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공명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명은 나오지 않지만 공화라고 주장해 봅니다.


 "승상님, 부르셨습니까."

 "아. 백약(伯約), 잘 왔어요."

 찾던 사람의 방문에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나를 그가 당황하여 말린다. 심성이 바르고 총명한 면이 기억 속의 어린 그 사람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서 한눈에 마음에 들었던 청년이었다. 물론 그것 또한 「공명」의 운명의 고리 속에 있었던 사항이자 정해진 역사의 흐름이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백약은 실로 우수한 제자였으며 현재의 촉에는 필요한 인재였기에.

 "그것보다 용태는 좀 어떠십니까? 설마 또 일하신 건 아니겠지요? 이 이상 무리하시면 정말……."

 "후후, 잔소리가 많은 건 정말 변치 않네요."

 "……예?"

 "아니에요, 혼잣말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보다 백약, 이리로."

 이전에도 그런 말을 들었었지, 하는 기시감에 잠깐 웃은 나는 그에게 천천히 손짓했다. 침상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병과 피로가 내 몸을 잠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만큼은 멀쩡했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나 자신이 싫을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말한 대로 가까이 온 그에게 머리맡에 두었던 우선(羽扇)을 내밀었다.

 "스, 승상님……?"

 "이번에도 약속을 다하지 못하고 가겠군요……. 백약, 힘든 일이겠지만 이 약속, 내가 죽은 뒤에도 그대가 이어 줄 수 있겠습니까?"

 책을 잃어버린 후의 되풀이되는 삶에서조차도 처음 내가 도움을 받았던 때와 변함없이 다정하게 대해 주셨던 주군인 현덕님께 받았던 그 우선은 내가 한시도 떼어놓지 않고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이 자리'와 함께 원래는 내가 아닌 그 사람이 받았어야 할 물건. 아직 어리던 그 사람과 함께 이야기했던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약속은 이제 이 우선과 함께 그에게로 이어지리라. 이번 세계에서는 약속이 완수될 수 있을지 어떨지 다소의 우려는 남지만, 성실한 그라면 분명 지키려고 열심히 노력해줄 것이었다.


 "죽는다니요,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승상님……. 전 아직 승상님께 배울 게 많이 남아 있단 말입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절실한 표정으로 호소하는 그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인 나는 오른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살그머니 잡았다. 우선을 쥐고 있는 그 손은 검을 다루어서인지 손바닥에 물집이 잡혀 울퉁불퉁하지만 내 손과는 달리 생명력 넘치는 따뜻함을 가지고 있었다.

 "울지 마세요, 백약. 현명한 그대라면 알고 있겠지요? 제 별은 이제 곧 떨어집니다. 아마도 오늘밤을 넘기기 어렵겠죠."

 "……승상님……."

 군막 사이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아무래도 이제 정말 이번 생의 끝이 머지않은 것 같아 그에게 슬슬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천천히 잠겨가는 목에 힘을 주어 그를 불렀다.

 "백약."

 "예."

 "그대에게 나는 좋은 스승이었나요?"


 '……나는 훌륭하게 「공명(孔明)」을 연기해 냈습니까?'

 머릿속에 떠오른 또 한 가지 물음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원래 그의 스승이 될 운명은 내가 아니었으며, 내가 「공명」을 잇고 스승이라는 말을 듣기엔 아직 한참이나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언제나 나는 그에게 나를 스승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제 관계였고, 세간에서 보기에는 확실히 공명과 그 뒤를 이을 후계자였다.

 "……물론이지요, 스승님. 지금도 충분히 훌륭한 스승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그렇군요, 다행이에요……. 이제 안심하고 그분을 뵈러 갈 수 있겠어요."

 '아마도 힘겹고 고된 길이 될 약속만 떠맡기고 가는, 그대의 행복을 빌어줄 수 없는 못난 스승이어서 미안해요.'

 거듭해온 운명 속에서 몇 번이나 해 왔던 사죄의 말을 하고 난 후 나는 무거워지기 시작한 눈꺼풀을 천천히 닫았다.


 아마도 이제 다음에 눈을 뜨면 자신은 불길이 채 가시지 않은 혼란 속의 그 마을에 있을 터였다. 그리고 먼저 가 있을 운장과 헤어져 태산으로 가서 어린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하고 지식을 쌓으며 또 같은 약속을 하고, 함께 형주로 오게 될 것이다. 백약과 함께 했던 7년보다도 더 짧게 느껴지던 약 9년 동안의 시간을, 다음 운명에서는 후회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나는 마지막 한 줄기 의식의 끈마저 천천히 놓아 버렸다.


 '스승님, 지금 다시 만나러 갑니다. 이번에야말로 당신의 이름을 돌려드릴 수 있기를…….'


드림러. 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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