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게 2 스포일러 주의

호웅은 화진을 숭배했다. 패밀리 중 유난히 그를 따랐던 호웅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신을 화진이라 믿었다. 질끈 올려 묶은 머리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듯 단정한 복장으로 패밀리를 앞장서는 보스. 부드러운 미소 뒤에 이어지는 말은 자비가 없어 마치 맹독과 같았다. 호웅은 그 누구도 돌봐주지 않아 늘 임무 후 카지노 홀을 청소했다.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화진 말고 다른 사람들이 딴지를 걸어왔기에 어쩔 수 없이 한 게 시작이었다. 패밀리에 빌붙지 못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사실상 인생의 끝자락에 매달려 살고 있었다.

청소는 귀찮은 일이었지만 언제나 화진이 밤늦게 카지노 정문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그는 커다란 홀부터 그의 방까지 이어지는 긴 복도를 얼룩 하나 남김없이 싹싹 닦아내기 시작했다. 화진에게 잘 보이고 싶다기보단 그게 옳은 것이라 생각하며 움직였다. 완벽하게. 깨끗하게. 보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그에게 걸맞도록. 언젠가 화진이 카지노 안에 들어섰을 때 한창 청소하던 호웅에게 다가갔다. 그를 가까이서 보는 게 처음인 호웅은 뭐라 말해야 할지 말문이 막혀 꾸벅 인사했다. 화진은 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열심히 하는구나. 다들 귀찮아서 내팽개치는 일도 척척해내고."

"아,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는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해. 정말 아름답거든, 그런 사람."

구원. 호웅의 머릿속에 오직 두 글자만 떠올랐다. 구원받았다. 멀리서만 보던 보스는 생각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었고 다정했다. 화진의 눈에 들어온 호웅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럼 잘 마무리하렴. 화진은 호웅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미소 짓고 안쪽 복도로 걸어들어갔다. 그 모습이 마치 신화 속 명화 같아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바라봤다. 호웅의 마음속에 불길이 치솟았다. 더 열심히 해야지. 무슨 일이든 해내야지. 호웅은 자신의 일에 처음으로 보람을 느꼈고, 이 때문에 더욱 일했다. 보이지 않는 잡일, 청소, 각종 심부름. 화진이 시키지 않는 일도 척척해냈다. 이 일은 곧 보스의 귓속에 들어왔다.

화진이 그에게 카드를 쥐여준 것은 갖은 노력 끝의 결실이었다. 그의 방 안에 단둘이 마주 앉아있다는 사실에 호웅은 굳은 채 테이블 위에 놓인 트럼프 카드만 빤히 바라봤다. 긴장이 역력히 드러나는 표정에 화진은 크게 웃었다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다뤄본 적 있니? 친구들과 놀아봤다거나."

"아뇨. 없습니다."

"의외네. 뭐, 묵묵히 일만 했으니까."

이제 청소는 그만해.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도 하지 마. 내 이름 둘러대. 딜러의 손은 너무 거칠어선 안 되거든. 화진은 웃어 보이며 호웅의 손에 카드 뭉치를 쥐여줬다. 호웅은 보스의 부름에 다른 일거리를 받을 거라는 예상을 했지만 카지노에 직접 뛰어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카지노에서 딜러가 되는 건 권력으로 달려가는 길이다. 영광스럽게도 호웅에게 갬블을 가르치기 시작한 건 화진이었다. 주먹질 등 묵직한 일만 하던 호웅에게 섬세하고 작은 일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와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그는 보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 싫어 죽기 살기로 배우고 익혀나갔다. 카드 끝에서 느껴지는 촉각. 뒷면의 인쇄 상태. 미묘하게 다른 무늬. 카드를 돌릴 때 움직이는 최소한의 각도. 그는 머리가 나쁘지 않아 곧장 카드를 읽을 수 있는 감각을 깨우쳤다.

화진은 호웅에게 꽃이라 불렀다. 머리도 좋고 노력도 잘해서 키울 맛이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가 영특하다는 생각은 두 번째 갬블에서 느꼈다. 처음엔 룰을 알려주며 어떻게 승부를 판가름하는지 짚어주었고, 그다음 자리에서 자신이 가르쳐준 포인트를 전부 체크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록 초짜지만 자신이 알려준 포인트는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놀람을 넘어 만족을 느낀 그는 당장 간부 자리에 얹히겠다고 약속하고 싶었지만 패밀리는 보스 혼자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이 아니기에 자신의 사심을 접고 웃기만 했다. 화진이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 건 오랜만이었다.

호웅은 패밀리 밑에서 잡일만 하기엔 아까운 인재였다. 화진이 생각하기에 그는 아부하는 성격도 아니고 잔머리도 굴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올곧기만 해선 단 한 번의 공격에 미처 받아치지 못하고 꺾이는 법이라 적당한 조율이 필요했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지내본 결과, 호웅은 생각 이상으로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잘 해주었던가? 혹시나 그 유별난 건 아닌지 뒷조사를 해봤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자신에게 마치 절대자를 대하는 양 고개 숙이는 모습에 괜히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잠깐이었다. 사상과 정신에 별 이상 없고 내게 충성을 바치는 이를 하대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화진은 호웅을 곁에 두었다. 호웅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날이 차면 그에게 겉옷을 걸쳐주고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비녀에 엉킨 잔머리를 조심스레 걷어냈다. 패밀리 내에 호웅을 배척하려는 세력이 존재했지만 막상 호웅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구역에서 포식자가 누군지 잘 알고 있는 그는 더 이상 발치에서 더러운 잡일만 하던 졸개가 아니었기에. 

그는 여전히 화진을 숭배했다. 자신의 목숨은 화진의 것이라 여겼고, 손과 발은 보스를 위해 움직였다. 마치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듯 호웅의 시야는 넓어져갔고, 카지노에서 제일 유능한 딜러는 자연스레 호웅이 되었다. 패밀리 내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그는 변함없었다. 자기가 섬기는 주인 옆에 서서 명령을 수행하는 나날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어떤 명령이던 수행해냈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화진의 이상한 명령 전에는.

"... 호웅, 너는 이제 자유다. 앞으론 좋을 대로 해라."

호웅의 눈엔 단지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에 쓰러지는 화진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공중으로 흩날리는 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보석과도 같았으며, 총격에 떨어지는 비녀는 온갖 빛에 반사되어 그의 가치를 증명했다. 아름다웠다.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은 호웅은 힘없이 쓰러지는 소리에 눈을 깜박였다. 화진이 남긴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잠깐 사고가 정지했다. 곧 보이는 것은 방금까지 자신이 섬겼던 신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화진 님. 화진 님?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자 호웅은 아직 따뜻한 시체를 잡아 흔들었다. 화진 님, 화진 님!

늘 기대왔던 버팀목, 믿고 따르던 신이 축 늘어지자 호웅은 눈만 부릅 뜬 채 화진을 끌어안았다. 화진이 골라준 셔츠가 검붉게 물들어갔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호웅에게 자유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자유는 이미 화진 밑에서 누리고 있었다. 헌데 자유라니.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다니.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더 이상 눈을 뜨지 않고 나를 바라보지 않고 내게 명령을 내리지 않고 부탁을 하지도 않고 날 쓰다듬어주지 않고 토닥여주지 않고 내게 안 웃어주다니.

날 두고 가다니.

호웅은 신이 죽은 와중에 시시덕거리며 웃는 둘을 보며 제정신이 아니라 생각했다. 화진이 자신의 곁을 떠났다는 인식이 들자 바로 몰아치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물론 호웅은 인형이 아닌 인간이라 본인의 주관과 본인의 판단이 가능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자기가 숭배하던 신이 눈앞에서 죽었다. 가족이 죽은 것 이상으로 충격이 심해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몰아치던 그는 서서히 식어가는 화진을 안은 채 차분히 중얼거렸다. 네. 좋을 대로 하겠습니다.

그의 정신이 돌아오는 동안 각 패밀리 보스의 목숨을 건 게임은 끝이 났다. 결국 셋 중 죽은 사람은 화진뿐이었다. 멀쩡히 서있는 악가와 행상복을 바라보다 화진의 시체를 바닥에 조심스레 뉘었다. 화진이 자신에게 해주던 것처럼 붉게 물든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축축했다. 소리 없이 일어나 테이블에 다가갔다. 화진의 머리를 뚫어버린 리볼버가 호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다른 이들은 본인을 신경도 안 쓰는지 서로 잡담이나 할 뿐이었다. 호웅은 리볼버를 쥐고 총구를 자신의 관자놀이에 겨누었다. 리볼버는 따뜻했다. 검지를 방아쇠에 감자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오직 화진 곁에만 맴돌던 호웅은 화진이 유언으로 말했던 '자유'를 검지 하나로 누리기로 했다. 부디 곁에 있게 해주세요, 화진 님. 화진 님이 없다면.. 살아갈 의미 따윈..

호웅은 자신의 주인을 찾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다.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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