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지 프롤로그 시점. 칼의 조자 근무 시절 어느 하루의 이야기.



아무리 봐도 없다. 칼은 서류가방을 두 번이나 뒤져보았으나 노트북과 서류철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헤집어도 분명 잡혀야 할 쇳조각은 만져지지 않았다. 그제야 칼은 퇴근 직전 사무실 책상에 집 열쇠를 올려두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평소엔 좀처럼 하지 않는 실수였다, 요 며칠 무리한 탓이다. 다음 주에 있을 감사 때문에 조자 법무팀은 그야말로 비상 상태였다. 바삐 서류를 읽는 눈이 자꾸만 행을 건너뛰면 칼은 카페인을 밀어넣으며 업무에 박차를 가했으나 업무에서 허용되지 않는 실수는 개인의 일상으로 튀고 만다. 하필 그것이 지금인 것을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칼은 흘끗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시계바늘은 벌써 자정이 거의 다 된 시간을 가리킨다. 내일도 보나마나 야근일 텐데 다시 회사까지 운전할 생각을 하니 벌써 정신이 아찔했다. 왕복 두 시간의 조자 본사, 갔다오면 내일 출근하기 전까지 몇 시간이나 잘 수 있지? 세 시간? 바로 문 너머에 침대와 샤워가 기다리고 있는데 겨우 이 손바닥만한 문고리가 뭐라고. 철제 도어에 이마를 박은 채로 분통을 터뜨려 봐야 변하는 것은 없다. 예비 열쇠라도 숨겨둘 걸 그랬어, 아니 진작에 도어락을 달 걸. 피곤과 스트레스에 절은 어깨에 매일 드는 서류가방의 무게는 지나치게 무겁다. 


혼자 사는 것이 가장 사무치게 고독할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1인용 식기에 간소한 식사를 차려 끼니를 때울 때? 대표팀이 골을 넣어도 무표정으로 TV 스크린을 응시할 때? 그런 건 괜찮았다. 원한다면 언제든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 문 밖으로 나갈 수 있었으니까. 허나 사람에게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문을 열어 줄 이가 없다는 것은, 귀가하는 발걸음에서 조금의 설렘도, 안정도 느낄 수 없음을 뜻한다. 


자정의 공기는 쌀쌀했다. 한시바삐 사무실로 돌아가도 늦은 시간이다. 하지만 칼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다 큰 어른이 문앞에서 지랄맞게 청승을 떨어도 비웃어 줄 이 하나 없다는 사실이 칼의 발목을 잡았다. 


모래성을 지탱하는 것은 바닷물이요, 바싹 마른 백사의 벽은 다독이는 아이의 손길이 닿지 못한 채 부스러진다.



데시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