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주가 죽었답디다.”

“뭐요?”

“공주가 죽었다고.”


믿기지 않는 이야기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소문의 근원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임금이 조용한 걸 보니 아마도 맞는 이야기인가 보다 하고 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신들은 저들끼리 소곤소곤 거리며 비워진 용상을 흘끔 보았다.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원하지 않던 혼인, 그리고 원하지 않던 상대. 아마도 그 불같던 공주의 성격으로는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사내로 태어났다면 세상을 지배했을 것이다’ 언젠가 임금이 신이 나 뛰어놀던 공주를 보고서 하던 말이었다. 공주는 영리했다. 알려주는 것은 물을 빨아드리는 솜처럼 바로바로 빨아들였다. 아마 공주가 사내였다면 임금은 이렇게 힘이 없지도 않았으리라.


“그렇담…”


대신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다. 공주는 죽었지, 후궁은 온통 옹주밖에 낳지 못하지, 중전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지.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임금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뭐 어쩐단 말이오. ”

하나가 입을 열었다. 용상은 곧 비워질 것이 분명했다. 백성들은 울부짖을 테고, 혼란이 찾아올 게 분명했다. 대신들은 머리를 한데 모아 고민했다. 심각한 일임이 틀림없다. 물이 사방팔방으로 흐르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물이 원래 흐르던 곳으로 가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 물길이 이끼가 껴 더러운 건 대신들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핏줄이 남아있던가.”

“남아있기는 하지.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이 나라를 굴리고 싶을 뿐이다. 속이 썩어들어 가는 건 당장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고통받는 건 백성일 뿐이다. 

“주상전하 납시오-” 

외침에 일제히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그 누구 하나 고개를 숙이는 이가 없다. 그런데도 임금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2.


임금은 죽고, 나라는 조용하기만 하다. 궁궐 내에서 슬퍼하는 이를 찾기란 힘들었다. 일제히 흰옷을 입으며 뭐가 그리도 바쁜지 정신없이 움직였다.


“빨리들 움직이거라! 시간이 없다!”


흰옷을 입은 내시 한 명이 어느 쪽을 보더니 꾸벅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에 주위를 바삐 정리하던 다른 궁인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새로운 임금의 등장이었다.








3.


비워진 용상은 새로운 자가 차지한다. 본래 용상이라는 것은 오래 비워질수록 좋지 않은 것이기는 했지만 이런 모습은 보기 드물었다. 아주 오래전 역모를 일으켜 저 구석으로 쫓겨난 집안에서 데리고 온 새로운 임금이라니. 말도 되지 않은 일에 궁인 중엔 끌끌 혀를 차는 이가 많았다. 나라가 어떻게 되려구 그러나. 그렇지만 앞에 서서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새로운 임금은 새로운 자리가 적응되지 않는지 눈만 멀뚱거렸다. 목마른 낌새가 보여 물이라도 떠 내밀면 화들짝 놀라며 그것을 양손으로 받았고, 음식을 대접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을 한참을 살폈다. 그리고 대신들이 처소에 찾아들면 무릎을 꿇고 그들을 맞이하는 모습에 내시는 허탈함을 느꼈다.


“전하께서는 갑자기 일어난 일에 정신이 없을 것이시니, 모든 일은 저희에게 맡기시옵고…”


발언은 충격적이기만 하다. 누군가 나서서 역모라고 단정 짓는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어린 임금은 그 발언이 어떤 뜻인지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그저 ‘네네’ 거릴 뿐이었다. 아이고, 어린 임금아. 내시는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만 같았다.








4.


어린 임금은 얼굴에서부터 어린 티가 났다. 수저를 쥐여주고 밥을 떠먹여 줘야 할 정도의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내시는 침소의 불을 죄 다 끄고 저 앞으로 나가 있었다. 홀로 남은 임금은 멀뚱멀뚱 찬장을 보았다. 이 넓은 방 안에 혼자 있으려니 무섭기만 했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올려 잠을 청하고자 하였으나 잠은 오지 않는다. 아무리 지내도 익숙해지지 않는 곳이다. 지내면 지낼수록 무섭기만 했다. 저를 무시하는 대신들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 것마냥 구는 궁인들도, 그리고 저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는 백성들도. 모든 게 무서웠다. 천만 보면 목을 매달고 죽고만 싶었고 날카로운 것만 보면 손목을 그어버리고만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도망갈 것을 막기라도 하듯, 창문을 열어도 바깥은 보이지 않는다. 외로운 복도만이 보일 뿐이다. 임금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어디 가시냐는 물음이 따라온다.


“그냥…바깥에 나가고 싶어서…”


말끝에 ‘요’를 떼놓는 건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임금은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간다. 당연하게도 겨울밤은 춥다. 임금이 작게 기침을 하자 겉옷을 챙겨온 운검이 임금이 어깨에 옷을 걸쳤다. 아무도 어린 임금의 산책을 막지 않았으나, 주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응시하고 있었다. 감시를 당하는 것만 같은 모습에 임금은 몸이 움츠러들었다. 

임금이 어딜 가던 뒤로 궁인이 졸졸 따른다. 뱀도 아니고, 임금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뒤를 흘끔 보았다. 그럼 시선이 매라도 된 것처럼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임금은 계속 걸었다. ‘그만 따라오세요.’ 그 말이 뭐가 그리 무거운지 뱉어내지도 못하고, 땅만 보며 걸었다.


“…전하께서 기다리라 하십니다.”


운검이 말을 했다. 일제히 ‘예, 전하.’ 하고 답을 하고 고개를 숙인다. 임금이 운검을 보았다. 운검 또한 고개를 숙였다.








5.


어린 임금은 운검을 믿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임금을 지키는 자라고는 하지만 과연 운검이 지키는 게 자신인지 그저 ‘임금’이라는 이름인지 아직 몰랐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후자가 더 그럴 듯 보였다. 어린 임금은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이런 옷을 입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싫었다. 

엄마는 뭘 하고 있을까. 임금은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앉았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토록 넓은데 임금을 위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임금은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그냥 콱 죽어버릴까, 하고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드는데…


“안녕.”


낯선 이가 서 있었다. 임금은 놀랐다. 하마터면 ‘억’하고 소리를 질러버릴 뻔했다. 제 입을 틀어막으며 앞에 서 있는 낯선 이를 보았다. 낯선 이는 치마를 정리하며 임금의 옆에 앉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임금을 봐왔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혼자 돌아다니면 안 돼. 운검은 어디 있어?”

“저기…”


임금이 가리키는 곳엔 운검이 있다. 운검은 임금과 임금의 옆에 앉아 있는 낯선 이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둘은 아는 사이임이 분명했다. 임금은 낯선 이를 보았다.


“누구…누구세요…”

“임금은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누구냐.’ 라고 해야지.”

“…누구냐고 묻잖아.”

“‘누구냐고 묻지 않느냐.’라고.”

“…뭐야.”

“목소리도 그렇게 내지 말고, 좀 더 낮게 내는……아.”


임금의 얼굴을 빤히 보던 낯선 이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웃어 보인다. 어린 임금은 그 웃음이 불안했다. 혹시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알아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다, 보통 사람은 그런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인데…. 머리가 뒤죽박죽이었다. 낯선 이는 그걸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임금의 등을 토닥였다.


“너 계집이로구나.”








6.


임금은 한참을 달렸다. 들켰다.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된다고 그랬는데, 들켜버리고 말았다. 임금은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우뚝 멈춰섰다. 임금이 달려나가면 누구 하나 따라올 법도 한데, 뒤를 따라오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임금은 코를 훌쩍였다. 외로웠다.








7.


임금은 나라의 지존이라는데 궁 안의 이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임금이 지나갈 때면 대놓고 비웃는 것은 기본이요, 아예 인사를 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임금은 돌계단에 쪼그려 앉아 저 멀리 지나가는 새를 보았다. 임금의 자리란 너무나도 한가했다. 대신들은 어린 임금더러 힘들 테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라는 말로 임금을 따돌렸다. 임금은 정말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8.


임금의 처소란 아무나 찾을 수 없는 것인데, 낯선 이는 그 어떤 제재도 받지 않고 들어왔다. 오히려 궁 내부의 이들이 낯선 이를 보고 깍듯하게 구는 하였으니, 임금은 낯선 이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뭐 선왕의 숨겨둔 핏줄이라도 될까, 아니면 어떤 대신의 딸일까, 아니면 귀신이나 뭐 산신령이라도 되는 것일까. 임금은 낯선 이를 빤히 보았다. 방 안을 둘러보던 낯선이는 임금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 자태가 어찌나 당당한지 임금은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죄지은 자 마냥 고개를 푹 숙였다. 바로 앞까지 걸어온 낯선 이가 임금을 불렀다. ‘전하’도 ‘임금’도 ‘주상’도 아닌 ‘야’라는 호칭으로 임금을 부른 낯선 이는 임금의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임금을 무시하던 대신들도 최소한의 호칭을 사용했던지라 임금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 얼굴에 낯선 이는 웃지도 않고 다시 ‘야’하고 임금을 불렀다.








9.



“그들이 널 버릴 거야.”

“…네?”

“아바마마를 죽인 것처럼 널 이용하고, 쓸모가 없어지면 널 버릴 거야. 아, 참. 너 버린다는 말이 뭔 줄은 아니?”

“…버린다는 거잖아요.”

“죽인다는 거야.”


낯선 이가 도리질을 해 보인다. 저 바보 같은 게 도대체 어디서 굴러왔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무얼 하든 어리바리하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고. 맹수들의 소굴인 이 궁 안에서 딱 잡아먹히기 좋은 존재였다. 만일 운검이 없었다면 진작에 목이 댕강 잘려 저 문 앞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쩜 좋담. 낯선 이는 팔짱을 끼고 임금을 보았다. 보면 볼수록 감탄만 나왔다. 대신들이 사람 하나 잘 고르기는 했다. 저런 바보 같은 애는 아마 세상천지에 없을 것이었으니까.








10.


“어깨를 쫙 펴.”

“…이렇게요?”

“허리도 바로 하고.”

“…불편해요.”

“당연히 불편하지.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앞으로는 잘 때 빼고 이 자세를 취하도록 해.”


너는 그렇지 않아도 바보같이 생겼는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공주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어린 임금의 자세가 너무나도 불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진짜 이런 바보 같은 게. 공주는 팔짱을 끼고서 임금을 보았다.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하는 거 하나는 마음에 들기는 했다.








11.


임금은 공주의 말을 속으로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허리 세우고, 어깨 펴고, 턱을 살짝 들고, 시선을 피하지 말고, 말을 더듬지 말고, 절대 먼저 인사를 하지 말고…. 그것들을 생각하다 보니 벌써 대신들이 앞으로 와 앉아 있었다. 하나 빼먹은 것이 기억났다. 앉기 전에 먼저 앉으라는 말로 선수를 치라고 그랬었는데. 살짝 표정을 찡그렸다가 다시 바로 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에 대신들은 서로 시선만 주고받았다. 버선발로 뛰쳐 나와 인사를 했을 저 바보 같은 임금은 오늘은 약이라도 잘못 먹은 것인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새 머리라도 큰 모양이구나. 그렇게 강아지를 보는 눈빛으로 어린 임금을 보곤 저들끼리 시시덕거렸다. 어린 임금은 갑작스러운 웃음에 당황만 할 뿐이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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