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아래서 아이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전봇대 때문인지 더 작아보였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내였지만 아이에게 다가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에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더 무겁게 들렸다. 나 역시 무심한 무리에 끼고 싶었으나 오 년 전, 동생의 모습과 아이가 닮아서 무시할 수 없었다. 아이 앞에서 쪼그려 앉아 부모님이 어디 계신지 물었다. 아이는 누나와 집에 가고 있었는데 누나가 사라졌다고 했다.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가 내 귀로 들어와 간지럽혔다. 말을 하는 아이의 볼도 함께 떨리고 있었다. 아이의 손에는 장난감이 들려있었다. 걸어가면서 가지고 놀다가 누나를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사람이 많으니 찾기 어려웠겠지. 아이는 해바라기 어린이집 원복을 입고 있었다. 형이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줘도 될까? 아이는 꽤 오랫동안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의미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아이의 이름은 현민이었다. 동생의 이름인 현수와 비슷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눈에 힘이 들어갔다. 현민이에게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현민이는 바로 배스킨라빈스를 가리켰다. 나한테 적응하는 시간이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커다란 분홍색 숟가락 손잡이가 우리를 반겼다. 윤이 나게 닦인 숟가락 속에 우리의 얼굴이 보였다. 가게 안에서는 아이스크림 향기가 섞여서 났다. 코로 세게 숨을 들이마셨을 때 시원한 공기가 코를 매만졌다. 현민이는 요거트 맛을 골랐다. 현수가 아이스크림을 고른다면 딸기 맛을 골랐었겠지. 가게를 나오기 전, 혹시 몰라 휴지 몇 칸을 챙겼다.

  시내를 벗어나 일차선 도로로 들어섰다. 현민이와 나는 아이스크림을 할짝이며 손을 잡고 걸었다. 내 손이 현민이에게는 높은지 팔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떨림이 전해져 내 팔까지 강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허리를 살짝 굽혀주었다. 요거트 아이스크림 두 개. 요거트 향이 강하게 코앞에서 일렁였다. 곧 현민이의 팔이 갑자기 강하게 떨렸다. 오줌 마려워? 현민이는 고개를 위아래로 빠르게 끄덕였다. 나는 조금만 참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현민이를 들고 달렸다. 현수와 몸무게가 비슷했다. 현민이와 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느슨했던 신발 끈이 풀렸는지 바닥과 신발끈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별로 힘들지도 않은데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머리에서부터 엉치뼈까지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축축한 느낌이 전해졌다. 눈앞에서 흐릿하게 응급실 모습이 보였다. 눈꺼풀이 흔들렸다.

  어린이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시원한 미소를 지은 현민이는 녹은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었다. 우린 누나를 기다리며 놀이터에서 놀기로 했다.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는 공허했다. 시간이 멈춘 듯, 싸늘함이 느껴졌다. 현민이는 시소를 태워달라며 앞자리에 앉았다. 왜 그네를 탈 거라고 생각했을까. 현민이를 태운 시소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현민이의 머리카락도 흔들렸다. 평소에 운동 좀 할 걸 그랬나. 몇 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팔이 떨렸다.

  누나가 도착했을 때는, 노을이 조금씩 지고 있었다. 누나는 내 앞에서 계속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크게 들렸다가 작게 들렸다가 반복되었다. 나는 괜찮다며 같이 허리를 숙였다. 허리를 숙였을 때 현민이의 동그란 눈과 얼굴이 보였다. 요거트 아이스크림처럼 피부가 하얬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남매의 모습이 그립고 부러웠다. 둘은 몸을 조금씩 흔들며 노을 속으로 걸어갔다. 한참동안이나 그 모습을 바라봤다. 둘의 그림자가 처음보다 작아지고 있었다. 모습까지도. 현수와 나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작아지는 둘의 그림자가 옅어지면서 일렁거렸다. 흐려지는 그림자가 시선 끝에서 흔들렸다. 현수의 그림자가 내 마음 속에서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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