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피곤하다...."

 

 

초립은 꾸물꾸물 검을 내려놓고 다림방 평상에 앉았다. 아직 동수는 궐에 있었고, 운은 먼저 다림방으로 왔을 것이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어디엔가는 있겠지. 부지런한 녀석이니 훈련이라도 하러 수련장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초립은 목과 어깨를 돌려보며 제 피로를 가감없이 발산했다.

 

곤했다.

 

궐에 입궐한뒤 처음맞는 비번이라 오랫만에 맞는 여유가 달았다.

 

물론 제 몸만.

 

 

 

"아...이 잡것들 어떡하지...."

 

 

예의 버릇처럼 초립은 인상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한쌍의 배추벌레마냥 붙어다니던 녀석들이 처음으로 각자행동하니 분위기가 요상했다. 정확하게는 운이 동수가 피하는 게다. 바쁘다보니 대놓고 뭐라곤 못하지만 동수는 그런 운때문에 짜증이 난 상태였고, 그런 분위기를 틈타 운은 마음껏 동수를 멀리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 바쁜 와중에도 셋 사이에는 황량한 정적이 흐르고 있음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초립의 불만이었다.

 

 

"도대체 운이는 뭐가 문제지?"

 

 

 

둘이서 집요하게 모른 척 하고 있으니 저 역시 눈치 못챈 척 하고 있으나 두놈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건 몇년 전에 이미 홀랑 깬 사항이다. 평소 아교풀마냥 끈적거리던 녀석들이 갑자기 사랑싸움이라도 했는지 왜 저러는걸까. 항상 참아주다 폭발해서 동수를 흠씬 두들기는 게 운의 평소 행동방식이긴 한데, 이건 또 새로운 전략이다. 무조건 도망다니는 거.

 

 

"아....이 새끼들때문에 나만 늙지...."

 

 

요 몇달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 문제될 건 없었다. 마지막 시험을 잘 통과해서 세사람중 하나도 낙오없이 무사히 장용위에서 하산해서 다림방으로 돌아왔고, 첫번째 임무도 잘 수행했다. 국경지대까지 갔다오는 먼 길이라 동수가 살짝 욕구불만이라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건 눈치챘지만 도성에 다 올때쯤 야밤에 산속에서 둘이 없어졌다 돌아와서는 얼굴이 활짝 폈었다.

 

잔뜩 굶주린 동수가 못참고 덮쳤건, 눈치빠른 운이가 먼저 나서 해결해준거든 뭐든 적절선에서 백짐승이 폭주하지 않았으니 거기까지도 좋았다. 얼굴은 둘다 활짝 폈으니 어느쪽이 손해보는 장사도 아니었단 뜻일게다. 입궐하여 훈련원에 들었다 훈련생들을 대대적으로 두들겨주고 봉수대로 쫓겨난 것도 문제될지 모르나 쉰다고 생각한 운은 느긋했고, 입에 불만에 배인 동수도 제 처지때문이지 운이와는 별 문제 없었다. 봉수대에 봉화도 올리고 바로 입궐에 성공했으니 그 기간도 제외.

 

 

 

"그럼 요즘 왜 그러는거야?"

 

 

어쨌거나 장용위 출신으로 세자를 위해 입궐한 자신들이다. 요즘 궐의 분위기가 세자에게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어 매일 회의가 열리고 일이 쏟아진다. 어른들이 경직되어있고 하루하루가 심각한 얼굴들이니 저희들까지 덩달아 마음은 바빴고 뭔가 조급했다.

 

 

이 와중에 운이가 저런다. 이건 좋지 않다.

 

 

 

셋중 가장 신뢰받고 실력이 뛰어난 운이다. 일에 있어서 뭔가 문제가 있는건 아니지만, 바쁘다해서 동수를 보듬지 못할 놈은 아니었다. 항상 동수가 일을 치면 운이 나서 수습해준다. 워낙 오래 같이 있었기 때문에 화를 내고 싸워도 하루를 못간다. 운이 앞에서는 감히 꿈에서도 말할수 없으나 초립은 살 섞는 사이에 철없는 사랑싸움따윈 한방에 해결이지. 하고 심술궂게 생각했다.

 

 

 

"근데 이 녀석 어디 간거지?"

 

 

 

평소같으면 동수와 궐에 남아줄텐데, 운은 요즘 부쩍 피곤함을 달고 살았다. 몸이 무겁고 소화도 안된다며 식사조차 못하고 있었다. 병이 생겼나싶어서 의원에도 보냈건만 그냥 피곤해서 그런거랜다. 추를 달아 바다에 던져도 기어나올정도의 체력과 악을 가진 운이 피곤하다니. 하늘이 두쪽나던지 해가 서쪽에서 뜨던지 둘중 하나다. 여튼 그놈도 사람이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피로로 날카로워진 운이 동수를 멀리하기 시작한다는게 문제다.

 

 

초립은 두리번거리며 운을 찾았다. 낮은 담 아래 수련장도 내려다보았지만, 아무도 없었고, 아까 다림방에서 사모에게 인사할때도 보았지만 그놈은 없었다. 주막에도 들렀었지만 밥먹고 가라는 미소의 부름도 거절했단다.

 

 

 

"설마...."

 

 

초립은 검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셋이서 쓰는 방을 빼꼼 열어보았다.

책과 무구들을 잔뜩 재놓고 공부방으로 쓰는 바깥방은 아무도 없었으나, 안쪽 침방은 문이 반쯤 닫혀있다. 초립은 방안으로 들어섰다. 괜히 조심조심 들어서서는, 침방안으로 머리를 디밀었다.

 

 

"어...?"

 

 

운이다. 초립은 어안이 벙벙했다.

 

 

"얘는...지금 ...뭐하는거지?"

 

 

이불을 제대로 깔지도 않고 개어진 이불더미 위에서 세상모르고 움츠리고 자고 있다. 초립은 처음보는 광경에 그저 입만 떡하니 벌렸다. 운이 세상모르고 자는 풍경이라니, 장용위에 들어서 운과 함께다니게 된지만 벌써 8년. 십년이 가까워오건만 운이가 자는 모습을 보는건 처음이다. 그것도 어린애마냥 쪼그리고 잠든 모습이라니. 녀석답지 않게 뭔가 귀엽단 생각까지 든다.

 

 

 

"......운아?"

 

 

 

곁으로 살짝 다가가 불러보았지만 요지부동. 쌕쌕거리며 잠든게 여간 깊게 잠든게 아니다. 그렇게까지 피곤했나. 싶어서 초립은 이걸 어쩌나 하고 고민에 빠졌다. 제대로 훈련원 관복도 안벗고 잠든게 정말 졸려서 까무룩 잠든게 분명했다. 잠많은 운이. 졸린 운이라니. 세상 오래살고 볼 일이다.

 

 

"....운아...피곤하면 바로 자라...여운?"

 

 

"으흠...."

 

 

조심스럽게 흔들며 불러봤지만 운이는 잠결에 귀찮은듯 살짝 인상을 찡그리더니 이불에 얼굴을 묻는다. 우와. 진짜 졸린가보네. 초립은 백년에 한번 보기 힘든 진귀한 구경거리에 넋을 잃었다.

 

 

 

".......운아? 그렇게 졸려?"

 

 

 

"..............으응........초립이?"

 

 

잠결에 졸린 목소리로 운이 마침내 부스스 눈을 떴다. 너무 곤하게 자는걸 깨우는게 미안했지만 잠들었는데 이불 덮어준답시고 건들였다가 괜히 피보긴 싫었다. 그렇게 피곤하면 옷도 갈아입고 이불도 제대로 펴서 편히 자게 하는게 옳았다.

 

 

 

"너 요즘 몸 많이 안좋나보다. 옷도 갈아입고 편하게 자."

 

 

".........아...아냐...괜찮아....일어나야지..."

 

 

하지만 하나도 일어나고 싶지 않은 얼굴이다. 졸려서 잔뜩 잠에 취한 얼굴. 정말 힘들다. 처음보는 희귀한 운이의 모습. 이런게 신세계인가 싶어 초립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구경중이었다. 나중에 평생 놀려먹을 놀림감이라고 생각하면서. (물론 동수에게 써먹으면 두배로 즐거울거다.)

 

 

".......욱...."

 

 

"어...운아?"

 

 

졸린 눈을 억지로 뜨며 잠을 깨려고 애쓰던 운이 갑자기 헛구역질을 했다. 요 몇일 먹은 것도 거의 없는데 얘가 또 왜 이러나 싶어 초립이 눈을 가늘게 뜨는데, 운이 고개를 돌리고 문을 가리킨다.

 

 

"저...저문 닫어..."

 

 

"응?"

"냄새때문에...빨리!"

 

 

새파랗게 질리면서 없는 것도 게워낼 분위기에, 초립은 허겁지만 문을 닫았다. 그리고 뒤쪽 창을 열었다. 참으려 애쓰면서 몇번을 헛구역질하던 운은 흘러드는 강바람에 조금은 진정되는 기색이다.

 

 

"냄새라니..무슨...."

 

 

"주막에서....국밥냄새랑...막걸리 냄새가 너무 강해서..."

 

 

"뭐어?"

 

 

다림방 옆이 주막이니 방문을 열어놓으면 냄새가 흘러올수도 있겠지만 하루이틀도 아니고 이집 식구중에서 누구도 그 냄새를 일일이 알아챈 사람은 없다. 게다가 막걸리 냄새가 싫다니. 셋다 술이라면 꿈뻑 죽는데 그냄새가 싫어서 헛구역질까지 한단 말야?

 

 

"너 진짜 요즘 몸 많이 안좋나봐....."

 

 

"...어?....어...응....."

 

 

초립의 걱정에 운은 흠칫 놀래더니, 말만 얼버무린다.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 같았지만 금방 얼굴이 바뀌었다.

 

 

"너 계속 그래가지고 굶기만 하면 안되는데...이모한테 이야기해서 뭐 죽이라도 끓일까?"

 

 

"아냐. 됬어....그냥 좀더 쉴래..쉬면 낫겠지.."

 

 

"너...진짜 무슨 병 있는건 아니지?"

 

 

초립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째렸지만, 운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피곤해서 그래."

 

 

"나 평생 너한테 피곤하다는 말 이렇게 많이 듣는거 처음인건 아냐? 하필 요즘같을때 이러냐..."

 

 

남들이 신경도 써주기 힘들때 아프고, 하여튼 복이라곤 없는 녀석. 초립은 혀를 끌끌 찼다.

 

 

 

"너 힘든건 알지만, 동수한테 너무 그러지 마라. 걔 그러다 폭발한다."

 

 

"................"

 

 

 

여운결핍증으로 정신이 이상해질지도. 물론 사내로써의 욕구도 욕구지만, 그 이상으로 동수는 운이에게 집착한다. 여러모로.

운이가 없는 동수는 부모없는 고아같고, 형제잃은 외토리같다. 그만큼 절대적인 존재였다.

 

 

"걔도 너 걱정되서 그러는건데 적당히 넘겨줘. 물론 그놈이 치근덕대는게 피곤할때 그러면야 귀찮긴 하겠지만..하루이틀이야? "

 

 

"............어..."

 

 

초립은 제무릎을 껴안고 생각에 잠긴 운을 흘낏 보고는 이불을 바로 펴주었다.

 

 

 

"네 말 대로 좀더 쉬어. 저녁에도 밥먹을수 없으면 이모한테 말해서 닭이라도 삶아달라그러자."

 

네덕에 고기좀 먹는거지 뭐. 초립은 싱거운 농담이나 던지곤 쉬라며 물러섰다.

문이 닫히고, 방안에 다시금 혼자 남았다. 운은 한숨을 쉬었다.

 

 

 

 

"....................."

 

 

 

 

의원의 말을 들은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아무말 없이 입만 봉하고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터질듯이 끓었다. 

 

 

 

 

 

 

아기.

 

 

 

 

 

 

"..............어쩌지.........."

 

 

 

 

 

하루밤낮을 잠도 못자고 머리아파하다가 결국 아무 생각안하는 방법을 택했다. 내 일이 아닌것 처럼, 남의 일인듯 무심하게 굴었다. 실제로 아이를 가졌다곤 했지만 그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아직 어떤 몸의 변화도 없고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니 도무지 실감이 안났다. 그냥 의원의 거짓말 같았다. 그래서 그냥 모르는 척 하기로 한 것이다. 

 

 

 

 

"..........동수...........라....."

 

 

 

 

동수를 떠올리자 또 마음이 무거워져, 운은 꾸물꾸물 초립이 펴준 이불속으로 기어들었다. 요 몇일 먹은 것도 없었고,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치밀었다. 입에 들어간 것도 없이 헛구역질하는 것만으로도 체력은 착실하게 소모되었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서 피곤해죽을 지경이었다.

 

 

'몸이 무겁고, 음식도 가리게 되지. 입덧이라우. 그걸 여태 몰랐단 말이오?'

 

 

반은 구박으로 알려준 의원의 말이 생각나서 운은 이럴때마다 우울해졌다.

 

 

'몸이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 무척 많이 변한다오. 체력을 키우고 아이를 보호하려고 잠도 많아지고. 당분간 무척 졸릴텐데 그때마다 많이 자두슈. 다 몸조심하고 아기를 잘 키우려고 그러는거니까.'

 

 

의원에게 임신이라고 판정받은 날부터, 운은 점점 잠이 많아졌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의원이 속사포로 알려준 말들은 그때마다 하나씩 떠올랐다. 졸음과 싸우려고 할때마다 기분이 나빠졌지만, 항상 지는 쪽은 운이었다. 틈틈히 꾸벅꾸벅 졸았다.

 

장용위 시절 내내 누구에게도 잠든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동수와 몸을 섞어도 항상 먼저 잠드는 쪽은 동수였다. 아무리 피곤해도 몸을 닦고 옷차림까지 정돈하고 동수가 잠들때까지 기다렸다. 하루종일 장용위 훈련을 끝내고 남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몸을 섞었다. 두번 이상 사정하면 동수는 업어가도 모를만큼 잠들었다. 일종의 경험으로 알게 된 잠자리 버릇인게다. 낮에는 남들에게 안지려고 항상 일등으로 훈련으로 마치고, 밤에 동수를 받아들이려면 그보다 두배는 힘들어하면서 동수가 잠든 틈에 빠져나와 흑사채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를 재우려고 일부러 그 버릇을 이용한 적도 있다. 그만큼 지독했다.

 

 

"....바보...."

 

 

 

저를 이토록 졸리게 할수 있다니. 운은 씁쓸하게 웃었다. 오늘도 동수에게서 도망치다시피 퇴궐한 참이었다. 그의 걱정은 이해했지만 동수의 낯을 볼 자신이 점점 사라졌다. 말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항상 풍랑속의 파도처럼 왔다갔다했다. 말을 해야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을 해선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태어날수 없다. 낳지 않을건데 말을 해서 무엇할까.

 

 

그러면서도 또 동수에게 말을 하고싶단 마음이 드는건 또 무언가. 운은 혼란스러웠다. 심적 고통이 심해질수록 점점 후각이 예민해져 음식냄새만 맡아도 울렁거렸고, 도망가고싶은 것처럼 잠이 왔다. 앉아있기만 해도 꾸벅꾸벅 졸고있다는걸 알고 있어 혹여 누구에게 들킬까싶어 더욱 신경이 쓰였다.

 

 

 

"안되는건 ....안되는거야...."

 

 

 

아직은 딱히 어떤 생각같은건 없었다. 그냥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아이라니. 말이 되나. 제게 아기따위가 가당키나 한 이야기인가. 저는 물론이거니와 동수도 아마 꿈에서도 생각해본적 없을 것이다. 둘다 제대로 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고, 장용위에서 저희들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동문수학하며 훈련과 공부외엔 무엇하나 모르고 자란 무식천치들인 것이다.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아이가 뱃속에서 어떻게 자라는지, 제가 이 아이를 어떻게 낳는건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천주님이...아시게 되면....."

 

 

 

순간 오싹 소름이 돋아 운은 어깨를 감싸안았다. 단순히 임신이 무서운게 아니었다. 천주가 알게되면 그 후한과 뒷감당을 어찌할까. 저는 물론이거니와 동수 역시 참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역시 안되겠지...."

 

 

 

 

어쨌거나 결론은 하나였다. 결심은 빠를수록 좋았다.

 

 

 

 

 

 

 

 

 

 

 

 

 

 

 

"어. 운이는요?"

 

 

 

 

다음날 아침이었다. 부스스 눈을 뜨고 일어난 초립은 평상에 바삐 상을 차리는 장미에게 말을 걸었다.

 

 

 

"운이?  아까 훈련한다고 나가던데..."

 

 

"네? 밥은요?"

 

 

"자긴 필요없댄다. 뭐 말붙일 것도 없이 휙-하고 나가버리더라."

 

 

그러더니 이모가 난 장사하러 가야되니 대충 먹고 치워놓으랜다.

이모가 부산하게 나가버리자, 그에 맞춰 사모가 장사준비를 끝내놓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일어났냐? 식사해야지.운이는?"

 

 

"아...이미 나갔습니다."

 

 

혹여 걱정할까 싶어 초립은 대충 얼버무리며 상에 다가앉았다. 이노무 자식. 나중에 꼭 잡아서 의원에 데려가야지.

사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저를 들었다.

 

 

"얼른 먹자. 너도 얼른 훈련하러 가라. 난 오늘 수웅이놈하고 이야기할게 있어서 오후엔 집에 없을테니 게으름 피우지 마라!"

 

"네. 알겠습니다."

 

 

 

 

 

 

 

 

 

 

 

 

 

"이노무 자식이 진짜...."

 

 

 

밥술이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대충 후루룩 입에 넣고, 초립은 운부터 찾으러 나섰다. 자꾸 뭔가 숨기는 게 수상했다. 아마 무슨 병이 있다는걸 들은게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초립은 겁이 덜컥 났다. 미우나 고우나 둘다 없는 지기인데 어디 심각하게 아픈데 이 미련한 놈이 숨기고 있는거 아닐까 싶어 괜히 애가 닳았다. 무조건 잡기만 하면 두드려 패서라도 의원에 다시 델구 가야지. 초립은 마음을 굳히고 훈련장으로 발걸음을 빨리했다.

 

 

 

"야! 여운!!"

 

 

아니나다를까. 운은 훈련장에서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새벽같이 나온 모양인지,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밥한술 안뜬 주제에 이 왠 쌩고문이야. 초립은 눈쌀을 찌푸리고 목소리를 높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운은 돌아보지도 않는다.

 

 

 

"너 진짜 이럴래? 너 우리한테 감추는거 있지?!"

 

 

 

평소같으면 다가가기도 무섭지만, 초립은 성큼성큼 다가서서 운의 목검을 겁도 없이 빼앗았다.

 

 

 

"왜...이래...."

 

 

이미 꽤 오랜 시간 훈련한건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운이 돌아본다. 낯빛이 썩 좋지 않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피곤에 쩔은 녀석이 무식하게 몸을 혹사하고 있는 꼴이라니. 초립은 제가 뺏는데로 목검이 딸려온다는게 좀 이상했지만 그걸 신경쓸 계제는 아니다.

 

 

"너 아무래도 나랑 의원에게 보여야겠어. 어디 아픈거지? 그런거지?"

 

 

"....아니라니까."

 

 

운은 머리를 짚었다. 초립과 말싸움을 하고싶진 않다. 이미 어지럽고 피곤한 참이었다. 머리가 빙빙 돈다.

목검을 따라 빙글빙글 돌던 시야가 서있어도 더 뱅뱅 돈다. 온집안에 돌고있는 음식냄새가 싫어서 겸사겸사 도망나온 건데, 빈속인데도 울렁거렸다. 이미 초립의 얼굴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이마에선 식은땀까지 났다.

 

 

 

"운아. 너 어디 안좋아?"

 

 

"아니..괜찮아. 땀을 많이 흘렸더니 좀 더워서...."

 

"....니가 언제부터 훈련때문에 더웠다고...."

 

 

 

뭔가 심상치 않다. 초립은 목검을 던지고 운의 팔을 잡았다.

괜찮다고 그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운은 오히려 현기증때문에 주저앉고 말았다.

 

 

"야! 야! 야! 너 괜찮아?"

 

 

"응...괜찮어....좀 어지러워...아....앗...."

 

 

어떻게서든 정신을 가다듬으려하는데, 순간 뱃속을 지나는 날카로운 통증이 있었다. 운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왜그래?! 운아?"

 

 

"아냐...별거 아냐..."

 

 

 

칼로 베인듯 날카로운 통증이 아랫배를 긁고 지나갔다. 운은 배를 움켜쥐고 초립의 팔을 세게 잡았다.

 

 

"운아! 운아...많이 아파?"

 

 

"......하아...나...나좀...."

 

 

 

그뒤로 운은 말을 잇지 못했다. 초립은 제 품으로 무너지는 운을 재빨리 받아안으며 놀라 소리를 질렀다.

 

 

"운아! 정신차려! 여운!!!"

 

 

 

 

 

 

 

 

 

 

 

 

 

 

 

 

 

 

 

 

 

"........으흠...."

 

 

"운아. 정신이 들어?"

 

 

운은 깜빡거리며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가 걱정에 가득찬 동무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러운 것과 통증을 가라앉았고, 이대로 한없이 누워있고 싶은 피로감과 졸음만 있었다. 좀 나아진건가..싶어서 운은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다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아........"

 

 

 

저도 모르게 배에 손이 갔다. 배를 찢는 것같던 날카로운 통증에 정신을 잃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순간 얼음연못에 빠진것같은 소름이 온몸을 감쌌다. 아까의 통증과는 다른 예리한 무언가에게 호되게 맞은 기분이었다.

 

 

"왜...."

 

 

"....저기......"

 

 

 

차마 말은 못하고 운은 입술만 깨물었다. 배를 감싼 손에만 힘이 들어갔다.

 

 

 

 

"너........알고 있었지?"

 

 

 

".........."

 

 

이미 눈치 다 챈 초립의 목소리에도 운은 목소리가 안나왔다. 지금 걱정되는 건 딱 하나뿐이었다.

 

 

 

아기.

 

 

 

 

 

 

저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뭔가 목소리를 높히려던 초립은 운의 손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아기는 괜찮아. 의원이 다녀갔어. 너무 무리해서 그런거래. 쉬면 나아진대. "

 

 

 

 

"아..아...아...."

 

 

감탄인지 신음인지 알수없는 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초립은 그런 동무가 안타까웠다.

쓰러진 운을 집으로 데려오고, 의원에게 바람같이 쫓아가 막무가내로 끌고왔다. 숨돌릴 틈도 없이 끌려온 의원이 해준 그 엄청난 말에 초립은 충격에서 벗어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회임이랜다. 아기를 배고 있단다. 그것도 여운이.

 

 

 

 

많고 많은 사람중에 하필 여운인가. 제가 아는 한 아기와 가장 어울리지 않은 운이 임신을 했다니. 초립에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운이 밥도 못먹고 그토록 피곤해했던것이 이해가 갔다. 뭘 숨기고있는 것처럼 초조해보이던 얼굴도.

 

 

 

 

"동수한테 이야기 안했어?"

 

 

 

"................"

 

 

 

누구라고 물어볼 것도 없다. 맨날 붙어다니는 놈은 그놈뿐인데 달리 다른 놈일리도 없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하늘이 두쪽날 일이지. 저 자존심 높고 도도한 운이가 백동수가 아닌 다른 사내새끼한테 다리를 벌리고 씨를 받았다? 차라리 저가 고자라고 조선팔도에 소문나는 편이 더 믿을 일이지.

 

 

 

"이거 그냥 입다문다고 되는 일 아냐. 언제까지 숨길려고 그랬어."

 

 

".....알아."

 

 

목소리며 하는 짓이 이미 알고 있었단 이야기다. 한번도 이런 약한 모습 본적없다. 오랫동안 함께 자라온 동무가 아이를 가졌다니 기분이 묘했지만 그의 얼굴만 봐도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해결되진 않는다. 다른 동무들과 달리 제대로 된 집안에서 자란 초립이다. 주저앉아있을 사태가 아니다. 큰일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각해진다. 그러니 뭔가 진전이 있어야했다.

 

 

 

"동수가 곧 퇴궐할거야."

 

 

"............"

 

 

"아까 말도 전달해달라고 부탁해뒀어. 너 지금 아파서 누워있다고 했으니까 바로 올꺼야."

 

 

"야...그건....."

 

 

당황하는 운에게 초립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너혼자 끙끙댈 일 아니야. 이건 심각한거야. 그리고 둘이서 해결해야되는거고....."

 

 

"뭘...어떻게 해결한다고...."

 

 

기운이 쫙 빠진듯한 운에게 그는 단호하게 못박았다.

 

 

 

"동수도 알 권리 있어. 의무도 있고....시간이 지날수록 너만 힘들어져. 너가 말 안하면....내가 말할거야."

 

 

"............그렇지만...."

 

 

낳아야되잖아. 그 아이. 초립의 그말에 운은 움찔 떨었지만 더 말을 못했다.

 

아이를 가졌다는 아무런 자각도 없이 그저 우울하고 피곤하기만 했다. 실감조차 나지 않았는데, 아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아이를 잃었을까 무서웠던 거다. 가슴이 저리도록 겁이 났다. 그토록 필요없다. 낳지않는다. 태어나지 않을거다. 하고 머리 한구석에 밀어놓기만 했었는데, 막상 닥쳐보니 아니었던 거다. 잃고싶지 않았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잃고싶지 않아졌던 것이다.

 

 

 

 

 

 

이 아이를.

 

 

 

 

 

 

 

 

 

 

 

 

"운아! 여운! 어디있어!!!"

 

 

 

 

집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요란하고도 다급한 목소리에, 초립은 피식 웃었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저건 사람이 아니고 짐승인게지."

 

 

 

운이 흠칫 몸을 움츠렸지만, 방문이 요란하게 열리는 소리로 둘의 시선을 동시에 문에 꽂혔다.

 

 

 

"운아!"

 

 

 

아마도 허겁지겁 달려왔음이 분명해보이는 동수였다. 얼마나 달렸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연신 숨을 헐떡거렸다. 반쯤 몸을 일으킨 운을 보더니, 후닥닥 다가와앉아서 운의 손부터 잡았다. 그가 움찔 놀래건 말건 얼굴이며 어깨를 만지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어디가 얼마나 아픈건데..응?"

 

 

숨도 안쉬고 여기까지 뛰었겠지. 걱정에 가득찬 동수의 목소리에 운은 왠지 울컥했다. 초립은 그런 운에게 눈짓을 주곤 둘이서 이야기하라며 방밖으로 비켜주었다. 나가는 초립의 뒷모습을 보고 운은 한숨만 쉬었다. 저 녀석이 알았으니 이젠 싫든 좋든 말해야 될 처지가 되었다. 초립이 깔아준 어거지 멍석에 앉아야될 판이다. 만약 여기서 말하지 않는 다면 초립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알게될 사항이란 뜻이다. 초립이가 저를 떠보려고 거짓말을 했을리 없다. 언제나 해결사역활을 알게모르게 맡아온 놈이니 반드시 말할게다.

 

 

 

"아픈건 아니고......"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진 않았다. 제마음속도 정리가 안되어있는데 동수가 뭐라할지 짐작도 안되었다. 수만가지의 일들이 운의 가슴속을 짓눌렀다. 11살때까지 아비를 원망하다 흑사초롱이 되었다고. 그러다 여기 세작으로 들어왔다고. 너와 오랫동안 함께 했지만 널 그보다 더 오래 속이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을 할수가 없다. 이 속터지는 상황에서 아기 이야기를 해야하다니.

 

 

"안 아프긴....많이 안좋은거같은데? 병명이 뭐래?"

 

 

동수의 근심어린 표정이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얼마나 자신을 사랑해주는지 알고 있다. 저가 아프단 이야기에 무작정 달렸을 동수. 혹여 잃을까 겁이 나서 얼마나 뛰었을까. 눈도, 입도, 얼굴표정 무엇하나 자신을 향하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말해야했다.

 

 

 

"그게......."

 

 

"니 입에서 제대로 된 말 나올때까지. 나 정말 꼼짝 안할거야. 너 나 속이면 안돼."

 

 

뚫어져라 저를 보는 그 눈에게, 운은 마침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아......기....."

 

 

"응?"

 

 

 

억눌린 마음만큼이나 운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작아 동수의 귀에 확실히 닿질 못했다. 뭐라고? 하며 동수가 그에게 귀를 바싹 대었다. 다가오는 동수를 보고 운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뭔데. 뭐야. 하고 동수는 더 고개를 숙여 운을 보았다.

 

 

"뭐라고?"

 

 

"아기....라고....."

 

 

"어?"

 

 

 

차마 임신이라고 대놓고 말하긴 너무나도 부끄럽고 민망했다. 초조하게 그 한단어만 내뱉은 운은 입술만 깨물고 동수의 시선을 외면해버렸다. 동수는 멍-하니 운만 꿈뻑꿈뻑 쳐다보았다. 두들겨맞아 눈뜨고 기절한 기분이었다. 얘가 지금 뭐라는걸까.

 

 

 

 

".....그러니까......."

 

 

심장이 쿵쾅거리고 속이 메쓱대고 눈앞이 빙빙돈다. 이마와 손에서 식은땀이 줄줄 났다. 사고가 정지해버린 듯한 머릿속에선 운의 그 작은 단어에서 본능적으로 무언가 사실을 일깨워준다. 동수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이?"

 

 

 

"......으응......"

 

 

 

평생 운이 이렇게까지 머뭇거리고 주저하는걸 본적이 없다. 사실이란 뜻이다.

동수는 저도 모르게 운의 손을 놓고 털썩 뒤로 주저앉았다.

 

 

 

"그러니까...그러니까....아이라고....아이....아이라고 하면....."

 

 

 

 

운이 아기를 가졌단 말이다. 뭔가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누구...앤데?"

 

 

"..............어?"

 

 

 

 

운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동수와 눈이 마주쳤다. 뭔가 심하게 놀란, 심지어 부정하고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누구 아이냐니. 그런 질문을 동수에게 들을거라곤 짐작조차 못했던 운은 뒤통수를 몽둥이로 후려맞은 착각에 빠졌다. 

 

 

 

"그...그러니까...너가...아이를...가졌다고....그러는건데....저기...나는...."

 

 

말이 제대로 연결이 안되고 횡설수설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이 사실이 믿기질 않는거다. 어쩔줄 모르고 안절부절 못하는 동수의 모습에 운은 제 가슴에 무참할정도로 생체기를 입었다. 숨도 못쉴만큼.

 

 

 

"......백동수......."

 

 

"아니...우리는...아직...어리고...그러니까....저기..이게 무슨...."

 

 

 

물론 놀랄거라는 수없이 생각을 했다. 기뻐하지 않을수 있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저도 낳고싶지 않았는데 동수라고 뭐 다를까. 안지 일주일이 넘었건만 아무런 자각도 없는 저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할거라곤 생각안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누구애냐고 들을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덮어놓고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사실 동수가 의도한 말이나 생각은 아니었지만, 안그래도 잔뜩 예민해져 있던 운이었다. 막상 닥친 상황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말로 살해당한다는게 이런 기분이구나.

 

 

운은 그냥 이대로 살을 맞아 죽어버리면 좋겠단 생각만 들었다. 

 

 

 

 

"운아..그러니까..저기..내말은...."

 

 

"...........네 말 알아들었으니까. 좀 나가."

 

 

"운아...."

 

 

"니가 사람이면....나좀 내버려둘래?"

 

 

 

운에게 평생 이토록 소름끼치도록 살기어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뭔가 큰 실수를 했다는 건 알았지만 일단 그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그의 목소리가 무서워 알겠다고 주춤주춤 방밖으로 나가버렸다.

 

 

 

"....흑......"

 

 

 

 

뼛속까지 시리도록 서글프단 생각에 운은 결국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결국 말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세상 끝까지 내동댕이쳐진 기분. 정말로 외롭다는 걸 실감하고 말았다.

 

 

 

 

 

"누구...아이냐니....."

 

 

 

자조적인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운은 다시 배로 손을 가져갔다. 조심조심 손을 대보아도 사실 아무런 느낌은 없었다. 여전히 평소와 다를것 없는 제 몸이었다. 하지만 운은 느릿하게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미안....."

 

 

 

이 아이때문에 변해버린 제 인생 어딘가가 변했다는 것을. 제 삶속으로 누군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정말 미안해......."

 

 

 

 

손등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쩔수 없었다. 알아채버렸다. 제가 이 아이를 포기할수 없다는 걸.

 

 

 

"이렇게나....이렇게나....작을텐데......"

 

 

 

이제 겨우 깃든 생명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자라겠지. 동수와 제 피를 반씩 받은 소중한 아이가 여기에 있다. 가장 무서웠던 사실은 그거다. 절대 존재해서 안되는 이 불쌍하고 가여운 아이가 생긴 것에 기뻐하고 있는 제 진심. 동수가 제게 주는 그 연심이 진심이라는 증거, 너무나도 귀한 선물을 받은 기분에 무작정 놓고싶지 않아진 제 바램.

 

 

 

"이런식으로.....알게하고싶지 않았는데....."

 

 

 

제 팔자 내림인가. 태어나기도 전에 부정당한 아이가 한없이 가엾고 그저 미안했다. 모든게 제탓같았다. 제탓이었다.

 

 

 

"미안해......"

 

 

 

처음으로 아이에게 걸어준 말이 미안하다라니.

 

 

 

운은 그저 이불에 얼굴을 묻고 소리없는 울음을 애써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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