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 


"이거 맛있어!!!"

"그랴? 우리 똥강아지는 입맛이 아주 지 할배랑 판이네. 그래 맛있어?"


"우리랑 같이 살자아. 여기 순 시골이라 재미없잖아."

"재미가 없어? 저 옆에 금은방집 할망구랑, 가축병원 아지매랑 내일도 같이 화투치기로 했는디? 다음주에는 저기 약사 할배들이랑 내장산 가기로 했디야."

"히잉."

"그렇게 할매 심심할까 봐 걱정이면 자주 놀러 오믄 되겄네." 


"어째 울어? 할배 인제 안 아프니 웃어야제."

"……할머니는 꼭 오래오래 살아야 돼."

"그럼. 영인이가 색시 데려오는 거까지 봐야제."

"…아 뭐래. 진짜아."


"할머니. 나 색시 데려올 때까지 산다며."

"그러게나 말이다. 안직 멀었냐."

"있어. 데려올 사람. 근데 어떻게 다짜고짜 병실로 데려와. 도망가겠다."

"하긴 그렇긴 혀?"

"그니까 빨리 나아서 퇴원해. 좋은 애야."

"고와?"

"응. 되게 착하고 고와. 사진 보여줄까?"




평범한 하루였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들어온 파김치 희수는 영인과 다정한 포옹을 나누곤 씻고 누워 있었다. 잠이 들락말락해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꽂고 누웠을 때, 시침은 1을 조금 지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누운 지 꽤 지난 지금은. 


"희수야."

"…응, 엌. 어?"

"………희수야."

"영인이?"


자신의 문앞에서 영인의 목소리가 들릴 시간은 보통 아니었다는 거였다. 이름만 부르고 말이 이어지지 않자 희수는 잠을 떨어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으로 향했다. 문을 여니 새하얗게 질린 영인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 났구나'

희수는 대번에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영인은 창백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응, 영인아. 천천히 얘기해도 돼."

"미안한데. 나 버스…. 버스터미널까지만."


핸드폰을 쥔 영인의 손이 덜덜 떨렸다. 희수는 영인을 끌어안았다. 영인은 울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마치 우는 사람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택시가, 안 잡혀서…. 정말 미안."

"어디 가는데. 버스 터미널 가서 어디 갈 건데."

"……전주."

"……무슨 일이야. 영인아. 너."

"……할머니가."


영인은 이름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는 듯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희수는 영인이 말했던 8월달 영인을 괴롭게 한 원인을 짐작했다. 괜찮아지셨다며. 희수는 영인의 부모님이 약간 편찮으셨던 거라고 생각했다. 추석 때 잘 만나고 왔기에 정말 좋아지셨구나 안심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고모가, 병원에 있는데. 갑자기 수치가…. 안 좋아서. 요새 괜찮으셨는데…. 오늘 밤에."

"…더 말 안 해도 돼."

"……."

"태워다 줄게."

"……미안해."


희수는 쥐어짜듯 대답하는 영인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바보같은 공영인. 할아버지 때도 할머니 때도 왜 우리한테, 나한테 말도 안 하고 혼자 참고 삭히려고 하는 건지. 7년 전 조부상 때를 떠올리면 지금 영인의 상태가 이해가 갔다. 


"전주 어디야? 병원."

"어?"

"지금 2시야. 이 시간에 고속버스가 어디 있어. 영인아."

"그치만. 너 내일도 학원 가야 하는데."

"꼭두새벽에 가는 거 아니니까. 영인아."

"으윽."

"이럴 시간 없어."

"……."


괴로운 표정으로 영인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전주로 향하는 차안. 새벽이라 그런지 오가는 차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차안의 두 사람 사이에도 말이 오가지 않았다. 오로지 침묵만이 가득한 차안. 잠이 달아난 희수는 졸리지는 않았지만 이 침묵이 버거웠다. 그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영인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사과 안 해도 돼."

"고마워."

"왜 말 안 했어?"

"……."

"여름에, 그래서 계속 전주 내려 갔던 거야?"

"……응. 쓰러지셨거든."

"아……."


영인은 천천히 그러나 하나하나 이전 일을 털어놓았다. 근래에 몸이 안 좋으면서도 조금 피곤해서 그렇다며 병원을 잘 안 갔던 늙은 조모. 결국 쓰러져서 실려간 병원, 이미 늦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할 뿐이었다. 

할머니에게 남은 나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 소식을 들은 영인은 한 걸음에 고향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가족들과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병원으로 모시고 실낱 같은 희망에 걸고 수술을 택했고 경과는 나쁘지 않았다. 추석 때 면회를 갔을 때도 거동은 못 해도 정신은 또렷하던 할머니였다. 

그러나 어제, 갑자기 용태가 안 좋아졌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오늘밤. 울먹이는 큰 고모의 전화를 받은 영인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추석 때 온가족이 그렇게 빌고 또 빌었는데. 어째서. 


"원래 어르신들이. 그런다더라고…. 갑자기, 이유도 없이 안 좋아지거나."

"응……."

"미안. 미안해. 희수야."

"괜찮아. 정말 그러지 않아도 돼. 영인아."

"응."

"내가 너 아플 때도 말했지?"

"…."

"나한테 어려운 일 아냐. 너 위해서면 이 정돈 나 언제든 해 줄 수 있어. 아니. 더한 것도 해 줄 수 있어."


그말에 영인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희수는 울어도 된다고 했지만 영인은 끝까지 울지 않았다. 내려가는 동안 내내,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고 그저 희수에게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희수는 자라고 영인의 눈을 감겨 주곤 조용히 라디오를 틀었다. 



44.2.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운전석에서 졸고 있던 희수는 눈을 번쩍 떴다. 어느덧 동이 텄는지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희수는 락을 풀었고 영인이 조수석에 탔다. 희수는 차마 말로 묻진 못하고 안타까운 눈으로 영인을 바라보았다.


"많이, 좋아지셨대. 수치도. 일단 고비는 넘긴 것 같다고."

"후우. 다행이다."

"미안해. 괜히 새벽에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서."

"아니야."

"아니긴 뭐가…. 진짜 면목이 없네. 지레, 바보같이……."

"괜찮아지셔서 다행이다. 진짜…. 놀랐지."

"……."

"영인아."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영인은 어떤 답도 없었다. 여태껏 참아왔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끅끅거리며 울음을 참으려고 해도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영인에 희수는 마음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 저 머릿속 가득 어떠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는지 아직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낸 적 없는 희수로선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우는 영인을 안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야 영인은 새빨간 눈으로 희수를 바라보며 재차 미안하다며 사과를 건넸다. 희수는 짐짓 표정을 굳히며 영인의 볼을 쭈욱 잡아늘렸다.


"화낼 거야. 한 번 더 그러면."

"으뜨케 그름."

"그냥 맛있는 거나 사줘. 콩나물 국밥 먹을까?"

"하아."


영인은 다시 희수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기운 바찌듯 한숨을 쉬었다. 


"엄마가."

"응."

"너 맛있는 거 사먹이라고 돈 줬어."

"…내려서 인사라도 드릴 걸 그랬나? 나랑 같이 사는 건 아시지? 그때 졸업식 때 뵀는데…."

"알아."

"그렇구나. 좀 예쁘게 입고 와서…. 인사드릴걸."

"됐어. 인사는 무슨. 신경쓰지 마."

"…그렇구나."


희수는 더 아무 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영인을 떼어내고 손끝으로 눈물을 닦아내 주며 웃어 보였다.


"그래서 금일봉으로 뭐 사줄 거야?"

"…이 시간에 연 곳은 콩나물 국밥집밖에 없어."

"그렇겠다. 그래도 나 국밥 좋아해."

"맛있는 곳 많은데………. 하아."


네비를 찍는 영인의 자그마한 뒤통수를 희수는 지그시 바라보았다. 물론 조금이라도 자놓으라는 영인의 말도 있었지만 사실 아까 따라 내릴까도 싶었던 희수였다. 하지만 외부인을 맞이할 경황이 없을 것도 같았고, 가족들만의 시간이라는 생각에 남았다. 그러나 역시 인사를 드리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설령 자신이 영인의 애인임을 모르시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님이었으니까. 영인이 토하면서까지 아버지의 술을 마셔 줬던 것처럼, 자신도 조금이라도 마음을 쓰고 싶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아직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괜한 부스럼이 생길 수도 있었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렇지만…. 


"조희수?"

"으, 으응!"

"…역시 피곤하고 졸리지. 어떡하지. 그냥 조금 더 잘래? 방 빌려 줄까."

"으으응. 괜찮아. 여기로 가면 돼? 맛있겠다."


희수는 속상함을 마음 한 구석에 다시 미루어두고 웃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44.3. 


"희수 샘. 희수 샘!!"

"아…. 아 죄송해요."

"어휴. 많이 피곤해요? 그래도 들어가서 자요."

"네. 휴우."


얼마나 졸았는지 퇴근 시간이 한참 넘겨 있었다. 희수는 머리를 쓸어올리고 깨워 준 동료에게 감사를 표하고선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


영인에게서 전화가 와 있었다. 평소라면 집에 도착했을 시간이라 걱정하게 만든 건가 싶어 미안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많이 불안했을 영인에게 못할 짓을 한 것 같았다. 그러나 바로 전화를 걸려던 희수는 멈칫했다. 왠지 평소와 달리 가볍게 통화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피곤의 원인은 9할은 새벽의 운전 때문이었지만, 서울에 도착해서도 쪽잠을 못 잔 까닭도 있었다. 화가 났다. 오늘의 영인에게 일말의 서운함을 느낀 자신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힘든 애에게, 겨우 그런 사소한 걸로. 백 번 생각해도 오늘은 현실적으로 인사를 못 드리는 상황이 맞았다. 

무거운 죄책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리고 주차장 엘리베이터를 내리자마자 더 무거워졌다. 


"무슨 일 있었어? 전화도 안 받고."

"영인아. 여기는 왜…."

"오늘 운전하지 마. 집까지 택시 타자."

"아냐. 나 괜찮은데. 어차피 내일도…."

"내일도 택시 타. 내가 돈 줄게."

"영인아."


영인은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희수는 그 단호한 표정마저 섭섭했다. 자신이 베푼 친절을 그대로 돌려 주려는 듯한 영인의 태도는, 오히려 선을 긋는 것만 같았다. 타인이니까. 남이니까. 그 정도 사이니까. 네가 이만큼 해 줬으면 나도 이만큼 갚아야 한다는 거리감. 


"아까 받은 돈 콩나물 해장국으로 턱도 없어."

"왜…."

"응?"

"으으응. 안 그래도 되는데…. 싶어서."

"안 그래도 되기는…. 어?"


영인은 그제야 희수의 얼굴을 살피고 안색을 바꾸었다. 그리고 한 발자국 크게 다가갔다. 희수는 자신도 모르게 반 발자국 뒷걸음질을 쳤다. 그 모습에 영인은 표정을 더 굳혔다.


"조희수. 희수야."

"그, 괜찮으니까. 택시… 안 불러도 돼! 진짜야."

"희수야. 나 봐."

"진짜."

"나 좀 봐."

"싫어."

"…."

"싫어. 보지 마…."


싫다는 말에 영인은 충격을 받은 듯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희수는 자신이 뱉은 말을 주워 담고만 싶었다. 바보 같아. 영인이가 뭘 잘못했다고. 영인이는 그저 나한테 잘해 주려고 한 것뿐인데. 시원하게 털어낼 수 없는, 속이 좁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싫어도 오늘은 택시 타자."

"그게 아니라…!"


희수는 영인이 상처입었을까 봐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마주한 영인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희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 안 났어.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응."

"집에 가서 얘기하자. 사실 나 이미 불렀어. 택시."

"……응. 미안. 고집, 부려서."

"그 부분인가."

"…어?"

"아냐. 가자. 기사님 기다리시겠어."


어른스러운 영인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크게만 느껴졌다.




집에 오는 길에도 한 마디도 없던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집에 들어서자마자 영인은 방으로 들어가려는 희수의 손목을 꼬옥 붙들었다. 


"피곤하지."

"…응. 나 자면 안 돼?"

"미안한데 안 돼."

"………왜애."

"안 자고 울 것 같아서."


영인은 부드럽게 희수의 뺨을 쓸었다. 희수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이 그렇게 밀어냈음에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듯 저를 바라봐 주는 영인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영인에게 서운해하는 자신에 대해 더 실망했다. 복잡한 감정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니라고 답해야 하는데. 피곤하고 서운하고 미안하고. 온갖 감정이 너울졌다.


"미안해. 영인아."

"…너는 늘 내가 해야 할 말을 먼저 해."

"으으응. 아니야."

"미안한 김에 곤란한 질문 좀 할까."

"……?"

"뭐가 미안한데?"


영인은 이마를 꽁 맞대고 쪽 키스를 했다. 남녀 커플 간의 싸움에서 남자가 들었을 때 가장 곤란한 질문 중 하나라는 그 질문, 희수는 다른 의미로 곤란했다. 


"응? 뭐가 미안해. 희수야."

"내가 못되게 말해서…."

"싫다고? 너 나 싫어?"

"아니야!"

"근데? 뭐가 문제야."

"그게……."

"오늘 너 나 때문에 한숨도 못 잤어. 왕복 5시간을 운전해 줬고. 아까 나 우는 거 달래 주고. 난 오늘 너 없었으면…. 제정신으로 못 있었을 거야."

"그건…."

"네가 날 때렸어도 넌 나한테 안 미안해도 돼."

"예가 왜 그렇게 폭력적이야아……."

 "그럼 뭐가 미안해. 학원에서 뭐 다른 사람이랑 뽀뽀 했나? 그건 좀…… 봐 주기 힘든데."

"아냐. 무슨, 내가 그런!"


영인은 희수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희수의 등이 잘게 떨렸다. 착한 조희수. 뭐 때문에 이렇게 상처받아 놓고 미안해하는 거니. 영인 역시 무언가 자신이 저질렀을 무신경한 행동에 미간이 좁아졌다. 


"내가 뭐 서운하게 했지?"

"으응. 아니야."

"조희수. 너 사람이 그러면 안 돼."

"어…?"

"선주 언니한테는 모친상인데도 그렇게 할 말 다 해 놓고선. 사람 차별이 너무 심하잖아."

"……."

"나는 오늘 슬플 일도 없었어. 평범한 하루였어. 할머니도 조금 힘드셨지만 이겨 내셨고."

"그래도 어떻게 그래."

"왜 네가 못 서운해. 그건 전혀 다른 일이잖아. 똑똑하지만 바보같이 착한 희수야."

"응."

"난 네가 착하지 않아도 널 사랑해."

"……."

"그리고 오늘 택시 부른 건. 은혜 갚는 것도 있지만."


영인은 조용히 우는 희수를 안고선 다시 토닥이며 말을 이어갔다. 


"걱정돼서 그랬어. 졸음운전이라도 해서 사고날까 봐."

"……아."

"할머니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게 되시고 나서."

"……."

"나 너한테 무슨 일 생긴다는 상상을 해 봤는데."

"응."

"못 살겠더라. 못 견디겠어. 상상만으로도 싫어."


잠깐의 상상에도 괴로운 듯 자신을 안은 팔에 꽈악 힘이 들어갔다. 희수는 그런 영인을 마주 안았다. 늘 이성적이고 의뭉스러운 영인이었지만, 정말 사랑을 말할 때는 항상 솔직했다. 


"영인아."

"어. 말해 봐."

"싫다는 거 거짓말이야……."

"그건 아까 말했잖아. 알아."

"나 너한테,"

"응."

"뭐든 다 해 줄 수 있어. 그렇게, 갚는 거. 싫, 아니. 안 그랬으면 좋겠어."

"나도 너한테 다 해 줄 수 있어서 그런 거야.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게 했다면 미안해."

"그리고……. 그리고."

"응. 천천히."


쉬이 달래가며 영인은 희수의 등을 쓸어 주었다. 아직은 진심으로 어리광부리는 게 어색한 맏이, 조희수는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인사, 드리고 싶었어…."

"그래. 그…. 어?"

"친구인 줄 아셔도 좋으니까. 네가 우리 부모님께, 훌쩍, 해 드린 거랑 비교도 안 되지만."

"아니. 잠깐. 아."


인사는 무슨. 영인은 자신이 내뱉은 말이 얼마나 무심하고도 무신경했는지 그제서야 깨달았다. 똑같은 일로 선주에게 그토록 잦게 상처를 받아놓고선, 똑같은 상처를 희수가 느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영인은 침통한 얼굴로 희수를 떼어내고 어깨를 꽉 붙들고 말했다.


"미안해!!!"

"아니야. 그 상황에서…."

"아니. 아니야. 너한테 그런 게 아니라. 아이씨."

"응?"

"우리 엄마 아빠가 너 보고 싶어해서…. 그게 너 부담스럽게 하는 게 싫어서. 괜히 말이 그렇게 나왔어. 절대 너를 소개시키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야. 애초에 부모님 다 너랑 만나는 거 아시고, 엄청…. 부담스러울 정도로 좋아하고."

"에, 에? 나를?"

"할머니한테도."


영인은 희수의 손을 꽉 쥐고 눈물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는 두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소개시켜 주기로 약속했어. 근데 일단 의식 차려야 하니까…. 조금 걸리겠다."

"아."

"그런 거…. 진짜 아니야. 미안. 내 말이 그렇게 들릴 줄 몰랐어. 정말…. 으아."

"아니야…. 그랬구나."

"내가 너 얼마나 좋아하는데."

"…응."

"너 반대하면 부모자식 연 끊을 거야."

"…무슨 막되어 먹은 소리를 하는 거야. 영인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어? 뭐가 고마워."

"그걸로 서운해 해 줘서."

"…그게 뭐가 고마워."

"넌 그게 나한테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 일인지 아마 모를 거야."


영인은 다시금 진득하게 키스를 하고 한숨을 쉬며 희수를 품에 안았다. 희수 역시 모든 오해와 서운함이 풀려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그 빈 자리를 영인이 건네어 준 마음이 가득 채웠다. 


"안 착해도 돼. 희수야."

"……응."

"대답은 잘하네. 그래 봤자 더럽게 착할 거면서."

"몰라."

"2주 정도 남았지."

"…뭐가. 아. 응."

"출퇴근. 택시 타고 다녀."

"뭐?"

"체력 아껴서 나랑 놀아."

"무슨. 괜찮다니까."

"엄마 아빠한테 돈 뜯으면 돼."

"……무슨?"


태연하게 철없는 소리를 하는 영인에 희수는 포옹을 풀고선 아연해하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영인은 아랑곳 않고 손가락으로 셈을 했다. 


"그래 봤자 30만 원이잖아."

"내가 내는 월세보다도 비싸잖아."

"월세도 못 내고 싶은 거 아님 좀 조용히 해라?"

"공영인……."

"그리고 연말에 전주 가자."

"…응."

"서울 최고 맛집만은 못해도 맛있는 데 많아. 다 데려가 줄게."

"응………. 너네 어머님 요리만 먹어도 좋아."

"그건 내가 지겨워."

"정말 철이 없어……."


30만 원어치 택시비를 (영인의 부모님께 받을 생각은 없긴 하지만) 받았으니, 50만 원어치 선물을 사가야겠노라 희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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