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내용의 꿈이다.

검은색 바탕. 저 멀리에 보이는 크고 작은 빛들. 몸이 무겁다. 고개를 숙여도, 들어도, 어디를 보아도 똑같은 풍경의 반복이다. 여긴... 어디일까? 숨을 들이킨다. 답답하다. 목에 무언가라도 차고 있는 걸까? 목을 만져보지만 피부는 느껴지지 않는다. 무언가 이상하다. 나는 내 손과 발을 바라본다. 하얗게 칠해진 손과 발. 아니 칠해진 것이 아니다.

 

 

‘이건... 그래. 언젠가 어렸을 때 봤던 우주복이구나.’

 

‘왜지?’

 

‘왜 우주복을 입고 있는 거지?’

 

 

고개를 들어본다. 그러고 보니 여긴 우주구나. 우주라서 우주복을 입고 있는 거구나. 그래,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답답했던 거야. 그런데 난 왜 우주에 있는 거지? 모르겠어.

갑작스럽게 다가온 별 두 개. 내 주위를 돌고 있다. 커다랗지만 듣기 싫지는 않은 소음. 두 행성에서 팔이 자라난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감싼다. 나는 두 행성을 바라본다. 행성은 여러 가지 색으로 빛난다. 좋은 느낌. 눈을 감고 두 행성의 손길에 몸을 맡긴다. 그렇게 얼마 동안을 있었던 걸까? 눈을 뜬 내게 보이는 것은 내 가슴을 뜯고 있는 두 행성이다. 하지만 나는 아프지 않다. 나는 그냥 가만히 누워 행성을 바라본다. 두 행성은 웃고 있다. 아니, 행성에 표정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알 수 있다. 두 행성은 웃고 있다. 조금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언가 나를 잡아챈다. 나를 보며 웃는 두 행성이 멀어진다. 두 행성들의 손에 붙들려 있는 나의 가슴. 나의 조각. 나는 멀어져 가는 행성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는다. 떨어지고 싶지 않다. 헤어지고 싶지 않다. 손을 놓고 싶지 않다. 단지, 내 일부를 가져서 때문이 아니다. 난 그 두 행성을 원한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두 행성은 점점, 점점 더 멀어진다. 내 시야 안에서 조금씩 작아져 가는 두 행성들. 이제는 점보다 작다. 나는 허망하게 정면을 바라본다.

등 뒤에서 나는 온기에 뒤를 돌아본다. 나를 지켜보는 듯 한 주황빛 행성. 회색 테두리가 예쁘게 둘려 있다. 이 행성은 조금 이상하다. 나를 바라보고 있지만 내 뒤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주황빛 행성은 신기한 액체를 흘린다. 그 액체들은 여러 가지 색이 섞여 있다. 나는 멍하니 주황빛 행성을 바라본다. 신기하다. 이렇게 가까워도 약간의 온기만 느껴진다. 뜨겁다는 느낌도 차갑다는 느낌도 없다. 눈이 부시지도 않다. 눈을 몇 번 깜박여본다. 주황빛 행성에서부터 흘러나온 액체들이 내 가슴을 채워간다.

떨어져 나갔던 내 가슴을 생각한다. 지금 이렇게 내 가슴을 채운 눈부시고 아름다운 색에 비하면 조금 보잘것없었던 느낌이다. 물론, 이 액체들이 내 가슴에 뚫린 구멍을 메우진 못한다. 하지만 내 가슴에 채워진 이 액체들. 이 것들 덕분에 나는 주황빛 행성처럼 따듯하면서 신비한 느낌을. 마음이 밝아지는 느낌을 평생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내 가슴을 채워준 주황빛 행성을 향해 웃는다. 주황빛 행성은 미동이 없다.

 

‘?’

 

 

무언가 이상하다. 주황빛의 행성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야. 무너지지 마. 나는 손을 뻗는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우주에서 인간의 눈으로 보는 거리는 실제 거리보다 멀기 때문에 닿지 않는다. 주황빛 행성이 붕괴한다. 파편들이 나보다도, 저기 떠다니는 우주의 먼지보다도 작다. 나는 있는 힘껏 달려본다. 우주에선 달릴 수 없는데 이상하다. 몸이 무겁다. 주황빛 행성의 표면이 다 무너졌다. 주황빛 행성의 핵이 보인다. 정말 위태로워 보인다.

 

 

‘지구라면 금방 달려갈 텐데...’

 

‘내 온 몸의 힘을 끌어모아서 달려갈 텐데.’

 

‘저 주황빛 행성의 핵을 꽉 끌어안아서 부서지지 않게 붙잡고 있을 수 있는데.’

 

“정말?”

 

‘?’

 

 

결국 나는 닿지 못한다. 주황빛 행성의 핵에 금이 간다. 무력함에 눈을 감았다. 그냥 이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잊어야 하는 걸까.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느낌.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 얼굴이 찡그려질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나는 눈을 뜬다. 진공 상태의 우주에 내 눈물이 떠다닌다. 나는 내 눈물이 왜 이 우주복 밖에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동시에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궁금하다. 손을 가슴에 대어본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숙여본다. 나의 가슴에는 여전히 주황빛 행성이 흘린 액체가 채워져 있다. 나는 몸을 잔뜩 웅크려 내 가슴을 안는다. 귓가에 들리는 찰팍거리는 액체의 소리. 나는 통증에 기대 다시 눈을 감는다. 눈이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 무언가 보인다. 눈을 감았는데도 무언가 보인다.

 

‘뭐지 저건?’

 

‘...’

 

‘...’

 

‘나?’

 

‘내가 맞나?’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본다. 분명 내 얼굴이다. 내가 맞구나. 위태로워 보이는 내 모습. 금방이라도 존재가 사라질 것 같다. 왜? 무슨 이유지? 내가 왜 사라지는 거지? 설마 저 주황색 행성이 무너져서? 그럴 순 없는데. 나는 주황색 행성이 준 이 액체들을 영원히 간직해야 되는데. 나는 눈을 뜬다. 고개를 든다. 웅크린 몸을 편다. 주변을 둘러본다. 역시나 아무것도 없다. 나는 나를 어떻게 지켜본 걸까.

아직 궁금증에 휩싸여 있을 때, 다른 색의 많은 행성들이 내게 접근해온다. 나는 그 행성들의 중력에 끌려간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어딘가에 소속된 느낌? 내 주위에 누군가 있는 느낌? 나와 영원히 함께 있어 줄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들이 좋다. 심지어, 행성들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일부분을 떼서 내 가슴을 메꾼다. 내 가슴에 채워지는 행성들의 조각에 조금씩 스며드는 주황빛 행성의 액체들. 하지만 나는 내 가슴 속 줄어드는 액체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제는 다른 행성들의 조각이 있으니까. 나는 오히려 눈앞의 행성이 걱정된다. 아프지 않을까? 나는 행성들을 위로하기 위해 손을 뻗는다. 행성들은 갑자기 자신들의 중력을 거둔다. 무언가 이상하다. 행성들은 곧 하나둘씩 떠나가며 다시 자신의 조각을 내 가슴에서 떼어 간다.

멍하게 행성들을 바라본다. 내 가슴이 점점 비어간다. 행성들은 이제 서로에게 나를 밀친다. 내 가슴은 다시 텅 빈 것처럼 보인다. 고개를 숙여 내 가슴을 바라본다. 아주 조금 남아있는 주황빛 행성의 액체.

나는 멈춰있다. 지금 이 우주에서 멈춰있다. 이젠 작은 점으로도 보이지 않을 만큼 내게서 멀리 떠난 행성들. 나는 그저 행성들이 떠나간 쪽을 바라만 보고 있다. 똑같다. 맨 처음의 그 두 행성들이랑.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더 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그 두 행성도, 주황빛 행성도, 다른 수많은 행성들도 모두. 결국은 내가 그들을 허락했으니 이렇게 된 거겠지.

 

 

바보 같은 나. 멍청한 나. 버려진 나. 혼자 있는 나. 무너지는 나.

 

 

답답함이 배가 된다. 목을 조르는 것도 아닌데 숨이 점점 막혀온다. 나는 내 목을 있는 힘껏 긁기 시작한다. 조금 편안해진다. 반질거리고 부드러운 피부가 느껴진다. 뭔가 이상하다. 나 우주복을 입고 있던 거 아니었나?

 

 

‘...’

 

‘이제 와서 그런 건 신경 써 봤자겠지?’

 

 

나는 다시 목을 긁기 시작한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내 목을 조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통증이 느껴진다. 손톱 사이에 붉은색의 액체가 스며든다. 나는 내 손을 바라본다. 내 몸에서는 이런 액체가 나오는 구나. 나는 다시 목을 긁는다. 목이 점점 막힌다. 목구멍에 물이 꽉 막혀 멈춘 느낌이다. 숨이 막힌다. 답답하다. 나는 가슴을 친다. 하지만 내 가슴은 없다. 구멍만 뚫려 있을 뿐이다. 나는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때, 뭔가가 내 시야에 들어온다. 또 다른 행성인가? 이제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대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더 이상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하얀색. 산소탱크. 묵직함. 헬멧. 우주복? 그 안에 있는 나와 같은 사람. 행성이 아니다. 그렇지만 다가가지 않을 것이다.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 내게로 다가온다. 나는 뒤를 돈다.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 내 눈앞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움직인 거지?

우주복을 입은 사람은 헬멧을 벗는다. 남자. 정신 나간 남자. 여기는 우주야. 헬멧을 벗으면 머리가 펑 하고 터질 거야. 잘 가.

 

 

‘...’

 

‘...’

 

‘뭘까?’

 

 

우주복을 입은 남자는 천천히 내게 다가온다. 나는 가만히 그 사람을 지켜본다. 조금씩 흠집이 나 있지만 멀쩡한 우주복? 아니다. 무언가로 덧댄 흔적이 많다. 저런 걸 입고 다녀도 되는 건가? 남자는 코가 맞닿을 거리까지 다가와 내 눈을 바라본다. 내게 입을 맞춘다. 나는 놀라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남자를 바라본다. 편안하다. 숨이 들어온다. 내 온 몸에 산소가 퍼지는 게 느껴진다. 남자는 내게서 떨어진다. 나는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는 어디론가 떠나려고 한다. 나는 남자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행성들이, 모두가 바랐던 내 가슴 속의 액체를, 아주 조금 남은 가슴 속 액체를 꺼낸다. 내 양손에 담길 만큼 양이 줄어있다. 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게는 이것 말고는 보답할 게 없는 걸.

남자는 내 얼굴과 액체를 번갈아 보다 품속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 그 액체를 담는다. 나는 유리병을 바라본다. 저렇게 조금 남아있었구나. 남자는 유리병을 내 구멍이 뚫린 내 가슴에 꿰맨다. 나는 놀라 남자를 바라본다. 유리병을 꿰맸다는 것보다 남자가 이 아름다운 색의 액체를 내게 다시 돌려줬다는 것이 신기하다. 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조금씩 뒷걸음질 친다. 나는 멀어지는 남자를 잡는다. 놀란 남자. 남자는 붉은빛을 띈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웃는다. 남자는 내 시선을 피한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본 얼굴이다. 난호. 난호였구나. 난호가 입을 연다.



“뭐해?”


“...?”


“가자 어서.”


“어디로?”


“어디든.”


“같이 가줄 거야?”


“네가 원한다면.”



♬ ♪ ♩~



“...”

 

“...”

 

 

쾅!

 

 

놀란 이도는 눈을 뜬다. 고개를 든 이도. 은주가 신경질적인 얼굴로 이도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도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본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이도를 향하고 있다. 이도는 민망한 듯 얼굴을 약간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수학 선생님 없다고 자습 좀 하랬더니 잠을 자네?”

 

“...”

 

“빨리 나와.”

 

“아...”

 

“아... 는 무슨 아... 야! 빨리 나와. 그리고 거기 유진이랑 승호랑 기현이도.”

 

“아 쌤! 저 안 잤어요!”

 

“조용히 해. 다른 애들 자습하는 데 방해되게... 승호 넌 가중처벌이다. 차라리 이도처럼 빨리 시인을 해야지.”

 

“선생님 사실... 저도 잔 건...”

 

“이도 너 고개까지 흔들면서 자던데?”

 

“... 승호야 가자.”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나온다. 은주는 사랑의 매를 든다. 이도를 포함한 4명의 아이들이 조용히 복도로 걸어 나간다. 숨죽인 채로 지켜보는 아이들. 복도로 나간 은주가 창을 두드린다. 아이들의 이목이 쏠린다. 은주의 통솔하에 4명의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걸어간다. 은주가 멀어지자 조금씩 시끄러워지는 교실. 효진이 뒤를 돈다.

 

 

“야, 이도 좀 깨우지!”

 

“나도 깨웠어... 내가 흔들어서 이도가 고개 흔들거린 거란 말이야...”

 

“이도가 많이 피곤했나 보네...?”

 

“그러게...”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다섯 사람. 지친 얼굴로 뛰고 있는 이도, 유진, 승호, 기현과 그 뒤에서 네 사람을 지켜보며 뛰는 은주. 이쯤 되면 사실 은주가 훈계를 핑계 삼아, 뛰고 싶어서 억지로 네 사람을 불러낸 것처럼 보이지만 이 것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다른 아이들을 따라 숨을 헐떡이는 이도. 이도에게 그렇게 힘든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눈에 띄는 것도 싫고, 자꾸만 나오는 한숨을 막으려면 숨을 헐떡이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좋다. 이도는 고개를 살짝 든다. 하늘을 바라본다. 봄치고는 깨끗하고 높은 하늘이다. 하늘에 한 눈을 팔고 있어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 이도가 자신의 앞에 달리고 있는 기현과 부딪힐 뻔 한다. 누군가 “조심!”이라고 소리를 친다. 어딘가 귀에 익은 목소리. 이도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속도를 줄인다. 운동장에 나와 있는 모두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잠잠한 건물.

 

 

“누구야!”


“...”

 

“...”

 

“이 새끼들이...”

 

“너네 게으름 피지 말고 튀고 있어, 선생님은 소리친 놈 잡으러 갈 테니까.”

 

 

화가 난 듯한 은주가 전속력으로 뛰어간다. 남은 아이들은 눈치를 보다 조금씩 속도를 늦추기 시작한다. 떠들 힘도 없는 세 사람과 지겨운 이도. 이도는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다 문득 아까 들린 목소리의 주인이 궁금해 소리가 났던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창문 가까이에 보이는 난호의 얼굴. 이도는 놀라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은주가 교실로 향했다는 것을 있는 힘껏 설명해 본다. 하지만 난호는 알아듣지 못했는지 이도를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 이도는 고민을 하다 결국 난호에게 설명하기를 포기한다. 난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결국 이도는 난호에게 고맙다는 제스처만 보내고, 먼저 가버린 세 아이들을 향해 뛰어간다. 이도는 아주 조금은 난호가 은주에게 걸려 운동장으로 내려왔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물론, 난호가 은주에게 안 걸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말이다.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2층 복도 창문에서 은주가 고개를 내밀고 소리친다. 이도는 다시 뜀박질을 시작한다. 몸이 조금 달아오른다.



?

며칠 견디기도 힘들 만큼 춥더니 슬슬 날이 풀려가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전 계절에 맞는 날씨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 한테 피해가 갈 정도는 싫거든요 ㅠㅠㅠ

이런 날일 수록 더욱 몸 관리를 잘하시길 빕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면역력이 조금만 떨어져도 위험하니까요... ㅠㅠㅠ

다들 감기, 코로나, 한파 조심하세요! 



항상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오타 지적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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