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삼을 보기 시작한지 나흘... 아직 36화까지 밖에 보지 않았지만 질렀습니다. 유비가 참말로 귀엽더군요.

*컬러버스 세계관이 프리소스였는지 아니었는지 까먹었습니다. 어쩌지... 

*제갈유비 중심이지만 약간의 왕윤태오 언급. 쓰는 내내 어째서 유비서서 느낌이 나는지 고민했습니다.

*시리즈입니다. 글쓴이가 레히삼을 다 보고나면 다음편이 이어집니다. 


  **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회색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회색빛의, 선명하지 않은 색채 뿐인 세상이라도 사랑했다. 

 그리고 이건 내가 회색을 조금 싫어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

「 '운명'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 고아원에서 찬이와 함께 기억나지 않는 원장 선생님에게 들은 동화의 한 구절이었다. 이제는 동화의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는 오래된 추억인데도 어째선지 그 구절만큼은 반짝이 가루를 뿌린 양 빛을 내며 기억하고 있었다.

 '운명'이 존재하는 세상. 나는 아직 운명을 만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조금 자란 후에 노식 사부님이나 하진 사범 등 여러 어른들에게서 듣게 된 후기를 통해서 조금 운명을 만난 세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노식 사부님은 아직 운명을 만나지 못한 우리들에게 세상은 어떻게 보이냐고, 질문을 하신 적이 있다. 나는 그 전까지 사부님이 우리들처럼 운명을 만나지 못한 줄만 알았는데, 그 질문을 통해서 사부님이 운명을 만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의 질문에 먼저 대답한 건 함께 듣고 있던 찬이였고, 나는 너무 당연한 세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찬이는 마치 옛날부터 준비했던 것처럼 아주 매끄럽고, 당당하게 말했다.


 "강아지가 보는 세상과 같아요! 저는 강아지가 정말로 좋은데, 책에서 우리들이 보는 세상은 강아지가 보는 것과 꼭 닮았데요!"

 "허허- 그렇구나. 공손찬은 그렇게 표현하는 구나. 유비는? 네게는 보이는 이 세상을 너는 어떻게 표현하겠느냐?"


 찬이의 대답은 정말 멋졌다. 나는 찬이 만큼 멋지게 대답할 수 없을 거 같아서 조금 망설였다. 그래도 사부님은 끈질기게 내 대답을 기다려주었고, 특히 찬이는 기대된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날 바라봤다.

 그 때 내가 생각한 대답은 만족스럽지도, 찬이처럼 멋지지도 않았다. 나는 당연히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표현하는데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사부님은 공기를 공기라고 말하는 것만큼 당연한 걸 굳이 말하라고 하는지 그 때는 아주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저는요... 그, 찬이처럼 멋지게 말은 못하는데..."

 "괜찮으니 말해보거라. 여기에는 아무도 널 평가하지 않아. 난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란다." "맞아! 나도 유비의 생각이 궁금한 걸!"


 찬이까지 긍정해주자 더이상 내뺄 수 없었다. 나는 왠지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우물쭈물, 나답지 않게 말했던 거 같다.


 "제가 지금까지 본 세상은 너무 당연해서 잘 표현할 수 없지만, 그냥 아름다워요. 회색과 때때로 검은색, 하얀색이 함께하는 세상은 단순하고 서로 의지한다고 생각해요. 막 세상의 색이 세가지 아니라면 서로 부딪히고 싸울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만 제가 보는 세상은 세 가지 밖에 없어서 다들 싸우지 않는 거 같아요. 어디까지나 색깔의 이야기지만요... 그리고 회색빛은 햇빛의 하얀색과 합쳐지면 엄청 예뻐요!"

 "유비가 보는 세상은 색이 세 가지여 예쁜 거구나. 좋다. 그럼 이제 이 사부가 보는 세상을 알려줄까?"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신 사부님은 곧장 아마 본론이었을, 사부님의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노식 사부님만의 이야기라고 하기 보다는 운명을 만나 다양한 색체를 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사부님은 색이 가득한 세상을 '사막의 오아시스' 라고 표현하셨다. 어디든지 빛이 넘쳐나고,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운명의 상대라는 것. 운명의 상대를 만나기 전에는 결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도원향의 세상. 노식 사부님은 운명의 상대가 없는 세상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만큼 운명이라는 것은 대단하다고, 사랑스러운 것이라고.

 운명을 만나지 못한 나는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였다.



 * 

 노식 사부님, 찬이와 도원관에서 생활하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당당하게, 쑥스럽게 세상에 대해 말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다 자라 새삼스레 세상을 표현하지 않게 되었고, 노식 사부님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비룡권의 수제자라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남기시고 도원관을 떠나셨다.

 도원관의 그 누구도 사부님의 일탈을 막지 못했다. 아직 운명을 만나지 못한 나와 찬이는 모르겠지만, 보통 20세 전후로 운명을 알게 된 다른 식구들은 사부님의 행동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사부님은 해외에 엘리베자스라고 하는 운명의 상대가 있었다. 아마 그 사람을 만나러 간 거겠지. 운명의 상대를 일찍히, 가족으로 만나게 되어 오랫동안 색체를 봐온 하진 사범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운명을 만나지 않았으니까 운명의 상대를 위해서 떠나신 사부님도, 가족이 운명의 상대여서 언제나 여유로운 하진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진은 사부님이 폭탄 발언을 남기고 가신 이후로 유독 나를 괴롭혔다. 스스로 괴롭힘 당한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분할 뿐 딱히 그 사람이 미운 게 아니었다. 오랫동안 식구로 지내면서 하진이 얼마나 비룡권에 힘쓰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조금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운명을 만나지 않아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가족으로 노식 사부님과 찬이가 소중했지만, 그 감정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힘들어도, 짜증나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소중했다. 회색빛으로 비춰지는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내게 행복이었다. 그래서 나는 서서를 만났을 때, 소원으로 모두의 행복을 빌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신선'이라고 소개한 소녀는 내가 살아가는 회색 세상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존재였다. 서서는 만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 가치있을 수 있는지 알고 행동했다. 무의식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운 소녀였다. 그래서 나는 서서가 말해주는 세계니까, 당연히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했다.

 신선은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운명의 작용을 받지 않는다. 서서는 조금 아쉬운 듯 눈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운명의 작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세상의 색깔을 전부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은 회색빛의 세상을 몰랐고, 색체가 피어나는 그 기쁨을 알지 못했다. 그래도 서서가 말해주는 세상은 아름다웠다. 회색빛의 반전이라고, 흔히 표현되는 운명의 만남이 없더라도 서서에게서 당연하게 표현되는 세상은 아름다웠고, 그녀 만큼이나 사랑스러웠다.


 "유비님! 비 온 뒤에 맑게 피어오르는 무지개의 색을 아시나요?"

 "무지개가 있다고, 어렸을 때 들었어. 아쉽지만 운명을 만나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 색을 보지 못해. 그래서 평소에는 볼 수도 없어." 

"아! 죄송해요!! 제가 괜히 말했나 봐요."

 "괜찮아! 서서가 무지개에 대해 말해주면 되잖아? 무지개의 색은 어떤데?"

 "네! 무지개는 말이죠. 장미색과 같은 빨강색과 그 장미를 구경하다 우연히 고개를 들어서 보게 된 저녁 노을색과 같은 주황색에 초등학교 앞에서 모여있던 병아리들의 색과 같은 노랑색이 있고요, 그 다음에 잔디색과 같은 초록색, 맑게 개인 하늘과 같은 파랑색, 초록색 잔디를 보다가 발견하게 된 등이 푸르른 남색초원하늘소라고 하는 곤충과 같은 남색, 마지막으로 전에 유비님이 해주셨던 가지 음식과 같은 보라색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총 일곱 개의 색. 서서는 즐겁게 모든 색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에 비유하며 알기 쉽게 말해주었다. 그렇지만 나는 서서가 말하는 사물들도 모두 회색, 검은색, 하얀색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잘 알 수 없었다. 어차피 다 같은 색인데 정말 다른 걸까? 신선이 보는 세상은 정말 다른 거구나. 막연한 감상만 남기고 말았다. 그래도 밝게 웃는 서서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같이 웃었다.


 "언젠가 나도 운명을 만나서 서서가 보는 세상을 보고 싶네."


 큰 기대를 가지지 않고, 언젠가 올 수도 있는 희미한 미래를 상상했다.



 *

 내가 가장 최근에 본 운명을 만난 사람은 조조였다. 그가 아직 태오라는 이름이었을 때, 우리가 아직 서로를 향해 히어로패를 들이밀지 않았을 때의 그의 곁에는 확실히 운명이 있었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서로 운명이 아닌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태오가 만난 운명의 상대는 왕윤, 이제는 이름을 부르는 것도 그리운 사람이었다. 태오는 왕윤 앞에서 그가 자신의 운명의 상대라는 걸 숨기지 않았다. 우리들, 아직 운명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보는 운명을 만난 사람은 어딘가 달랐다. 얼핏 보면 다른 게 없이 똑같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더이상 같지 않았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태오는 어릴 때 왕윤을 만나서 회색 세상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오히려 우리들에게 회색 세상을 궁금해 했다. 어릴 적, 노식 사부님과 비슷한 의문을 가졌다.

 분명 태오도, 노식 사부님도 운명을 만나기 전에 지겹도록 회색 세상을 보았을 텐데, 전혀 기억나지 않은 듯 행동했다. 그만큼 운명이 있는 세상은 아름다운 걸까?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상관 없었다. 나도 언젠가 만날 테니까. 반드시 운명이 만나도록 되어 있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있었다. 아무 문제 없었다.

 적어도 그 동탁, 그 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나는 태오의 의문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동탁은 정말 끈질기고, 악랄한 사람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비방하고 싶지 않다. 그냥 사람을 미워하는 게 싫었다. 동탁은 그런 내게조차 최악의 평가를 받을 만한 남자였다.

 어째서 나는 그 자리에 그냥 가버렸을까. 후회를 했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으면, 왕윤을 그렇게 잃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내 후회는 태오, 이제는 조조가 된 남자에 미치지 못한 것이었다. 조조는 그 자리에서 운명의 상대가 총에 맞아 쓰러지고, 죽는 과정을 바라봐야 했다. 당시에는 영웅의 이름이 아니었기에 영웅패조차 없는 상태였다. 무력하게 운며을 잃는 느낌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운명을 모르니까, 참 속 편한 이유로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조조가 하우돈과 하우연 형제패를 얻은 후, 동탁을 죽인 후에야 나는 예전에 가졌던 조조의 의문에 대해 신경이 쓰였다.

 조조는 불안했던 게 아닐까? 혹은 무서웠을 수도 있어.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니라 이미 봐버렸으니까 최악의 상황이 두려웠을 거다. 운명이 사라져 아름다운 색체를 영영 잃어버리게 되는 순간. 그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도 싫었으니까 전부 잊은 거처럼 행동했던 게 아닐까?

 왕윤이 그렇게 가버리고, 바뀌어버린 조조를 보고 있으면 더이상 예전에 그 다름을 느낄 수 없어서 조심스럽게 짐작했었다.



 *

 내가 약했기 때문에 서서를 그렇게 잃어버리고, 나는 마치 운명을 잃는 다는 느낌을 알 것만 같았다. 사랑스러운 서서, 나의 신선. 소중한 사람이 눈 앞에서 사르르- 사라지는 모습은 비록 회색 뿐이었어도 그녀가 알려준 색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건 절망의 짙은 푸른색이었다. 서서는 밝은 푸른색의 기쁨의 색, 짙은 푸른색의 슬픔의 색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색을 볼 수 있었더라면 서서의 죽음은 내게 아주 짙은, 검은색에 가까운 파랑이었다.

 슬프고 절망스러워도 무너질 수 없었다. 함께 빌었던 소원을 위해서 서서의 희생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었다.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자. 그건 내가 잘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서서의 편지를 발견한 후에 내 머릿속에 남은 건 '제갈량'이라고 하는 새로운 신선 뿐이었다. 멈춰설 수 없으니까 제갈량과 동료가 되어야 했다. 그 때까지 내게 제갈량은, 서서의 대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할 뿐인 얄팍한 감정 밖에 없는 못난 주군이었지. 되돌아 생각하면, 차라리 그 때 힘들더라도 다른 신선을 찾을 걸 그랬다. 서서가 추천하지 않은 다른 좋은 신선들도 있었을 텐데. 물론 제갈량 만큼 뛰어난 신선은 없었다.

 첫 번째, 신선계에 제갈량이 있는 곳으로 갔을 때. 나는 처음으로 녹색을 보았다. 사부님과 조조가 그렇게 행복해하던 색. 나는 난생 처음 내가 사랑하는 회색 세상에서 빠져나왔다. 그건 분명 기적이라고 부르는 거였을 거야.

 선명의 녹색의 바람 속에 그가 서 있었다. 나의 운명, 제갈량이었다.


 그를 만난 이후로 세상이 달라졌다. 다재로운 색체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날 보면 분명 그는 의아하게 생각했을 거야. 만나러 왔으면서 영문을 알 수 없게 눈물만 주륵주륵 흘리고 있었으니까. 그만큼 기뻤던 거야. 드디어 만난 운명을 반기는 눈물이었던 거야. 이제까지의 무채색을 향한 작별의 인사였던 거야.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싸늘한 표정 밖에 짓지 않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한 번으로 포기했으면 좋았을 걸. 나는 끈질긴 성격이었고, 운명의 냉대에 굴할 정도로 약한 심장은 가진 적 없었다. 서서와 나, 우리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운명이기 때문에 나는 제갈량을 찾아갔다. 그가 말하는 대가를 얻기 위해 애썼다. 그 과정 속에서 형을 만난 건 기쁜 일인 걸까, 또다시 이별했기 때문에 슬픈 일인 걸까.

 무서울 건 없었다. 드디어 만난 운명이 있다면, 뭐든지 다 잘 될 거였으니까. 비록 그 운명이 내게 차갑더라도 문제 없어. 앞으로 잘 해나가면 돼. 만나게 된 나의 운명은 내 요리를 좋아해주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나는 무진장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바보처럼 그렇게 찬미했던 회색 세상을 잊은 듯 작별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느긋하게 쓰고 싶은 걸 씁니다.

하련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