨리 체육관으로 가길 압박을 넣자 눈치를 챈 켄마와 뒤 늦게 감을 잡은 리에프가 빨리 가서 오늘도 어울려달라며 애들을 잡아 이끌어 갔음. 다행스럽게도 별 다른 의심이 없이 다들 리에프에게 리시브 연습이라 하라며 가볍게 타박을 하며 체육관으로 내려갔음.


대충 부실을 정돈하고 간다는 핑계로 마지막까지 남아있었음. 내 의도를 알아줬는지 여주는 정말 그 캐비넷 안에서 미동도 없이 조용하게 있었음.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무엇이냐. 왜 방해하느냐. 문을 닫거라."


"하하... 그래. 뭐 불편해 보이진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 여전히 사람이긴 하네. 돌아가는 방법은 모르는 거야?"


"그걸 알았으면 애초에 변하지 않았겠지. 무엄한 녀석. 감히 익숙하지 못한 것을 굳이 집어서 말을 하다니. 아주 불손하다."


"계속 여기에 있을 순 없잖아. 어떻게든 나가서 집에 있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은데. 어차피 우리가 갈 생각이기도 했고."


"역시... 올 생각이었군. 무엄한 녀석들. 내가 허락을 한 적이 없건만 침입은 예정이 되어있단 소리였군. 그래서 내가 친히 와주지 않았느냐!"


"근데 지금 네 모습으론 밖으로 나갈 순 없단 말이야. 아래는 아무것도 입지도 않고 있고... 잡혀가지만 않아도 다행일 정도라고."


"...도대체 그 입는 다는 것에 왜 그렇게 집착을 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인간들은 너무 복잡하고 어렵게 사는 것 같다. 너무 귀찮구나."


거참... 이걸 어떻게 어디부터 설명을 해줘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음. 하긴 고양이로 한평생을 살아온 여주의 입장에선 인간들의 룰과 법칙이 이해가 되지 않을 법 하기도 했음. 하지만 앞으로 계속 이렇게 변할 텐데 아예 모르고 살 수는 없었음. 그리고 고양이의 모습일 때보다 사람의 모습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고 또 편하고 유용할 경우가 더 많을 텐데...

옆으로 꾸깃꾸깃하게 누워있으니 여주에게 입힌 티셔츠가 슬슬 말려 올라가고 있었음. 차마 옷을 아래로 당길 수 없어서 바닥에 있던 옷가지로 대충 다리 위에 덮어주자 무슨 짓이냐는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음.



"음... 뭐 그렇긴 하지. 근데 너희들을 쪽의 세계에서도 치부라던가 약점이라는 개념은 있을 거 아냐?"


"음... 뭐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일단 배를 보이는 것이 치욕스러운 행동이니까."


"그럼 옷을 입지 않는 것은 항상 배를 보이는 상태라고 생각하면 되겠네. 우린 옷을 입지 않으면 항상 약점을 드러내고 다니는 것이라 마찬가지야."


"오호라... 그렇구나. 그렇다면 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영 거추장 스럽긴 하지만 옷으로 약점을 숨기는 것인가? 너희는 이상하게도 털 같은 게 몸엔 전혀 없으니까."


"맞아. 아주 이해력이 좋은데?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근데 왜 내 몸을 보고 껍데기가 붉어지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네 놈은 어찌 되었든 약점은 내가 들어내고 있었던 것인데 왜 너희가 붉어지는 지 모르겠다. 저기 앞뜰에 피어있는 동백보다 붉어지는 게 참 신묘하더구나. 그건 무슨 반응인 것이냐? 붉어진다는 것은 싸움을 걸고 싶다는 의미인가? 그럼 역시 너넨 나를 공격하기 위해서 온 것인가?"


2차 위기에 닥친 쿠로오였음. 생각보다 여주의 의문이 논리적이라 대답을 하기가 너무 애매해졌음. 인간사회의 규정을 야생에서 살아온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절대 아님을 방금의 대화로 통해 확 와닿았음. 마음 같아선 진득하게 앉아서 설명을 해주고 싶었지만 지금도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음. 체육관에 돌아가지 않으면 찾으러 온 누군가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음.


"내가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데 이제 가봐야 해. 마치고 나서 제대로 알려줄게. 일단 지금은 여기서 나가지 말고 다시 고양이 모습으로 변하면 집으로 가든 아님 우리가 있는 체육관 쪽으로 오든 해. 알겠지?"


"뭐... 알았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그렇게 하겠다."



그 좁은 케비넷 안에 있지 말고 밖에 있어도 된다고 혹여 누군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면 몸을 숨기라고 말을 했지만 여주는 이 안이 생각보다 괜찮았다며 여전히 좁은 케비넷 그 안에 들어앉아 있었음. 발목에 누가 본드를 발라놓은 것 처럼 떨어지지 않았음. 자꾸 여주가 있는 부실 안으로 시선이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음. 불안하기도 했고...



"빨리 가거라. 이 몸은 괜찮다."


물론 괜찮겠지. 너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속 편한 소리였음. 가벼운 한숨이 나왔음. 문을 닫고 부실을 나섰지만 역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음. 혹여 밖이 궁금하다고 저 모습으로 나오면 진짜 안 되는데... 이런 마음이 물가에 내놓은 애 같단 건가.



여주는 혼자 남겨진 그 부실 안에서 자신의 몸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음. 생각해보니 이전엔 변했다는 사실에 너무 혼란스러워서 이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는데 이제 이렇게 의도치 않게 변하면 자연스럽게 몸을 사용할 수 있어야 되는 게 맞는 것 같았음. 나는 언제라도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멋지고 완벽해야 하니까.

역시 이 발 모양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되네... 평소에 하던 것 처럼 발을 접었다 폈다고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음. 이걸로 인간들은 잡고 쥐고 하던데, 그건 내 원래의 발보단 편리해 보이긴 했음. 어디 한 번 시험을 해볼까...?




"그래서 여주는 어쩌고 왔어? 좀 여유롭게 와도 됐었는데."


"...내가 켄마도 사회생활 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리에프도 사람 구실 하게 만들었는데... 여주는..."


"엑? 쿠로오상! 사람 구실이라뇨! 전 원래 잘 했는데여?!"


"대화가 잘 안되었어?"


"...갈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느낌? 답답함과 여주의 반응이 이해가 되는 마음이 충돌하더라고."


"급할 게 뭐 있나여! 차근차근 하나씩 알려주면 되는거져!"


"리에프도 하나씩 가르치고 있는데 여전히 허접하잖아."



"윽...! 너무해..."


걱정은 걱정이고 우리의 본분은 부 활동이었음. 마음 한쪽은 부실에 두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데.


"...아... 나 잠시만."


뭘 못 볼 것을 봤단 표정의 쿠로오가 연습게임 중 코트를 이탈하더니 체육관 밖으로 뛰어나갔음.




"내가 네녀석들의 씨를 말리고 말 것이다! 내 원수!!"


나비와 혈투를 벌이고 있는 여주가 있었음.


"내가 분명 부실에 얌전히 있으라고 했는데, 왜 여주가 여기 있는지 모르겠네?"

"이거 놓아라! 나비는 내 치욕이다! 난 참을 수 없다!"


어찌나 날렵한지 잡으려 치면 이리저리 피하며 유유히 날아다니는 나비 한마리에게 광적인 집착을 보이고 있었음. 반응을 보아하니 나비라고 부른 것에 대한 반발심인 듯했음. 그땐 우리가 이름을 몰랐으니 임의로 부른 것 뿐이었는데 그것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음.

겨우 팔뚝을 부여잡고 말렸지만 들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음.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지.



여주의 허리춤을 감싸 덜렁 안아 올리자 움직임이 멈추었음. 그리곤 뒤에 있는 나를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기 시작했음.


"역시 무엄하고 불손한 녀석이다. 감히 나의 몸에 손을 대다니. 정녕 죽고 싶은 것 인가?"


"자, 그럼 그건 좀 나중으로 미루고 내 말을 들어줄 생각이 좀 들어?"


"그래. 한 번 말 해보거라."


여차하면 방해했다는 명목으로 후두려팰 참이었음. 감히 위대한 대업을 앞둔 나의 앞을 가로막은 죄였음.



"이대로 나한테 안겨서 갈래, 아님 네 발로 갈래?"


"음... 안긴다라."


가만히 생각해보았는데, 그거참 편하긴 하더라.

내가 인간의 손에 들려 본 경험이 있거든?



"그래. 정 그러고 싶다면 안아라. 난 좀 쉬어야 겠다."


그리고 사실 발바닥이 묘하게 아팠음. 고양이의 몸으로는 이런 딱딱한 바닥을 밟고 뛰고 다녀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인간의 몸으론 이곳저곳에 디딜 때 마다 따끔한 게 거슬렸음. 안겨서 간다면 내가 바닥을 밟을 일도 없을 테니 아프지 않을 것 아니겠음?


"이것 참... 의외네."


신경을 분산시켜 좀 진정을 시키려고 한 말이었는데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음. 그렇다면 굳이 거절 할 이윤 없지. 조심스럽게 바닥에 여주를 내려놓곤 옷매무새를 다시 정돈을 했음. 아무리 남자 사이즈의 티셔츠라고 해도 짧긴 무척 짧았음. 입고 있던 저지를 벗어 여주의 허리춤에 묶곤 무릎 뒤에 손을 넣어 안아 올렸음.

대충이라도 짐을 챙겨서 갈까 싶었지만 일단 이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 여주를 집에 데려다 놓는 게 더 우선이라는 판단이 끝나자 바로 발걸음을 옮겼음. 순간 감독한텐 뭐라고 변명하냐 싶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싶었음.




이젠 하도 다녀 익숙해진 상가들이 즐비한 골목으로 들어섰음. 급한 마음에 걸음이 거의 뜀박질에 가까웠는데도 여주는 불편한 게 없는지 얌전히 품에 안겨있었음. 심지어 꾸벅이며 졸기까지 했음.

완전한 잠에 빠진 것은 아닌지 자신의 집 근처에 다다르자 졸린 눈을 끔뻑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음.



"집에 다 온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


"바본가? 자기의 집은 알아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뭐, 나도 지하철 안에서 내려야 하는 역에서 눈이 번쩍 떠지긴 해."


"뭐래. 냄새로 바로 알 수 있는 거다. 우리 집에 피는 꽃 냄새를 모르는가?"


"아. 꽃. 마당에 꽃이 있는 건 봤는데,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품에서 바르작 거리기에 내려주자 후다닥 뛰어가더니 담장 어디를 가리켰음.

그러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다홍빛 꽃 무리가 보였음.

홀린듯 담장 곁으로 다가갔음. 지난번 왔을 때 달큰한 꽃향기가 난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렇게 화려하게 피어있는 꽃이 있는지 조차 몰랐었음. 가까이 다가가자 진해지는 향기에 아찔할 정도였음. 여주한테서 나던 향기와 같은 향이었음.



"이 꽃 이름이 뭐야?"


"능소화."


평소엔 눈을 세모꼴로 치켜뜨며 매섭게 노려보는 모습만 보았는데 저 꽃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여주의 모습은 참 낯설었음. 그렇게 둘 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꽃을 바라보았음.





"도대체가 발이 이 꼴이 되도록 말을 왜 안 해?"


"아무렇지도 않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 여주의 발걸음이 이상했음. 발꿈치를 들고 어정쩡하게 걷는 게 아니겠음? 그 모습을 보자 다시 덜렁 들어 집 안으로 들어가 앉혀놓고 발을 살펴보자 발바닥이 까지고 쓸려 엉망이었음. 맨발로 콘크리트 바닥을 뛰어다니니 당연히 이렇게 되는 거지! 아! 정말.


한 손안에 다 잡히는 자그마한 발이 엉망이 되어 피까지 나는 주제에 아무렇지 않다며 되려 큰소리를 치는 여주에게 이걸 어떻게 알려줘야 하나 갑갑해졌음. 고양이의 습성은 대략 알고는 있었음. 다치거나 아프게 되면 그것을 숨긴다는 것을. 그러나 그건 야생에서 고양이로 살아갈 때지 지금은 아니란 말이야.



"왜 네가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군. 다친 것은 나다. 그리고 네가 다치게 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아팠을 텐데 그걸 바로 알아보지 못한 나한테 화가 난 거야. 여주 너한테 화가 난건 아니야."


어디서 찾아왔는지 수건에 물을 적셔 내 발을 닦아내는 발길이 퍽 조심스러웠음. 그리고 다친 것은 내 발바닥이건만 왜 저 인간은 자신이 다친 것처럼 화를 내는지도 이해를 하지 못하겠음. 그리고 그걸 당연히 알아채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약함의 증거는 표적 되어 버리는 흔적이 되기에 최대한 아무렇지 않는 척 숨겨야 했음. 그게 내가 살아 온 세계에선 당연한 것이었단 말이다.


"근데 나 궁금한 것이 있다."


"응. 뭐든 물어봐."


여전히 내 발에 온 신경을 쏟아붓고 있으면서 물어보는 것엔 대답을 착실하게 하는 검은종이었음.


"나는 너를 뭐라고 부르면 되는가?"


"쿠로오 테츠로. 편한 데로 불러."


"알았다. 그럼 쿠로오 테츠로. 내가 궁금한 것이 있다."


"또 뭐가 궁금하신가요?"


"인간은 원래 꼬리가 없는 게 맞는가? 내가 보아온 인간들은 다들 꼬리가 없었다."


"맞아. 우린 꼬리가 없어."


"그리고 나머지 부분들은... 뭐 안 비슷하게 생긴 것도 있지만 대부분 어떤 신체 부위인지도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혼자서 터득했다니 영리하네. 맞아. 대부분 비슷하게 가지고 있지."



"근데 이상한 게 한 가지 있다. 이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어보겠다."


"이상한 것? 어떤 점이?"


"내 젖꼭지가 없어졌다! 원래 난 6개 있는데 지금은 2개밖에 없다! 어디에 떨어트린 걸까?!"



"어...?"


"헉! 너 표정이 왜! 역시 내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 빨리 살펴봐라!"


심각한 표정의 여주.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허공을 헤매던 여주의 손은 그대로 자신이 입고 있던 티셔츠로 가더니 말릴 새도 없이 그대로 옷을 올려버렸음.





아니! 무슨 말 할 틈을 주던가 예고를 좀 하고 그러라고!!

그대로 굳어버린 쿠로오가 있었음.




먹고싶은 맛이 있는데 아직 메뉴에 없다면 직접 조리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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