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학교에서 고민한 것. 내가 유해에게 뭔가를 잘못했다는 생각을 필두로 번진, 그 비약하는 자기 비하를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은 참 다행이다. 유해는 나 때문이 아닌 자신의 질투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했으니까. 그게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물론, 정말 다행인 것은 아니다. 유해의 입에서 질투라는 말이 나왔으니까. 그 말이 신경 쓰인다. 아니,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거슬릴 정도로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지 않다. 그나마 위안은 질투라는 것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만들어낸 것, 그러니까 내 잘못은 없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면서 “휴, 다행이다.”하고 무거운 생각들을 훌훌 털어버리면 되겠지만,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질투가 난다면서도 들녘이가 내게 다가올 때 원하지도 않는 행동을 하는 유해가,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배려를 하는 유해가 왠지 싫다. 그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이런 생각 때문이 아니다. 애써 나와 들녘이가 있는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서 피하는 게 싫다. 보기 싫은 장면을 위해서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싫다. 유해가 싫어하는 것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싫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봤을 때는 유해가 자리를 피하는 것이 맞다. 들녘이와 나, 그리고 유해 이 셋 중에서 빠질 사람은 당연히 유해니까. 그럼에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유해는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위해서 행동하는 걸까? 그렇다면 질투라는 이름으로 들녘이와 내 사이에 비집고 들어와도 괜찮을 텐데.

계속되는 생각의 쳇바퀴로 결국 머릿속이 어지러운 것은 여전하다. 그게 자기 비하에서 딜레마로 바뀐 것뿐. 오히려 머리가 더 복잡해진지도 모르겠다.

 

 

“답을 좀처럼 찾을 수 없을 때는 누가 내 머리를 펑하고 날려줬으면 좋겠다.”

 

 

무심코 내뱉은 말을 혹시나 누가 들었을까 주변을 둘러본다. 다행히 이 포근한 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끼지 않거나 잠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나는 숨을 돌리고 창밖을 바라본다. 버스가 덜컹거린다. 순간적으로 몸이 뜬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당황하기보다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까 순간적으로 몸이 떴다고 느꼈을 때 창 밖 노을과 시선을 마주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기분과 맞추기 위해서 재생되는 음악을 바꾸던 중 나는 하나를 깨닫는다.

 

 

‘그래도 방금은 그 생각 안 했네,’

 

 

이렇게 깨달은 순간 다시 딜레마가 머릿속 곳곳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한숨이 나오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미소를 보인다. 마음에 드는 노래가 나올 때까지 휴대폰을 터치한다. 왠지 일부로라도 이렇게 행복한 척 행동하면 복잡한 머리가 조금은 나아질 것 같다.

몇 번쯤 더 어지러워하고, 몇 번쯤 더 후회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내릴 때가 됐다. 버스가 멈추고 나는 버스에서 내린다. 차가운 바람이 나를 스친다. 나는 뒤를 돌아 지평선 쪽을 바라본다. 사라져 가는 주황빛 하늘을 대신하기 위해서 검은색과 푸른색, 보라색들이 한 대 뒤엉킨 하늘이 차오르고 있다.

아까까지만 해도 잔뜩 고민을 들고 있었는데 하늘 하나로 황홀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내가 조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줏대 없고, 고민 있는 척하는 그런 거짓말쟁이. 실은 자신밖에 신경 쓰지 않아 남에 관한 일은 언제든 잊을 수 있는 이기적인 사람. 친구의 행동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모습이 아니어서인 사람.

 

 

“…”

 

 

‘자기 비하는 그만해야 된다.’, ‘지금 상태에 나에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생각은 늘 하지만 버릇이 된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자기 비하가 자기 위로와 연결된 나 같은 사람은 더더욱 그렇고.

한숨이 차오르지만 내뱉지 않고 참아본다. 가끔씩 드는 엉뚱한 생각 때문이다. ‘지금부터 잠들 때까지 한숨을 하지 않으면 머릿속이 맑아진다.’던가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새벽 1시 전에 잠들면 뭔가가 이루어진다.’하는 허황된 생각. 그런 걸 바라면 노력하면 될 텐데 나는 자꾸만 이렇게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마법을 바란다.

나는 뒤를 돈다.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따라 내 발소리가 크게 들린다. 차오른 한숨을 나는 결국 내뱉는다. 이걸로 머리는 맑아지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면 맨날 이런 생각을 왜 하는 거야.’


‘애도 아니고.’

 

 

나는 한숨을 또 한 번 내쉰다. 아무래도 오늘은 땅이 꺼져라 한숨 주야장천 내뱉을 것 같은 기분이다. 찬바람이 불어온다. 몸이 살짝 떨린다. 이제는 좀 더 따듯하게 입고 다녀야 할 것 같다.

 

 

 

 

나는 지금 침대에 대자로 뻗어서 천장을 보고 있다. 휴대폰에는 도아와 유해, 들녘이로부터 온 톡이 하나둘씩 쌓이고 있다. 나는 휴대폰으로 손을 뻗을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그 생각을 실천하지는 않는다. 조금 귀찮기 때문이다. 답장하는 걸 귀찮아하는 편은 아닌데, 아무래도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원인이랑 연관된 사람들이라서 몸이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어서 이런 게 아닐까. 물론, 난 과학에 대해서도 심리에 대해서도 쥐뿔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추측이다.

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한다. 아마도 셋이 동시에 톡을 여러 줄 보내는 것 같다. 나는 눈을 감는다. 지금 안 보면 좀 있다 변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생각해본다. 나는 눈을 뜬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것 보단 지금 보는 게 나을까. 어떻게 하지.

 


“… 책 핑계,,,”

 

“아니면 씻는다고...”

 

“…”

 

 

눈을 뜨자 엄마가 문을 열고 내 방으로 들어온다. 여태까지 잤냐면서 꾸중을 한다. 내가 잠들었었구나. 엄마는 나를 보지도 않고 입으로는 혼내면서 내 방을 정리한다.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아빠도 퇴근을 한 것 같다. 엄마는 계속해서 나를 꾸짖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정리한다. 여기저기 벗어놓은 양말들, 널브러진 가방과 밖으로 튀어나온 문제집들 그리고 그 밖의 많은 바닥을 어지럽힌 것들. 슬쩍 스친 거울을 바라보니 나는 아직도 교복차림이다.

 

 

“아.”

 

“왜?”

 

“아니... 내가 치울게. 나 옷 갈아입게 나가.”

 

“가족끼리 무슨, 내가 너 낳고 먹이고 길렀는ㄷ...”

 

“그래, 그래. 알았어 옷 좀 갈아입자 나가.”

 

 

엄마는 내 말에 등이 떠밀려 방을 나선다.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나도 클 만큼은 컸고, 겪어볼 건... 다 겪었고,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맨살을 보이긴 싫다.

엄마는 언제쯤이면 저 패턴을 그만둘지 속으로 불평을 하다 문득 휴대폰이 떠올라 나는 교복을 벗다 말고 침대 위에 있는 휴대폰을 집어 든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니 미안할 정도로 톡이 많이 와 있다. 내가 지금 맨살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면 지금 틀림없이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나는 재빨리 유해와 들녘이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보낸다. 그리곤 두 사람이 보낸 톡을 천천히 읽어 늦게라도 답을 한다. 두 사람의 기분이 상하지 않았기를. 나는 한숨을 내뱉는다. 도아에게는 조금 늦게 보내도 될 것이다. 도아는 이해해줄 테니까.

침대 위에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고 옷을 마저 갈아입는다. 그러는 동안 휴대폰이 몇 번 울린다. 아마도 유해와 들녘이 일 것이다.

 

 

“…”

 

 

옷을 다 갈아입었지만 왠지 휴대폰으로 손이 가지 않는다. 눈길조차 주기 싫어진다. 귀찮고, 축 쳐지는 이 기분. 언젠가 TV에서나 동영상 사이트에서 본 것은 요즘 국내나 해외의 유명한 사람들이 휴대폰이나 SNS를 한동안 끊고 산다고들 했다.

 

 

“…”

 

 

나는 침대로 몸을 던지고 쓴웃음을 툭 내뱉는다. 그런 사람들은 평소에 사람이나 SNS에 너무 시달려서 정신건강을 챙기려고 하는 거니까 나랑은 상관없지. 나는 그냥 친한 친구나 애... 어쨌든 그런 사람들한테도 귀찮음을 느낄 만큼 주변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거지. 이기적이니까.

 

 

“… 그럼 빨리 답장하지.”

 

 

이미 해가 저문 지 오래여서 형광등을 켜지 않은 방안은 좀처럼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눈을 굴리면서 뭔가를 찾는다.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지만 휴대폰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아직도 울리는 휴대폰.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두고 거실로 나간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다 두 사람을 돕기 위해서 나도 분주해진다. 방문을 닫았는데도 휴대폰의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지만 휴대폰을 보고 싶지는 않다. 아니, 정확히는 유해와 들녘이의 톡이 보기 싫다.

퇴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까지 안 해도 내가 한다며 부모님에게 잔소리를 해버린다. 그리고는 부모님을 밀어대며 두 사람의 손에 있는 쓰레기나 설거지거리 같은 집안일을 뺐는다. 괜히 나답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 느끼는 죄책감 때문일까.



 

 

곳곳에 가로등이 켜져 있지만 그 덕분에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은 더 어두워 보인다.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 뭐라도 튀어나올 정도로 어둡다. 마음 같아선 저런 곳들만을 통해서 움직이고 싶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란 걸 알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다시 페달에 발을 올린다. 시린 바람이 온몸을 쳐대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무겁고, 어지러운 그런 뜨겁고 어두운 것이 농축된 내 생각들을 없애줘서 좋은 것 같다. 음... 좋다.

오늘따라 도로에는 유난히 차가 적다. 여름방학 때도 이런 시간에 자주 나왔었는데 그때는 트럭 같은 것들이 자주 돌아다녔다. 없는 편이 내겐 더 안전하지만 달빛도 적은 이런 밤에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니 이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이라 뭔가 이상하다.

순간 보인 반짝임에 자전거를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바닷속에서 무언가 발광하는 것이 보인다. 익숙한 색이다. 눈에 들어온 푸른빛과 초록빛의 조화에 자연스럽게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기지개를 한 번 켜고 나는 페달에 다시 발을 올린다. 그리곤 지금까지 보다 더 빠른 속도로 어음 해수욕장을 향해서 간다.

정말 순식간에 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얼마 걸리지 않은 것 같아 나는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한다. 나는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면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사실 내 속도도 시간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눈앞의 바다에 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 탓할 것이 필요해하는 행동이다. 이렇게 생각한 순간 통하지 않을 거지만.

어느 정도 걸었을 때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천천히, 조금씩 발을 내디딘다. 차가운 모래에 발을 닿을 때마다 한기가 온몸에 감긴다. 눈을 뜨고 싶지 않다. 눈앞에 그가 있을 거라는 희망에서 깨고 싶지 않다. 파도소리와 바람소리. 그 외의 것은 들리지 않는다. 잔뜩 가라앉은 마음 그리고 그 생각과 동시에 느껴지는 가슴속 어딘가가 뚫린듯한 공허한 느낌. 나는 한숨을 내쉰다. 이미 머리는 눈앞의 풍경이 어떨지 확신한 듯하다.

 

 

철퍽.

 

 

물기를 가득 머금은 소리에 나는 눈을 뜬다. 실망을 잔뜩 하고 있었는지 내 고개를 어느새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눈앞의 상황을 마주한다. 비록 검은 실루엣이지만 분명 눈앞의 형태가 푸른 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만히 바라만 보니 검은 실루엣이 내게 먼저 다가온다. 그는 가만히 있지만 무엇을 하려다가 쑥스러운 생각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고등학생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마음을 잘 알지만 정반대로 행동하는 사춘기, 부끄러움의 화신, 주춤거리고 삐걱대고 예민한 것은 내가 아니라고 믿으며 상대방에게 분노하고 공감하는 그런 시기의 사람 같다. 물론, 푸른 눈은 사람이 아니겠지만. 뭔가 그런 느낌이 든다.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푸른 눈에게 다가가 그에게 얼굴을 파묻고 안아버린다. 나 자신을 보는 것 같다.

푸른 눈의 피부와 맺혀 있는 물방울이 느껴진다. 쿵쾅거리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푸른 눈도 나처럼 심장을 가진 걸까. 푸른 눈의 팔이 나를 감싼다. 나는 좀 더 강하게 푸른 눈을 안는다.



?

요즘 스토리 진도를 좀 빨리 빼고 싶어서 장면 전환을 자주 하는데... 혹시 정신 사납거나 집중이 깨지거나 그렇지는 않으시죠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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