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웃갸웃.








끝없는 어둠속.


 사물은 달리고 있었다.


'사물아~! 퇴각기가 올랐다! 여길 떠나야해!! 아님 모두다 죽는다!!'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는데 주변은 끝도 없이 어두웠다. 창을 맞고 제 품에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눌함. 비명속에 친우들이 죽어간다. 무서운 당나라군사들의 칼날아래 모두가 어떤식으로 베이고 상처입고 목숨이 끊어지는지 보기싫어 눈을 감아도 억지로 시야에 쑤셔넣은듯 선명하게 보였다. 



'안돼-안돼- 죽으면 안된다! 애들아!'



이게 악몽이라는 걸, 이미 끝나버린 과거라는걸 알아도 온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생생하다.

아무리 소리쳐도 친우들을 구할 수 없다. 동지들을 구할수 없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악을 써도 사물은 손발이 묶인듯 꼼짝할수 없었다.



'안돼-그만해 제발...'



괜찮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제 머리를 만지는걸 느꼈다. 


괜찮아. 


사물은 저도 모르게 매달리듯 그 손을 잡았다.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니탓이 아니다. 그건 니탓이 아니야.


잡힌 손이 부드럽게 제 눈을 덮어온다. 눈이 따뜻해지면서 왠지 모를 안심감이 들어 사물은 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전으로 빠져들었다.




"아.."


퍼뜩 눈을 뜨자, 이미 창밖이 환했다. 사물을 몸을 벌떡 일으켰다.


"오래 잤구나.."


태학에 들면서 늘 남들 배이상 노력해왔기에, 항상 새벽에 잠들고 새벽에 일어났던 사물이었다. 단 하루도 쉬지않고 필사적으로 수련하였던 지라 이렇게 동창이 환해질때까지 잠들어본적이 없었다. 어지간히 피곤했구나 싶었다.


"하아..."


관자놀이와 미간을 꾹꾹 눌렀다. 전투에 참가한 뒤로 늘 두통과 미열에 시달리고 있다. 제법 잤는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진건 아니었다. 힘든 한숨이 절로 내쉬어졌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옷을 갈아입던 사물의 눈에 머리맡에 두었던 복숭아가 보였다.


"...."


어제 한개를 먹고, 한개를 남겨두었던 것이다. 만춘에게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거 같아 내키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의 말이 옳았던 거 같다. 어제보다 속이 한결 편했다. 


"...이상한 사람..."


사물은 남은 복숭아를 베어물었다. 














"오 일어났구나 사물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나와보니 어제 들었던 데로, 소벌도리가 성문 보수공사를 감독하고 있다가 그를 반겨맞았다. 닥쳐오는 당나라 군대를 맞기위해 성곽주변은 많은 사람들이 부산하게 성곽을 축조하고 다가올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저건...."



성문을 보수하는 공사에 어제 인사했던 부관들과 장교들이 섞여 같이 일을 거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안에는 만춘도 보였다. 그는 맨앞에서 병사들과 똑같이 밧줄을 당기고 있었다. 

소벌도리가 웃으며 그런다.



"새벽부터 나와서 같이 일하고 계셨느니라"


"네..."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만춘은 사물이 생각하는 귀족, 고구려의 장군이자 한성의 성주로써 어디에서도 본적 없는 사람이었다. 세대를 앞설 뿐 만춘 역시 사물처럼 변방의 무관 집안출신으로 태어나고 살아왔다. 생애의 흐름은 분명 비슷할텐데 그는 하루만에 사물의 예상에서 진즉에 저멀리 벗어나버렸다. 



"성주는 어떤 사람입니까?"



"성주 말이냐?"




고구려의 방패라는 변방의 성 안시성은 그만큼 고달프고 부침 많은 땅이다. 단지 최소한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도 사람들은 황폐하고 힘든 삶을 견뎌내야 했다. 작고 소중한 것따윈 괘몰되기 쉽상이다. 



"성주는...성민들에게 어떤 사람인 겁니까?."



고구려를 지킨다는 거대한 사명감만으로도 버티기 힘든 여기서 양만춘은 모든 것을 돌보고 있었다.  크게는 적으로부터 성을 수호하고, 작게는 모든 성민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사람. 성내의 노인과 어린아이들의 안부를 일일이 챙기고, 병사들의 대소사를 하나하나 살핀다. 성곽에도 마을에도 벌판에도 양만춘이 없는 곳은 없다. 안시성 어디든지 그가 있다.  




"모두들 성주를 안시성 그 자체라고 생각하지."



전장의 영웅으로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이던 장수는 제 한몸만을 가지고 성민 모두에게 섞여들어있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대막리지와는 가장 정 반대에 서있는 사람.





"......"



영혼마저 안시성에 녹아든 듯 단단히 성을 지키는 자.

성 그 자체가 되어버린 사내.



"성주가 없는 안시성은...안시성이 아니다."



삶이 안시성이 되어버린 저 사람을 죽이면, 이 많은 사람들은 어찌 되는걸까.

단지 어떤 사람 하나가 죽는게 아닐 것이다. 나라를 잃고, 고향을 잃는 정도가 아닐것이다. 


이 모든 성민들의 삶을 잃어버리게 되는게 아닐까.



"왜 당신은...하필 이런 사람인걸까..."



계속 내 삶을 고달프게 하는 반역자였으면 좋았을텐데.



"응?"




사물은 혼자 중얼거리다가, 소벌도리가 이상한듯 돌아보자 애써 고개를 저었다.



"어 나왔구나."



흙이 묻은 손을 부산하게 털면서 다가오는 만춘에게 사물이 인사를 꾸벅했다.


"잘 쉬었냐?"


"네."



여전히 깐깐한 말투지만 어제보다 목소리가 긴장이 풀렸다.만춘은 사물을 보며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갑주를 벗고 옷을 갈아입은 아이는 첫인상보다 훨씬 어려보였다. 아까 병사들과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은 호기심 품은 아기처럼 귀엽기까지 했는데. 역시 애는 애다. 

만춘은 제 소매를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자-"


"에?"


건내받은 건 손바닥만한 가죽주머니였다. 

얼결에 받고 주머니를 열어본 사물은 이게 뭐냐는 눈으로 만춘을 보았다.



"엿이다"


"네에?"


"먹어둬라. 기운이 날테니"


어제 복숭아에 이어서 이젠 엿까지. 

이젠 대놓고 애기취급같아서 사물의 표정이 썩었지만, 옆에서 소벌도리가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으니 뭐라 할순 없고 어거지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집요한 만춘의 시선에 사물은 마지못해 엿 한조각을 꺼내 입안에 넣었다. 볼록해진 볼마냥 뾰족해진 아이의 심중이 손바닥처럼 환히 보여 만춘은 웃음을 참으려 애썼다. 
















*



"사물- 네 단검을 좀 보자"


"네?"



무장을 마치고 제손에 처음 들린 대장기를 만져보던 사물은 만춘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고개를 들자 만춘은 제앞에서 손을 내밀고 있다. 


"아 네."


얼덜결에 단검을 내밀었다. 개소문에게 받은 흑단으로 감싸고 황금으로 정교한 무늬를 세공한 아름다운 단검이었다. 만춘은 단검을 받아 손에 쥐어보더니 검을 뽑아 날을 보았다. 

새파랗게 벼려진 칼날에도 고구려군 특유의 문양이 상감되어 있다.



"좋은 칼이구나."


"...."



그에게 찔러넣어야 할 단검을 그에게 준 꼴이다. 

사물은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네손에는 약간 큰듯..싶지만..."


"....네?"


억누르려 해도 목소리가 자꾸 튀는 거 같아 적절하게 답을 할수가 없다. 

만춘은 별거 아니라는듯 단검을 사물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 손이 조금 더 자라야 딱 맞을게다."


"......."


제 손을 쥐었던 만춘은 손이 저보다 훨씬 크고 단단했다. 

어제 복숭아를 쥐어주던 그 체온과 다를바 없는 손이 오늘은 검을 쥐어준다. 

사물은 저도 모르게 제 손을 꽉 쥐었다.



"그걸로 내 수염을 잘라다오."



"예?"



제 의자로 돌아간 만춘은 앉아서 턱을 내밀더니 눈을 감고 그런다.



"전투에 나서기 전에는 수염을 다듬는 법이지."


"......."



"뭐하냐 어서 잘라라."



그의 말이 틀린게 아니었지만, 태평하게 자기 목숨을 제 손에 맡기는 모습이라니. 

사물은 그가 부르는데로 다가섰지만 칼을 뽑는 손은 덜덜 떨렸다. 


'사각-'



가끔 개소문이 자신을 불러 종종 이런 일을 해본적은 있었다. 

하지만 제손은 처음 해보는 것마냥 어설프게 손이 떨렸다. 

눈을 감고 제 얼굴을 맡긴 만춘의 표정이 너무나도 잘 보였다. 의심의 여지라곤 없는 표정.



이손이 조금만 더 나가면 그의 목을 찌를수 있다. 

대막리지의 임무를 완수하고 저는 평양성으로 돌아갈 수 있어.


반역자의 숨통을 끊어.


사물의 칼이 닿는 수염의 감촉마저 선명하게 느껴졌다. 딱 한치만 더 들어가면 그는 피를 쏟고 숨이 끊어질거다.


반역자의.....양만춘의.....목숨을.....


안시성의....목숨을....



"지금은 하지마라."



"!!!!!!!!!"



번개맞은 듯 놀라 사물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어느새 만춘은 눈을 뜨고 있었다.



"언제든지 기회는 있다."



너무 놀란 표정으로 숨마저 멎은 듯한 아이의 손을 가만히 잡아 그의 품으로 돌려주었다.

만춘의 손안에서 새하얗게 되도록 단검을 꽉 잡고 있던 손의 힘이 서서히 풀렸다



"그러니 지금은 하지마라."


그제서야 사물이 참고있던 숨이 헉-하니 풀렸다. 만춘은 그런 아이의 손을 놓아주고 남은 무기를 정비했다. 화살통과 활을 등에 채우는 동안 추수지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준비됬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추수지는 날카롭게 주변을 살폈다. 그러더니 넋을 놓고 서있는 서물의 모습을 보고 만춘에게 바짝 다가선다.



"칼을 빼들고 있는데, 괜찮으십니까?"


"그래. 괜찮다."



피식 웃는 만춘의 얼굴은 여유롭다못해 편안해보이기까지하니 추수지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여유만땅 무모한 성주같으니라고. 딱 봐도 니 명줄끊으러왔다 암살자 102번이고만.



"제가 그래서 수상하다지 않았습니까."


"아직 어린애다. "



가늘지만 수련이 쌓인 단단한 손은 아직 제손안에 들어올만큼 작았다. 어른과 소년의 경계에 서있는 아이의 덜 자란 손. 다오같은 어린애나 누이인 백하의 손과는 또 다르다. 닿을 때마다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면 제 마음도 묘해진다.



"없애야 됩니다. 성주. 전투 중에 뒤를 치면 어쩝니까."


"저애도 안시성민이다.지켜보자."



내 적이 준 단검을 들고 나의 목숨을 노리러 온 어린 암살자.




"뭐하느냐 사물! 어서 대장기를 들거라!"


"..네! 성주"



자꾸만 널 지켜보고 싶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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