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발렌타인 데이 합작 글입니다.

*가벼운 큰배 청게 로맨스

*하트와 댓글 모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 트위터: @_Blossom_BS 



내 초콜릿을 받아줘!
                                                   w.  매화


밸런타인데이 같은 건, 다 기업의 상술에 불과하단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배세진은 자신의 손에 들린 작은 쇼핑백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어쩌자고 이걸 학교에 가져온 걸까. 그것도 직접 만든 수제 초콜릿을!


사교성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데다가, 예민한 성격 탓에 친구라곤 어릴 때부터 쭉 함께 지내온 류청우 하나뿐인 배세진은 최근 신경 쓰이는 후배 한 명의 얼굴을 떠올리며 손에 쥔 쇼핑백 끈을 만지작거렸다. 우정 초콜릿이라며 안겨주기엔 직접 만든 게 너무 티 나서 아무래도 좀 그렇지. …그럴 목적으로 만든 초콜릿이 아니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초콜릿을 건네주며 제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배세진은 초콜릿을 받을 당사자인 이세진이 있는 1학년 교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안녕, 이세진. 이거 내가 만든 초콜릿인데, 친구 거 만드는 김에 같이 만들었어. …아니야, 이건 좀 그렇지. 큼. 안녕, 이세진. 이거 내가 만든 초콜릿인데, 만들다 보니 좀 남아서 네 것도 포장해봤어. …하아. 차라리 초콜릿 안 주는 게 더 나을 것 같은 말이잖아.”


무슨 말을 해도 이상하게 전해지는 것 같은 말에 뒷머리를 박박 긁은 배세진이 1-4반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을 열었다. 이세진은 어디에 있지… 교실을 전체적으로 한 번 쭉 훑어보며, 이세진을 찾고 있는데, 유난히 여자아이들이 많이 몰린 곳이 눈에 띄었다. …어?! 이세진?!


“세진아, 이거 받아! 내가 만든 초콜릿이야.”

“내 것도! 나도 직접 만들었어.”

“고마워~ 맛있게 잘 먹을게.”


…또래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책상 한 칸이 가득 차도록 초콜릿을 선물 받을 줄은 몰랐는데. 그것도 전부 수제 초콜릿으로! 쟤는 또 뭐가 좋다고 실실 웃고 있어?! 넉살 좋은 거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예쁘게 웃어줄 필요까지는 없잖아. …하긴. 내가 뭐라고 이런 것까지 간섭하겠어. 그래봤자 나도 이세진한텐 조금 친한 학교 선배에 불과할 텐데. …초콜릿 괜히 준비했나. 이거 하나 만들겠다고 상처투성이가 된 제 손을 힐끔 바라본 배세진이 이세진한테 초콜릿을 주는 걸 포기하고 돌아설 때였다.


“어, 형…! 언제 오셨어요! 왔으면 세진이 부르시지!”

“…바빠 보이길래.”

“에이, 저 별로 안 바빠요!”

“초콜릿 받느라 바쁜 것 같았는데….”


교실 뒷문에 서 있던 배세진을 발견한 이세진이 인파를 뿌리치고 나와,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배세진을 반겼다. 안 그래도 얼굴 보고 싶어서, 아침 당번을 빌미로 도서실 찾아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반으로 직접 찾아와주다니. 완전 럭키! 미소를 머금은 채로, 배세진을 바라보고 있는데, 손에 든 쇼핑백을 슬그머니 뒤로 숨기는 수상한 행동이 눈에 띄었다. 내 촉이 맞다면 저건 분명 내 초콜릿인데. 이 형이 귀여운 짓을 하시네.


“다 우정 초콜릿이죠, 뭐. 근데, 형. 뒤에 숨긴 건 뭐예요? 혹시 그거 세진이 거예요?”

“아, 아니거든…! 이건 그러니까, 내 거야!”

“…형 거요?”

“그래! 나도 너처럼 친구한테 우정 초콜릿 받았다, 어쩔래!”


핑계도 그럴싸하게 하셔야 제가 속아 넘어가죠, 형님. 쇼핑백에 달린 곰돌이 모양 텍에 제 이름 석 자 쓰여 있는 거 뻔히 다 보이거든요. 내가 시력이 좀 좋아야 말이지. 이걸 속아 넘어가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시구나. 그럼, 세진이 교실까진 어쩐 일로 찾아오신 건데요? 1학년 교실은 3학년 교실하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오기도 힘들었을 텐데.”


“그… 오늘 방과 후, 도서 당번 너니까, 잊지 말고 오라고!”

“…그 말 전하러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거예요?”

“그래…!”


우와. 사람이 거짓말을 이렇게 못할 수가 있나? 핑계는 둘째치고, 하얬던 얼굴이 사과처럼 빨개졌는데 그걸 어떻게 몰라보겠어. 그래도 뭐, 귀여우니까, 한 번만 모른 척 넘어가 줄까~


“알겠어요. 오늘 방과 후에 도서실 가면 되는 거죠?”

“…응.”

“형도 오늘 당번이에요?”

“나는 도서부장이니까… 매일이 당번이지.”

“그럼 오후에 도서실에서 또 보겠네요.”


내 초콜릿은 그때 받으면 되려나? 저 형님 성격상, 뒤에 숨긴 초콜릿을 지금 전해줄 것 같진 않으니까. 책상 위에 초콜릿이 수북이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세진 뒤에 숨겨진 초콜릿에 시선이 고정된 이세진이 생글생글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러니까 늦지 않게 와.”

“네, 종례 끝나면 바로 갈게요~”

“…한 가지 더 할 말이 있는데.”

“네?”

“친구가 주는 초콜릿이라고 해서 다 우정 초콜릿은 아니야.”


‘갈게. 이따 오후에 봐.’ 하고 돌아선 배세진의 등을 멍하니 바라본 이세진은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곤 헛웃음을 터트렸다. 설마 이거… 질투야? 아, 정말.


“…귀여워 죽겠네.”


아직 배세진에게서 초콜릿은 받지도 못했는데, 가슴께가 간질거린 이세진이 콧노래를 흥얼대며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빨리 시간이 흘러서 종례 시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 * *

 

 

“저 왔어요, 형~”

“…큼. 왔어?”

“네. 종례 마치자마자 달려왔는데, 안 늦었죠?”

“응. 안 늦었어.”

“저 뭐부터 하면 돼요? 오늘도 도서 정리?”

“응. 저기 반납함에 있는 책들 다시 원래 자리에 꽂아두면 돼.”

“네~ 근데 오늘은 정리할 책이 좀 많네요. 세진이 혼자 하기엔 좀 힘들 것 같은데. 형이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그래. 나도 마침 할 일을 다 끝낸 참이거든. 같이 하자.”

“둘이 하면 금방 끝나겠다. 빨리하고 쉬어요, 우리.”


…뭐, 사실 이 정도쯤은 많은 것도 아니고, 혼자서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양이지만, 이러면 형이랑 단둘이 붙어있을 기회가 생기니까. 박문대가 봤더라면 또 여우 짓한다고 한 소리 했겠지. 아무렴 어때. 여우 짓해서 이 형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주겠다, 이거야.


“이세진, 이 책 전부 맨 위 책장에 꽂으면 돼.”

“여기요?”

“응, 거기.”

“읏차-”


…확실히 키 큰 애가 있으니 정리하기 편하긴 하네. 나도 키가 꽤 큰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꼭대기까지는 손이 잘 안 닿는단 말이지. …체격도 나보다 훨씬 좋고. 따로 운동이라도 하는 걸까? 어떻게 하면 몸이 저렇게 단단할 수 있지. 팔뚝도 엄청 실하고….


“형, 거기 있는 책 마저 주세요.”

“…….”

“형?”

“어…?! 뭐라고 했어?!”

“거기 있는 책마저 달라고요.”

“…아. 책, 여깄어.”


당황한 티가 역력한 배세진의 모습에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인 이세진이 건네받은 책을 제자리에 꽂고,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세진이 팔뚝이 실하긴 하죠?”

“파, 팔뚝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그야, 형이 주라는 책은 안 주고, 제 팔뚝만 보고 계셨으니까요.”

“내, 내가 언제 네 팔뚝을 봤다고…! 안 봤거든?! 그냥 잠깐 다른 생각 하느라….”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셨는데요? 세진이 팔뚝이 실하단 생각? 그것도 아니면, 몸이 좋다는 생각?”

“아니라니까…!!”


아, 귀여워. 그냥 조금 놀릴 생각이었는데, 반응이 너무 투명해서 더 놀리고 싶어지네. 사람이 이렇게 귀여워도 되나? 왜 다들 저 선배를 햄스터 선배라고 칭하고 있는지 알만 하네. 나한테만 귀여워 보이면 참 좋을 텐데.


그새 얼굴이 빨개진 배세진을 보며 잘 익은 사과 같단 생각을 한 이세진이 두 손을 맞대고, 탈탈 털며, 배세진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가, 가까워…! 바로 눈앞에 있는 이세진 얼굴에 순간 당황한 배세진이 몸을 슬쩍 뒤로 빼며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방과 후라 그런지, 도서실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어쩌다 보니 이세진과 단둘이 있게 된 상황이라 자꾸 의식이 돼서 곤란했다. …심장 소리 들리진 않겠지?


“정말 아니에요? 맞다면 세진이 팔뚝 만져보게 할 생각이었는데….”

“내, 내가 변태도 아니고, 네 팔뚝을 왜 만져…!”

“왜요. 만져볼 수도 있지. 아니면 혹시 팔뚝 말고 다른 곳이 좋으세요?”

“…야!! 너 자꾸 그럴 거야?!”

“만지게 해주겠다는데도 뭐라 하시네. 그러지 말고, 한 번 만져보세요~”


부끄러워하는 배세진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긴 했지만, 제 눈을 안 보고 다른 쪽을 바라보는 배세진을 보고 있자니 묘하게 심통이 난 이세진이, 형 손을 잡아 쥐곤 자신의 가슴팍 위로 살포시 올려놨다.


“뭐, 뭐 하는…!!”

“어때요? 제 몸 진짜 단단하죠?”

“그, 다, 단단하긴 한데… 잠깐, 너무 가깝…!”

“난 가까워서 더 좋은데.”


‘형은 아니에요?’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에 말문이 막힌 배세진이 입을 합 다물곤 눈을 굴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손에 닿은 이세진 몸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단단하고 좋긴 해서. 좀 더 이러고 있고 싶기도 하고… 나 진짜 변탠가?! 배세진이 혼자 속으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몸을 더 가까이 붙인 이세진이 동그란 머리통과 고양이처럼 날렵한 눈매, 오뚝한 코, 도톰한 입술을 차례로 훑어보며 웃음 지었다. 진짜 변태는 형이 아닌 나일지도.


“…나도 좋아.”

“정말요?”

“…그래!”

“근데 왜 자꾸 도망가시려고 해요.”

“내가 언제…!!”

“쉿. 도서실에선 조용히 하셔야죠, 형.”


자신의 입술 위에 손가락을 올려두고 속삭이는 말에 눈을 치켜뜬 배세진이 두 손으로 있는 힘껏 이세진의 몸을 밀쳐냈다. 그래봤자 아주 조금 떨어진 정도긴 했지만, 이 정도 거리면 이세진에게 말려들 일 없겠지.


“어차피 우리 둘뿐인데 뭐 어때.”

“그러니까요. 여기엔 지금 우리 둘뿐이니까, 뭘 하든 볼 사람 없겠다. 그렇죠?”

“어…? 그, 그렇긴 한데….”


이 형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랑하게 굴까. 솔직히 말하면 헛소리하지 말고 다른 일이나 찾아서 하라며 크게 호통칠 줄 알았는데. 이런 반응을 보이면 정말… 뒷일 생각 안 하고 냅다 사고 치고 싶어진단 말이지. 하지만, 내가 그런 짓을 해도 이 형이 도망치지 않을 거란 확신이 필요해.


“형.”

“응…?”

“혹시 오늘 저한테 뭐 줄 거 없어요?”

“…줄 거?”

“네. 아침에 형이 저한테 깜박하고 안 주고 간 게 있는 것 같아서요.”


이세진의 말을 듣자마자 자신의 가방 안에 들어있는 수제 초콜릿을 떠올린 배세진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지금인가? 지금이 기회인가?! 괜히 쓸데없는 질투를 하느라 전해주지 못한 초콜릿을 머릿속에 동동 띄워내며 고민한 배세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거, 오늘 많이 받았잖아, 너.”


아침에는 쓸데없는 질투심이었다면, 지금은 진심 어린 고민이었다. 책상 위가 초콜릿으로 수북하게 쌓일 만큼 인기가 많은 이세진인데, 제가 초콜릿을 전해줘도 되는 건가 싶어서. 질투 반, 걱정 반으로 물은 말인데 두 손을 모아 내민 이세진이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작 제일 받고 싶은 사람한텐 못 받았는데요? 세진이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형? 제발요.”

“…잠깐만 기다려봐.”


결국 이세진의 애교에 홀랑 넘어간 배세진이 책가방을 놓은 곳으로 가서, 곰돌이 텍이 달린 쇼핑백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줄 생각으로 만든 초콜릿이니까! 쇼핑백을 손에 든 채, 결의에 찬 얼굴을 해 보이고 있는데, 그새 뒤를 쫓아온 이세진이 배세진의 어깨 위에 턱을 올리고 물었다.


“친구한테 받았다고 하더니. 역시 그거 제 거 맞죠?”

“어, 언제 왔어…!!”

“형이랑 잠시라도 떨어져 있기 싫어서요.”


…말은 참 번지르르하게 잘한단 말이지. 그래도 이 상황이 싫지는 않아서 작게 헛기침을 하곤 이세진의 손에 쇼핑백을 건네주었다. 드디어 주인을 찾아간 초콜릿을 보고 뿌듯한 얼굴을 해 보인 배세진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이세진의 눈을 마주 보고 또박또박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이거 줄 테니까, 이제 다른 사람이 주는 우정 초콜릿 받지 마.”

“그럼, 형이 해마다 저한테 초콜릿 주실 거예요?”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게.”

“약속한 거예요.”

“응. 약속할게.”


조곤조곤하게 속삭여지는 목소리에 빙긋 미소 지은 이세진이 양팔로 배세진의 허리를 살며시 감싸 안았다. 도망치지 않고 얌전히 제게 안겨있는 배세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간질거린 이세진이 줄곧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꺼냈다.


“좋아해요, 형.”

“…내가 할 말을 네가 뺏어가면 어떡해.”

“그럼, 형도 해주세요.”

“…큼. 좋아해, 이세진.”

“이름도 불러주시면 안 돼요?”

“……좋아해, 세진아.”


아, 정말. 설레서 죽을 것 같아. 허리를 끌어안은 손에 힘을 준 이세진이 입술을 슬쩍 내밀며 물었다.


“뽀뽀해도 돼요, 형?”

“…야! 여기 공공장소야!”

“뭐 어때요. 형 말대로 여기 지금 우리 둘뿐인데.”

“…그런가?”


그럼요. 기왕이면 계속 우리 둘뿐이면 더 좋고. 의외로 팔랑귀 기질이 있는 배세진이 제 말에 솔깃한 행동을 보이자 기회를 놓치지 않은 이세진이 냉큼 입술을 맞대며 웃어 보였다.


“한 번 더?”

“…하, 한 번 더.”

“아. 진짜 귀여워요, 형.”


그 어떤 초콜릿도 배세진의 입술만큼 달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며 제 품에 안긴 배세진의 입술 위에 연달아 입 맞춘 이세진이 자신한테 주어진 행복을 만끽했다. 생애 가장 달콤하고 행복한 밸런타인데이였다.


 



 

 



 


 




매화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