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가 나재민을 처음 만났던 날은 여주가 전에 일하던 곳에 대타로 일하러 나간 날이었어. 여주가 일했던 라운지바는 시급이 엄청 쎈 곳이었거든. 일이 힘들어서 시급이 쎈 것보다는 그 곳에 공인들이나 고위층 임원들이 자주 오는 곳이라 프라이버시 때문에 비밀 보안 유지비까지 포함해서 월급이 두둑했지.





사실 일도 그렇게 힘들지 않고 재미있었어. 일하다 보면 진짜 별에 별일은 다 보고 듣게 되니까 지루할 틈도 없었고. 돈도 많이 주고 나름 즐겁게 일할 수 있었는데 새벽까지 일하고 낮에 다른 알바까지 하려니 몸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둔 거였어.





"여주야. 진짜 네 덕분에 살았다... 진짜 너무 고마워."


"마침 저도 오후에 하던 알바가 쉬는 날이라 잘 된 거죠 뭐!"


"진짜 누나 오늘 없었으면 저 오늘 울었을 거예요..."


"아, 동화 우는 거 볼 수 있었는데 아쉽다."





주말이라 정신없던 날이라 한바탕 바쁜 시간 지나가고 작게 대화도 나누면서 장난을 치고 있는데 그때 여러 명이 우르르 들어오는 거야. 매니저가 안내를 위해 그들한테 가까이 다가가서 예약자 성함을 물었어. 답을 들은 매니저가 안쪽 룸으로 안내를 하더라고. 그러면서 여주가 있는 바 테이블 앞을 지나가는데 코끝을 찌르는 페로몬 향에 여주가 인상을 찌푸렸어. 다행히 인사를 한다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여주가 표정을 찡그린 건 못 봤지만.





제일 안쪽 룸은 프라이버시 룸이라 예약하는 이름도 가명으로 하고 예약하는 방법도 어려운 곳이었어. 그런 곳에 알파 오메가 무리들이 한꺼번에 들어간다는 건... 여주는 거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하는 거지. 잔뜩 뒤섞인 페로몬 향에 머리도 아프고 속도 울렁거렸거든.





"아... 울렁거려..."


"누나 왜 그래요? 괜찮아요?"


"어어, 오기 전에 급하게 저녁 먹고 왔는데 그게 체해서 그런가 봐."


"소화제라도 찾아볼까요? 직원 휴게실 비상약품에 있을 텐데."


"아냐아냐. 괜찮아."





여주는 옆에 있는 동화에게 웃으면서 괜찮다고 대답했어. 그들을 안내했던 매니저와 옆에 있는 동화는 지금 가게 안에 페로몬 향들이 잔뜩 뒤섞여있다는 걸 못 느끼거든. 왜냐면 이 라운지바에서 일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가 베타여야 했으니까.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화장실 칸에 들어온 여주는 들고 온 파우치에서 급하게 억제제를 꺼내서 삼켰어. 여주는 오메가였어. 20살에 뒤늦게 발현한 열성 오메가. 오메가인데 어떻게 이 라운지바에서 일 할 수 있었을까? 그건 오메가였지만 여주는 특이체질이었기 때문이야. 여주는 일반 오메가들과 다르게 페로몬 향이 거의 없었어. 얘가 오메가라고? 맡아지지 않는 향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지. 하여튼 그래서 베타라고 속이고 이곳에서 일 할수 있었던 거야.





여주는 자신의 이 특이체질이 좋았어. 아무래도 오메가라 하면 알바를 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으니까. 거짓말을 해서 남을 속이는 거였지만 솔직히 페로몬 향도 거의 안 나는 오메가를 누가 오메가로 보겠어. 게다가 여주가 스스로 먼저 오메가라도 밝히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를 텐데. 지금까지 한 번도 들켜본 적도 없었고.





방금 그 무리들 때문에 가게에 페로몬 향이 진동을 했지만 여주는 꾹 참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어. 어차피 바쁜 타임은 거의 끝나가서 조금 이따 먼저 퇴근하겠다고 얘기하면 됐거든. 조금만 참자. 조금만... 자리로 돌아온 여주가 작게 중얼거리면서 하던 정리를 마저 하는 거지.






* * *






"언니 저 12시 쯤에 퇴근해도 될까요? 아까 저녁 먹은 게 좀 체해서..."


"어어. 그래. 12시 말고 지금 퇴근해도 돼."


"아, 그럼 저 쓰레기 정리만 하고 갈게요!"


"응응! 그래. 오늘 진짜 고맙고 너 쉴 때 한번 놀러 와."


"정말요? 저 내일도 쉬는데?"


"그럼 내일은 놀러 와! 내가 사줄게!"


"저 그럼 진짜 비싼 거 먹어도 돼요?"





그러자 매니저가 응? 뭐라고? 하며 못 들은 척하면 여주가 웃으면서 넘어가는 거지. 일급은 이따 바로 계좌로 보내주겠다는 말에 다음에 또 사람 필요하면 연락 주라고 대답한 다음 쓰레기 정리를 하려고 가는 거지. 쓰레기를 들고 뒷문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훅 풍겨오는 페로몬에 걸음을 멈추고 반사적으로 손을 올려 코와 입을 가렸어. 하필 뒷문으로 가는 통로가 그 프라이버시 룸 쪽 뿐이라 쓰레기를 버리러 가려면 지나쳐야 했는데.





"어어-? 뭐야아-?"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거든. 풀린 눈과 몸을 똑바로 못 가눠서 벽을 짚으면서 오던 한 남자가 여주를 발견하고서 검지로 가리키며 웃는 거야. 그 웃음이 소름이 끼쳐서 여주는 대충 목례를 하고 가려는데 턱- 하고 여주 손목을 잡아버리는 거지.





"어디 가아- 나랑 저기 갈래?"


"이, 이거 놔주세요."


"저기 안에 너 같은 베타들도 많아- 가서 재밌는 거 하고 놀자. 어때?"





내가 좋은 것도 줄게- 우악스러운 힘으로 끌고 가려는 걸 있는 힘을 다 해 버텼어. 이거 놓으세요. 손 놓으시라고요! 큰 소리를 쳐도 방음도 잘 되는 구조에다가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도와줄 사람이 안 보이는 거야. 제발 아무나 좀 와서 도와줘. 두려움에 눈물도 나고 힘도 점점 빠지는 그 순간에





"너 뭐 하냐?"





그 목소리가 구원이라도 된 듯 여주가 고개를 돌려 쳐다봤어. 머리를 올리고 반듯한 슈트 차림으로 둘을 쳐다보고 있는 남자의 표정은 진짜 무심한 표정이야. 어어- 벌써 가게? 왜 벌써 가려고 해. 조금만 더 놀다 가지. 여주를 끌고 가려 했던 미친놈은 히죽히죽 웃으면서





"아- 같이 놀자는데 계속 튕기잖아 얘가."


"......"


"야. 재민아. 네가 얘기해 봐. 우리가 얼마나 재밌게 노는지."





응? 진짜 재밌다니까? 너 나중에 나한테 더 놀자고 할걸? 풀린 눈으로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끈적한 손길로 흘러내린 여주 잔머리를 쓸어넘기는데 오싹 소름이 돋아. 우는 소리를 내며 제발 놔달라고 다시 한번 말하는데 한숨소리가 들리더니 여주 손목을 잡고 있는 손이 떼어졌어. 아악! 굵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진 미친놈은 눈을 번뜩이더니





"야! 뭐 하는 거야 나재민!"


"경찬아. 너 내가 우스워?"


".....뭐라고?"


"내가 저번에 말했지. 이딴 모임에 한 번만 더 부르면 대가리 깨버린다고."





말을 하면 좀 들어처먹어. 진짜 죽고 싶지 않으면.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주위를 둘러싸는 무겁고 날카로운 느낌의 페로몬에 미친놈은 아무 말 못하고 입술만 깨물다가 작게 욕을 읊조리고서는 혼자 룸으로 들어갔어. 나재민은 지겹다는 눈빛으로 그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여주를 쳐다봤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아있는 여주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숨을 참고 있는 모습이었어.





"흐으...."





여주는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페로몬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어. 당연하지. 나재민은 우성 알파 중에서 극우성 알파였으니까.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야 된다는 생각은 하고 있는데 다리에 힘은 풀렸지, 또 페로몬에 몸이 반응하는지 안쪽이 간지러우면서 나재민 품에 안기고 싶다는 본능이 비집고 나오는 거야.





"뭐야. 사람 불러줘요?"





그런 여주 옆으로 다가옴과 동시에 더 짙어지는 페로몬. 그 페로몬에 홀린 듯이 여주는 손을 뻗어 나재민의 옷깃을 잡아 쥐었어. 그 손길에 옷깃을 붙잡힌 나재민도 여주를 따라 몸이 아래로 쏠렸고.





"허...? 잠깐만."





어이없다는 듯한 헛웃음과 함께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여주를 내려다보는 거지. 빨개진 귀과 목덜미. 그리고 그 목덜미에서 올라오는 아주 옅은 페로몬 향.  





"....베타인 줄 알았는데."


"하....."


"베타가 아니라 오메가였네?"





그 말에 여주가 잠깐 놓아버렸던 이성이 다시 돌아온 거지.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자신이 나재민한테 기대어있다는 걸 자각한 순간 반사적으로 힘을 줘서 나재민을 뒤로 밀치고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뒤를 돌아 뛰었어. 뒷문으로 빠져나와 무작정 뛰던 여주는 가게에서 꽤 멀어지고 나서야 뛰던 걸 멈추고 다시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어.





"....내가 진짜 미, 쳤구나."





그 페로몬에 홀려 처음 보는 남자에게 안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니, 진짜 그 상태로 조금만 더 있었으면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렸을 거야. 나재민이 뒷문을 열고 자기를 쫓아올까 봐 얼른 집으로 가야겠다 생각하고 후들거리는 다리에 다시 힘을 줘서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 거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정신 차리려고 바로 샤워부터 하고 나왔는데 매니저에게 전화가 오겠지. 어떤 남자 손님이 널 찾는 거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데 그 목소리가 정말로 여주를 걱정하는 목소리여서 남자가 여주가 오메가라는 말은 안 했구나. 하면서 다행이라 생각을 했어. 대충 룸 예약했던 손님이 자기를 끌고 가려고 했다고 말하니 





- 다친 곳은 없어?


"네. 다친 곳은 없어요. 그 손님이 도와주셔서..."


- 다행이다 진짜... 그럼 네가 걱정돼서 찾았나 보네.


"아... 근데 그 손님도 룸 예약한 사람들하고 아는 사이였어요."


- 뭐? 정말?


"네..."


- 아니. 나도 동화한테 너 찾는 거 같다고 전해 들은 건데 네가 손님하고 트러블 일으킬 애도 아니고...


"하하..."


- 그래서 일단 너한테 먼저 연락해 본 거였거든. 뭔가 좀 이상하네. 내가 어떻게 둘러대볼게. 


"네. 언니 감사해요..."


- 아냐아냐. 놀랐을 텐데 얼른 쉬어.





전화를 끊고 조금 있다 일급도 입금을 해줬더라고. 다음에 또 대타 뛰어달라고 하면 가려고 했는데... 오늘 일 때문에 다시는 그 바에 얼씬도 안 해야겠다 생각하고 지나가겠지.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사장님 저 들어가 볼게요!"


"어어, 고생했어 여주야."


"넵! 내일 봬요-"





알바가 끝난 여주가 밖으로 나오면서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확인해 보겠지. 밀려있는 연락에 토독토독 답장을 하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면





"......"


"이제서야 만나네요."


"......"


"뭐야. 나 기억 못 해요?"





그럼 좀 서운한데. 생긋 웃으며 여주의 앞에 서있는 나재민. 여주는 당황해서 아무 말을 못 하다가 간신히 입을 뗐어.





"ㅇ... 아니. 여기는 어떻게..."


"잠깐 얘기 좀 하죠 우리."





시간 괜찮죠? 여전히 환하게 웃으면서 말하는데 차마 안된다고 대답을 못 하겠는 거야. 





"뭐 마실래요? 커피? 아니면 다른 거?"


"아, 아뇨... 저는 그냥 물이면 돼요."


"그래요? 이 비서는 뭐?"


"그럼 저는 딸기 쉐이크 먹겠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개 주세요. 하나는 테이크아웃 해주시고요."


"......"


"죄송하지만 손님. 저희가 1인 1메뉴가 원칙이라서요."


"아, 알죠. 근데 제 일행이 물이면 괜찮다고 하네요."





아, 또 저희가 조금 조용한 곳에서 대화를 해야 해서요. 그러면서 지갑에서 현금 다발을 꺼내 건네는 거지. 





"저기 저 자리 좀 쓸게요."





셋은 여러 명이 앉으라고 만들어둔 큰 테이블이 있는 룸 형식의 자리에 앉았어. 원래 진동벨을 주고 나오면 직접 픽업을 하는 곳인데 현금 다발을 받은 사장이 음료를 테이블로 가져다주는 거지. 





"아, 물 드신다고 하셨죠? 따뜻한 물이랑 시원한 물. 어떤 거 가져다드릴까요?"


"어... 물은 제가 가져다 마실게요."


"아닙니다.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그리고 여주 앞에 놓인 온수가 담긴 컵과 냉수가 담긴 컵. 여주 앞으로 여유롭게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나재민과 생각을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앉아있는 이 비서. 여주는 일단 목이 타 냉수를 들이켰어.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 이사님이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요."


"맞아요. 저 여주씨 나쁜 의도로 찾아온 거 아닌데?"


"....제 이름은 또...."





제가 있는 곳을 알아냈으니 당연히 이름도 알겠지. 그 생각에 입을 다물었어. 아랫입술을 한번 깨물고 난 다음 먼저 용기를 내 물었지. 대체 왜 찾아왔냐고.





"그 전에 제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


"네? 어떤..."


"페로몬 좀 잠깐 풀어줘요."


".....네?"


"여주씨 페로몬 향. 다시 한번 맡아보고 싶다고요."





정말 뜬금없는 부탁이었어. 내 향을 왜? 이해가 안돼 눈썹을 찌푸린 여주를 보고서 재민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한번 갸웃거렸어. 어째나 저째나 저 사람 말대로 페로몬을 한번 풀어야 얘기가 끝날 것 같아 여주는 길게 한숨을 쉬고서 페로몬을 풀겠지.





"역시 페로몬 향이 엄청 약하네요."


"네. 그래서 솔직히 베타랑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요."


"에이, 그래도 어떻게 베타랑 같아요?"


"제가 오메가라는 걸 알아채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향도 거의 안 나니까요."


"근데 저는 알아챘는데요?"


"......그건 그쪽이, 하... 됐어요."





그래서 제 페로몬 향 다시 맡아보고 싶어서 찾아 오신 거예요? 그럼 볼일 끝난 거 아닌가요? 여주가 피곤하다는 목소리로 얘기했고 재민이는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어.





"그럼 하실 말씀 얼른 하세요. 제가 좀 피곤해서."


"아, 그럼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할게요."


"네."


"혹시 애인이나 파트너 있어요?"


"……뭐라고요?"


"아, 다른 뜻이 아니고."







제가 여주씨 페로몬 향에 꼴리거든요. 그러니 제 파트너가 되어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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