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요약: 유명한 명작동화 여러 개 잔뜩 섞어갖고 만든 세계에 빠진 기츠4인방




본인이 동화 속 주인공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목 부근을 한 손으로 주무르며 아즈마 미치나가는 이런 세계에 본인을 집어넣은 녀석은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욕했다. 평소보다 긴 머리는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목이 뻐근했다. 최악이다. 가능하다면 금방이라도 가위로 이 거추장스러운 걸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탑 안에는 무언가 자를 수 있을 날카로운 날붙이 하나조차 없었다. 그 와중에 제 어깨를 빙 두른 머리카락은 꽤 방한 기능이 되어 따뜻... 순간 좋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웃기지도 않았다. 그나마 장점이라 하면, 씻지 않더라도 현실 세계가 아니었기에 냄새라던가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점이 유일했다. 아마도.


높은 곳이니 창문 정돈 제대로 갖출 것이지, 그렇지 않아도 좁은 탑의 벽에 밖을 보라고 만든 건지 뚫린 창문 모양의 구멍으로 바람이 자유분방하게 들어왔다. 한 마디로 엄청 추웠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보이는 붉고 노란 잎사귀들을 보아하니 가을인 것 같았는데, 들어오는 바람은 한겨울을 떠올리게 했다.


미치나가가 긴 머리에서 해방되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     *     *


"어이쿠, 아리따운 공주님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건... 말괄량이 버팔로 공주님?"

"이쪽은 남자거든?"

"긴 머리도 잘 어울리네. 예쁘게 땋아줄까?"

"필요 없어."


미치나가는 아무리 글과는 거리가 한참 먼 인생을 살았지만, 어렸을 때 접한 동화 정도는 아마도 몇 개 기억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하나가 라푼젤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 탑에 갇힌 머리 긴 공주를 구해준 게 왕자 아니었던가? 본인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더라면 그랬을 텐데, 제 앞에 나타난 건 이름 모를 망할 여우놈이었다. 애초에 탑에 갇힌 공주 부분부터 잘못되긴 했지만, 아무튼. 분명 첫 만남인데도 미치나가는 단박에 본인과 저 녀석은 잘 맞지 않겠다는 걸 깨달았다.

모험가 복장이라 하면 제일 많이 떠올릴 후드를 걸치고 있었고, 안에는 흰색에 붉은색 포인트가 들어간 깔끔하면서도 활동하기 편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었다. 창틀에 발을 딛고 몸을 굽히곤 상대방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한 손으론 떨어지지 않게 벽을 짚으면서 다른 한 손으론 여우 손을 만들어 보여주기까지 했다.


저거, 저대로 밖으로 밀어버릴까.


이 상황에선 내가 널 구하러 온 거잖아? 미치나가 속을 벅벅 긁고도 남을 그런 말과 함께 그는 창틀 위에서 뛰어내렸다. 미치나가만의 공간이었던 탑 안에 불청객이 하나 늘었다. 덮어쓰고 있던 후드를 벗자, 허리에 차고 있던 붉은색 여우 키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등 뒤에 무언가 뛰어내려서는 미치나가의 침대에 파고들었다. 흰색과 붉은색의 여우. 이걸로 탑 안의 불청객은 하나가 아닌 둘이 되었다.


"대체 어떻게 올라온 거야? 그것보다 너, 누구야?"

"응? 아. 그야 난 운이 좋은 여우 왕자님이니깐."

"......."


할 말도 잃게 만드는 뻔뻔함. 윙크를 하는 그를 옆으로 제쳐두고 미치나가는 창클에 손을 올린 채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이전까진 없던 거대한 콩나무 줄기가 하나 아래의 땅에서 솟아있었다. 이건 다른 동화에서 나온 그거 아니야? 미치나가는 이 세계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한 번 더 의심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 건지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여우는 이젠 제 집 마냥 자연스럽게 나무의자 -이 방에 유일하게 있는 의자로 미치나가 본인도 꽤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에 앉아서는 무릎 위에 진짜 여우를 올려두곤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미치나가의 보라색 이불은 이미 흰색과 붉은색 털이 콕콕 박혀있었다. 그걸 보던 미치나가는 저 털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잠시 고민했다.


"저 콩나무, 네가 심었어?"

"그래. 엄청 잘 자랐지? 맞다, 내 이름은 기츠. 그쪽은 아즈마 미치나가지?

"내 이름은 어떻게..."

"말했잖아. 나는 운이 엄청 좋다고. 네가 나를 이렇게 만난 건, 너에게도 행운이야."


전혀 아닌 것 같은데. 미치나가의 미간은 이미 잔뜩 구겨진 지 오래였다.


"그건 그렇고, 이런 곳에도 잘도 살았네. 이런 좁은 곳은 취향이 아니지 않았어?"

"그냥 있는 거지."

"이런 곳에선 고기도 못 구워먹겠네."


제멋대로 한 자리 차지한 불청객 덕분에 미치나가는 침대에 앉게 되었다. 그의 옆에는 침대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불을 전부 끌고가선 둥지처럼 만들곤 그 위에 누워서 잠든 여우가 있었다.

기츠는 고기를 먹지 못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마냥 진지한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미치나가는 그런 기츠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미치나가는 현실 세계가 아닌 덕분인지, 무언가 먹을 필요도 없었고,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탑 안에 먹을 게 없기도 했다.


"나는 꽤 배가 고픈데 말이야."

"그럼 나가."

"도도한 공주님이네, 정말."

"공주 아니라고! 너는 이 꼴을 보고도 그 말이 나오냐?"

"...아. 정했어. 여기서 나가는 거야. 너도 나랑 같이 말이야."

"하...? 나도?"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계속 안에 있을래? 아니면 나와 같이 나갈래? 선택은 네 몫이야."


겉으로 보기에는 선택권을 미치나가 본인에게 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론 미치나가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미치나가 그 역시 이딴 세계에 평생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래, 알겠어."

"현명한 선택 고마워. 사실 거절하면 어떻게 묶어서 끌고 나가야 하나 살짝 고민했거든."

"그건 납치잖아!"

"애초에 너도 지금 여기에 납치되어 있는 거 아니었어?"

"그렇다고 하기에는... ... 그보다, 여기서 어떻게 나갈 건데?"


기츠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선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그야 내가 들어온 방식대로... 이런. 시간이 지난 모양이야."

"무슨 소리야?"

"콩나무가 시들어버렸어.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은..."


기츠는 말을 끝맺는 대신 한 손가락으로 미치나가의 긴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내 머리카락은 밧줄이 아니라고."

"이상하다. 원래 탑 안의 공주님이 머리카락을 아래로 내려줘야 하는 거 아니었던가?"

"몰라. 그런 힘들고 귀찮은 짓 안 해. 애초에 모르는 녀석이 뭐가 좋다고 함부로 안에 들여."

"자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엄청 귀찮았을 텐데. 목도 아프고. 내가 해줄게."

"...제대로 잘라."

"풀코스로 모셔드리죠, 버팔로 공주님."


기츠는 결국 미치나가에게 배를 한 대 주먹으로 얻어맞고 미치나가를 의자에 앉혔다. 적당한 천을 찾지 못해 결국 테이블보를 미치나가의 어깨에 둘러주곤 머리카락이 옷 사이로 들어가지 않게 꼼꼼히 묶어주었다. 그러곤 벨트에 차고 있던 단검을 빼냈다.

길고도 짧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미치나가의 긴 머리는 말끔하게 잘려 나갔다. 이발용 가위가 아니었는데도 제대로 해주겠다던 그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는지 칼질 몇 번으로 미치나가의 머리는 뒷목을 반쯤 덮는 단정한 헤어스타일로 바뀌었다.


아래로 내려가기 위한 밧줄로 사용하기 위한 몇 과정을 거친 뒤에야 미치나가와 에이스는 한 사람의 머리카락이었던 것을 타고 지면으로 무사히 내려오진 못했다. 길이가 부족했던 탓에 조금 높은 곳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깔끔하게 착지한 기츠. 그리고 조금은 휘청거린 미치나가. 다행히 발을 접지르진 않았다.


탑에서 벗어나 얼마나 걸었을까, 둘은 숲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숲이 끝나는 지점에 넓은 초원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멀리서 달려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에이스으!!"


그녀는 짙은 푸른빛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뒤에 살짝 보이는 꼬리... 꼬리?


"고양이다냥~."


본인을 네온이라 소개하며 그녀는 고양이 손 포즈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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