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아이스크림 먹을래?”

 

“…엉?”

 

 

왜, 양아치들 특징이 있지 않은가. 이름을 진짜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이름 대신 ‘친구야-.’라고 부르는 그들만의 특징. 떡하니 왼쪽 가슴팍에 ‘양요섭’ 이름 석 자가 박힌 명찰이 있음에도.

그렇지만 언제나처럼 남들과 같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다. 그냥 난 성은 양 씨요, 이름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왜냐면, 무서우니까. 그들의 말에 대꾸할 용기가 나에겐 없었다.

 

 

“갑자기, 아이스크림은 왜…?”

 

“왜긴. 여름이잖아.”

 

 

그래서 지금 나보고, 여름이니까 네가 먹을 아이스크림을 사 와라. 이거냐? 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요섭은 아무런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저 인상을 봐라. 거역했다간 당장 주먹이라도 날아올 거 같은 저 매서운 눈빛. 500원 줄 테니 부라보콘을 사 오고 1,000원을 거슬러 와라. 할 것 같은 저,

 

 

“넌 뭐 먹을래?”

 

“…어? 나는 괜찮은데-.”

 

“배라 좋아해?”

 

“어? 어.”

 

“그럼 이따 나랑 먹으러 갈래?”

 

 

…엥?

 

 


 

Young, Mid, Summer.


- Season 1: Summer. -


w. 요쿠르트


Season Note. 


 


낭랑 18세 인생. 양요섭은 탈선과 거리가 아주, 아-주 먼 인간이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주변엔 탈선과 거리가 먼 친구들만이 있었다. 그렇게 평화롭기 그지없었던 어느 날, 양요섭의 친구 목록에 윤두준이라는 웬 양아치 한 명이 비집고 들어왔다. 양요섭이 끼워준 것이 아니라, 윤두준이 ‘비집고’ 들어갔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양아치 윤두준의 빵셔틀이 될 줄 알았건만, 그는 어째서인지 몇 주 째 거의 매일 양요섭을 비싼 배스킨라빈스로 데려가 아이스크림을 사주곤 했다. 덕분에 양요섭은 같이 하교하는 친구들을 잃었고, 매일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바람에 살을 얻었다. 뭐, 많이 찌진 않았지만. 아무튼, 요섭은 아주 불편한 친구 한 명을 얻었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아, 존나 덥다. 그치, 친구야.”

 

“팔 내리면 좀 덜 덥지 않을까?”

 

“오늘은 무슨 맛 먹을래?”

 

 

그래, 오늘은 아몬드봉봉.

두준은 꼭 끝나면 느릿느릿 가방을 챙기는 요섭의 자리에 맨몸으로 와 그를 재촉했다. 요섭의 친구들이 눈치를 보며 그에게 인사를 하고 떠날 때면 두준은 꼭 뭘 그렇게 많이 챙겨서 다니냐며 건드렸다. 가방은 무슨 필통 하나 제대로 들고 다니지 않은 윤두준에게 어떻게 말대꾸를 하겠는가.

 

 

“근데, 이렇게 더워도 난 여름이 좋더라.”

 

“왜?”

 

“그냥?”

 

 

여름이 몇 달 남았더라? 지금이 6월 20일이니까… 7월, 8월. 9월부턴 좀 선선해지나?

여름이 좋은 이유. 보기보다 싱거운 대답을 남긴 두준에 요섭은 더 딥하게 물어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요섭에게 어깨를 올린 반대 손으로 여름이 몇 달 남았는지 손가락을 접어가며 세어보는 두준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자니, 살이 맞닿은 어깨부터 슬슬 더 더워지는 듯했다. 뭐, 진짜 못 참을 정도로 더워지기 전에 배라에 도착했으니 망정이지.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뭔데.”

 

“왜… 나한테 자꾸 아이스크림 사주는 거야?”

 

“그게 드디어 궁금한 거야?”

 

 

진작 궁금했는데 차마 물어보질 못한 거야.

윤두준과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한 지 정확히 20일이 되는 날, 요섭은 드디어 궁금했던 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근데 이 질문이 꼭 물어봐야 했던 질문이었던 건가? 아몬드봉봉을 분홍색 수저로 푹푹 찌르던 요섭의 얼굴 앞에 두준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뭐지? 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거리감은?

 

 

“그야-.”

 

“그야…?”

 

“좋으니까?”

 

“아-. 좋으니……, 어?”

 

 

여전히 요섭의 코앞에 있는 두준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눈이 동그래져선 아몬드봉봉을 찌르던 숟가락질도 멈춘 요섭의 얼굴을 보고선 귀엽다며 볼을 잡아 누르고, 당기고. 윤두준이 그러던지, 말든지 – 사실 뭐라고 할 용기도 없긴 했다. - 요섭은 저게 장난일까, 진심일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 좋아하니까 매일 이렇게 끌고 와서 아이스크림 사주는 거겠지. 그냥 슈퍼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말고, 비싼 배스킨라빈스를. 그래, 근데 핵심은 그 ‘좋으니까?’가 어떤 ‘좋음’이냐는 것이 문제였다. 자고로 저 부모님을 좋아하는 것과 친구를 좋아하는 것, 그리고 애, 애인을 좋아하는 것은 다 다르니까. 윤두준이 양요섭의 부모님은 아니니까 1번 선택지는 자연스레 제외된다. 그럼 2번과 3번이 남는데, 이 둘 다 맞을 수가 없는 것이 하나가 있다.

자고로 ‘좋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이 많은가? 라는 공통 질문에 YES가 나와야 하는데, 윤두준은 2번이고 3번이고 다 NO이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온 지 주말을 빼면 대충 15일이 되었지만, 윤두준은 양요섭에게 딱히 뭐가 궁금해서 묻거나 하지 않았다. 뭐, 물어봤다면 아이스크림 맛 취향 정도. 그럼 자연스레 저것은 장난이라는 결론이 도출…….

 

 

“…하하, 그래. 그렇구나. 좋아하는구나, 날.”

 

“어? 알고 있었어?”

 

“…아니?”

 

 

알았겠냐? 속으로만 대답을 잘하는 요섭은 여전히 가까운 거리에 있는 두준의 얼굴을 피해 아몬드봉봉을 크게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짭쪼름한 아몬드가 오독- 씹혔다. 하여튼, 단짠단짠 존나 잘 된다니까.

 

 

“내가 왜 너를 좋아하는지는 안 궁금해?”

 

 

안 궁금해.

 

 

“…왜 좋아하는데?”

 

 

양요섭 찐따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찐따였냐, 너. 저런 말 같지도 않은 장난을 따져 묻지도 못한 요섭은 속으로 스스로를 존나게 꾸짖으며 자책했다. 그렇지만 요섭은, 혼자 열심히 결론을 내린 것이 모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바로, 윤두준의 다음 말들에 의해서.

 

 

“내가 귀여운 걸 졸라 좋아해. 털 달린 동물이나… 뭐, 그런 거.”

 

“…아, 그래?”

 

“근데 있잖아, 너는.”

 

 

나는…? 장난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주제에 괜히 마른 침을 삼켰다. 아몬드봉봉을 삼켰던 입이 달았다. 긴장되는 순간에도 단맛은 느껴지는구나. 라는 식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건너편에 앉은 윤두준의 입이 떨어지는 순간을 기다렸다.

 

 

“내가 봤던 것 중에서 제일 귀엽거든.”

 

 

쿨럭, 쿠울럭, 크허억-. 요란하게도 사레가 들렸다. 입을 황급히 틀어막아 입안에 있던 아몬드봉봉 잔여물들을 윤두준의 면상에 뱉어버리는 대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친구야, 괜찮아? 라고 물으며 요섭에게 배스킨라빈스 로고가 새겨진 냅킨을 건네준 두준에 대충 고개를 까딱하며 감사를 표했다.

씨발, 저 새끼 때문에 사레 들른 건데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하나? 여전한 마음속 아가리 일진 요섭이었다.

 

 

“그렇게까지 놀라주니까 뿌듯하네.”

 

“내, 내가, 크흠-. 내가 귀엽다고?”

 

“어. 이건 내가 아이스크림 사주면서 발견한 귀여운 점인데, 아이스크림 먹을 때 네 볼따구가 이렇-게 올라오잖아. 그치.”

 

 

그, 그래?

바보처럼 말까지 더듬은 요섭이 제 앞에 까만 핸드폰 액정까지 들이 밀어주는 두준 덕택에 실시간으로 자신의 볼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당히 부담스러워서 시선이라도 돌리려 하면 바로 옆에 더 부담스러운 두준의 얼굴이 보여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자신의 얼굴이 보이는 액정으로 눈을 돌렸다.

20일 동안 윤두준과 얼굴을 마주 보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알아낸 것이 있었다. 잘생긴 편에 속해 인기가 제법 많은 윤두준의 얼굴 중에선 진한 눈썹과 눈이 가장 도드라져 보이곤 했다. 그리고 검은 눈동자보다 흰자가 더 많은 눈엔 얼핏 약간의 광기가 서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 눈을 보면 이게 진심인지, 아닌지. 구별이 가능할 때도 있었는데.

 

 

“그거 볼 때마다 그냥.”

 

“그냥…?”

 

“존나게 씹어 먹고 싶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입에. 마음만 먹으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아, 근데 내가 먹겠다는 건 진짜 먹겠다는 게 아닌 거 알지?

…아무튼, 저 눈은 진실을 말하는 눈동자구나. 그 찰나의 순간에 두준의 진심을 봐버린 요섭은 절망했다. 이거 뭔데? 일진에게 찍혔을 때. 세계 서열 1위 윤두준, 찐따 양요섭에게 반하다?! 뭐 이런 거냐고! 그런 요섭의 마음도 모르고 두준은 그저 실실 웃을 뿐이었다.

 

 

“뭐, 당장 어떻게 하겠다는 건 아니야.”

 

“엉…?”

 

“내가 널 데리고 뭘 하겠냐.”

 

 

그 말을 끝으로 두준은 자신의 컵에도 담겨있던 아몬드봉봉을 두 번의 숟가락질 끝에 모두 클리어했다. 아유, 이 시려. 이가 시리다는 사람 치곤 우적우적 잘도 아이스크림을 씹어먹는 두준을 멀찍하게 바라보던 요섭은, 아직도 절반이나 남은 아몬드봉봉을 마저 퍼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날 씹어 먹고 싶다고 한 걸 보면, 그러니까 진짜 씹어 먹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그렇게 먹고 싶다고 한 걸 보면 연애 – 라고 해도 되는 걸까. - 감정으로 좋아한다는 것인데. 요섭은 거부감이 먼저 들기보단, 그럼 도대체 왜 날 ‘친구야.’ 같은 호칭으로 부르는지가 궁금했다. 그렇게 좋아하면 이름을 불러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그럼 왜 이름을 안 부르는 거야?”

 

“이름?”

 

“아, 아니. 꼭 불러달라는 건 아닌데, 그냥….”

 

 

꼭 이름을 안 불러줘서 서운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이 기분은 뭐지? 이 말랑거리고 어쩐지 아몬드봉봉처럼 달콤한 거 같은 이 기분은 뭐냐고!

 

 




No. 1    Date. 2022.06.xx.

 

 

“야, 내가 좋아하는 애가 생겼거든?”

 

“미친. 네가? 천하의 윤두준이?”

 

 

천하의 윤두준? 어쩐지 조롱당하는 듯한 저 조합의 언어는 뭐지. 아무도 없는 옥상에, 하도 많이 앉아 먼지 같은 게 쌓일 리 없는 의자에 앉아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있던 두준은 불현듯 고백을 쏟아냈다. 낄낄거리는 모습이 영 거슬렸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닌 두준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걔랑 맨날 아이스크림 사주고 같이 먹는데.”

 

“어, 근데.”

 

“안 넘어오는 거 같아.”

 

“왜. 존나게 얼음 공주야?”

 

“아니, 뭐. 얼음 공주는 아니고….”

 

 

그냥, 존나 귀여워.

요섭의 얼굴을 떠올리며 실실 웃는 두준의 표정을 본 친구 황 씨는 흡사 한여름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등골이 오싹해지는 듯했다. 수차례 고백해오던 존나 예쁜 여자친구들을 몇 번 만나주다가 생각 없다고 차버리던 두준이 귀엽다고 말할 정도면, 정말 귀여운 건가? 라는 생각도 들고, 제 친구의 저런 소름 끼치는 표정을 봐버린 것이 일단 가장 충격이었다. 으, 아직도 소름 돋네.

 

 

“뭐, 그래서 뭐가 문젠데. 존나 귀여운 얼음 공주의 마음을 어떻게 녹이느냐, 이게 고민?”

 

“얼음 공주 아니라니까….”

 

“마음을 녹이는 방법, 이 형님이 아주 잘 알고 있지.”

 

“뭔데?”

 

 

바로바로, 뜨거운 키-스-.

담배를 태우던 입술을 주욱 내밀며 주접을 떨어대는 황 씨에, 기어코 두준이 제 검정 삼선 슬리퍼를 벗어 던졌다. 슬리퍼를 맞아도 뭐가 좋은지 낄낄 웃어대는 모습이 정말 보기 싫었다. 저런 새끼한테 물어본 내 죄지. 내 죄야. 자신을 타박하는 두준이었다.

 

 

“그래도 네가 이런 고민 할 정도면 진짜 좋아하나 보다?”

 

“…아직은 그런 거 같은데….”

 

“야, 근데 마음을 녹이고 싶다면서.”

 

“어?”

 

“근데 그렇게 꽁꽁 언 아이스크림을 사주면 어떡하냐, 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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