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옷 샀어? 처음 보는 옷이네.“


”아, 캐스가 선물해 줬어.“


달라붙는 재질의 브이넥 옷은 제이슨의 옷과 신발을 전부 파악하고 있던 팀도 처음 보는 옷이었다.


그야, 제이슨은 몸에 붙는 재질보다는 펑퍼짐해서 편한 걸 선호했으니까.


팀은 평소 카산드라가 제이슨에게 추천하던 옷 종류를 떠올리곤 선물을 이해했다. 카산드라는 심플한 블랙류를 좋아했고, 제이슨에게도 어울려 때때로 선물해 입히기도 했다.


저번엔 장난으로 크롭티를 선물하기도 했지만. 그때 제이슨은 깔깔 웃으며 인증샷을 찍어서 카산드라에게 보내기도 했었다.


딕이랑 팀이 거의 울듯이 다른 옷을 입어달라고 부탁해서 겨우 벗었다.


‘제이슨은… 자기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알아야 해.‘


팀은 때때로 순진한 제이슨을 보며 제 속을 고백하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다.


그저 맑게 웃는 제이슨을 보며 얼마나 음흉하고 몹쓸 상상을 하는지. 형제라는 이유로 네 옆에 딱 달라붙어 부리는 수작질이 얼마나 추악한 마음에 근거해 있는지.


팀은 쿵쿵, 요란히 울리는 심장 소리를 무시하며 익숙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맥박이 불안했지만 이 정도는 일상이었다.


’아니야. 그래, 제이슨이 그런 추악한 거 알아봤자 필요 없지. 제이슨은 그런 거 신경 쓸 필요 없어.‘


팀은 속으로 침음을 삼키며 습관적으로 미소 지었다. 또 생각이 이상한 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걸 보니 피곤하긴 한 모양이었다.


혹시나 미소가 무너지지는 않았을까 입매를 더듬어 보았고, 다행히도 둥그스름한 선은 멀쩡했다.


“생각보다 편해서, 자주 입으려고.”


“응, 잘 어울린다.”


제이슨의 잘빠진 몸을 훑은 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카산드라지만 스테파니도 그렇고, 바바라도 그렇고 유독 제이슨에게 제 취향의 옷을 입히는 걸 좋아했다. 꾸미는 재미가 있다나.


제이슨에게 제 취향 옷을 입혀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갔다. 팀도 다른 이들처럼 제이슨에게 입혀보고 싶어 했으니까.


다만, 팀은 선이 딱딱 떨어지는 맞춤 정장을 좋아했고, 제이슨이 불편한 정장을 싫어했다. 그 탓에 아쉽게도 제이슨이 팀 취향의 정장을 입는 건 아주 희귀한 일이 되었다.


‘제이슨은 몸이 예쁘니까 맞춤 정장도 어울릴 텐데… 역시 아쉽네.’


제이슨은 갑갑한 걸 싫어하는 거지 달라붙는 옷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그걸 팀이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데미안 때문이었다.


몸에 붙으면 불편할 법도 한데 데미안은 용케도 편한 것들만 골라서 가져다주는 탓에 제이슨은 주는 대로 입었다. 억울하지만 팀이 봐도 정장보다는 편해 보여서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팀은 데미안은 싫지만, 그 안목은 굉장히 신뢰했다.


두툼한 가슴팍에 이어 이제는 가슴골도 강조되는 옷차림에 팀이 흐뭇하게 웃었다. 요란히 요동치던 심장도 느린 호흡 덕에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캐스가 사줬다 했지? 집에서만 입어, 제이슨. 집에서만.”


“응? 응.”


제이슨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알겠다 대답했다. 시키는 대로 또 말을 듣는 제이슨에 팀이 걱정을 삼켰다.


‘순진한 제이슨. 밖에선 저러지 말아야 할 텐데. 어쩔 수 없지. 보호관찰 카메라 더 설치해야겠다.‘


팀은 브이넥으로 파진 부분을 흘금 보며 커피를 홀짝였다.


’요즘 운동 열심히 하나 가슴이 더 커진 것 같은데. 피부가 하얘서 검은색 옷이 잘 어울리네. 붉은 자국도 잘 드러나고… 붉은 자국?‘


팀은 제가 잘못 봤나 싶어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눈을 감았다 떠도 제이슨의 쇄골에 난 붉은 자국은 여전했다. 팀은 몸을 굳혔다.


“난 이만 방에 들어가 볼게. 커피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팀은 제이슨이 눈앞에서 사라지고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다급히 배트케이브로 내려갔다.


어째 빌런 잡기보다 제이슨 감시에 더 자주 가는 것 같지만 착각일 거다.


팀은 제이슨의 행적을 싹 다 뒤져서 저 자국을 만든 범인을 찾을 셈이었다. 찾으면 어쩔 건지는 찾고 난 후에 해도 된다.


’일단 그 죽일 놈을 찾아서… 배트맨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야겠지.‘


팀은 눈을 살벌히 번뜩였다.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한둘은 진작 죽었을 것 같았다.


한편 그런 팀을 모르는 제이슨은 쇄골만 벅벅 긁었다.


”뭔 놈의 모기가 가을에도 있어? 쩝.”


*


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몇 시간째 제이슨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 영상을 다 뒤져봤지만 딱히 의심 가는 인물은 없었다. 좀 껄떡거린다 싶은 놈은 바로 처리됐다. 그것도 블랙마스크 부하들에 의해서.


‘이건… 나중에 따로 조사해야겠네. 블랙마스크가 감히 스토킹을 한단 말이지.’


지는 아닌 줄 알고 있다.


‘요즘 들어 할리킹도 바빠서 만난 적 없는데… 그 변태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보란 듯이 자국을 만들었지?’


그나마 가능성 있는 건 로이 하퍼인데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가 있어 고담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그럼 대체 누가….”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여러 인물을 노려보다 눈을 꾹 감았다. 뻑뻑한 눈가를 손으로 꾹꾹 눌러도 피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누굴 그렇게 찾는데?”


은은한 샴푸 향이 옆으로 훅 풍겨왔다. 익숙한 옅은 과일 냄새에 팀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제이슨은 묵직하고 씁쓸한 향이 날 것 같은 외양과 달리 어울리지 않는 과일 향이 풍기곤 했다.


향수를 쓰는 건 아니었고, 바디워시나 샴푸 중 과일 향이 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단 과일 향은 진하게 나지 않고 가까이 가야지만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옅어서 제이슨과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왜인지 어울렸다.


제 발 저린 도둑처럼 팀은 황급히 노트북을 덮었다. 다급한 팀의 행동에 제이슨은 의아함을 담아 한쪽 눈썹을 슥 치켜올렸다.


“제, 제이슨? 언제 왔어?”


“노크했는데 답이 없길래. 또 네 몸은 신경 안 쓰고 일만 하고 있나 싶어서 왔지.”


제이슨은 어깨에 걸친 수건으로 머리칼에 있는 물기를 꾹꾹 눌렀다.


탈탈 털기엔 바로 옆에 있는 팀한테 물기가 다 튈 테니 선택한 방식이었다. 이미 티의 목 부근은 물기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팀의 침대 위 물건들을 대충 옆으로 옮기고, 턱 걸터앉았다. 매트릭스가 작게 출렁였다.


분명 알프레드가 몇 시간 전에 치웠던 것 같은데 팀의 방은 금세 어질러져 있었다. 책상 위에는 종이 서류가 흐트러져 있었고 방바닥엔 벗은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것도 재주면 재주라 생각하며 제이슨은 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막 씻고 나서인지 평소보다 풋풋한 느낌의 제이슨에 팀이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눌렀다.


“그래? 요즘 알아보고 있는 게 있어서 그랬나 봐. …걱정 마, 무리 안 할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래서 누굴 찾던 건데?”


팀의 눈가에 생긴 다크써클을 보다 눈을 맞췄다.


피곤에 젖은 와중에도 팀의 눈은 낮의 하늘처럼 맑았다. 가끔 저 맑은 하늘에 구름이 끼기도 하지만 본질은 하늘이니, 제이슨은 이번에도 팀이 해결 못 할 일은 아닐 거라 예상했다.


옅은 파란 눈동자가 무어 찔리는 거라도 있는지 정체 없이 흔들렸다. 평소라면 동공의 떨림을 어느 정도 감췄겠으나 팀은 피곤한 상태에선 포커페이스에 소질이 없었다.


팀은 입을 어물거렸다. 그도 그럴게 네 쇄골에 생긴 키스마크 만든 놈팽이를 찾고 있어,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닌가? 할 수 있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팀은 상당히 피곤했다. 며칠째 일에 시달리다 지금은 제이슨 행적을 전부 파보느라 매우 지쳐 있었다.


팀의 비상한 뇌도 피로에는 못 이겼다.


어디 가서 총명하기로 지지 않던 팀의 뇌는 파업을 선언했다. 과로만 해대는 주인의 탓이었다.


팀은 제이슨의 쇄골 측을 노려보았다. 티에 가려져 있지만 분명 저쯤에 붉은 자국이 있었다.


”팀?“


대답은 않고 어딘가를 노려보기만 하는 팀의 모습에 제이슨은 황당해졌다. 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분명 제 목과 가슴 사이, 대충 쇄골쯤이었다.


”이쯤이었는데.“


팀은 느릿하게 손을 들어 제이슨의 쇄골을 살살 쓸었다. 제이슨은 이게 뭐 하는 걸까, 하며 팀의 행동을 지켜봤다. 뿌옇게 구름이 낀 하늘과 같은 눈동자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여긴가?“


팀이 어딘가를 꾹 누르자 제이슨이 몸을 움찔거렸다. 이내 제이슨이 작게 하. 하고 웃었다.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


뭔가 짐작이 가는지 제이슨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만면에 머금었다. 제이슨은 팀의 손을 붙잡아 몸에서 떼어내곤 천천히 상의를 벗었다.


옷을 벗자 하얀 살결의 조각과 같은 몸이 드러났다. 하얀 피부 위에는 팀의 짐작대로 붉은 자국이 있었다.


“이것 때문에 그런 거야?“


”…응.“


팀이 제이슨의 시선을 피했다. 지금 제 행동이 민망하다는 건 아는 모양이었다.


”하하! 팀, 이건 모기한테 물린 거야.“


”뭐?“


”키스마크인 줄 알았구나?“


제이슨이 맑고 시원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한 행동이 전부 오해였음을 알게 된 팀은 손으로 얼굴을 묻었다.


그간 뭣 때문에 그 고생을 한 건지 허탈하기도 했고, 멋대로 오해해 벌인 행동이 민망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이슨은 앞으로 수그러든 팀을 보며 천천히 웃음을 그쳤다.


”팀, 손 좀 줘볼래?“


팀은 여전히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손 하나를 제이슨에게 내밀었다. 민망해하는 와중에도 말은 잘 들었다.


제이슨은 생글생글 웃으며 팀의 손을 잡았다. 제이슨에 비해 얇은 손가락과 펜을 오래 잡아 생긴 굳은살을 매만졌다.


너무 두껍진 않지만 마디마디가 도드라지고, 손등에 핏줄이 툭 튀어나온 제이슨의 손과는 다른 외양이었다.


팀의 손을 잡았다가 내려가 팔을 붙잡았다.


히어로답게 얕은 흉이 조금씩 있는 피부 위를 매만지다, 천천히 입술을 대었다.


”제, 제이슨?”


팔에 닿는 말랑한 촉감과 따뜻한 숨결에 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휘둥그레 눈을 뜬 팀은 제이슨의 곱게 휜 눈꼬리를 보았다. 옅은 과일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네가 잘 모르는 것 같길래.”


말랑하기보단 단단한 팔을 손으로 지분대다, 입을 맞추었다. 과일 향은 달기보단 새콤한 향이었다. 향 때문인지, 아니면 이 상황 때문인지.


“알려주려고.”


팀은 입 안에 침이 고였다. 고인 것을 삼켜도 침은 다시 모였다. 제이슨은 입을 맞춘 곳을 살살 깨물곤 혀로 느릿하게 핥았다. 선홍색 혀가 팔에 닿자, 팀이 파드득 몸을 떨었다.


“키스마크 차이. 알아야지?”


제이슨은 눈꼬리를 휘어 간드러지게 웃었다. 미리 정한 곳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문지르다 입을 붙여 빨았다. 붉은 멍울이 생길 수 있도록.


수건은 어느새 바닥으로 떨어졌고, 제이슨의 머리카락에 맺힌 물이 툭, 떨어졌다.


굵은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과, 저를 응시하며 노골적으로 살을 빨아들이는 제이슨.


팀은 지금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었다.


‘너무 졸려서 내가 미쳐버렸나?’


코로는 제이슨의 체향이 맡아졌고, 귀로는 제이슨이 살을 빠는 소리가 들렸다. 눈으로는 제이슨의 모습만 보이니 모든 오감이 제이슨만을 향해 있었다. 제이슨이 그렇게 만들었다.


입을 떼어 낸 제이슨은 깨끗하던 살 위에 피어난 멍울을 보곤 만족스레 웃었다.


붉은 자욱을 손으로 느릿하게 쓸어본 제이슨은 그 위에 마지막으로 입을 맞추고 팔을 놓아주었다.


팀은 여전히 입을 떡 벌린 채 어버버하고 있었다. 제이슨과 시선이 마주치자, 팀은 보면 안 될 것을 몰래 훔쳐본 아이처럼 흠칫 몸을 떨었다.


”이제 알겠지?“


작게 키득댄 제이슨은 그만 쉬라며 방을 나갔다.


팀은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다 화들짝 놀라 제 팔을 보았다. 팔에는 정말로 키스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제이슨에게 있던 벌레에게 물린 것과는 확실히 다른 모양새였다.


”다르긴, 다르네….“


붉은 자국을 슬쩍 만져본 팀의 얼굴이 화르르 타올랐다.


”으으…!“


제이슨이 팔에 이를 대고 깨물던 것과, 말랑한 혀로 핥던 것, 자극적인 소리를 내며 살을 빨던 것이 전부 스쳐 지나갔다. 팀은 방금 일이 정말 제 몽상이 아니고 현실이란 게 믿기지 않았다.


”잠깐, 제이슨이 어떻게 키스마크 만드는 법을 아는 거지?“


제이슨에게 있는 키스마크 주인은 누구인가? 에 이어 새로 피어난 의문이 팀의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참사서 고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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