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민이가 데려다 준 호텔에서 아주 꿀잠 잔 여주. 침대는 또 왜 이리 푹신푹신한지 휴대폰 알람이 울려서 일어나려는데 평소와 다르게 엄청 느적대다 일어났어. 체크아웃 시간 전에는 나가야지. 씻고 머리를 말리면서 드는 생각. 근데 그냥 이렇게 가도 되나? 나가면서 프런트에 말이라도 전하고 가야 하나. 하지만 그런 고민은 길게 할 필요가 없었어.





"이게 다 뭐예요?"


"주문하신 룸 서비스 입니다."





초인종과 함께 직원 목소리가 들리기에 문을 열어줬는데 안으로 들어오는 음식들. 난 주문한 적 없는데? 어벙한 상태로 음식이 쫙 깔리는 걸 보고 있다가 직원들이 다 나간 뒤에야 상황 파악이 끝나겠지. 그러고서 다시 초인종이 울리기에 여주가 바로 일어나 문을 열겠지. 그래. 나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잖아. 근데 문밖에 서있는 사람은 이 비서 혼자였어.





"아, 룸서비스가 딱 맞게 왔나 보네요."





그러고서 얼른 먹으라는 손짓을 하길래 여주가 이 비서를 쳐다보고 이걸 다 먹어요? 저 혼자? 묻는 거지. 이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니 너무 많아요! 하며 소리치길래 괜찮습니다. 이사님이 다 결제하실 거니 그냥 편하게 드세요. 하는 거야. 그때 여주 고개 갸웃거리면서 근데 이상하다. 하고 중얼거리다가





"이사님은요?"


"회사에 계십니다."


"분명 페로몬이 느껴졌는데..."





왜 느껴졌겠어. 어제 나재민 가기 전에 층에 페로몬을 진하게 풀고 갔잖아. 그게 아직도 남아있는 거지. 이 비서 속으로 혀를 차고 오늘 아침을 회상하겠지. 회의 째고 여주한테 가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나재민을 설득 시키느라 아침부터 진이 다 빠졌지만 이 비서는 그 말을 쏙 빼놓고 중요한 회의에 참석해야 해서 못 왔다고 말해주겠지. 그것도 모르고 여주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와, 되게 흥청망청 놀 것 같았는데 일할 때는 하나 봐요?"


"그럼요.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세요. 회사를 이끌어가야 하는 분이니까요."





진심으로 회사를 생각하는 마음과 듬직함.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이 비서의 말을 곧이곧대로 다 믿는 거지. 이 비서 오늘도 눈치 열 일 한다





"이 비서님은 식사 하셨어요?"


"네. 저는 먹고 왔습니다. 그러니 김여주씨 많이 드세요."


"그럼 저 먹는 거 좀 그만 쳐다보세요. 계속 그렇게 쳐다보시니까 잘 못 먹겠잖아요."


"아주 잘 드시고 계신데 이게 잘 못 먹는 겁니까?"


"아, 그만 먹을래요."


"농담입니다. 이사님이 김여주씨 잘 드시는지 꼭 확인하라 해서 그런 거예요."





그러면서 여주에게 건네지는 서류. 우물우물. 입에 음식이 있어 말은 못 하고 서류를 받아 이게 뭐냐는 눈빛으로 올려다보면 사람 좋은 눈빛으로 빙긋 웃어 보이는 이 비서. 파트너 계약서입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여주.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음식을 삼키는데





"자, 여기 물 드시고-"


"켁, 켁. 감사합니다..."


"찬찬히 살펴보시고 김여주씨에게 불리한 조건인 것 같으면 바로 말해주세요."


"후우, 저 아직 파트너 한다고 대답도 안 했는데요?"


"네. 알아요. 생각해 본다고 하셨죠."


"그래놓고 이렇게 계약서를 가지고 오신다고요?"


"음......"





손을 턱에 대고 이 비서가 무언갈 심각하게 고민하겠지. 여주는 왜 그러나 싶어서 눈만 껌뻑이며 쳐다보면 갑자기 눈빛이 변한 이 비서가 여주를 똑바로 쳐다보고서는





"어필하는 거예요. 여주씨한테."


"예?"


"왜냐면 저는 여주씨 페로몬에 빠져 매달리는 입장이니까요."


"....예?"


"....라는 이사님의 의견입니다."


"....와, 방금 좀 비슷했어요."


"네. 따라 한 겁니다."





제가 이사님을 옆에서 본 게 몇 년인데요. 다시 이 비서의 말투로 돌아와서 얘기하는 모습에 여주가 입술을 말아물고 웃겠지. 그냥 가볍게 훑어보시라고 드리는 거예요. 취직할 때도 회사 근무조건은 다 따지잖아요. 고개를 주억이며 공감을 한 여주가 일단 밥부터 다 먹고 보겠다며 대답하는 거지.






* * *






똑똑- 회사로 복귀한 이 비서가 노크를 하자 전무실 안에서 들어오라는 대답이 들려왔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번뜩이고 있는 나재민을 보고 이 비서가 어이쿠... 하고 살짝 뒷걸음질을 치다 뚜벅뚜벅 걸어가 서겠지. 재킷 안주머니에 고이 넣어뒀던 수첩을 꺼낸 이 비서가 그럼 보고드리겠습니다. 하는 거야. 나재민 고개 끄덕이며 들을 준비를 하고 짧게 숨을 들이쉰 이 비서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젯밤 잠자리는 불편한 점이 딱히 없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침대도 침구도 다 좋았다고 하셨고요."


"다행이네."


"점심은 이사님이 주문해두신 룸서비스를 드셨어요. 다 먹지도 못하는데 왜 이렇게 많이 시켰냐고 혼났습니다."







"와, 내 돈까지 걱정해 주다니... 역시 내가 제대로 봤어. 경제관념까지 만점이야."





그 중에 브런치 세트를 드시고 디저트로 과일을 드셨는데 과일은 딸기를 많이 드셨어요. 저녁은 초밥이 드시고 싶다 해서 이사님이 자주 가시는 청담동으로 가려고 했는데 김여주씨가 안 가신다고 계속 거절하시더니 결국 근처 대형마트에서 파는 초밥을 사셨습니다. 아, 초밥 중에 연어랑 광어 좋아하신다고 합니다.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로 여주의 대한 일과 보고를 하는 거지. 보고가 끝났는데도 생글생글 웃으며 계속 귀여워만 남발하는 나재민. 그 모습을 보고 이 비서가 속으로 유난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근데 이 비서 주머니에 뭐야? 라는 질문에 주머니? 하고 이 비서가 고개를 숙여 보는데





"아, 이거..."


"젤리? 이 비서 간식 안 좋아하잖아?"


"저도 간식 좋아해요 이사님. 그리고 이거는 아까 김여주씨가 준 거..."


"내놔."





바로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하는 나재민에게 이 비서 단호한 표정으로 안된다고 여주가 자기 먹으라고 준 거라며 얘기하니까 재민이 눈썹을 찌푸리겠지.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쉬고서는 손바닥을 내보이고서는





".... 5만 원."







"여기 있습니다."





5만 원짜리와 맞바꾼 1,500원 젤리. 이 비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아. 젤리를 받은 재민이가 여주에게 계약서를 전달했는지 물어보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전달했다고 대답하면 별말 없었냐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글쎄요... 하며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다가 어차피 내일 보러 가실 거잖아요? 하더니





"그럼 직접 들으세요. 전 이제 그만 퇴근하겠습니다."





6시 정각. 시계 초침까지 딱 정각으로 맞춰지자마자 수첩을 다시 집어넣고 퇴근하겠다 말하고 뒤돌아 전무실에서 나오는 거지.






* * *






"이사님은 돈이 남아도세요?"


"제 자산이 얼마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알려줄까요?"


"저한테 그걸 왜 보여줘요! 제가 지금 돈 자랑 듣자고 말 꺼낸 줄 아세요?"


"아니었어요? 나는 또 내 돈에 관심이 생긴 거면 그걸로 꼬셔보려고 했는데."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내뱉던 여주가 옆에 있던 이 비서와 눈이 마주쳤어. 이 비서님 그간 고생이 참 많으셨겠어요. 네. 가슴 속에 품은 사직서를 셀 수가 없습니다. 아무 말 안 해도 눈빛으로 통하는 텔레파시.







"여주 씨 지금 제 앞에서 대놓고 바람피우는 거예요? 그것도 내 비서랑?"


"누가 들으면 진짜 오해하겠어요. 저희가 무슨 사이라고."







"저번에도 말했지만 저는 도덕적인 사람입니다. 제 좌우명은 '죄짓고 살지 말자.'고요."


"이 비서님도 좀 조용히 해주세요."





여주가 째려보자 이 비서가 입술을 말아물며 고개를 끄덕였어. 다시 한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앞을 쳐다보겠지. 여전히 똘망 똘망 한 눈빛으로 여주만 계속 쳐다보고 있던 재민이에게 앞에 놓인 계약서를 가리키며 말하는 거야.





"계약서 수정하시죠."


"어떤 게 마음에 안 들어요? 말만 해요. 여주씨한테 다 맞춰줄게요."


"아뇨. 이미 저한테 너무 좋은 조건이에요."


"여주씨한테 좋은 조건인데 왜 바꿔요?"





너무 여주한테만 유리하게 맞춰져있으니까. 서로에 대한 비즈니스라 여주도 무조건 자기한테 맞출 생각은 없었어. 남이 봤을 때는 여주가 자기 복을 스스로 걷어찬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정말 그 정도로 계약서에 적혀있는 조건들이 여주한테 너무 좋은 쪽이었거든. 하지만 이것도 너무 수상하고 불안하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딱 적당하게 서로에게 윈윈한 방향으로 가고 싶은 거야.





"이유 없이 잘해주는 사람은 없다고 제가 그렇게 배워서요."


"네? 어떤 사람이 그랬어요? 전 진짜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여주씨에게 잘해주고 있는데?"


"저희 엄마가요."


"......정말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하는 지혜네요."


"오, 탈룰라."





이 비서님이 속닥거리며 한 혼잣말에 여주가 휙, 고개를 돌렸어. 맞는 말이에요. 어머니께서 정말 좋은 가르침을 알려주셨네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얘기하는 나재민.





"제가 좀 전에 순수하고 맑은 마음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사심이 가득하답니다."


"그렇게 말하니 계약서 쓰기 싫어지네요."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야 이유 없이 잘해준다고 의심하지 않죠."


"하...."





파트너 계약 다시 생각해 볼까. 이마에 손을 올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던 여주. 자- 그럼 어디를 수정해 볼까요? 길게 고민할 시간을 안주는 재민이야. 일단 쓰여있는 조항들을 다 조금씩 수정을 하자는 여주의 말에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겠지.





첫 번째. 페로몬 공유에 대한 건. 재민이는 횟수 정하지 말고 자율을 주장했는데 여주가 그러다가 내가 계속 안 해주고 뻐팅기면 어떡할 거냐며 자기는 딱 정해진 게 좋다고 주장했어. 양쪽 의견을 다 들은 이 비서는 여주 쪽 의견에 손을 들어줬어.





두 번째. 이성 교제. 이거는 의견 조율을 할 필요가 없었어. 재민이는 여주가 다른 알파 페로몬을 묻혀서 오는 건 절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길래 여주가 그러자고 했거든. 사실 여주는 그동안 바빠서 연애도 안 했었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었기에 1분 만에 넘어갔지.





"두번째 조항 때문에 물어보는건데 이 관계에 혹시 연인관계인 척도 포함되나요?"


"음, 그러겠죠? 여주씨가 사인을 하면 제 옆자리에는 다른 사람은 없을거거든요."


"그럼 이것도 정해야겠네요."





세번째. 스킨십 허용 범위. 여주는 이게 제일 중요한 건이라고 생각하겠지. 혼자 고민하고 있는데 재민이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여주를 쳐다보는 거지. 와, 저는 이런 조항은 따로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왜지? 여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겠지.





"여주씨가 엄청 보수적인 성향인 줄 알았는데 파트너 하자는 말에 바로 섹스 파트너로 오해도 하고..."


"이사님 제발... 직접적으로 말하지 말라고요. 여기 사람 많은 공공장소라고요."


"뭐, 여주씨가 저랑 하고 싶다면 저는 너무 좋기는 하지만..."


"무슨 소리예요. 최대 포옹까지예요. 그 이상은 절대 노."





조건들을 다 수정하고 마지막으로 수정할 하나가 남았어. 파트너 계약기간 동안 월마다 받는 금액 뒤로 적혀져 있는 문항. 생활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 월에 받는 금액도 충분히 큰 금액인데 그걸 제외하고 또 지원을 해준다니 여주는 그런 뻔뻔한 사람이 못돼. 근데 이번엔 나재민도 절대 양보 못하겠대.





"아뇨. 전 이거 무조건 넣어야 돼요."


"제가 충분하다니까요?"


"아니.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요?"


"김여주씨. 이건 이사님 말씀을 따르는 게..."





왜 이런 걸로 충분하다 그래요. 나한테 뜯어갈게 얼마나 많은데!  팽팽한 의견 대치 끝에 결국 여주가 백기를 들었어. 그래요. 이사님 마음대로 하세요.  그렇게 나재민과 여주. 그리고 이 비서까지 합세해서 수정한 계약서가 완성됐지.





첫 번째. 일주일에 평균 3~4번 만남으로 페로몬 공유.

두 번째. 계약기간 동안 서로 거슬릴만한 이성(베타 포함) 과의 만남 자제하기.

세 번째. 스킨십은 포옹까지 허용.

네 번째. 이 계약에 대한 것을 타인에게 알려서는 안 될 것.





그 외에도 몇가지 더 있었는데 여주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건 저 네가지 뿐이라. 조항 위반 시 내는 벌금도 정해졌어. 여주야 벌금 안낼 자신 있지. 여주는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고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 하단에 이름과 함께 사인을 했고 둘의 파트너 계약이 시작됐어.





"아, 여주씨. 이거요."


"이게 뭔데요?"


"저는 여주씨에 대해 조사해서 아는데 여주씨는 저에 대해 모르잖아요."


"제 뒷조사했다는 걸 되게 당당하게 말씀하시네요."


"네. 당당함 빼면 시체에요. 그래서 결국 여주씨랑 파트너 계약까지 했고."





그치. 재민이는 여주 뒷조사를 했잖아. 여주 이름 풀이까지 다 알아. 이 비서의 정보 수집력 대단해. 하여튼 그래서 어제 이 비서가 재민이에게 슬쩍 말을 흘린 거지. 김여주씨가 이사님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던데 이제 계약을 앞두고 있으니까 이사님이 누군지는 알아야 되지 않겠냐고.





그래서 준비했다! 나재민이 직접 준비한 자신의 프로필! 빠밤! 나재민의 회사는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아는 준 대기업 회사였어. 그래서 집안이 로열패밀리라 나재민도 꽤 유명한데 여주는 회장만 알아. 그 회장이 나재민의 아빠. 와, 그 회장 아들이 이 사람이라고? 금수저가 아니라 다이아 수저였네. 그제야 내가 좀 대단한 사람하고 엮였구나. 하면서 부담감이 생기려고 하는데





"....이건 뭐예요?"


"네? 어떤 거요?"


"여기 신체 사이즈 칸에 적힌...."


"아, 그거요?"


"......"







"글쎄요. 뭐일 것 같아요?"





빙긋 웃으며 되묻는 나재민. 왜 대답을 안 하고 쳐다보기만 하지? 말없이 눈을 맞추고 있다가 그 눈빛에 무언가 깨달아 버린 여주. 뒷목이 홧홧 달아오름과 동시에 손에 있는 프로필 서류를 테이블 위로 냅다 던져버렸어. 이 비서가 테이블로 내던져진 프로필을 들어 보겠지. 오, 이런. OMG. 여주가 경악한 부분을 본 이 비서. 이 죽일 놈의 호기심.





"아니! 뭘 이런 거까지 적어놔요!!!!!!"


"왜요? 여주씨도 나에 대해 알아야 되잖아요."


"아, 그냥 말 그대로 키, 사이즈만 적어놓으면 되는걸!"


"그니까 적었잖아요. 사이즈. 저에 대해 빠짐없이 여주씨한테 다 알려주고 싶어서 그런 건데."


"내가 말한 사이즈는 상의! 하의! 이런거고! 이런 거까지는 관심 없다고요! 저 이사님하고 안 잘 거라니까요?"


"여주씨는 미래를 볼 수 있어요? 왜 계속 저번부터 모를 일을 확신해요?"


"아, 아! 진짜 미쳤어요? 오늘까지 총 5번 본 사람 ㄱ, 그거까지 알고 싶지 않다고요!"


"나름 자신 있는 어필이었는데 아쉽네요. 그래도 여주씨 저 어디 가서 꿇리지 않ㅇ..."


"아악!!! 입 닥쳐요!"





계약 취소는 어떻게 하는 거지? 계약서에 사인한지 5분도 안 돼서 후회하는 여주였어.







 


>그래서 그게 뭘까...(灬ºωº灬)♡히히


김 덕춘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